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모든 영역에 그리스도의 왕권을 높이라(07)_나는 믿는다 고로 나는 세상을 변화시킨다 (갈 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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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6-10-22본문
삶의 모든 영역에 그리스도의 왕권을 높이라(07)
나는 믿는다 고로 나는 세상을 변화시킨다 (갈 2:20)
데카르트의 명제를 넘어서
오늘 말씀의 제목은 "나는 믿는다, 고로 나는 세상을 변화시킨다"라는 제목입니다. 이것은 근대 합리주의 철학을 열었던 데카르트가 했던 말로 잘 알려져 있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말을 패러디한 것입니다. 데카르트는 세상의 모든 것을 다 부인해도 생각하는 자기 자신의 존재는 부인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자기의 모든 것, 세계의 모든 것은 생각하는 자기 자신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그리스도인은 어떤 사람입니까? 믿음으로 이 세상에 존재하며 믿음 때문에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특별히 오늘의 말씀은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살기 때문에 우리는 필연적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람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의 확장된 의미
오늘 말씀은 갈라디아서 2장 20절 말씀을 본문으로 했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다"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이 삶은 내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흔히 우리는 이것을 개인의 경건 생활, 영원한 천국을 믿으면서 살아가는 영적 삶, 혹은 우리의 삶 속에 죄와 허물들을 물리치는 성결의 삶으로 해석해 왔습니다. 그러나 오늘 저는 이 말씀을 다른 영역에서, 즉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삶의 주인이 바뀐 중생의 삶을 사는 원리를 말씀하고 있는 것으로 확장시켜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살고 계신다고 하는 것은, 온 우주의 왕이신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살고 계시기 때문에 나는 교회 밖의 세상에서도 그리스도를 왕으로 모신 자로서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이 갈라디아서 2장 20절의 말씀을 좀 더 확장하여,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를 왕으로 모신 자로서 영광스럽게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생각하는 말씀으로 오늘 여러분에게 제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상의 변화 — 중생의 본질
지난주 말씀 중에 믿는 자는 사상을 가진 사람이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우리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거듭나게 되었을 때 그 거듭난 사람 속에 변화가 일어나는데, 그 변화 속에 사상의 변화가 있다고 말씀드린 것입니다. 사상의 변화가 없다면 진정한 중생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물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죄사함을 받으며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영광스러운 하나님 나라의 기업을 상속하는 자가 된다는 소망은 중요한 소망입니다. 이 모든 것들을 "천국 간다"라는 한마디로 요약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미래의 문제, 곧 우리 육체의 삶을 끝낸 이후의 문제입니다. 육체의 삶을 가지고 살아가는 이 삶에 대하여는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가기 전 아직 이 세상에 살고 있을 때, 그 삶은 어떤 삶이 되어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성속 이원론의 문제 — 세상 속으로 들어가라
이 삶에 대한 많은 견해들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세상을 떠나서 살아야 한다고, 이 세상과는 가까이 하지 말라고 가르칩니다. 혹은 세상의 것은 썩어질 육신의 일이고 교회의 일은 거룩한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세상의 일들을 이상하게 여깁니다. 세상 속에서 살아가고 그 속에서 많은 것을 얻기를 원하면서도, 교회에 와서 기도할 때에는 "우리가 썩어질 세상 일을 힘쓰다가"라고 고백하는 것이 이를 드러냅니다. 이것은 세상을 속된 것으로, 교회는 거룩한 것으로 분리하는 성속 이원론적 사고방식 때문입니다. 정말 세상은 썩어질 세상일까요? 세상의 본질을 보게 되면 그렇게 보입니다. 이 세상은 타락한 세상입니다. 부패와 오염이 있으며 사망의 그림자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것은 바로 그 세상 속으로 들어가라는 것입니다. 그 세상 속으로 들어가서 그 세상을 거룩한 곳으로 바꿔야 한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성경을 통해 발견하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믿는 자는 사상을 가진 자입니다. 사상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의 삶을 목적을 가지고 살아가게 하는 삶의 체계, 곧 세계관을 의미합니다. 사상을 가진 사람은 이 사상을 붙들고 살아갑니다. 심지어 사상을 가진 사람은 이 사상 때문에 죽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를 위해서 죽을 수 있는 것입니다. 나는 믿는다, 고로 나는 세상을 변화시킨다. 오늘 우리는 이 말씀을 마음속에 꼭 새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상을 이루는 믿음 (1) — 창조주 하나님과 절대 주권
우리의 믿음에서 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삶을 끝까지 살아가게 만드는 사상을 이루는 믿음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지금까지 이 메시지들을 통해서 말씀드려 온 것들입니다. 첫째는 창조주 하나님과 하나님의 절대 주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창조 교리에서 첫 번째로 중요한 것은 무에서 유의 창조입니다.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것입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께서는 오직 말씀으로 창조하셨습니다. 다른 도구도, 다른 재료도 사용하지 않으셨습니다. 오직 말씀으로, 곧 하나님의 권세로 말씀하심으로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이 창조된 것입니다. 세 번째로 창조에서 중요한 원리는 선한 창조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에 합당하도록 창조되었다는 것입니다. 도공이 도자기를 만들 때 자신이 원하는 대로 되지 않으면 망치로 깨뜨려 버리듯, 하나님께서 창조하셨는데 원하신 대로 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계는 그분이 뜻하신 대로 창조되었습니다. 이것이 선한 창조입니다. 그런데 이 선하게 창조된 세계가 지금 우리가 보고 경험하는 세계와 같습니까? 우리들이 경험하는 이 세계는 선하지 않습니다. 왜 이런 일이 생겼습니까? 인간의 타락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선하게 창조하셨을 때 이 창조 세계에 대하여 가지고 계셨던 하나님의 뜻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대하여 가지고 계신 그 창조의 뜻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계를 타락했다고 하여 도공이 망치로 깨뜨려 버리듯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 피 흘려 돌아가셨고 그 피로 말미암아 죄를 사하시는 놀라운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구원받고 중생하게 된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이 창조 세계를 버리지 아니하시고 다시 새롭게 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를 이 세상에 보내신 것입니다.
