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주님이신 예수를 바라보자(1)_예수 그리스도는 믿음의 목표이다(히 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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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3-07-18본문
믿음의 주님이신 예수를 바라보자(1)
예수 그리스도는 믿음의 목표이다(히 12:2)
그리스도 없이는 믿음의 삶이 완성될 수 없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말씀은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우리의 믿음의 삶에서 그리스도가 없으면 믿음의 삶은 완성될 수 없다고 하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11장은 소위 믿음의 장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여기서 믿음의 정의를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히11:1-2).” 즉 히브리서 11장은 바라는 것, 보이지 않는 것을 붙들고 살았던 믿음의 선배들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의 눈으로 볼 때 위대한 신앙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믿음의 영웅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사람들에 대하여 히브리서 11장 38절에서는 이들은 세상이 감당치 못할 자들이라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이 분들은 불굴의 믿음을 가지고 승리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그들은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였다”고 말씀합니다. 이들은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전쟁에 용감하게 되어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하였다”(히 11:34)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이들 중에 어떤 분들은 고난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고난 가운데에서도 굴복하지 아니하고 믿음으로 그 고난들을 이겨냈습니다.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들을 부활로 받아들이기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심한 고문을 받되 구차히 풀려나기를 원하지 아니하였으며, 또 어떤 이들은 조롱과 채찍질 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련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란과 학대를 받았으니 그들이 광야와 산과 동굴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히 11:35-38).” 오늘날 우리 같으면 이 고난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 저는 이 성경 말씀을 읽으면서 “내가 이런 일을 당한다면 과연 견딜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종종 해봅니다. 저는 자신이 없습니다. 내가 과연 예수님을 끝까지 믿는다고 할 수 있을까? 자신이 없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하나님께서 저에게 한 생각을 주셨습니다. 순교는 자신감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문득 “평소에 큰 소리 친다고 순교하는 것이 아니다. 순교는 그 순간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야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생각입니다. 그리고 저는 그 순간 마음의 위로를 얻었습니다. “주님. 제가 지금 큰소리치고 자신할 수 없다고 해서 부끄러워하고 의기소침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그 순간이 되면 저에게 믿음의 담력을 주십시오. 그리고 그 순간 주님께서 은혜를 베풀어주십시오. 그리하면 제가 순교하겠나이다.” 이렇게 기도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다 연약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은혜를 주시면 주님께서 역사하시면 능히 우리는 믿음을 지키고 승리하는 자리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믿음의 창시자요 완성자이신 그리스도
지금 히브리서에 나오는 믿음의 위인들이 사실은 모두 그런 분들입니다. 그들은 자기 힘으로 승리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기의 자신감으로 승리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기의 의지가 굳어서 승리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 사람들이 나라를 대적하고 그리고 의를 행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그들이 이와 같은 고난과 핍박을 견뎌낼 수 있었던 이면에는 믿음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셨던 것입니다. 그들의 마음속에는 소망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마음 속에는 바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비록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었지만 그들은 그것을 소망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믿음을 주셔서 보이지 않는 것들을 분명히 보는 것처럼 바라보면서 살아가게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이길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이 극한 가난도 이길 수 있었던 이유는, 그런 고통도 이길 수 있었던 이유는, 끊임없는 고통과 고문, 위협, 두려움도 이길 수 있었던 이유는, 죽음조차도 그들을 무너뜨릴 수 없었던 이유는 그들 마음속에 있었던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제 믿음의 승리자가 되어 우리들의 믿음의 경주를 지켜보는 입장이 되었습니다. 히브리서 12장 1절은 바로 이러한 상황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여기의 경주는 올림픽과 같은 것입니다. 올림픽 경기에 나간 사람들은 자기의 모든 몸을 경기에 맞게 준비하게 되어 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 경기를 믿음의 경기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경주를 하려면 무거운 것을 벗어버리고 얽매이기 쉬운 것, 거추장스러운 것들을 다 버리고 오직 목표를 향하여 달려가야 합니다. 이미 우리보다 앞서 믿음의 경기를 마친 선배들이 우리의 경기를 지금 지켜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주를 바라보라
그런데 이 모든 일을 시작하신 이가 누구일까요?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2절). 진정한 믿음의 영웅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믿음의 경주를 창시한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는 히브리서 11장이 믿음의 영웅들에 대한 이야기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히브리서 11장의 믿음의 영웅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었으면 그들의 믿음의 삶이 완성될 수 없었습니다. 아니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었으면 그들은 믿음의 삶을 시작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구약시대 성도들도 우리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믿음의 사람이 되기까지, 아니 그리스도께서 그들 가운데 임재하시고 역사하시기까지는 믿음의 삶을 시작할 수도 없었고 그 삶을 완성될 수 없었습니다. 