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요약

모든 상황속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라(4)_예배를 위해 생명을 건 사람들 (단 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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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6-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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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상황속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라(4)

예배를 위해 생명을 건 사람들 (단 6:10)



예배를 위해 생명을 건 사람들

오늘 읽은 다니엘서 6장 10절은, 다니엘 선지자가 큰 환난과 협박을 당하는 장면을 보여 줍니다. 그는 이미 바벨론 땅에서 거의 70년 가까이 살면서 지혜로운 자들의 수장으로서 국가의 여러 일에 참여했고, 정치가이자 민족의 선지자로서 성실하게 활동해 왔습니다. 그런데 다리오 왕이 즉위하여 다니엘을 세 명의 총리 중 수석 총리로 세우려 하자, 대적들은 그를 그 자리에서 끌어내리려는 음모를 꾸밉니다. 그들이 마련한 계책은 바로 “앞으로 30일 동안 왕 이외의 다른 신에게 기도하는 자는 엄벌에 처한다”는 조서를 왕에게 올려, 마치 왕의 권세와 영광을 높이는 법인 것처럼 보이게 하여 다리오가 흔쾌히 서명하도록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상 다니엘을 붙잡기 위한 함정이었습니다. 이 계책은 실패할 수 없는 것처럼 보였고, 다니엘이 그 조서 아래에서도 반드시 하나님께 기도하고 경배할 것이라고 모든 대적이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과연 다니엘은 그 조서가 내려졌다는 사실을 알고도 전과 조금도 다르지 않게 하루 세 번씩 엎드려 기도하며 경배했습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다니엘 6:10)


타협하지 않은 다니엘

다니엘이 이 일을 맡는 데에 조금이라도 망설임이 있었을까요?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는 ‘30일 동안만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를 중단하자. 하나님께서도 다 용서해 주실 것이다’라고 조금도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이 일에는 타협의 여지가 전혀 없었습니다. 다니엘은 누구보다도 상황을 정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 나라에서 거의 70년 동안 정계의 핵심 자리에 있으면서 그 시대의 가장 지혜로운 인물로 손꼽혔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결과가 어떻게 될지 충분히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뒤돌아보지 않고 하나님 앞에 나아갔습니다. 더욱이 그는 숨어서 기도하지도 않았습니다. 다락방의 창문을 열고 예루살렘을 향해 무릎을 꿇은 채 기도했기 때문에, 대적들은 밖에서도 그 모습을 분명히 볼 수 있었습니다. 그는 예전부터 하던 그대로 행했을 뿐이었습니다. 대적들은 즉시 왕에게 고발했고, 그제서야 다리오가 자신이 속았음을 깨달았지만 이미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었습니다. 결국 다니엘은 굶주린 사자들이 있는 사자 굴에 던져졌습니다. 그러나 하룻밤이 지난 뒤 다리오 왕이 달려와 “다니엘아!” 하고 부르자, 다니엘은 멀쩡히 살아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지켜 주셨던 것입니다. 이에 다리오는 다니엘을 높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옛날 이야기로만 들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 그 내용을 흔히 아주 오래전 과거에 일어난 역사적 사건으로만 받아들이며 현재의 삶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로 흘려듣곤 합니다. 옛날 이야기는 대개 긴장감 없이 흥미롭게 들을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가 느부갓네살 왕이 세운 거대한 신상 앞에 절하기를 거부했다가 풀무불에 던져졌지만,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하셔서 그들을 지켜 주셨다는 이야기도 마찬가지로 과거의 한 사건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특히 그 놀라운 이적에만 주목하면 이야기는 더욱 현실과 동떨어진 것처럼 보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단지 과거에 일어난 기적을 전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이 사건이 보여 주는 믿음의 태도와 하나님의 구원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으며, 지금 우리의 삶 속에서도 동일하게 이루어질 수 있는 현실입니다.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처럼 우리가 어떤 환난과 핍박을 겪고 있든지, 또는 우상 숭배를 강요하는 세상의 압박 속에 놓여 있든지, 믿음으로 하나님을 경배하고 그분께 충성을 다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며, 우리를 통해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십니다. 하나님은 과거에만 역사하신 분이 아니라 지금도 살아 계시고 변함없이 신실하시며, 오늘도 우리 가운데서 일하시고 역사하시는 분입니다.


