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모든 영역에 그리스도의 왕권을 높이라(09)_세상 문화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리라 (사 6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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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6-11-01본문
삶의 모든 영역에 그리스도의 왕권을 높이라(09)
세상 문화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리라 (사 60:4-9)
영광스러운 예언
오늘 우리가 읽은 이사야서 60장은 성경에서 가장 영광스러운 예언 중의 하나입니다. 이사야서 60장 1절의 말씀은 얼마나 복되고 영광스러운 내용인지 모릅니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내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하나님께서 영광 중에 자기 백성에게 임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어둠을 물리치고 이 세상의 모든 탁월한 것들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찾아올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나 빛을 발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영광스러운 부흥으로 생각하고 부흥의 메시지로 전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흔히는 이 말씀을 유다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에서 풀려나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고, 예루살렘이 세상의 중심이 되어 세상 나라와 민족들이 그곳에 찾아오게 된다고 하는 예루살렘 회복의 메시지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리고 조금 더 나아가 예루살렘의 회복이 당대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신약 시대에 이루어질 것이다, 그래서 신약 시대에 복음이 만민에게 전파되고 만민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을 예언하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본문의 말씀은 그보다 더 먼 하나님의 궁극적인 일들을 예언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더 합당합니다.
이사야 60장과 요한계시록 21장의 평행 구조
이사야서 60장은 요한계시록 21장에 나오는 새 예루살렘, 즉 거룩한 도성에 대한 예언과 서로 평행되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첫째, 영원한 빛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사야서 60장 19절, "다시는 낮에 해가 네 빛이 되지 아니하며 달도 네게 빛을 비추지 않을 것이요. 오직 여호와가 네게 영원한 빛이 되며 네 하나님이 네 영광이 되리니" 요한계시록 21장 23절,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침이 쓸데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빛이고 어린 양이 그 등불이 되심이라"
둘째, 성문이 열려 있고 열방이 그 성문으로 들어온다는 내용입니다. 이사야서 60장 11절, "네 성문이 항상 열려 주야로 닫히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들이 네게로 이방 나라들의 재물을 가져오며 그들의 왕들을 포로로 이끌어 옴이라". 요한계시록 21장 25~26절, "낮에 성문들을 도무지 닫지 아니하리니 사람들이 만국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그리로 들어오겠고"
셋째, 모든 슬픔이 사라진다고 이야기합니다. 이사야서 60장 20절 하반절, "여호와가 네 영원한 빛이 되고 네 슬픔의 날이 끝날 것임이라" 요한계시록 21장 4절,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넷째, 그 성에 거하는 백성들이 거룩한 백성들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이사야서 60장 21절, "네 백성이 다 의롭게 되어 영원히 땅을 차지하리니" 요한계시록 21장 24절,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되"
궁극적 천국을 향한 예언
이사야서 60장과 요한계시록 21장에 나오는 평행 되는 내용들을 볼 때, 이사야서 60장은 단순히 유다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에서 회복되는 것만을 말씀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예언의 말씀대로 유다 백성들이 다시 왕국을 이루고 그곳으로 모든 나라들이 가장 귀하고 존귀한 것들을 가지고 몰려드는 일들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유다 백성들은 그 땅에서 페르시아의 식민지로, 로마의 식민지로 살았고, 나중에는 예루살렘 성이 완전히 파괴되고 2천 년 동안 유다 백성들은 유럽이나 지중해 전 지역에 흩어지는 디아스포라의 삶을 계속 살게 됩니다. 현대 가나안 땅에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국가가 세워졌으나, 그 국가가 성경에서 말하는 이스라엘 국가와 동일한 국가는 아닙니다.
