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영광이 충만한 교회(4)_말씀을 가지고 역사하시는 성령(엡 1: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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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3-11-07본문
그리스도의 영광이 충만한 교회(4)
말씀을 가지고 역사하시는 성령(엡 1:17-19)
말씀으로 그리스도의 교회 통치를 이루시는 성령
그리스도께서는 말씀의 선포를 통하여 당신의 교회를 통치하십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통치를 우리 가운데 실제적으로 이루시는 일은 성령의 역사로 행하십니다. 오늘은 진리와 함께하시는 성령,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통치를 우리 가운데 편만케 하시며 능력 있게 하시는 성령의 역사에 대해 생각하려고 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말씀은 에베소 교회 성도들을 위한 사도 바울의 기도입니다. 먼저 사도는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십시오”(17절), 또 “마음의 눈을 밝혀주옵소서”(18절), 계속해서 “능력으로 믿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합니다. 이 기도의 목적은 하나님을 알게 하고, 하나님의 부르심의 소망과 기업을 알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위해서 기도했던 것입니다. 에베소 교회 성도들과는 이미 과거에 3년 동안 바울과 함께 했던 일이 있습니다. 바울은 에베소에서 두란노서원을 세우고 그곳에서 2년 동안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에베소교회 성도들은 날마다 2년 동안 말씀을 배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배운다면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모든 부흥의 때에는 왜 날마다 집회가 이루어지고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이 능력 있게 선포되었을까요? 왜 우리가 주일뿐만 아니라 주중에도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배워야 할까요? 에베소 교회는 두란노서원에서 2년 동안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배웠습니다. “2년 동안 날마다”는 엄청난 진리의 양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엄청난 깊이의 진리의 지식을 의미합니다. 진리는 압도적인 양으로 우리에게 임해야 합니다. 그런데 에베소 교회성도들이 이와 같은 기회를 가졌던 것입니다. 그들은 2년 동안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 가운데에서 진리의 가르침이, 그 진리의 배움이 능력 있게 역사했던 것입니다. 에베소 교회 성도들에게 2년 동안 임했던 진리의 가르침, 진리의 교제가 있었기 때문에 사도 바울이 엡 1:3-14 처럼 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성령은 지혜를 주시고 계시하시는 분이시다
사도 바울은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엡 1:3-14)에 대해 이야기하고 난 후 에베소 교회성도들을 위하여 기도했습니다. 그것은 “지혜와 계시의 영”을 구하는 것이었습니다. “지혜와 계시”는 성령의 사역을 가리킵니다. 즉 성령께서 임하셔서 지혜를 주시고 계시를 주시기를 간구한 것입니다. 그 기도는 성령께서 지혜와 계시로 역사해 달라는 기도였던 것입니다. 그다음에 그는 “마음의 눈을 밝혀”달라고 기도합니다. 즉 성령께서 지혜를 주시고 계시를 주시면 우리의 마음의 눈이 밝아집니다. 본문의 “마음”은 헬라어로는 “카르디아” 입니다. 심장을 가리킵니다. 육체로는 심장을 가리키는 것이지만, 우리는 이 말을 가지고 다양한 상징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심장이 뛴다”고 할 때 의사는 육체의 기관을 떠올리겠죠. 그러나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심장이 뛴다”고 할 때 그것은 우리의 마음의 특별한 작용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이때 “심장”은 우리의 마음, 감정과 연관이 됩니다. 