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주님이신 예수를 바라보자(8)_약속대로 오신 그리스도(요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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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3-09-06본문
믿음의 주님이신 예수를 바라보자(8)
약속대로 오신 그리스도(요 1:9-14)
십자가에 대해 듣고 또 들어도 기쁘기만 한 이유
우리는 지금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묵상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깊고 깊은 비밀들을 깨달아 알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이미 우리는 지금까지 수없이 많이 복음을 들어왔고, 또 평생 동안 복음 안에서 산다고 하지만, 그러나 복음의 참된 의미가 우리의 마음속에서 언제나 살아 역사한다거나, 우리의 마음을 복되고 즐겁게 한다거나, 우리의 영혼을 하늘의 영광으로 인도하는 일들은 그리 쉽게 나타나지 않습니다. 십자가에 대해서, 그리스도에 대해서 평생을 들었는데 또 들어야 하느냐 하는 생각을 하는 분들도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 일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누군가 여러분의 자녀들을 칭찬하고 예쁘다고 해주면 기쁘십니까? 아니면 짜증이 나십니까? 10번을 듣고 나면 그다음부터는 화가 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100번을 들어도 부모의 마음은 기쁩니다. 왜 여러분의 자녀를 칭찬하는 말은 10번을 들어도, 100번을 들어도, 천 번을 들어도 여러분에게 기쁨을 줄까요? 이유는 여러분이 여러분의 자녀를 깊이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도 같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복음을 전할 때 마치 난파선 가운데에서 구원을 얻은 사람이 자기의 구원에 대하여 말하는 것처럼 증거했다고 합니다. 난파선 가운데에서 구원받은 체험, 이것은 그의 평생 동안 100번이고 천 번이고 그는 감격적으로 생생하게 말할 수밖에 없는 체험입니다. 십자가의 복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우리에게 생명을 주는 일이었고, 우리의 삶을 복되고 영광스럽게 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십자가는 우리의 생애 속에 언제나 살아 역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이것을 소망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이 감격과 이 은혜가 사라지고 있다면, 아니 지금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는지 모를 정도라면 우리는 심각하게 자신의 영적 상태를 고민해 봐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왜 예수 그리스도를 묵상해야 될까요? 그분을 통해 우리에게 주신 구원이 너무나 놀랍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구원이 앞으로 우리에게 이룰 영광스러운 것들을 바라보기 때문 입니다.
삼위일체의 신비
오늘 본문 말씀은 “이 세상에 빛이 비추었으나 이 세상은 이 빛을 받지 않았다”고 이야기합니다. 심지어는 “이 빛이 자기 백성들 가운데에서도 환영을 받지 못했다”고 이야기합니다. 빛은 말씀을 가리킵니다. “말씀”은 요한복음 1장에서 굉장히 신비한 존재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1절 말씀을 보면 “이 말씀이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고 이야기합니다. 하나님과 함께 계신 이 말씀은 어떤 존재일까요?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는 것은 하나님과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보듯 서로 마주 보는 존재로 계셨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과 마주 보는 존재, 하나님과 마주 볼 수 있는 존재는 어떤 존재일까요? 하나님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신비한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은 한 분이시라고 믿고 고백하고 있는데 하나님과 마주 보는 또 다른 하나님이라고 하는 존재가 있다는 뜻이기 때문 입니다. 1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하나님과 마주 보는 말씀이라고 하는 존재가 있는데, 이 존재는 하나님이다. 하나님의 두 분이라는 이야기일까요? 이 비밀을 알기 위해 성경을 연구를 했는데 마침내 연구의 결과 나온 결론이 삼위일체였습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신데 성부, 성자, 성령 각각 구별되는 어떤 분들이 계신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그분들을 각각 독립된 하나님으로서 분명히 구별되는 분이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분 하나님이라고 하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 것을 삼위일체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신비입니다.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을 삼위(三位)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위”(位)는 헬라어 “휘포스타시스”의 번역입니다. “휘포스타시스”는 독립적인 존재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즉 삼위(三位)는 “세 휘포스타시스” 세 독립적인 존재를 가리킵니다. 그런데 그렇게 셋으로 분명히 구별되는데도 불구하고 한 분 하나님이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자연세계 속에서 그 예를 발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어떤 신학자들은 물질세계 속에서 삼위일체를 나타내는 어떤 사물이나 현상들이 있는지 찾아보았습니다. 그러나 결론은 자연계 속에는 하나님의 삼위일체를 표현할 수 있는 사물이나 현상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하나님의 존재의 신비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삼위일체를 믿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존재의 신비인 삼위일체를 이해하기 때문이 아니라 성경이 그렇게 말씀하고 있기 때문에 믿습니다.
