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상황속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라(5)_네 마음을 확정하라 (시 57: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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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6-08-29본문
모든 상황속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라(5)
네 마음을 확정하라 (시 57:6-11)
영혼의 깊은 갈급
시편 42편은 성전 예배를 드리지 못하는 시인이 자신의 안타까운 상황을 괴로워하고 고통스러워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는데, 그때 그는 자기의 그 심정을 목마른 사실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하다는 것으로 표현을 했으며, 이는 단지 갈증을 해갈하는 정도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생명과 직결되는 문제임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대해 이런 목마른 사슴의 상태가 된 시인은 도대체 어떤 상황을 겪고 있었을까요? 그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사람들이 자신을 향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하고 조롱한다고 말입니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네가 그렇게 믿고, 네가 그렇게 의지하며, 네가 그렇게 찾는 하나님은 도대체 어디에 계시느냐?” 하며 비웃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다면, 네가 지금 이와 같은 상황을 어떻게 견딜 수 있겠느냐는 뜻입니다.
사람들의 비난과 멸시, 조롱과 모욕이 계속 있었습니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그의 마음은 더욱 깊이 상했습니다. 과거에는 하나님을 찾아 경배하며, 성도들과 함께 동행하던 때가 있었지만, 지금 그 모든 것은 이미 지나간 현실이었습니다. 내가 예전에 성도들과 함께 성의를 지키며 주님을 섬겼고, 그들과 더불어 하나님께 찬송을 드리며 나아가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그런 자리에 있지 않습니다. 그때는 모든 성도들과 함께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아가던 시절이었습니다. 다윗은 그때 모든 성도들을 인도하였다고 이야기합니다. 더구나 그들을 하나님의 집으로 인도하며, 그는 누구보다도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모든 성도들에게 인정을 받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일은 이제 지나간 일입니다. 이제는 더 이상 그가 그 자리에 있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그가 이렇게 변해 버린 모습을 보면서 오히려 그 일을 비난의 재료로 삼습니다.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시인은 마치 목마른 사슴처럼 물을 찾아 헤매지만, 물은 없고 혀는 갈라지며 숨 쉬는 것조차 고통스러워 이대로 더 가면 죽을 수밖에 없는 절박한 처지에 놓인 자기 자신을 목마른 사슴에 비유한 것입니다.
갈등 속 교회를 향한 방황과 착각
하나님 앞에 제대로 경배하지 못할 만큼의 어떤 일이 우리에게 닥쳤을 때, 그때 우리의 영혼은 어떤 상태에 놓여 있을까요? 크든 작든 우리에게도 이와 비슷한 경험들이 있을 것입니다. 저 역시 청년 시절에 섬기던 교회를 떠나야 했던 순간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눈을 감고 기도할 때 저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렸고, 마음속에서는 ‘내가 왜 여기까지 와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 저는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다시 돌아가겠습니다.” 내가 있는 자리가 어디이든, 하나님께서 계시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문제가 생길 수 있고, 그 문제의 원인이 나에게 있을 수도 있지만, 때로는 성도들 각자의 부족함 때문에 갈등이 생기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곧바로 누구의 잘못인지 분명히 가려낼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내가 먼저 사과한다고 해서 문제가 풀리는 것도 아닙니다. 누구의 잘못을 모두 가려낼 수 있다 해도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그때부터 또 다른 문제가 새롭게 시작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참으로 힘들고 어렵습니다.
요즘 성도들을 보면, 크고 작은 이런 문제들을 겪으면서도 교회를 떠나야 할지, 아니면 다른 교회로 옮겨야 할지 고민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참 많습니다. 설문 조사를 보면, 지금 다니는 교회에 만족하고 기뻐하는 사람보다 그렇지 못한 사람이 더 많을 정도로, 현대 교회는 실로 수많은 갈등과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교회를 떠나면 모든 것이 달라질까요? 어떤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고, 또 실제로 교회를 떠나기를 기다리기도 합니다. 떠나면 무엇이 달라질까요? 다행히 교회를 옮겨도 적응을 잘해서 잘 지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더 많은 사람은 적응하지 못한 채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방황을 시작합니다. 그때 그는 자기 영혼이 목마른 사슴처럼 갈라진 혀로 헐떡거리고 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한 채, 방황하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그렇다면 진짜 문제를 해결하는 길은 어디에 있겠습니까? 교회를 바꾸는 것입니까, 아니면 자신이 변화되어 우리 주님을 만나는 것입니까? 사람들은 모여 있는 곳이니 결국 다 똑같습니다. 어느 곳에 가든 사람들은 같은 사람이고, 사람들로 이루어진 구성 역시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디를 가든 사람은 똑같다
시회에는 ‘구조’라는 것은 분명하게 존재합니다. 예를 들어 드라마나 영화 같은 작품을 보면, 등장하는 인물들도 서로 조금씩 다를 뿐, 결국 일정한 유형과 패턴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작품은 달라도 꽤 비슷합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인간을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있는 사람들은 대체로 비슷한 유형과 성향을 가지고 모여 살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어떤 교회를 떠올리면 전혀 다른 곳처럼 느껴질 수 있어도, 막상 그 교회에 가 보면 결국 비슷한 인간들의 구조를 만나게 됩니다. 그 안에도 역시 비슷한 성격의 사람들이 있고, 그 사람을 만나면 우리가 겪은 비슷한 문제도 다시 생겨납니다. 어디에 가든 문제가 결국 자기 안에서 같은 방식으로 드러나고, 자기의 말투도, 생각하는 방식도, 사람을 대하는 반응도 그 문제를 계속 만들어 내는 셈입니다. 참된 해결은 하나님의 임재 앞에 나아가 변화되는 데 있습니다. 주님 앞에 나아가면, 그분의 은혜와 인도하심 안에서 비로소 내가 바뀌게 됩니다. 시편 42편 5절 말씀을 보면, “내 영혼아, 네가 왜 이렇게 낙심하며 왜 내 속에서 불안해하느냐?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분이 나타나셔서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그분을 찬송하게 될 것이다.” 그는 하나님께 예배할 날을 소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중요한 것은 상황이 조금 바뀌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만나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얼굴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진정으로 바라는 일입니다.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는 것이야말로 오늘 우리의 문제입니다.