무엇인가 우리의 마음을 활력 있게 하는 어떤 힘의 작용, 마음에서 무엇인가 강렬한 동기가 일어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너희 마음(심장) 눈을 밝히사,” 이것은 지혜와 계시의 영, 즉 성령의 역사로 성령이 우리에게 지혜를 주시고, 성령이 우리에게 계시를 주시면 우리의 마음을 뜨겁게 만들고, 우리의 가슴을 불타오르게 만드는 무엇인가가 환하게 열리게 되고, 그리하여 모든 것이 분명하게 밝혀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마음의 눈이 밝혀지게 하시는 성령의 역사는 우리에게 믿음을 불러일으킵니다. 왜 우리에게 믿음이 일어나지 않는 것일까요? 지혜와 계시의 영의 역사가 우리의 마음의 눈을 밝히는 일이 우리에게 일어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성령의 역사, 즉 지혜와 계시의 역사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마음이 뜨거워지고, 우리의 마음이 새로워지고,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나타내신 하나님의 모든 구원의 뜻을 깨달아 알게 되며, 그 사실을 우리가 마음속에 믿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믿음의 작용은 성령의 능력이며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입니다. 그래서 믿음은 우리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것이지만 하나님의 은혜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지혜와 계시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하며 우리의 마음을 뜨겁게 한다
“마음의 눈이 밝아”지는 것은 우리의 마음이 영적 생명력으로 충만하게 되고 활력 있게 되고 그리하여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로 기쁘고 즐겁게 되는 상태를 말씀합니다. 조나단 에드워즈는 종교 감정론, Religious Affections에서 이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보통 Religious Affections를 종교적 감정이라고 번역합니다. 그러나 감정(Feeing)이라는 말은 어펙션(Affection)이라는 말을 다 담지 못합니다. Affection은 본문에서 말씀하는 “카르디아” 입니다. 즉 활력 있게 된, 활성화된 마음입니다. “마음이 죽었다”는 말도 있습니다. 마음이 죽었다는 “관심도 없다”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마음의 눈을 밝히사"라고 했을 때 마음은 우리의 마음의 생명력이 활성화된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Affection 입니다. 사람은 Affection이 없으면 제대로 살아갈 수 없습니다. 마음속에 활력이 없으면 우리는 매사에 힘이 없고, 무엇인가 하고 싶은 마음도 없고, 모든 것이 지루하기만 합니다. 마음에는 Affection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마음의 활력에는 방향이 있습니다. 어린이들의 마음은 게임을 향하여 활성화 됩니다. 또 청소년들과 젊은이들은 아이돌 그룹에게 열광을 합니다. 그들의 마음을 뜨겁게 만드는 것, 그 뜨거워진 마음을 Affection이라고 합니다. 지금 사도 바울이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사, 즉 성령이 지혜와 계시로 역사하셔서 우리의 마음의 눈을 밝혀 했을 때, 이 말은 우리의 마음을 뜨겁고 열정적으로 만드는 것을 의미합니다. 무엇을 향하여 뜨거워지는 것일까요? 하나님을 향하여,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구원의 사역을 향하여,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와 복을 향하여, 우리의 마음이 뜨거워지고 불타오르게 하고 그것을 사모하며, 그것을 듣고 싶어 하고, 그것을 말하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마음에 기쁨이 없습니다. 말을 해야 기쁨이 있습니다. 증거 해야 기쁨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마음의 눈이 밝아진 우리의 신앙의 상태인 것입니다.