삼위일체의 신비를 알면 복음의 비밀이 열린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고 나면 성경의 비밀들이 열리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삼위일체의 비밀을 알고 보니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말씀이 하나님과 마주 보는 존재로 계셨는데,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이 말씀이 이해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으로 말미암아 온 세상이 창조되었다는 사실도 이해가 되는 것입니다. 이 말씀과 하나님이 죄인들의 구원을 위하여 의논을 하셨고 결정한 것이 있다는 사실도 이해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한 분이시고 상의할 수 있는 서로 구별되는 인격적인 존재가 없다면 의논할 것도 없습니다. 그냥 혼잣말을 할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의논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의논을 통해 결정한 것이 있었습니다. 이것이 지난 주일에 우리가 함께 생각했던 구속의 언약입니다. 성부 하나님은 성자와 함께 구속의 언약을 통해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세밀한 부분들을 미리 정해 놓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전지하신 분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자기의 뜻대로 모든 것을 결정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전지하신다고 하는 것과 모든 것을 결정하신다고 하는 것은 인간적인 입장에서는 서로 배치되는 것이지만 하나님 안에서는 하나가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미리 정하셨기 때문에 모든 것을 아실뿐만 아니라,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에 모든 것을 미리 예정하실 수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창조와 창조세계의 타락과 타락한 이 세상을 새롭게 하시는 일과 타락의 주역이 되었던 인간들, 그는 죄인이 되었는데, 이 죄인들을 구원하시는 모든 일들에 대하여 계획을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그 계획을 성자, 성령과, 즉 삼위 하나님 사이에 공유하셨습니다. 그리고 죄인의 구원을 위하여 중보자를 세우시고, 그 중보자가 하나님과 죄인 사이를 중재하시되, 죗값을 대신 담당하는 보증인이 되시기로 하신 것입니다. 보증인은 담보를 제공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본인이 담보를 제공하기로 스스로 서명 날인을 해야 합니다. 죄인들은 죗값을 치러야만 구원을 받습니다. 이를 위해 죗값을 치를 수 있는 담보 능력을 가진 분이 보증인이 되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죗값을 치를 수 있는 담보 능력을 가진 분은 인간 중에서는 찾을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모두가 다 빚진 자이기 때문입니다. 모두 생명이라고 하는 값을 빚으로 가지고 있는 죄인입니다. 누가 이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누가 자발적으로 사인을 해주겠습니까? 그 일을 성자께서 “내가 하겠습니다” 하고 나선 것입니다.
