설교요약

하나님을 기뻐함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라(4)_지식과 사랑, 그리고 기쁨의 삼중주(시 3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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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6-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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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기뻐함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라(4)

지식과 사랑, 그리고 기쁨의 삼중주(시 37:4-6)



인생의 제일 되는 목적에 관한 탐구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인간의 존재 목적이 무엇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게 됩니다. 이 질문에 대해 기독교 역사 속의 위대한 두 기둥은 각각 중요한 답을 제시했습니다. 종교개혁자 존 칼빈은 그의 저서 『기독교 강요』를 통해 "인간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아는 것"이라고 정의했습니다. 반면,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1문은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며,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저는 오랜 세월 이 두 가르침 사이에서 깊은 신학적 실랑이를 벌여왔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과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즐거워하는 것"은 과연 별개의 과업인가, 아니면 하나의 길 위에 놓인 단계인가 하는 문제였습니다. 독서와 성경 묵상, 그리고 수많은 설교의 현장에서 이 문제는 제 마음을 떠나지 않는 화두였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어떻게 영화롭게 하는 삶으로 이어지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기뻐함'은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대해 해답을 찾기 위해 수많은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이제 비로소, 이들 사이의 간격을 메우고 하나로 잇는 영적인 원리를 여러분에게 전해드릴 수 있는 자리에 서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 계시하시는 하나님과 계시를 수용하는 인간

우리가 믿는 개혁 신학의 가장 기초적이면서도 영광스러운 전제는 "하나님은 자신을 알리시는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본래 인간의 유한한 지각으로는 도저히 측량할 수 없는 무한하신 분입니다. 그러나 그분은 고립되어 계시지 않고 자신을 우리에게 기꺼이 드러내셨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계시'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은 계시하시는 분이며, 우리에게 자신을 알려주기를 기뻐하시는 분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침묵하셨다면, 우리는 영원히 어둠 속에서 방황했을 것입니다. 세상의 수많은 피조물 가운데 오직 인간만이 하나님의 계시를 인격적으로 수용하고 깨달을 수 있는 존재로 창조되었습니다. 산천초목과 짐승들도 하나님의 솜씨를 드러내지만, 그들이 하나님의 뜻을 지식으로 소유하지는 못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계시를 아는 존재'로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이 성경을 우리에게 주신 이유는 그 안에 하나님 자신에 관한 모든 지식을 기록해 두셨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통해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을 향한 참된 지식의 문을 열게 됩니다.


지식의 역사: 마음의 반응으로서의 예배와 찬양

성경을 통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우리 속에 들어오면, 그 지식은 죽은 정보로 머물지 않고 우리 영혼 안에서 강력하게 역사하기 시작합니다. 지식은 반드시 '마음의 반응'을 불러일으키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하는 이유는 단순히 종교적 의무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우리 마음속에서 소용돌이치며 그분의 영광에 반응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그분이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깨닫는 순간, 우리 영혼은 그분을 향해 엎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참된 예배는 언제나 참된 지식 위에 세워집니다. 지식이 없는 예배는 맹목적인 열광에 불과하며, 예배가 없는 지식은 메마른 지성주의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지식이 마음속에 역사하면 찬양은 저절로 흘러나옵니다. 제가 학생 시절 처음 은혜를 받고 회심했을 때를 기억합니다. 예수님을 인생의 주인으로 모신 후, 제 영혼 깊은 곳에서는 맑은 가락이 멈추지 않았습니다. 길을 걸을 때나 교회에 오갈 때, 제 입술은 늘 찬송을 흥얼거리고 있었습니다. 주변 분들이 "장욱이는 지나갈 때 보면 항상 찬송을 부르고 있다"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제 마음에 역사하니 찬양이 억제할 수 없는 기쁨으로 터져 나왔던 것입니다. 이 지식은 또한 하나님의 뜻을 따르려는 충성스러운 마음을 일으킵니다. 하나님이 무엇을 기뻐하시는지 알게 되면, 그것을 행하는 것이 결코 고통스럽거나 힘들지 않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다"라고 배우면, 즉시 순종하고 싶은 열망이 생깁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살아 있을 때는 교회 봉사나 헌신이 짐으로 느껴지지 않습니다. 밤을 새워 일해도 아깝지 않고, 오직 그분을 섬기는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보상이 됩니다.


사랑: 지식과 기쁨을 잇는 영적 연결 고리

그렇다면 왜 어떤 이들에게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기쁨으로 이어지지 않을까요? 왜 신앙생활이 그토록 무겁고 힘든 의무처럼 느껴질까요? 여기서 제가 오랜 고민 끝에 발견한 핵심적인 열쇠가 등장합니다. 바로 '사랑'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우리 속에서 하나님께 대한 사랑을 불러일으킵니다. 자동차를 움직이게 하는 엔진이나 전기차의 배터리처럼, 우리 영혼을 움직이는 실질적인 동력은 사랑입니다. 지식은 그 사랑에 불을 지피는 연료와 같습니다. 빌립보서 1장 9절에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기도합니다.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이 말씀은 혁명적입니다. 사랑이 풍성해지는 길이 무엇입니까? 바로 '지식'입니다. 하나님을 더 많이 아는 사람이 하나님을 더 많이 사랑하게 됩니다. 그분의 위대함과 자비하심을 깊이 알수록 우리 마음의 사랑의 온도는 높아집니다. 칼빈이 강조한 '아는 것'과 웨스트민스터가 말한 '영화롭게 하며 즐거워하는 것'은 서로 다른 별개의 종이가 아닙니다. 이 두 장의 종이를 하나로 강력하게 붙여주는 영적인 풀이 바로 사랑입니다. 사랑은 띠와 같아서 지식과 기쁨을 하나로 묶어줍니다. 사랑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요한일서 4:8). 형제 사랑 역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비롯됩니다. 하나님이 그를 사랑하셨고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하셨음을 '알기에',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 형제를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시작되어 사랑을 통과하여 기쁨으로 완성됩니다.