히브리서 11장 39절 말씀을 보면 “이 사람들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된 것을 받지 못하였으니”라고 말씀 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믿음의 삶은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믿음의 삶이 완성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아직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다만 멀리서 바라보았을 뿐입니다. 그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소망하고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야 비로소 그들의 믿음이 바라보는 것과 믿음의 실체가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믿음의 대상이시며, 믿음의 목표이시며, 믿음의 경주를 시작하게 하신 분이며, 믿음의 경주를 완성하시는 분이십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 예수를 바라보자.” 본문에서 ‘믿음의 주’라고 할 때 “주”는 주님을 가리키는 용어가 아니라, “창시자” 즉 처음 시작한 창조자를 의미하는 용어입니다. 더 나아가서 이 말은 주관자, 다스리는 자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즉 믿음의 모든 것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믿음이 있다면 이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일어난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애쓰고 힘쓴다면 이 모든 과정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함께하고 역사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놓치면 믿음은 그만 방향이 없는 엉뚱한 곳으로 가게 됩니다. “온전하게 하시는 이 예수를 바라보자.” 우리의 믿음이 온전하게 되고 완성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끝까지 갈 때입니다. 그런데 목표가 달라지면 어떻게 될까요? 경기에서 실격하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바로 우리가 진행하는 믿음의 경기에서 목표가 되십니다. 믿음의 경기에서 목표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지 않는다면 그는 반드시 실격하게 되는 것입니다. 왜 많은 사람들이 믿음으로 살다가 넘어질까요? 예수 그리스도를 끝까지 바라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믿음의 끝이며, 우리의 믿음을 완성시키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의 삶을 살아갈 때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영광을 묵상해야 할 때
과거 유명한 청교도 존 오웬 목사님은 1683년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는데, 소천하기 불과 얼마 전에 한 책을 완성하고 인쇄에 들어가기 전에 머리말을 썼습니다. 그런데 책이 나오기 전에 하나님께서 불러가셨습니다. 그리고 그 책은 그가 죽은 후에 출판이 되었는데, 그 책은 그리스도의 영광에 대한 묵상이 성도에게 주는 유익과 위로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존 오웬은 청교도들 가운데에서도 지적으로 가장 우수하고, 학문적으로도 가장 탁월한 신학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말년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기 전에 집중적으로 매진하고 있었던 것은 그리스도의 영광에 대한 묵상이었습니다. 그는 이미 신학적으로 높은 수준에 있습니다. 그런데 그는 다시 그리스도에 대하여 묵상하기 시작 했습니다. 왜 그렇게 했을까요? 그는 이미 기독론을 썼습니다. 그의 기독론도 굉장히 깊은 그리스도론을 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기 전에 그리스도의 영광에 대하여 다시 묵상을 시작했습니다.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리스도인은 그의 믿음의 수준이 어느 정도에 이르렀든지, 그가 교회에서 어떤 성취를 했든지, 사회적으로 어떤 지위를 가지고 있든지, 그리스도가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며, 그리스도를 묵상하고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지 못하면 넘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존 오웬은 그리스도의 영광을 묵상하면서 기존의 기독론에서는 볼 수 없는 부분을 다루고 있습니다. 저는 그 제목을 보고 깜짝 놀랐는데 “그리스도의 영광을 지상에서 보는 것과 하늘에서 보는 것과의 차이점”이라고 하는 제목입니다. 지금 우리가 지상에서 육신을 입고 그리스도의 영광을 바라보는 것도 유익한데, 우리가 천국에 가서 그리스도를 대면할 때 그 영광을 목도하는 것과 얼마나 다를 것인가 하는 것에 대해서 3장에 걸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존 오웬은 자신이 하나님의 부름을 받을 때가 얼마 남지 않았다라고 하는 것을 직감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을까요? 그러면서 천국에서 그리스도의 영광을 바라보는 것에 대하여 지금 지상에서 자기가 행하고 있는 그리스도의 영광에 대한 묵상과 차이를 이야기하면서 천국을 소망하고 있지 않았을까요? 그는 지상에서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는 것과 하늘에서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는 것 사이에 본질에 있어서는 차이가 없다고 이야기 합니다. 그러나 정도에 있어서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차이가 있다고 이야기 합니다. 그러므로 천국에서 그리스도의 영광을 목격하는 그것이 진정으로 우리가 소망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영광을 묵상함으로 얻는 유익과 위로
존 오웬은 지상에서 그리스도의 영광을 바라볼 때 우리에게 주는 유익과 위로가 크다고 이야기 합니다. 죄 많은 우리들이 지상에서 죄 가운데 그대로 살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자들이 아니었습니까? 추하고 더러운 죄 가운데에서 소망이 없는 자들이 아니었습니까?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셨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었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서 예비하시는 모든 은혜를 받아 누리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추하고 더러운 자들이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영광의 몸으로 변화하시고 하늘로 올라가신 것은 우리들도 그와 같이 영광스럽게 변모하고 영광스러운 하늘나라에 갈 수 있다는 것을 우리들에게 보여 주신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묵상할 때 우리는 추하고 더러운 세상과 그 안에 부대끼고 뒹굴고 온몸에 더러운 죄를 묻히고 살아가는 우리들이 정결하게 되고 거룩하게 되고 영광스럽게 된다는 소망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우리는 원수 사이에서 화목한 사이로,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가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이 세상의 모든 것을 가지신 아버지로부터 모든 것들을 풍성하게 공급받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를 묵상할 때 우리는 그것이 얼마나 안전하게 영원토록 우리에게 확보가 되어 있는지를 알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이 흔들리면 우리가 받은 것조차도 의심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때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십시오. 그렇다면 여러분이 받은 것이 분명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묵상할 때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힘과 능력을 얻으며 심지어는 죽음까지도 이길 수 있는 믿음을 발휘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붙들고 살아가는 사람은 반드시 삶의 승리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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