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요약

영적 공동체의 성장을 위하여(10)_공동체를 위하여 혀를 제어하라 (약 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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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3-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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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공동체의 성장을 위하여(10)

공동체를 위하여 혀를 제어하라 (약 3:5-6)



과 관련된 속담이 많은 이유

공동체를 살리는 실제적인 문제들 가운데 첫 번째로 올만한 것은 혀를 제어하는 것입니다. 즉 혀를 사용하여 행하는 말을 제어하는 것입니다. 우리 속담에도 보면 말에 관계된 것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천 냥 빚도 말 한마디로 갚는다.” “말 많은 집은 장맛도 쓰다.” “가루는 칠수록 고아지고 말은 할수록 거칠어진다.” “말이 말을 만든다.” “말이 씨가 된다.” “혀 밑에 도끼가 있어 사람이 자신을 해치는 데 사용한다.” 또한 성경에도 말에 대한 교훈들이 많이 있습니다.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거짓을 말하지 말고”(벧전 3:10). “남의 말하기를 좋아하는 자의 말은 별식과 같아서 뱃속 깊은 대로 내려가느니라.” 우리는 맛있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러니까 남의 말 하는 것만큼 맛있는 게 없다는 말씀입니다. 남의 말을 하기 시작하면 너무너무 재미있어서 시간 가는 줄도 모를 정도입니다. 말에는 이런 특성이 있습니다. 말은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것이 나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입에서 나오는 것은 바로 말입니다. 인간의 말은 “그 마음에 있는 것”이 말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음에 있는 것과 말로 나온 것은 우리에게 전혀 다른 영향을 줍니다. 어떤 생각이 아직 마음에 있을 때와 달리 입으로 나오게 되면 일정한 영향력을 가지게 됩니다. 선한 말일 때에는 선한 결과를 가져오고 악한 말일 때에는 악한 결과를 가져오는데, 말은 다른 사람에게 하지만 결과는 자신에게 돌아옵니다. 참 신기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하는 말이지만 결과는 나한테 돌아옵니다. “마음이 굽은 자는 복을 얻지 못하고 혀가 패역한 자는 재앙에 빠지느니라.”


성경에 말과 관련된 교훈이 많은 이유

성경은 왜 이렇게 말에 대한 교훈을 많이 말씀하고 있을까요? 또한 일반 사회에서도 말에 대한 속담과 교훈이 왜 그렇게 많을까요? 그것은 말의 중요성, 또한 말의 영향력 때문입니다. 말이 우리의 삶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악한 말은 악한 영향을 미치고 선한 말은 선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왜 성경은 유독 말에 대하여 더 많은 교훈을 하고 있을까요? 사도도 공동체의 삶을 교훈하는 동안 말에 대하여 얼마나 많이 교훈을 하는지 모릅니다. 불평과 불만과 원망이나 수군수군하는 것이나, 혹은 폄훼하는 것이나 폄론하는 것이나, 이런 모든 것들은 말과 관련된 것들입니다. 우리는 왜 말을 조심해야 할까요? 말이 나의 인격에도 영향을 미치고, 공동체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악한 말을 하는 사람은 자기의 속이 악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어떤 말을 하고 사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인격과 그 사람의 품격이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품격이 낮은 사람은 말도 막 합니다. 그 사람의 말이 잘 정돈되어 있고 교양이 있다면 그 사람의 마음도 그렇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마음의 모양이 말로 나오기 때문입니다. 말은 한 사람의 인격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말은 그리스도인의 신앙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말을 훈련해야 합니다. 말을 잘 다스리고 말을 정말 품격 있게 말할 수 있게 될 때 그때 우리의 신앙 인격도 성장하는 것입니다.