내적 마음의 능력의 강화
우리에게는 웬만한 갈등과 어려움을 견뎌 낼 수 있는 내적 능력이 있습니다. 문제는 그런 일이 생겼을 때 끝까지 견디지 못하는 데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 내적 능력을 진정으로 강화시키는 길은 무엇이냐 하면, 바로 하나님과의 만남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바로 그것을 원하십니다. 하나님을 만나면 우리 영혼의 내적 능력이 자라나서, 우리 바깥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갈등과 여러 어려움을 충분히 이겨 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내게 힘이 있다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냥 꺾어 넘기며 통과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내적 능력이 없으면 모든 일에 피해 의식이 생기고 마는 것입니다. 누가 무슨 말을 하면 그 말이 자꾸 왜곡되어 들리고, 누가 어떻게 행동하면 그 행동 역시 왜곡되어 해석되면서 마음속에 불만이 쌓여 가기 시작합니다. 사람들을 보지 않으면 마음이 시원해질까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은 과연 무엇일까요? 마음속에 내적 능력이 있는데, 이것을 해결하지 못하면 어디에 가나 이 마음이 무너진 상황에서는 어떤 상황에서나 왜곡하게 되어 있어서 정상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게 되고, 그렇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들도 항상 피해의식으로 받아들이게 되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악순환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찬양의 회복
시편 57편에서 시인은 자신의 처지를 하나님 앞에 내어 놓고 간절히 기도했다고 말합니다. 2절의 말씀을 보면, 그는 “부르짖음”이라는 표현을 통해 자신이 살아 계신 하나님께 소리 높여 간구했음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살아 계신 하나님’이라는 고백은 매우 존귀한 의미를 지닙니다. 가장 존귀하신 하나님께 기도했다는 것은, 그분을 단순한 대상이 아니라 자신의 모든 형편을 맡길 수 있는 분으로 신뢰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시인은 자신의 모든 일을 곧 이루실 하나님께 맡기며, 자신을 돌보시는 그분의 섭리 안에 모든 상황이 있음을 고백합니다. 이어서 6절에는 자기를 괴롭히는 원수들에게 어떤 결과가 임했는지가 나오는데, 그들이 내 길을 막으려고 그물을 준비했으나 오히려 자기들이 그 가운데 빠지고 말았다고 말합니다. 제 꾀에 제가 빠졌다는 속담처럼, 그들은 자신이 친 올무에 걸려 넘어졌습니다. 누가 이런 일을 하신 것일까요? 바로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위해 모든 것을 이루시는 분이시며, 이것이 바로 시인의 믿음입니다. 그 하나님께서 나타나 나를 도우심으로, 모든 상황은 하나님의 역사로 역전되었고, 시인은 마침내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분께 영광을 돌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또 확정되었으니 내가 노래하고 찬송하리이다. 고통스럽고 힘겨울 때에는 찬송이 저절로 나오지 않지만, 그런 순간의 찬송은 하나님만을 높이는 노래이기 전에 자기의 상황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슬프고도 간절한 고백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나타나 나를 도우실 때, 그의 마음은 흔들리지 않고 굳게 세워집니다. 그러므로 그는 “나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을 예배하며 언제나 하나님 앞에 나아가겠다”고 고백하면서, 마침내 마음이 확정되었다고 담대하게 말하게 됩니다.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내 마음이 확정되었사오니.”
예배의 본질과 마음의 확정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예배자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이 바로 여러분 존재의 근원임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예배가 없으면 여러분도 참되게 설 수 없고, 예배가 있을 때에만 여러분은 비로소 살아납니다. 여기서 예배는 단순한 예배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을 실제로 만나 뵙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곳에서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리고 스스로 살아 있다고 여기는 절박한 심정을 가지고, 이 확고한 믿음을 품은 채 하나님 앞에 나와야 합니다. 아무 생각 없이 우연히 무언가가 스쳐 지나가듯 오기도 합니다. 그것을 은혜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여러분, 그런 순간이 우리의 생애 속에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고, 또 우리에게 찾아올 때가 아예 없다고도 말할 수는 없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매우 예외적인 경우일 뿐입니다. 정상적인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여러분이 하나님을 간절히 사모하고, 하나님을 갈망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영광을 마주하며 그분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역사하십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영혼은 새 힘을 얻고, 여러분의 마음은 능력으로 충만해지며, 여러분 안에서 하나님을 기뻐하고 찬양하는 소리가 더욱 넘쳐나게 됩니다.
마음을 분명하고 올바르게 정하십시오. 여러분의 마음의 뜻을 분명히 깨달으십시오. 하나님을 만나야만 내 삶이 비로소 살아날 수 있고, 하나님의 영광을 바로 마주할 때에야 내가 변화될 수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영광을 대면해야만 내가 드리는 예배가 참으로 능력 있는 예배가 됩니다. 여러분은 마음의 생각을 바르게 세워야 합니다. 그냥 어쩔 수 없이 와서 예배드리는 자리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마음을 바로잡으십시오. 끌려오는 사람이 되지 말고, 억지로 나오는 사람도 되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소망하고 하나님께 마음을 활짝 열어 보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달라지고 변화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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