구원의 계획과 구원의 역사
구속의 언약은 세밀하게 결정 되었습니다. 인간의 죗값을 치르기 위해서 누가 그 값을 치러야 할까요? 인간의 죽음은 인간의 죽음으로 값을 치러야 합니다. 그래서 성자 하나님이 인간이 되시기로 결정을 하신 것입니다. 일단 인간이 되어야만 인간의 보증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인간이 되시기로 하신 것입니다. 또한 죗값을 치르기 위해서는 담보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무죄한 인간이 되어야만 인간의 죗값을 치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자는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시되 죗값을 치를 수 있는 무죄한 존재로 이 세상에 오시기로 하셨습니다. 그리고 무죄한 존재로 이 세상에 오시기 위하여 부정모혈의 방식, 즉 남자와 여자로 인해 이 세상에 태어나는 방식으로 오실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으로 잉태하여 이 세상에 탄생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분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의 죽음으로 죄인들의 죗값을 대신하셨지만, 이것도 역시 우리가 믿어야만 그 일이 우리의 것이 되는 원리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복음을 듣고 복음의 내용을 자세하게 파악을 하고, 이 모든 일들은 나를 위한 것이며, 나를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라고 하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그 사실을 인정하지도 않는 사람에게 무차별적으로 십자가의 죄 사함이 다 적용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인격적으로 우리에게 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내가 그 내용을 알고, 내가 그 내용을 나의 것으로 인정을 해야 내 것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 모든 것들을 하나님께서 언제 정하셨을까요? 창조 전에, 영원 전에, 이 모든 일을 작정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일을 실제로 시행하기 위한 계획을 세우셨는데 이 계획을 우리는 구원의 계획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이 구원의 계획이 실제로 역사 속에 하나하나 실현되어 나가는 것을 구속의 역사라고 부릅니다. 구원의 계획이 있고 이 계획에 따라 구원의 역사가 실제로 하나하나 집행이 되는 것입니다. 구원의 역사가 진행되는 동안 하나님은 구원에 대한 모든 사실들을 자세하게 알려주셨습니다. 이것이 계시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계시는 이렇게 성경책으로 모여서 우리들에게 전달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계시는 오늘날 우리는 선포를 통해서 하나님의 계시를 알리는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복음의 내용을 알고 믿어야 구원이 내 것이 된다
계시의 말씀을 들은 사람은 “아멘”으로 그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보험을 드는 사람은 보험의 약관을 잘 알고 사인을 해야 합니다. 전에 제가 영국에서 렌터카를 빌려 운전하다가 부딪혀 차가 찌그러진 일이 있었습니다. 수리비가 많이 나올 텐데 어떻게 해야 하나, 영어로 사고 사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반납하기 까지 일 주일 동안 참 많이 고민을 했습니다. 아는 목사님이 “목사님, 그거 보험 들지 않았습니까?” “들었죠.” “보험 약관을 살펴보세요.” 그래서 약관을 읽었는데 글씨는 왜 그렇게 작은지, 모르는 용어들은 왜 그렇게 많이 나오는지, 그 작은 글씨를 읽고 또 읽었습니다. 몇 시간 씨름을 하다가 결국 제가 슈퍼 커버리지(super coverage)라고 하는 옵션을 가입했었더라구요. 알고 봤더니 제가 보험료를 많이 넣어서 차를 렌트했던 것입니다. 슈퍼 카브리지는 일부러 벽에 들이받지 않는 이상 다 보상(cover)해 준다는 것이었습니다. 할렐루야! 저는 조심스럽게 차를 반납하러 갔습니다. “차가 약간 찌그러졌습니다.” “보험은 무얼 들었습니까?” “슈퍼 카브리지.” 그랬더니 차를 확인도 안 하고 “거기다가 사유를 쓰세요.” 사유를 간단하게 “지나가다가 부딪쳤음” 이렇게 썼는데 “가세요.” 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이 바로 슈퍼 커버리지입니다. 이 모든 일들은 창조 전에 결정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정해진 일들을 역사 속에 하나하나 시행하시면서 우리에게 계시로서 알려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계시를 통해 우리에게 예언하셨습니다. 메시아를 보내겠다. 메시아는 동정녀에게서 탄생하실 것이다. 메시아는 아브라함의 자손이다. 메시아는 다윗의 후손이다. 그리고 예언대로 어느 날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성령으로 잉태되신 그분이 탄생하신 것입니다. 죗값을 대신할 수 있는 담보 능력을 가진 인간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이신 성자께서 육신을 입고 무죄한 상태로 이 땅에 오셔서 우리의 죗값을 대신 치르는 담보 능력을 가지신 인간이 되셨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분이 죄인들을 대신하여 죗값을 대신 치르셨습니다. 이것이 중보자의 의미입니다. 중보자가 되시기 위해 말씀이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이 요한복음 1장 14절의 말씀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지혜가 충만하더라.”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할 때 이것이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창조 전에 하나님이 죄인들이 멸망하는 것을 불쌍히 여기셔서 구원의 계획을 세우셨고, 이 계획을 이루기 위하여 성자의 자발적인 헌신이 있었고, 성자를 통해 죄인을 구원하고자 하는 모든 구원의 방법들이 세밀하게 결정이 되었고, 하나님은 역사 속에서 그 사실들을 알려주셨고, 그 알리신 바대로 마침내 말씀이신 그분이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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