그렇다면 여기 성경의 예언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할까요? 리처드 마우는 『미래의 천국과 현재의 문화』에서 이사야서 60장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는 이사야서 60장을 유다 왕국이 회복되거나 신약의 복음이 만민에게 전파되는 것을 넘어서, 하나님께서 이루실 궁극적인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예언의 말씀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는 오늘 우리가 읽었던 성경 본문 4절에서 9절까지를 말세에 하나님께서 이루실 궁극적인 천국에서 이루어지는 변혁된 문화의 모습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모든 나라의 가장 아름다운 것들이 하나님께로
4절, "네 눈을 들어 사방을 보라. 무리가 다 모여 네게로 오느니라." 신약 시대에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우리도 신약 시대 사람으로서 하나님께로 모여든 이 무리 가운데 속해 있습니다. "네 아들들은 먼 곳에서 오겠고 네 딸들은 안기어 올 것이다. 그때 네가 보고 기쁜 빛을 내며 네 마음이 놀라고 또 화창하리니." "이는 바다의 부가 네게로 돌아오며 이방 나라들의 재물이 네게로 옴이라." 바다를 통하여 온갖 부가 몰려들고, 이방 나라들의 재물이 육지와 바다를 통해서 예루살렘으로 모여들고 있는 겁니다.
6절, "허다한 낙타, 미디안과 에바의 어린 낙타가 네 가운데 가득할 것이며." "스바 사람들은 다 금과 유향을 가지고 와서." 사람들이 고가의 문화적 산물들을 가지고 옵니다. 그런데 이 모든 부가 여호와의 찬송을 전파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전에는 세상의 부귀영화 같은 것들은 부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부정적인 것들이 이제는 여호와의 찬송을 전파하는 것이 됩니다.
7절, "게달의 양무리는 다 네게로 모일 것이요. 느바욧의 숫양은 네게 공급되고 네 제단에 올라 기꺼이 받음이 되리니." 성전을 영광스럽게 하는 참된 예배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8절, "저 구름같이 비둘기들이 그 보금자리로 날아가는 것같이 날아오는 자들이 누구냐?" 심지어는 하늘에서도 새카맣게 몰려드는 일단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9절, "곧 섬들이 나를 앙망하고 다시스의 배들이 먼저 이르되." 성경에서 다시스의 배는 결코 좋은 의미를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요나에게 다시스 가는 배는 도피하는 용도로 쓰인 배입니다. 이사야서에서 다시스의 배는 이방의 영광을 나타내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미혹시키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사야서 60장에서 다시스의 배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하여 사용되고 있습니다. 다시스의 배를 동원해서 하나님께 드리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하늘의 구름처럼 몰려올 것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새 예루살렘으로
하나님은 마지막 때에 지상의 예루살렘을 대신하여 하늘에서 새 예루살렘을 내려보내십니다. 그리고 그 새 예루살렘에 세상의 모든 나라에서 가장 탁월하고, 가장 아름답고, 가장 영광스러운 것들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하여 모여들 것입니다. 이것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할까요? 리처드 마우는 천국의 삶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많은 분들은 천국에서의 삶을 개인적인 삶으로 묘사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 부분에 대해서 우리에게 자세하게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다만 자세한 것은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지금과 전혀 다를 것이라는 점입니다. 지상에 있는 예루살렘과 하늘에서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은 근본적으로 다를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에서 새 예루살렘을 말씀할 때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그 도시의 여러 일들에 대한 상징이 이사야서 60장 4절에서 9절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처음 인간을 창조하셨을 때 인간에게 무엇을 만들어 주셨습니까? 에덴동산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에덴동산은 아직 사람들의 문화적 손길이 가지 않은 곳입니다.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시긴 하셨으나 아직 인간들의 문화적 활동이 가미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거기에서 인간은 문화적 훈련을 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창조 세계의 모든 것들을 재료로 삼아 하나님의 문화를 이루게 될 것입니다. 에덴동산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훈련시키시는 장소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마지막 때에는 예루살렘 성을 내려보내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문화적 소산입니다. 성을 쌓는 데 필요한 문화가 있습니다. 거기에는 각종 재료들을 다듬고 이것을 다 쌓아 올리는 모든 과정들이 문화입니다. 거기에는 인간의 학문과 과학과 모든 것들이 총동원되어서 하나의 성이 이루어지고 성 안에 각 사람들의 집이 이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즉 새 예루살렘은 문화입니다.
