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상황속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라(1)_우리의 삶 속에 찾아오시는 하나님(출 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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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6-08-15본문
모든 상황속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라(1)
우리의 삶 속에 찾아오시는 하나님(출 3:1-5)
예배의 본질과 하나님을 향한 여정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삶이란 도대체 무엇일까요? 하나님이 어디에 계시길래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까요? 과거에는 그에 대한 대답이 쉬웠습니다. 구약 시대에는 예루살렘 성전으로 가는 것이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삶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전 중심의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성전이 있어야 하나님이 계시고 그곳이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는 곳이라는 거지요. 그러나 이스라엘 역사에서 성전이 파괴되는 때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벨론 느브갓네살 왕이 예루살렘을 함락시키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포로로 잡아가고, 마침내 예루살렘을 파괴하고 성전조차 파괴합니다. 당시 바벨론에 있던 에스겔 선지자가 기도하는 중에 환상을 보게 되는데 천사가 그를 성전으로 인도하여 성소에서 나오는 연기를 보았습니다. 얼마 후에 예루살렘에 갔던 그의 동생이 돌아와서 성전이 완전히 파괴되었다는 소식을 전했습니다. 에스겔 선지자가 본 환상은 하나님이 그곳을 떠나는 장면이었던 것입니다.
성전이 없어지는 위기속에서 탄생한 회당예배
연기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과 함께 계시는 것을 증거하는 하나님의 영광의 징표였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이 출애굽할 때 불기둥과 구름기둥의 모양으로 함께 했었고, 광야 40년 동안 언제나 그들과 함께 했었습니다. 성막을 지었을 때 성막에 구름기둥이 임하였고, 지성소 안에 구름이 가득하여 하나님이 자기 백성과 함께 계시는 것을 증명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막에 찾아가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곳에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와서는 성전을 지었습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완공하여 하나님께 봉원하는 그날 구름이 지성소 안에 가득차 하나님이 자기 백성과 함께 계시는 것을 증거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구름이 떠나는 사건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제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어디서 예배해야 할까요? 어느 곳으로 가야 하나님을 만날 수 있을까요? 성전이 없으니 이제부터는 하나님을 예배할 수 없을까요? 그러나 그들은 포로된 땅에서도 계속해서 하나님께 예배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회당 예배입니다. 회당 예배는 더 이상 희생제물을 잡아 하나님 앞에 드리는 예배가 아닙니다. 회당 예배는 말씀 예배였습니다. 말씀을 읽고 찬양하고 말씀의 뜻을 밝히는 형식으로 진행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 회당 예배가 오늘날 우리의 예배의 원형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먼저 찾아오시는 삶의 현장
성전이 없으면 하나님을 예배할 수 없을까? 성전이 없으면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없을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누구에게나 찾아오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리이며 하나님을 만난 곳에서부터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삶이란 알고 보면 하나님께서 찾아오시는 삶인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말씀은이 사실을 우리들에게 알려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찾아오시는 것. 그 하나님을 만나고, 그 하나님을 마음에 모시며, 그 하나님을 나의 삶에 모시고, 그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는 것. 바로 이것이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삶인 것입니다. 이것은 역설입니다. 알고 보면 내가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에게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 말씀은 바로 이것을 우리들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삶의 현장에 찾아오셨습니다. 모세가 광야로 도피하여 40년 동안을 살았는데 어느날 모세가 양떼를 이끌고 호렙 산에 이르게 되었을 때 그곳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된 겁니다. 모세는 애굽에서 왕자의 삶을 살다가 히브리 사람을 학대하는 애굽 사람을 죽이고 살인자가 되어 광야로 도피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이드로의 사위가 되어 그곳에 정착을 하게 됩니다. 어느 덧 40년 세월이 지나갔고 그동안 그는 목자가 되어서 양을 치고 있었던 겁니다.
그런데 그날도 어느 날과 같은 날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게 되었을 때 그는 그곳에서 불이 붙어 있지만 타지 않는 떨기 나무를 보게 되었습니다. 참 이상한 일이지요. 자세히 보려고 다가갔다가 그곳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습니다. 양을 치던 모세에게 하나님께서 나타나셨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산 호렙에 찾아간 것일까요? 아닙니다. 그곳을 하나님의 산 호렙이라고 부른 것은 모세가 이곳에서 하나님을 만났기 때문에 후에 붙여진 명칭일 뿐입니다.
일상 속에서 하나님과의 뜻밖의 만남
그때는 일반적인 땅이었습니다. 아마도 모세는 그 곳을 여러 차례 왔던 곳으로 보입니다. 그것은 유목민들의 삶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유목민은 정처 없이 다닌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그렇지 않습니다. 유목민은 계절에 따라 일정한 지역의 목초지를 돌아다닙니다. 풀이 있는 곳을 찾아 이동하는데 조상 대대로부터 내려오는 지역을 돌게 마련입니다. 조상 대대로 거의 변화 없이 그 삶을 삽니다. 모세가 호렙산에 이르렀을 때 그 지역도 역시 계속해서 돌던 지역이라는 것입니다. 모세는 그곳을 여러 차례 찾아갔습니다. 아마도 수십번 찾아갔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바로 그 곳에 하나님께서 찾아오신 것입니다. 모세는 신기한 장면을 보게 되었습니다. 가시떨기 나무에 불꽃이 있었고, 그런데도 불타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가 늘 가던 곳에, 모세가 여러 차례 방문했던 그 자리에 찾아오신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여러분의 삶 속에 찾아오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먼저 찾아오신 분이십니다. 우리의 삶의 자리에 찾아오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과연 이곳에 계시는가? 눈을 뜨고 찾아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영적인 눈으로 하나님께서 과연 이곳에 계시는가? 찾아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과연 하나님께서 이곳에 계십니다라고 외칠 수 있어야 합니다.