말의 영향력

본문 말씀 약 3:1을 보면,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 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선생이 되지 말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선생이 되긴 되어야 하는데 어떤 선생이 되어야 할까요? 그냥 선생이 아니라 제대로 된 선생이 되어야 합니다. 제대로 된 선생은 어떤 선생일까요?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말에 실수가 없고, 말을 조리 있게, 아름답게, 그리고 선한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선생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곧 온전한 사람이라.” 온전한 사람은 성인, 장성한 사람을 말합니다. 장성한 사람, 즉 성인은 말에 실수가 없는 사람입니다. 말에 품격이 있는 사람입니다. 말을 해야 되는 때에 말을 하고, 그 때에 합당한 말을 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사람을 대할 때에도 합당한 말을 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말을 하면 사람 속을 뒤집고, 말을 하면 기분이 나빠지고, 말을 하면 사람들을 깔아뭉개는 습성을 가진 사람들이 있어요. 어른이라고 해서 말을 함부로 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 것이 아닙니다. 어른이면 오히려 말을 잘 해야 합니다. 입에 욕을 달고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욕을 하는 것이 일반적인 언어 습관인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심각한 것이 아닐까요? 욕은 자기 얼굴에 침 뱉기입니다. 이와 같이 나븐 말은 자기 인격에 영향을 미치고 자기의 마음의 모양에 영향을 미칩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이것이 공동체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말이 중요한 이유는 말이 교회를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성읍은 정직한 자의 축복으로 인하여 진흥하고 악한 자의 입으로 말미암아 무너지느니라”(잠 11:11). 한 성이 좋은 말, 선한 말, 축복의 말을 하는 사람들 때문에 부흥하기도 하고, 악한 말을 하는 사람들 때문에 무너지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말이 교회를 세우기도 하고 교회를 무너뜨리기도 하는 것입니다. 잠언 12:18 말씀을 보면 “칼로 찌름 같이 함부로 말하는 자가 있거니와 지혜로운 자의 혀는 양약과 같으니라.” 말로 상처를 후벼파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말로 상처를 치료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 공동체에 어떤 사람이 필요할까요? 여러분, 입만 열면 사람 상처 주고, 말만 하면 여기저기 다툼이 일어나고, 말만 하면 전도회가 시끌시끌해지고, 말만 하면 사람들이 막 화가 나고 이런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까? 말을 하면 사람들이 은혜를 받고, 말을 하면 더 순결하게 살기를 원하는 마음이 일어나게 하고, 말을 하면 상처를 치료하고, 말을 하면 뜨거운 마음을 갖게 만드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까?


말을 절제하라

오늘의 본문 말씀은 언어, 즉 말을 제어하는 것, 즉 지혜롭게 잘 사용하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지, 또 말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했을 때 오게 되는 결과가 얼마나 치명적인지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야고보는 말에 대하여 두 가지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굴레, 하나는 키입니다. 말은 마치 말의 굴레를 씌우는 것처럼 제어해야 합니다. 굴레는 말의 머리를 얽어매어 고삐를 매는 끈을 말합니다. 굴레를 걸어놔야 고삐를 걸어 말을 제어할 수 있습니다. 한편 키는 배의 방향을 조종하는 부품입니다. 이 부품이 없으면 배의 방향을 조종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키가 없으면 노를 가지고 방향을 조종합니다. 빠른 속도가 필요하지 않은 작은 배라면 모르겠지만 빠르고 큰 배는 반드시 키가 있어야 합니다. “제어하라.” 마치 말을 제어할 때 사용하는 굴레처럼, 배의 방향을 조종할 때 사용하는 키처럼 우리의 혀도 그렇게 제어할 수 있어야 합니다. 혀를 제어하지 못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5절 말씀을 보면 혀의 위험성을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보라 얼마나 작은 불이 얼마나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보통 산불이 일어나면 대형 산불로 발전하는 일들이 많습니다. 금년에도 불이 나서 “500년 된 소나무 숲을 지켜라”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몇 년 전에는 산불로 문화재가 불타는 일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큰 산불이 최초에는 어느 정도 크기의 불에서부터 시작했을까요? 금년에 큰 산불은 전깃줄에서 틘 아주 작은 불티가 원인이었다고 합니다. 전깃줄에서 일어난 불티보다 조금 더 큰 불길은 담배꽁초입니다. 그런데 담배꽁초의 작은 불씨가 수 천 만배, 수 억 배의 숲을 태우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에서 성도들의 말이 그런 결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공동체가 죽기도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 모두는 마음으로는 다 언어생활을 잘하고, 은혜로운 말만 하고, 주변에 선한 영향력도 끼치고 싶지 않을까요? 아마 다 같은 마음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그것이 결코 쉽지 않습니다. 8절 말씀 보면 “혀는 능이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이와 같은 악한 말이 나오는 샘 근원, 불길이 솟아나는 불의 근원은 어디일까요?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르나니”(6절). 잘못된 말은 우리 인생을 망칩니다.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그런데 이 불의 근원은 지옥입니다. 지옥불이 우리의 입을 통해 나오고 있습니다. 이 불이 공동체를 파괴하고, 우리 인생을 불태워버립니다. 악한 말이 가지는 영향력이 얼마나 엄청나고, 얼마나 대단한지요? 우리 가운데 어느 지체에 대하여 악한 말을 하거나, 혹은 공동체를 깨뜨리기 위한 목적으로 이런저런 말을 하는 것이 지옥 불을 가지고 오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말을 하는 공동체가 좋은 공동체