사상을 이루는 믿음 (2) — 영역 주권
두 번째로 우리가 생각했던 사상을 이루는 믿음은 영역 주권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이 사회가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곳이지만, 이 사회는 여러 개의 영역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국가든 교회든 학교든 가정이든 이러한 각 기관들은 하나의 전체적인 대권 밑에 통합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것이 영역 주권의 이론입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국가가 가장 크고 국가 안에 모든 것이 통제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국가가 법으로 간섭하지 않아야 하는 영역들이 있습니다. 국가가 일일이 법을 만들어 모든 것을 규정하는 것은 독재입니다. 영역 주권이란 각자 하나님께 받은 질서가 따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국가가 교회를 간섭하거나 가정사를 일일이 법으로 규정하고 처벌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국가가 교육을 장악하여 그 내용까지 규정하는 것도 잘못입니다. 아브라함 카이퍼는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네덜란드라는 기독교 국가에서 왕이 교회의 일을 규정하고 국가의 법으로 교회의 일들을 정해 나가는 것들은 옳지 않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래서 국가 교회로부터 탈퇴하여 국가와 독립된 오직 성경의 원칙 위에 세워진 교회를 이루고자 하였습니다. 이 영역 주권의 원리는 학교에도 적용되었습니다. 우리는 각 사회 영역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재능과 능력을 최대한 자유롭게 발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상을 이루는 믿음 (3) — 중생자의 삶
세 번째로 말씀드렸던 것은 중생입니다. 중생은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중생한 사람이 새로운 사상을 가지고 이 세상의 삶에 참여해야 합니다. 우리는 사회 각 분야에서 중생자의 삶을 바르게 살아야 합니다. 중생자의 삶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영광과 복음의 기초 위에 사회의 모든 것을 세워 나가는 것입니다. 학문의 세계는 지금 하나님을 배제한 채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중생자는 학문의 세계에서도 이 학문이 하나님에게 근거하고 있다는 분명한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 중심으로 학문을 세워 나갑니다. 직장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골로새서 3장의 원리대로, 그리스도를 섬기듯,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의 마음 자세로 자기에게 맡겨진 일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정치 세계에서는 이것이 참으로 양립하기 힘든 것 같아 보입니다. 근대 이후로 정치는 어떻게 해서든 권력을 유지하거나 적을 패배시키는 방향으로 발전해 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런 사회 풍토 속에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가야 합니다. 정말 힘들고 어려운 일이지만, 이것을 이루기 위하여 힘쓰고 애써야 합니다.
사상을 이루는 믿음 (4) — 구원의 통전성
네 번째로 우리가 생각하는 것은 구원의 통전성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구원이 영혼 구원에 머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통전이라는 것은 전부를 의미합니다. 즉 하나님의 구원은 영혼 구원이라는 작은 부분에 머물러 있지 않고 전부를 구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을 하나님께서 온전히 새롭게 하시는 것까지를 구원으로 보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지막 때에 새 하늘과 새 땅이 임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이 구원의 완성이기 때문입니다. 왜 하나님은 구원의 통전성을 계획하셨습니까? 창조를 회복하시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선하게 창조하신 이 세계가 인간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파괴되었습니다. 타락한 인간도 구원하시고 파괴된 창조 세계도 구원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구원은 무엇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집니까? 은혜로 말미암아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가 구원을 입고, 하나님의 은혜로 이 세상의 삶을 살아가며, 하나님의 은혜로 이 세상이 보전을 받고, 하나님의 은혜로 마침내 이 세상이 새롭게 될 것입니다.
배역의 홍수를 이기는 자들
이 모든 일을 행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역사의 주관자이신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이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세워서 이 일을 진행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왕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 안에서만 왕이시다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스도는 세상에서도 왕이십니다. 온 우주의 왕이시며, 하늘과 땅과 영광스러운 영적 세계의 천사들에게도 왕이 되시는 분이십니다. 이 분을 우리의 왕으로 모시고 있으므로 우리는 세상의 거대한 세속의 물결 속에서도 낙심하거나 절망해서는 안 됩니다. 오래 참음과 견딤으로 이 물결을 버티고, 마침내 이것을 되돌리는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임할 때까지 우리는 이 세계를 새롭게 하는 하나님의 크신 역사에 동참해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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