막막한 인생길에서 만난 하나님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시지만 찾아오신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우리를 만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그 자리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하나님을 어디 가서 찾아야 될까? 막막한 때를 만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뭔가 역사해 주기를 기대하는 그런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만나야 뭔가 해 볼 거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그 순간 하나님은 여러분을 찾아오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찾아오시기를 구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곳에서 나를 만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나타나신 때 모세는 어떤 상황이었을까요? 생각해 보면 모세는 참으로 막막한 때였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애굽에서 있었던 영광스러운 순간들은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먼 과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광야에서 이미 40년 세월이 지나갔고 나이는 80세에 이르러 이제는 인생이 거의 끝나는 무렵이었습니다. 그런 순간에 하나님께서 모세를 찾아오셨습니다. 인생의 절정기가 다 지나갔습니다. 찬란했던 순간들이 지나갔습니다. 모든 가능성이 다 사라진 순간이었습니다. 모세에게 새로운 삶이 가능할까요? 그는 이제 목자로 살다가 삶을 마감하는 것밖에 없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모세를 찾아오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찾아오심으로부터 모세는 변화된 삶을 살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 것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5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고 말씀하십니다. 옛날부터 거룩한 곳이었을까요?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만나기 위하여 그 자리에 찾아오셨기 때문에 그 자리가 거룩한 곳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거룩한 곳에서 신발을 벗고 하나님을 경배하는 순간 모세에게는 새로운 삶이 열린 것입니다. 모세가 하나님을 만난 순간부터 그곳은 거룩한 곳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모세의 삶이 이제까지와는 전혀 반 다른 영광스러운 삶으로의 변화가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공간과 시간의 대전환이 일어나다
공간의 대전환 뿐만 아니라 시간의 대전환이 그곳에서 일어났습니다. 이제부터 모세는 전혀 다른 시간을 살아야 됩니다. 인생이 끝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제부터 인생을 새롭게 시작하는 사람이 된 거예요. 그에게는 과거의 모든 삶은 지나갔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목자의 삶을 살지 않습니다. 그는 이제는 더 이상 죽을 날만을 기다리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의 삶은 하나님께서 새롭게 주신 사명을 붙들고 살아가는 삶이 되었습니다. 대전환이 그곳에서 일어난 것입니다.
이 모든 일을 위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요구하신 것은 단 한 가지, 바로 신발을 벗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마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신을 벗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당시 신발은 사회적 신분과 권리, 소유권을 상징했습니다. 노예들은 신발을 신을 수 없었으며, 신발을 신는다는 것은 사회적 지위가 있음을 뜻했습니다. 모세가 신발을 신고 있었다는 것은 제사장 이드로의 사위이자 목자로서 어느 정도 지위를 갖춘 존재였음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하나님 앞에서 그는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했습니다. 즉,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온전히 포기하고 종의 자세로 서야 했던 것입니다. 신발을 신고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신발을 벗음으로써 자신을 낮추고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두 번째로 신발을 벗는다는 것은 더러운 것을 씻어내는 것을 의미합니다. 먼지가 날리는 메마른 땅을 하루 종일 걷다 보면 신발에 먼지가 가득 쌓이기 마련입니다. 예전에 양말 없이 고무신을 신고 다닐 때, 저녁 무렵이면 신발 테두리를 따라 검은 때가 띠처럼 생기던 것을 기억하시나요? 신발을 벗으면 검은 때가 생기기 마련이라 이를 깨끗이 씻어야 하듯, 우리도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는 신발을 벗고 옛 죄와 더러운 모습들을 모두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만나기 위해서는 과거의 추한 모습들을 그대로 간직한 채 나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신발을 벗는 것은 자신의 신분이 하나님의 종임을 고백하는 영적 신분의 전환을 상징합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신발을 벗으라고 하신 것은 그의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하신 것이었습니다. 모세가 신발을 벗고 하나님을 진정한 주님으로 영접하며 경배했을 때, 그가 서 있던 자리와 무릎 꿇은 곳, 그리고 그의 전 생애가 변화되는 놀라운 은혜가 임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찾아오시면서 시작되는 새로운 삶
하나님을 어떻게 찾아갈 수 있을까요?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삶이란 무엇일까요? 여러분, 이것은 상징적으로 표현된 말입니다. 실상을 알고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찾아오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나님을 만났으니 이제부터 너는 변화되어야 한다고, 그 변화를 요구하고 계십니다. 우리의 영적 신분이 변화되고, 우리의 예배 습관이 변화되고, 삶의 모든 주권을 하나님께 내어 드리면서 이제 나는 새로운 삶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대전환, 이것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삶의 모습입니다. 오늘 저는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여러분에게 하나님께서 찾아오시는 놀라운 은혜가 임하기를 소망합니다. 여러분은 이 하나님의 임하심을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눈이 열려 이 순간 하나님께서 과연 내 앞에 찾아오셨고, 내 이름을 부르시며 “이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신발을 벗으라” 하고 말씀하시는 음성을 듣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변화된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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