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요약

삶의 모든 영역에 그리스도의 왕권을 높이라(08)_하나님 나라의 최후 승리 (계 11: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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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6-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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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모든 영역에 그리스도의 왕권을 높이라(08)

하나님 나라의 최후 승리 (계 11:15-19)



황제인가 그리스도인가

요한계시록은 흔히 묵시록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묵시는 현실 세계 너머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환상으로 보여 주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현실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이 세상은 눈에 보이는 현실로만 이루어져 있는 것은 아닙니다. 현실 너머에 영적인 세계가 있으며 이 세계에서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현실 너머에서 악한 영들과의 싸움이 벌어지고 있으며 그곳에서 하나님께서 승리하신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요한계시록이 주어지던 시대는 로마 시대입니다. 그때는 황제의 권세가 최고이고 황제 숭배가 모든 백성에게 강요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그리스도인들,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섬기는 그리스도인들은 황제를 나의 주님이라고 고백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필연적으로 황제를 주님으로 고백하는 세력과 대립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니 황제가 주님이 되시는 세상에서 그리스도가 주님이라고 고백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힘들고 어려울까요? 그 속에서 그리스도를 찬양하고 경배하며 ‘주 하나님이여’라고 부르며 예배를 드려야 하고 그리스도를 증거해야 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을 받은 사도 요한만 해도 붙잡혀 유배를 당하였고 그곳에서 얼마나 많은 날들을 고통 가운데 지내야 했는지 모릅니다. 그는 심지어 끓는 기름에 들어갔다 나오는 고문까지 당했습니다. 그런데 참 놀라운 것은 그런 속에서도 사도 요한이 살았다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밧모섬에 유배를 당했는데 얼마나 답답하고 안타까웠겠습니까? 그는 어느 주일날 혼자서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그날 그리스도의 영광이 그에게 나타났고 그에게 말씀이 주어졌습니다.


현실 너머의 진실 — 하나님은 지금도 역사하신다

그에게 주어진 것은 현실이 아닌 현실 너머에 있는 영광스러운 승리의 전쟁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하여 사도 요한은 현실에서 우리는 작고 보잘 것 없지만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현실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멀리 계신 것만 같고, 현실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돌보지 않는 것만 같습니다. 그러나 묵시 속에서 하나님은 지금도 역사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묵시를 통해 역사 뒤에서, 이 세계 뒤에서, 현실 뒤에서 일어나고 있는 영광스러운 일들을 알게 됩니다. 그리하여 교회는 핍박과 고문과 감옥에 들어가고, 심지어는 죽음을 겪는 순교의 순간에도 그 믿음을 변치 아니했습니다. 왜냐하면 현실 너머에서 영광스러운 일이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현실을 너무 크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현실 너머에 하나님께서 계시며 하나님께서 역사하고 계시며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대장이 되셔서 영적 전쟁을 승리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일곱 번째 나팔 — 세상 나라가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다

우리가 읽은 계시록 11장 15절 이하는 사도 요한의 환상 가운데 나팔 재앙이라고 부르는 부분입니다. 일곱 번째 천사가 일곱 번째 나팔을 불었을 때 큰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노릇하시리로다.” ‘주’는 ‘여호와 하나님’을 가리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를 ‘나의 주님’(아도나이)로 바꾸어서 읽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님이 된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도 주님이라고 고백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이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 나라가 우리 주, 즉 하나님과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된다고 말씀합니다. 이는 굉장히 놀라운 선언입니다.


로마 황제를 향한 반역적인 선포

당시는 로마 제국이었고 이 제국을 통치하는 통치자, 즉 주님은 로마 황제였습니다. 그런데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라고 선포한 것입니다. 이 말은 로마 제국이 볼 때에는 불순한 말입니다. 반역적인 말입니다. 그런데 이 말이 지금 천사로부터 선포되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노릇하시리로다.” 정말 놀라운 선포입니다. 그리고 이 선포를 들은 24 장로라고 하는 존재가 땅에 머리를 대고 엎드려 경배하며 찬양을 하는 장면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여기 등장하는 24 장로는 존귀하게 된 하나님의 백성들을 말합니다. 이 존귀한 하나님의 백성들이 천사의 선포를 듣고 아멘으로 화답하며 엎드려 경배하고 하나님 앞에 찬양하는 것입니다. “감사하옵나니 옛적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신, 즉 영원하신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친히 큰 권능을 잡으시고 왕노릇하시도다.”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 마치 가나안 땅을 정탐했던 12 정탐꾼들처럼 우리는 메뚜기 같을 뿐이라고 말했던 그와 같은 심정을 가지기 쉽습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고 하나님께서 역사하고 계십니다. 그분이 세세토록 왕노릇하고 계십니다.