루마니아 지하 교회 — 리차드 웜브란트

1980년대 후반, 신학생으로 지내던 시절에 저는 『하나님의 지하 운동』이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손바닥보다 조금 큰 얇은 책이었지만, 그 안에는 루마니아 공산 정권 아래에서 신앙을 지키다가 14년 동안 투옥되었던 리처드 웜브란트 목사님의 생생한 수기가 담겨 있었습니다. 책장을 넘길수록 가슴이 두근거리고 얼굴로 무언가 치밀어 오르는 듯한 깊은 감동을 느꼈으며, 동시에 그가 겪어야 했던 고난을 생각하면서 두려움과 떨림이 뒤섞인 복잡한 감정에도 사로잡혔습니다. 당시 루마니아 공산 정권은 “종교는 아편이며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념을 내세워 교회를 억압하고, 예배를 드렸다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을 체포해 오랜 기간 감옥에 가두었으며 잔혹한 고문까지 자행했습니다. 웜브란트 목사님 역시 살을 찢어내는 듯한 고문을 당했고, 무려 3년 동안 독방에 수감되어 누구도 그에게 접근할 수 없도록 격리되는 등 극심한 박해를 겪었습니다. 그런데 이 책에는 그가 14년간의 감옥 생활 속에서도 어떻게 신앙을 지켜 냈는지, 함께 투옥된 성도들과 어떻게 하나님을 예배했는지, 그리고 자신을 고문하던 기술자들에게까지 어떻게 복음을 전했는지가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감옥 벽을 타고 흐른 예배

그 책에 담긴 장면이 떠오릅니다. 옆방과는 두꺼운 돌벽으로 가로막혀 있었지만, 그들은 모스 부호를 사용했습니다. 점과 선을 조합해 문자를 전달하는 그 부호로 벽을 두드리면, 옆방의 수감자가 그것을 알아듣고 다시 또 다른 옆방으로 같은 방식으로 전달하곤 했습니다. 주일이 되면 그들은 그렇게 성경을 전하고, 찬송을 전하며, 설교까지도 모스 부호로 주고받았습니다. 우리가 한 시간만 드리면 되는 예배가 그 방식으로는 하루 종일 이어졌습니다. 그렇게 끊임없이 두드려 전해지는 신호는 교도소 전체의 돌벽을 타고 흘러갔고, 마침내 교도소 전체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통로이자 하나님을 찬양하는 자리로 바뀌었습니다. 여러분, 상상이 되십니까? 도대체 어떻게 해야 그 정도로 하나님을 예배해야 한다고 생각했겠습니까? 그 이유는 분명합니다. 그리스도인의 본질은 예배하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도 “하나님께서는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리스도인으로 부르셨다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예배자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단지 믿음만 가진 사람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은 곧 하나님을 참되게 예배하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정체성입니다. 예배 없이 그리스도인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빈 손으로 드린 성찬

그 책에는 또 하나의 감동적인 장면이 있습니다. 나라 전체가 가난해서 성찬식을 거행하고 싶어도 떡과 포도주를 구할 수 없었던 시절이었고, 감옥의 죄수들에게도 제대로 된 음식이 주어질 리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성찬을 집행했습니다. 집행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떡을 들고 하나님 앞에 기도한 뒤, 보이지 않는 떡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참석한 이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떡을 받아 먹고, 눈에 보이지 않는 포도주를 받아 마시며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기념했습니다. 실물이 없었다고 해서 그 성찬이 아무 의미도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아무것도 없는 그 극한의 상황 속에서도 그들은 하나님께 예배드릴 수 있었고,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기념하는 은혜의 자리에 함께할 수 있었습니다. 왜 그렇게까지 했을까요? 그리스도인은 예배자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존재는 예배를 통해 드러나며, 예배가 없다면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존재도 성립할 수 없습니다.