천국에서의 문화적 삶 — 연속성과 변혁
그곳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삶은 하나님이 새롭게 창조하신 것들이라 할지라도 창조 세계의 것들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현재 우리가 피조 세계를 활용하는 문화와 새 창조로 이루어진 문화 사이에 연계성이 있을까요? 천국에도 인터넷이 있을까요? 천국에도 휴대폰이 있을까요? 우리는 이런 사물이 그대로 동일하게 존재한다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다만 지금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와 능력을 가지고 하나님이 만들어 주신 창조 세계의 모든 재료들을 활용하여 인간의 문화를 건설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그곳에서도 문화적 활동을 할 것입니다. 다만 문화의 목적이 변할 것입니다. 인간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현재의 문화는 변화되어 버렸습니다. 인간의 욕심, 인간을 편안하게 하고 인간을 만족시키는 것, 그리고 우상을 섬기는 것으로 자기의 안전을 도모하고 자기의 부와 풍요로움을 얻기를 원하는 것으로 변화되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이사야서 60장에서 본 것은 이런 세상의 문화의 목적이 변화되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변화된 되었을까요?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우리는 지금 인간의 영광과 욕심을 만족시키고 우상을 통하여 안전과 풍요를 구하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문화 속에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와는 전혀 다른 목적,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문화적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굉장히 놀라운 통찰입니다. 천국에서 우리는 영원토록 예배만 드리고 살게 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천국에서 하나님을 예배함이 우리의 삶의 중심이 될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 사는 동안에 주께 받은 지혜와 능력으로 창조 세계를 활용하여 살아가던 모든 삶의 양식을 천국에서도 계속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똑같은 물품이 존재한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지금 이곳에 TV가 있다고 해서 천국에도 TV가 있고, 지금 이곳에 자동차가 있으니까 천국에도 자동차가 있다는 말이 아닙니다. 지금도 시대에 따라서 변하지 않습니까? 200년 전에는 자동차가 없었고, 앞으로 100년 후에도 자동차는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동차가 있느냐 휴대폰이 있느냐가 핵심이 아닙니다. 그것을 어떤 목적으로 개발하고 사용하느냐는 것입니다. 인간은 지금까지 창조 세계의 법칙들을 깨닫고 창조 세계의 재료들을 사용하여 각종 문화 활동을 하며 시대에 따라서 다양한 삶을 살아왔습니다. 분명한 것은 우리는 계속해서 문화를 만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천국에서도 새 하늘과 새 땅, 즉 새 창조가 이루어지되,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새 창조의 세계에서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으로 이것을 활용하여 살아가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승리가 보장된 사명을 살아가라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요? 지금 우리는 마지막 때에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고 하나님을 예배함이 중심이 되는 문화 활동을 하는 것처럼, 지금도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지금 우리는 주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삶을 살아야 됩니다. 우리의 모든 활동, 즉 학문 활동, 경제 활동, 각종 예술 활동, 정치적인 모든 일들, 이런 사회의 모든 분야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 되어야 합니다. 이 모든 것들은 하나님께 드리기 위한 것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입니다. 그런데 이 사명은 반드시 승리가 보장되어 있으며 승리가 예정되어 있는 사명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낙심하거나 실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 개인의 인격을 구원하십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도 새롭게 구원하십니다. 우리 개인의 인격의 구원을 위하여는 지상에서 완성된 인격에 도달하지는 못할지라도 성화의 삶을 부지런히 살아야 하는 것처럼, 지상에서 완성된 하나님 나라의 문화를 이루지는 못할지라도 우리는 그 문화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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