승리와 보응의 하나님

그런데 왕이신 하나님께서 승리와 심판의 일을 하십니다. 이것이 18절 말씀입니다. “이방들이 분노하매 주의 진노가 내려 죽은 자를 심판하시며 종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또 작은 자든지 큰 자든지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상주시며,” 즉 믿음을 끝까지 지키며 신실하게 복음의 은혜 속에 살아가는 하나님의 종들에게 하나님께서 상을 베푸십니다. 그다음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십니다. 그 다음 요한계시록 12장을 보면 여자와 용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핍박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런 거대한 세상 세력, 배교의 세력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핍박합니다. 그 세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모릅니다. 그러나 교회는 이미 하나님이 세상을 통치하고 계시는 왕이시라는 사실을 목격했습니다. 현실 너머의 영광스러운 하늘의 모습을 목격했습니다. 그러므로 현실에 나타나는 세상 세력의 그 거대함이 이제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결코 보잘 것 없지 않습니다. 우리는 세상과 비교할 때 현실 속에서는 작은 자들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늘에 하나님께서 계십니다. 요한계시록 11장 19절 보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이에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니 성전 안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보이며 또 번개와 음성들과 우뢰와 지진과 큰 우박이 있더라.” 언약궤가 보였습니다. 언약궤가 있는 곳은 지성소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그곳에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이 있는 그곳에 하나님의 위엄이 번개와 음성들과 우뢰와 지진과 큰 우박이라는 엄청난 자연 현상으로 상징되어 나타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목도한 자는 굴복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영광과 위엄을 보고 나면 다른 것들은 다 작게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은 어디에서 그런 경험을 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높은 분을 만나고 난 후 그 밑에 있는 분들을 만났을 때 어떻습니까? 전과 다르지요. 저는 군대에서 비슷한 경험을 했습니다. 예전에 군대에서 중사 계급장을 단 분이 인사계였습니다. 그 분이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지 그분이 내무반에 들어서면 다들 바짝 긴장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제가 우리 부대 부대장을 면담하러 갔습니다. 그분은 대령이셨는데 신병인 저를 따뜻하게 격려해 주었습니다. 옆에 소령님도 한 분 계셨는데 부대장실 밖에 나오니 소령님이 제 모자를 챙겨 주었습니다. 제가 작대기 하나 이등병인데도 말입니다. 중사 계급장을 단 분이 대단한 줄 알았는데, 대령을 만나고 나온 후에는 중사가 그렇게까지 대단하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여러분도 그런 경험 있으시겠지요? 과장님이 최고인 줄 알았는데 대표이사 사장님을 만나고 나오면, 그 생각이 조금 달라지게 됩니다. 과장님이 전과 달리 그렇게까지 대단하게 느껴지지 않게 되는 것이죠. 우리 삶에서도 이런 일들을 종종 소소하게 경험하게 됩니다. 그런데 하늘에 계신 하나님의 영광을 목도하면 어떨까요? 하나님의 권능을 목도하면 어떻게 될까요? 그 영광과 위엄을 경험하면 어떻게 될까요? 왜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의 이런 엄청난 세력들 앞에서, 세상 왕의 권세 앞에서 자기를 핍박하여 감옥에 가두고 죽이는 세력 앞에서 굴복하지 않았을까요? 그들에게는 그보다 더 크고 더 위엄이 있으신 하나님의 영광을 직접 목격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갈 때 우리가 과연 누구의 자녀이며 누구의 백성인지를 정확하게 인식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모릅니다. 그리고 우리의 왕이신 분이 우리의 아버지 되시는 그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아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낙심하지 마십시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무서워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이 세상을 사는 동안에 많은 것들을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우리 왕이신 하나님. 그분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고, 우리의 구주가 되시고, 그분이 이 세상을 통치하고 계십니다. 그분이 세상의 모든 것들을 바르게 잡으실 것입니다. 지금 이 세상은 얼마나 잘못되어 가고 있는지 모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의 삶 속에 들어가면 이 세상의 불합리와 부조리 같은 것들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 불합리와 부조리를 경험하게 되면 무력해집니다. 거기에 타협하며 살아가는 우리의 삶이 너무나 안타깝기 짝이 없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변화시키나? 과연 변화가 될까? 그러나 여러분,변화가 될 것입니다.


문화의 변혁과 새 하늘 새 땅

저는 오래 전에 리처드 마우의 『미래의 천국과 현재의 문화』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얇은 책이지만 담고 있는 내용은 가볍지가 않습니다. 영어 제목은 When the Kings Come Marching In입니다. 즉 세상의 왕들이 행진하여 하나님의 영광의 나라로 들어올 때입니다. 그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세상의 나라, 세상의 권세가 하나님을 반역하는 시대입니다. 그러나 언젠가 세상의 왕들이 하나님 앞에 찾아오는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나라 그 산이 모든 산 위에 우뚝 서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산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성읍이 모든 세상의 성읍들 위에 서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에 세상의 문화가 완전히 새롭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세상의 문화가 변혁될 것입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면 새 하늘과 새 땅이 임하는 그 사건이 실상은 문화의 변혁 사건이 된다는 것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에서는 전혀 새로운 인간의 삶이 시작될 겁니다. 그곳은 중생자들만으로, 영광의 부활을 한 사람들만으로,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시고 그리스도를 자신의 주님으로 섬기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참되게 경배하는 참된 성도들로 이루어진 문화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전혀 새로운 문화가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용기 있게 이 땅의 삶을 살아가라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지상에 있는 동안 현재의 문화는 반드시 변혁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의와 하나님의 사랑의 원리에 따른 세상의 문화를 이루어가기 위해서 최선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반드시 변화의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 날을 소망하면서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은 하나님 나라의 최후 승리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반드시 승리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반드시 이 세상을 변화시킬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왕이 되시는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이 모든 일들을 이루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나라의 백성으로서 왕 되신 하나님께서 세상을 새롭게 하실 그 날을 믿음으로 바라보면서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낙심하지 아니하고, 용기 있게 이 땅의 삶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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