카타콤 — 지하 묘지의 예배

교회 역사를 살펴보면, 예배를 드릴 수 없는 극한의 상황 속에서도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것을 동원해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음을 알 수 있습니다. 로마 시대에 발굴된 카타콤은 원래 시신을 장사하고 일정 기간이 지나 살이 썩으면 뼈만 추려 모아 두던 지하 묘지였지만, 오늘날에는 로마를 비롯한 여러 도시에 남아 있는 중요한 관광지가 되었습니다. 이 음산하고 좁은 지하 공간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예배를 드렸고, 사람들의 눈을 피해 찾기 어려운 곳이었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을 체포하려는 경찰도 쉽게 들어오지 못했으며, 마치 미로처럼 얽혀 있어 추격을 피하기도 쉬웠습니다. 그 벽에는 당시의 흔적이 지금도 남아 있는데, 그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이 물고기 그림입니다. 헬라어로 물고기를 뜻하는 ‘익투스’의 각 철자가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 구주’의 첫 글자와 일치해, 이 그림은 그리스도인들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예배드릴 수 없는 상황 속에서도, 또 붙잡히면 죽을 수도 있는 위험 속에서도, 그들은 결코 하나님 예배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바로 그러한 이유로 그리스도인은 예배자입니다.


일제 시대의 예배 — 주기철 목사

지난주에 살펴본 안희숙 여사의 수기 『죽으면 죽으리라』에서도 감옥 안에서 드리는 주일 예배 장면이 등장합니다. 왜 감옥 안에 있으면서도 주일이 되면 하나님을 예배해야 했을까요? 하루를 마치고 잠들기 전에 왜 하나님을 찬양해야 했을까요?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순교자로 주기철 목사님이 있습니다. 그는 1936년 평양 산정현교회 담임 목사로 부임했으며, 1938년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가 “신사참배는 우상숭배가 아니라 국가 의례일 뿐이다”라고 결의한 뒤에는 교회 예배를 시작하기 전에 동방배를 행하게 되었습니다. 동방배란 동쪽, 곧 일본을 향해 절하는 것으로, 일종의 국민 의례로 강요된 것이었습니다. 신사는 일본 신들을 모아 둔 사당입니다. 일본에 가면 동네마다 있는 것이 신사입니다. 그 신사를 향해, 즉 동쪽을 향해 절하는 것을 우상숭배로 여긴 사람들은 그 예배에 참석할 수 없었습니다. 우상숭배를 거부하면서도 예배에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이 있었을까요? 그러한 갈등 속에서 우상숭배를 하지 않는 참된 예배를 드리기 위해 비밀 예배가 생겨났고, 일본 순사들은 이를 색출하려고 혈안이 되었습니다. “순사 온다”는 말에 울던 아이도 그 무서운 일본 순사들이 비밀 예배를 적발하려 했기 때문에 생긴 것이었습니다.


지금도 계속되는 이야기

이것이 남의 이야기처럼, 먼 나라의 옛날이야기처럼 들리십니까? 그러나 이것은 분명한 현실입니다. 지금 이 순간 우리가 누리고 있는 평안이 영원히 계속될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오늘 우리가 편안한 상황에 있다고 해서 마음을 풀고 안일하게 살아가서도 안 됩니다. 바로 지금 이 순간에도 생명의 위협 속에서, 말로 다 할 수 없는 고통 속에서 예배하는 우리 형제자매들이 있습니다. 같은 믿음을 가진 사람으로서 그들의 아픔과 고통을 외면한 채 각자의 편리함만을 따라 살 수는 없습니다. 예배는 그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습니다. 어떤 세력도, 어떤 억압도 하나님을 향한 예배를 막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영원하신 분이시며, 온 땅의 주님이시며, 우리를 구원하신 참 구주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예배자입니다. 그리스도인 역시 예배자입니다. 예배 없이 예수님을 믿는 신앙은 존재할 수 없으며, 예배 없이 하나님을 섬기는 삶도 결코 존재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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