아름다운 공동체는 어떤 공동체입니까? 아름다운 말을 하는 공동체입니다. 우리는 좋은 교회를 만들고 싶습니다. 그런데 좋은 교회는 어떤 교회일까요? 좋은 말이 넘쳐나는 교회입니다. 서로 욕하고 싸우는 교회가 좋은 교회일 리가 없지 않습니까? 불평 불만이 넘쳐서 늘 뒤에서 불평 불만을 서로 나누고. 그것이 너무나 즐겁다면 그 교회가 무슨 좋은 교회이며, 그런 마음이 무슨 믿음의 마음이겠습니까? 더구나 야고보는 이렇게까지 말씀합니다. “한 사람의 입에서 찬송과 악한 말이 동시에 나온다.“ 즉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그 입으로 저주도 한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진정 그리스도인이라면 한 입으로 두 가지의 상반된 말을 해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오히려 우리는 저주하는 자들이 아니라 축복하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누가복음 9장에 보면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라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여정에 “제자들 사이에 변론이 일어나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 드리면 말다툼이 있었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지금 십자가를 지시러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 계십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말다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목적에 대하여 예수님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에게는 깨달음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엉뚱한 기대 가운데 있었고 서로 말다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십자가가 아니라 공로를 다투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현실을 보시고 “내 나라는 이런 나라가 아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왕으로 모신 공동체에 말다툼이 일어나고, 이로 인하여 서로 마음이 상하고, 불평과 불만과 원망을 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러 가시는데 제자들은 무슨 일을 하고 있었을까요?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영광과 거룩한 뜻에 마음을 두지 아니하고, 우리의 알량한 자존심과 생각과 견해 때문에 무슨 말로 어떻게 공동체를 무너뜨리고 있는지 우리 자신을 돌아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절제된 언어생활이 필요하다

우리는 우리의 신앙 인격과 공동체의 영적 성장을 위하여 절제된 언어생활을 해야 합니다. 이것이 지금 우리에게 주어져 있는 시대적 사명을 감당하기 위하여 결정적으로 중요한 실천 사항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대적 사명은 무엇일까요? 이 시대의 교회가 하나님의 마음에 맞지 않는 부분들에 대하여 이를 온전케 하는 것이 우리가 가진 시대적 사명입니다. 코로나 이후에 현재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사명은 예배의 회복입니다. 우리는 예배를 회복하기 위하여 공예배를 중요하게 여겨야 합니다. 우리는 공예배를 회복해야 합니다. 이것이 지금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일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예배의 회복을 통하여 예배하는 공동체, 기도하는 공동체로 세워져야 합니다. 그리고 이것을 깨뜨리는 일들, 여우가 포도원 울타리에 구멍을 내는 일을 제거해야 합니다. 여우가 포도원 울타리에 구멍을 뚫는 일이 무엇일까요? 공동체를 허무는 부정적인 말입니다. “우리 교회는 왜 이럴까? 왜 당회는 이럴까? 목사님은 왜 이럴까? 우리 회장은 왜 이럴까? 우리 전도회는 왜 이럴까?” 그런 생각이 여러분의 마음에 있다면 기도의 자리로 나오세요. 그것을 말로 옮기고 모여서 같이 이야기하면서 키워 나갈 때 공동체의 울타리에 구멍이 뚫리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정말 문제를 보았다면 기도하는 자리로 나오세요. “우리 교회는 왜?”라는 생각이 드셨다면 기도하는 자리로 나오세요. 사람에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말씀드리세요. 우리에게는 자기 입장과 같은 입장, 같은 견해를 찾아서 끊임없이 다니는 특성이 있습니다. 그리하여 다른 사람에게 말을 하여 자기의 입장과 같은 입장을 만들기 위하여 끊임없이 말을 하고 다니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에게 말하기 전에 기도의 자리에 나와 하나님께 말씀을 드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람에게 가서 말을 하느냐? 하나님께 가서 말씀을 드리느냐?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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