성령은 우리에게 새로운 감각을 주신다
조나단 에드워즈는 Religious Affections로써 종교적 감정이 된 뜨거워진, 활력이 넘치는,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을 향하는 마음의 상태를 표현했던 것입니다. 그는 이 감정이 진리의 깨달음으로부터 오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진리의 깨달음이 임하게 되면 성령께서 우리에게 뉴 센스(New Sense), 새로운 감각을 주시는데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는 감각을 주십니다. 진리의 깨달음으로 우리 앞에 나타나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진리의 깨달음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다는 겁니다. 이것은 누구의 역사일까요? 성령의 역사입니다. 마음의 눈이 밝아져, 즉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하시고, 그리하여 하나님의 영광에 대하여 우리의 영혼이 반응합니다. 그 반응은 평범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영혼 속에서 하나님께 대한 사랑, 하나님께 대한 기쁨, 그분을 만난 감격, 그분의 영광을 보고, 그 아름다움을 보고, 감동하고, 감탄하고 하는, 이런 마음의 움직임이 강력하게 일어나게 됩니다. 마음의 눈이 밝아졌을 때 그 마음은 드디어 살아서 역동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깨달았는가? 그리고 진리의 깨달음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알게 되었는가? 그리고 그로 인하여 우리의 마음이 활력 있게 일어나게 되었는가? 불타오르게 되었는가? 시편을 보면 시인들이 이와 같이 하나님을 대면하여 그의 영혼에서 올라오는 이러한 감정들에 대해서, 기쁨에 대해서, 즐거움에 대해서, 하나님의 영광에 미치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 때문에 안타까워하고 슬퍼하는 모습들이 고백되어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무엇과 연관되어 있습니까? 하나님의 영광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보지 못한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기뻐하게 된 이유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말씀 다시 한 번 보세요. 성령이 지혜와 계시로써 진리를 우리에게 나타내실 때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들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권세, 그분의 사랑과 자비, 그분이 주시는 모든 복과 은혜, 이것이 하나님을 아는 것에 다 담겨 있습니다. 그다음에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이 모든 것을 알게 되는 순간 우리의 마음은 활성화됩니다. 뜨거워집니다. 불타오릅니다. 간절한 열망을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더욱 알고 싶어 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그리하여 “그의 부르심의 소망과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다음에 19절 말씀을 보면 “그 힘의 위력으로,” 성령의 역사가 임하여 믿음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믿음은 어떻게 일어날까요? 성령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할 때 믿음이 생깁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에 대하여, 그 영광에 대하여, 그 능력에 대하여 분명히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마음속에 주님에 대한 사랑과 기쁨이 한없이 넘쳐나게 됩니다. “너희가 예수를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예수님을 보지도 못했는데 어떻게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기쁨이 솟아났을까요? 그것은 성령께서 하나님의 영광, 그리스도인의 영광을 깨닫게 하시고, 그것을 우리의 영혼이 체험케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말씀 선포를 통하여 우리를 다스리실 때, 성령께서 이렇게 말씀으로 역사하셔서 우리가 진정으로 그리스도의 영광을 대면하게 하시고, 그 앞에 무릎을 꿇고 그분을 기쁨으로 섬길 수 있게 하심으로 우리를 통치하시는 것입니다.
말씀을 가지고 역사하시는 진리의 성령
“쿰 베르붐”(Cum Verbum)이란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성령은 “말씀과 더불어, 말씀과 함께” 역사하신다는 뜻으로서 그리스도의 교회 통치에 대한 말입니다. 성령의 역사는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통치하시는 수단입니다. 그런데 성령은 말씀과 함께 역사하신다는 것입니다. 성령은 주권을 가지신 하나님으로서 말씀을 사용하셔서 은혜 주실 자에게 은혜를 주시고 은혜 베푸실 만한 때에 은혜를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그리스도는 말씀의 선포를 통하여 우리를 다스리시며, 성령은 선포되는 말씀을 사용하셔서 우리 가운데 역사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다락방 강화를 하셨습니다. 그 말씀의 핵심 주제는 보혜사 성령이었습니다. “내가 너희를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하다. 내가 아버지께 청하여 보혜사를 너희에게 보낼 것인데, 그분은 진리의 영이시다. 진리의 영이 너희에게 오시면 그가 너희 속에서 나를 증거할 것이다.” 그리고 “진리의 영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할 것이다.” 진리의 성령은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고 예수님께서 가르치는 것들을 생각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과거에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도 무슨 뜻인지도 몰랐고, 마음에 감동도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셔서 역사하시는 순간 그가 들었던 말씀들이 생각나고, 그 말씀들이 깨달아지고, 그 말씀들이 마음속에서 역사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의 역사입니다. 이런 성령의 역사가 있으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기쁨으로 순종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성령의 역사가 있으므로 우리는 진리 앞에 무릎을 꿇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진리를 마음속에 새기고 진리를 따라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성령이 진리를 우리에게 선포하시고 깨닫게 하시고, 우리의 마음을 활력 있게 하셔서 기쁨으로 말씀에 순종하게 하심으로 우리를 다스리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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