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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사랑, 경건의 비밀(01)_교회를 사랑하십니까? (딤전 3: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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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6-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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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사랑, 경건의 비밀(01)

교회를 사랑하십니까? (딤전 3:14-16)




찬송가 208장과 작사자 티모시 드와이트의 생애

오늘 우리는 첫 번째 회중 찬송으로 찬송가 208장 '내 주의 나라와'를 불렀습니다. 이 찬송은 참으로 마음에 깊은 감동을 주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내 주의 나라와 주 계신 성전과 피 흘려 사신 교회를 늘 사랑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이 찬송을 부르다가 작사자를 살펴보니 티모시 드와이트로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그는 1752년에 태어나 1817년에 돌아가신, 지금으로부터 약 250년 전의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조나단 에드워즈 목사의 외손자입니다. 조나단 에드워즈 목사는 1750년에 23년간 시무하던 교회를 사임하게 되었는데, 그 과정이 그리 평탄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는 교회를 순결하게 세우기를 원했습니다. 그리하여 믿음의 고백이 분명하지 않거나 세례와 입교를 거치지 않은 이들이 성찬식에 무분별하게 참여하여 성찬을 받는 문제에 대해, 그렇게 행해져서는 안 된다며 교회의 원리를 바로 세우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시대는 이미 그러한 참여가 관행적으로 허용된 상태였습니다. 그것이 벌써 반세기를 지나온 교회의 관행이었던 것입니다. 일단 교회의 관행으로 굳어진 것을 되돌리는 일은 참으로 힘들고 어렵습니다. 이에 대해 그가 논문을 쓰기도 하고 반박 논문까지 대두되면서 교회 내에서 이 문제로 인한 갈등이 불거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갈등의 여파로 결국 목사직을 내려놓고 교회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교회와 불편했던 가정 배경

그로부터 2년 후에 티모시 드와이트가 태어났습니다. 당시 에드워즈 목사는 교회를 떠났으나 그의 딸이자 드와이트의 어머니는 여전히 그 마을에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마을의 교회를 출석하는 것은 심적으로 너무나 힘든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결국 아버지가 목회했던 그 교회를 나가지 못하고, 이웃 지역으로 마차를 타고 이동하여 예배를 드려야 하는 불편하고 고된 상황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그러한 시기에 티모시 드와이트가 태어난 것입니다. 그는 어린 시절에 가정적으로 많은 비극을 겪었습니다. 여섯 살 때 바로 밑의 이모와 이모부를 모두 병으로 잃었으며, 외할아버지인 조나단 에드워즈와 외할머니마저 불과 6개월이라는 짧은 기간 사이에 병으로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집안이 완전히 무너지게 되었고, 집안의 기둥 같은 인물들이 모두 사라진 공백 속에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정치적인 입장과 가정 내의 갈등

그가 젊은 시절을 보낼 무렵은 미국의 독립전쟁이 한창 진행되던 시기였습니다. 당시 미국 땅에 거주하면서도 독립전쟁에 가담하여 영국으로부터 독립해야 한다는 주장과, 굳이 독립할 필요 없이 현재의 체제를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팽팽하게 공존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드와이트의 가정 내에서도 이 정치적인 문제로 심각한 갈등이 발생하였습니다. 한쪽은 독립전쟁에 참여하여 새로운 국가를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다른 한쪽은 현 체제를 유지해야 한다고 맞섰습니다. 드와이트의 아버지는 후자의 입장이었습니다. 결국 이 문제로 집안에 갈등이 고조되었고, 아버지는 재산을 정리한 뒤 집을 떠나 방황하다가 타향에서 생을 마감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집안의 연이은 비극과 어머니의 깊은 아픔, 그리고 젊은 시절 정치적 격동 속에서 가정이 갈등으로 분열되고 아버지가 객사하는 일련의 시련들을 겪으며 그의 청년기가 지나갔습니다.