사랑에 빠진 자: 하나님의 기쁨을 기뻐함

사랑에 빠진 사람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사랑하는 대상이 기뻐하는 것을 나도 기뻐하는 것입니다. 자녀를 사랑하는 부모는 자녀의 행복을 자신의 행복으로 여깁니다. 연애하는 청년들은 상대방을 기쁘게 하기 위해 자신의 시간과 에너지를 아낌없이 쏟아부으며, 상대가 미소 지을 때 최고의 만족을 느낍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의 기쁨과 행복을 위해 헌신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우리를 사랑으로 이끌면, 우리는 "하나님은 무엇을 기뻐하시는가?"에 집중하게 됩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당신의 영광을 나타내시는 것을 기뻐하시며, 죄인이 회개하고 돌아오는 것을 기뻐하신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바로 그 일을 할 때 자기 안에서 무한한 기쁨을 누립니다. 이것은 의무가 아니라 특권입니다. 하나님의 기쁨이 곧 나의 기쁨이 되는 신비로운 연합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쁨: 우리 구원의 근거

우리가 하나님을 기뻐해야 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하나님 자신이 '기쁨으로 일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존 파이퍼 목사는 그의 저서 『하나님의 기쁨』에서 하나님은 결코 결핍된 상태에서 일하지 않으신다고 강조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영광을 스스로 기뻐하시며, 그 영광을 피조물에게 나누어 주기를 기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것도 기쁨으로 행하신 일입니다.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신 것도, 그분이 십자가를 지신 것도 하나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는 일을 기뻐하셨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는 고통의 자리였지만, 그 너머에 있는 구원의 열매를 바라보시는 것은 하나님의 거대한 기쁨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기쁨이 없었더라면 우리의 구원도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그분을 사랑하게 된 우리는, 그분의 기쁨을 발견하고 그 안에서 안식하는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기뻐함이 우리에게 행복인 이유

세상 사람들은 행복을 어디서 찾습니까? 아리스토텔레스 이래로 수많은 철학자는 인간이 추구하는 궁극적인 목적을 '행복'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말하는 행복은 인간의 덕이나 노력을 통해 성취하는 것이었습니다. 기독교인이 누리는 행복은 차원이 다릅니다. 우리는 내 안에서 선을 짜내어 행복해지는 존재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사랑하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행함으로 하나님으로부터 흘러나오는 행복을 수용하는 존재입니다. 이것이 바로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이 말하는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의 실체입니다.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것이 곧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최고의 방법입니다. 존 파이퍼는 『하나님을 갈망하라』(Desiring God)를 통해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가장 만족할 때 하나님께서 가장 영광을 받으신다고 역설했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우리 안에 거룩한 갈망을 일으키고, 그 갈망이 하나님 사랑으로 채워질 때 우리는 비로소 창조 목적에 부합하는 행복한 존재가 됩니다.


회복의 길 — 여호와를 기뻐하라

현재 여러분의 신앙생활은 어떠하십니까? 혹시 메마른 의무감에 짓눌려 있지는 않습니까? 일주일을 꾹꾹 참다가 주일 예배 한 번 나오는 인내의 신앙을 하고 계신 것은 아닙니까? 예배가 좋으면 일주일이 너무나 길게 느껴집니다. '일각이 여삼추'라는 말처럼, 하나님을 예배하는 그 시간이 너무나 소중해서 수요일, 금요일에도 하나님 앞에 나오지 않고는 견딜 수 없게 됩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우리 마음을 적시면 순종이 힘들지 않습니다. 핑계를 대지 않습니다. 그분이 기뻐하신다면 즉시 움직이는 역동적인 삶이 시작됩니다. 시편 37편 4절은 우리에게 분명한 회복의 길을 제시합니다.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우리 삶의 힘과 능력이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기쁨을 찾을 때, 하나님은 우리 마음의 근원적인 갈망을 채우시고 소원을 이루어 주십니다. 이것은 단순한 기복 신앙이 아니라, 하나님과 사랑의 관계에 있는 자가 누리는 당연한 결과입니다. 느헤미야 8장 10절은 선포합니다.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인생의 환난과 고난, 인간관계의 상처로 지쳐 있습니까? 회복의 유일한 길은 다시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분을 아는 지식을 회복하여 사랑을 깨우고, 그 사랑 안에서 하나님을 기뻐하는 자리에 서십시오. 그때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새로운 힘이 여러분의 영혼에 부어질 것입니다.


기쁨의 선순환으로의 초대

오늘 우리는 칼빈과 웨스트민스터, 그리고 성경이 증언하는 인생의 목적이 결국 '사랑'이라는 띠로 하나가 됨을 확인했습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은 고역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출발하여 그분을 향한 뜨거운 사랑으로 불타오르고, 마침내 그분을 온전히 기뻐함으로 완성되는 영광스러운 여정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힘써 알기를 원합니다. 그 지식이 우리 마음의 감정을 자극하여 하나님을 향한 깊은 사랑으로 이어지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그 사랑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갈망으로 승화되어, 우리 삶 전체가 하나님의 기쁨으로 가득 차기를 소망합니다. 여러분이 하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고, 그분을 기뻐하는 것이 여러분의 가장 큰 즐거움이 될 때, 하나님은 여러분을 통해 가장 큰 영광을 받으십니다. 2026년 한 해, 우리 모두가 여호와를 기뻐하는 그 거룩한 즐거움에 사로잡히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여러분의 삶을 변화시키고,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여러분의 엔진이 되어, 날마다 기쁨의 찬송을 부르며 승리하는 복된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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