고난을 극복하고 시대 사상과 투쟁함

이러한 가정사를 지닌 인물이라 생각할 때, 이 찬송가 208장을 부를 때마다 참으로 신비롭다는 생각을 금할 수 없습니다. 만약 일반적인 사람이었다면 이러한 고난 앞에서 '하나님, 어찌하여 저에게 이런 시련을 주십니까'라며 원망하고, 사람들을 멀리하며, 타인의 위로마저 왜곡하여 받아들이기 일쑤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드와이트는 이토록 깊은 사랑의 찬송을 지을 수 있었을까? 늘 경이로움을 느끼게 되는 대목입니다. 이 찬송을 부를 때마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체험했으며, 하나님의 교회에 대한 무한한 사랑으로 충만한 사람이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는 이후 대학 교수가 되었고, 나중에는 예일대학교 총장으로 약 20년간 재직하게 됩니다. 그가 대학 총장으로 재직하던 시대는 무신론이 극심하게 팽배해 있던 때였습니다. 특히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난 이후, 기존의 모든 권위와 체제를 무너뜨리고 반박하는 사조가 거세게 밀려왔습니다. 젊은이들은 구체제(앙시앵 레짐)를 타파하는 것을 최고의 사명으로 여기며 그러한 흐름에 열광적으로 동참했습니다. 프랑스 대혁명의 영향은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 전체를 거세게 뒤흔들었습니다. 그 당시 대표적인 지성인 중 한 명이었던 볼테르는 전형적인 무신론자였습니다. 그는 성경을 말살하는 것을 자신의 사명으로 여겼던 인물이었습니다. 이러한 사상의 영향으로 많은 젊은이들이 교회를 등지기 시작했습니다. 대학에서 학문을 탐구하던 이들조차도 무신론적 사상으로 무장하여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를 낡은 구체제로 치부하며 배척했습니다. 그러한 혼란 속에서 대학 교수로서 신앙의 터전을 바로 세우고 교회를 수호하기 위해 최전선에서 싸운 인물이 바로 티모시 드와이트였습니다. 어린 시절의 혹독한 가정환경과 고난, 역경 속에서도 그의 신앙은 올곧게 성장하였으며, 정신세계는 확고한 믿음의 원리 위에 굳건히 세워져 있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하나님의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 시대에 그를 사용하시기 위해 미리 예비하셨던 것입니다.


찬송가 208장 가사의 의미: 그리스도의 피로 사신 교회와 보호

찬송가 208장은 1801년 그가 예일대학교 총장으로 재직하는 동안 미국의 찬송가 편찬 작업을 진행하다가 작사하게 된 것입니다. 그는 무너져 가는 시대 속에서 하나님의 교회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눈물과 기도로 나아가야 하며, 교회의 궁극적인 승리를 확신해야 한다는 믿음으로 이 찬송을 지었습니다.

이 찬송의 1절을 살펴보면, 교회를 사랑해야 하는 근본적인 이유를 그리스도께서 피 흘려 사셨기 때문이라고 노래합니다. '내 주의 나라와 주 계신 성전과 피 흘려 사신 교회를 늘 사랑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우리는 모든 죄 사함을 받고 새 생명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 나라의 기업을 상속받을 자들이 되었습니다. 그 구원받은 백성들이 이 땅에서 함께 이루어가는 공동체가 바로 교회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지상의 교회를 세우기 위해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셨습니다. 그렇기에 1절에서 '피 흘려 사신 교회를 사랑합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2절에서는 하나님께서 이 교회를 친히 지켜 주신다고 노래합니다. '내 주의 교회는 천성과 같아서 눈동자 같이 아끼사 늘 보호하시네.' 하나님께서 보호하시는 처소가 곧 교회입니다. 주님께서는 교회를 이루는 모든 지체들을 눈동자처럼 보호해 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눈동자같이 우리를 지키신다고 확신하며 고백할 수 있는 이유는, 그분이 교회를 지키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향한 헌신의 다짐

3절은 교회를 향한 헌신의 삶을 다짐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내 교회 위하여 눈물과 기도로 내 생명 다하기까지 늘 봉사합니다.' 교회가 처한 세속적 현실과 교회를 떠나가는 젊은이들, 그리고 기독교를 대적하는 무신론적 사조 속에서, 마치 거센 폭풍우 속의 조각배처럼 위태로워 보이는 교회를 향한 안타까움을 안고 그는 눈물과 기도로 주님 앞에 엎드렸습니다. 영어 원문에는 '나의 눈물은 땅에 떨어지고, 나의 기도는 하늘로 올라간다'라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눈물은 떨어지고 기도는 상달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나의 수고와 헌신이 끝나는 그 순간까지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 일하겠다'고 서원합니다. 우리의 기력이 다 쇠하고 모든 것이 무너지는 인생의 결정적 순간, 즉 생명이 다하는 그날까지 교회를 사랑하며 수고와 헌신의 삶을 살아가겠노라는 고백입니다. 이 얼마나 대단한 결단인가.

이 찬송을 묵상할 때마다 우리 시대에 '내 생명 다하기까지'라는 구절이 얼마나 깊은 울림을 주는지 생각하게 됩니다. 오늘날 교회가 노령화되면서 나타나는 두드러진 현상 중 하나는 헌신을 기피하려는 경향입니다. 봉사 직무를 맡기려 하면 은퇴했다는 이유로 한사코 거부하려는 태도가 만연해 있습니다. 어느 교회에서는 은퇴한 이들을 봉사 명단에 올렸다는 이유로 항의가 들어와 당회에서 심각하게 논의되었으나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내 생명 다하기까지'라는 구절은 우리의 마음에 강렬하게 다가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지금 우리에게 회복되어야 할 핵심은 바로 '내 생명 다하기까지'라는 헌신의 자세입니다. 나의 수고와 헌신을 더 이상 할 수 없는 그 마지막 순간까지 온전한 봉사를 지속하겠다는 각오가 필요합니다. 요양원에 수년간 머물며 세상과의 단절 속에서 병마와 싸우는 세월은 자칫 우리의 정신세계를 무너뜨리고 믿음을 약화시키기 쉽습니다. 진정으로 무엇을 원하고 소망해야 하겠는가. '내 생명 다하기까지 수고와 헌신을 다하겠습니다'라는 고백을 우리의 신앙적 결단으로 삼아야 합니다. 주님 앞에 간절한 마음으로 서원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노년의 삶을 힘 있고 능력 있게 붙들어 주실 것을 확신합니다.


교회 생활의 기쁨을 노래함

이어서 찬송가 4절은 성도의 교제와 교회의 위로, 그리고 구주와 맺은 언약을 기뻐하는 내용입니다. 교회 생활은 본래 기쁨이 충만한 생활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인간적인 감정에 치우치면 참된 기쁨을 누릴 수 없습니다. 교회 안에서 사람들의 말이나 행동 때문에 마음이 상하고 실족한다면 영적 기쁨은 사라지고 맙니다. 참된 기쁨을 얻기 위해서는 '하늘의 방법'을 선택해야 합니다. 드와이트의 원문 가사에 따르면 진정으로 기뻐해야 할 대상은 '하늘의 것들'입니다. 사람과의 관계는 변덕스럽기 그지없어서 좋을 때가 있으면 괴로운 때도 있기 마련입니다. 오직 인간에게만 기쁨의 근거를 둔다면 갈등과 염려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늘의 방식을 택해야 합니다. 첫째는 '달콤한 성도의 교제'입니다. 성도들이 모여 서로를 비난하거나 말다툼을 벌이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생각을 존중하며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함께 찾아가는 열린 마음의 교제를 나누어야 합니다. 둘째는 '구주와 맺은 언약, 즉 엄숙한 서약'입니다. 우리가 직분을 받을 때, 세례를 받을 때, 임직할 때, 그리고 매년 봉사직을 맡을 때 하나님 앞에서 행한 서약을 엄숙하게 여겨야 합니다. 어떠한 난관이 찾아와도 주님과 맺은 언약을 헌신짝처럼 버려서는 안 됩니다. 주변의 누군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하나님과의 거룩한 서약을 팽개치는 사유가 될 수는 없습니다. 주님과 맺은 영원한 언약이기에 그 어떤 상황에서도 변치 않는 태도로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영적 승리과 교회의 영광

마지막 다섯 번째는 영적 승리에 대한 노래입니다. '하늘의 영광과 베푸신 은혜가 진리와 함께 영원히 시온에 넘치네.' 여기서 시온은 곧 교회를 상징합니다. 주님께서는 진리가 영원한 것처럼 확실하게, 땅의 가장 아름다운 소산과 하늘의 풍성한 축복들을 교회 위에 영원토록 넘치게 부어주십니다. 이것이 바로 교회의 궁극적인 승리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찬송시를 깊이 묵상하며 우리 모든 성도가 이와 같은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진실한 마음으로 이 찬송을 고백하고, 그 안에 담긴 모든 신령한 복들이 여러분의 삶에 임하기를 진심으로 축복합니다.

오늘 말씀의 전체 주제는 '교회 사랑, 경건의 비밀'이며, 구체적인 질문은 '교회를 사랑하십니까?'입니다. '내 생명 다하기까지 수고와 헌신을 다하겠습니다'라는 고백으로 주님 앞에 기도하며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친히 지켜 주실 것입니다. 또한 이처럼 헌신할 때 주님께서 이 시대의 한국 교회를 다시 일으켜 세우시고 영광스럽게 사용하여 주실 것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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