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요약

믿음의 주님이신 예수를 바라보자(5)_하나님에게는 다 계획이 있으셨다②(골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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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3-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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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주님이신 예수를 바라보자(5)

하나님에게는 다 계획이 있으셨다②(골 1:9-12)


골로새 교회는 에베소 부흥의 열매

골로새는 소아시아에 있는 작은 도시입니다. 골로새 교회는 바울이 에베소에서 사역할 때, 바울의 사역을 통해 그리스도인이 되었던 에바브라가 개척한 교회로 알려져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에베소에서 복음을 전했는데, 그때 그곳에서 에베소 부흥의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바울은 3개월 동안 회당에 가서 복음을 전했는데, 하나님의 뜻을 알고 복음을 알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많아 두란노서원에서 2년 동안 날마다 하나님의 나라를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그 도시가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일이 일어나게 됩니다. 사람들이 우상의 책을 가지고 와서 불을 질렀는데 그 금액이 은 오만이나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도시에 우상으로 먹고 살던 사람들의 반발이 있어 결국 큰 소요가 일어났습니다. 그럴 만큼 에베소에서 복음은 얼마나 능력 있고, 얼마나 깊이 있게 성도들의 삶 속에 들어갔는지 모릅니다. 사람들에게서 생각의 변화뿐만 아니라 삶의 변화가 일어났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에 보낸 편지를 보면 에베소에서 하나님의 일이 광대하게 열렸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에서 일어난 일은 정말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 16장에서 9절 보면 “내가 오순절까지 에베소에 머물려 함은 내게 광대하고 유효한 문이 열렸으나 대적하는 자가 많음이라.”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복음이 성할 때 사탄도 함께 역사하는 법입니다. 말씀의 은혜가 임할 때 사탄이 얌전하게 있지 않습니다. 사탄도 반드시 꽹가리치면서 “나 여기 있소”하면서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말씀에 은혜 받는 사람이 있으면 거치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열매를 맺어 자람

골로새 교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에바브라가 에베소에서 사도 바울을 만나고, 그 가르침을 받고, 에베소 부흥의 현장에서 뜨거워지고, 그로 말미암아 그는 자기 고향 골로새에 가서 복음을 전했는데, 골로새에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그런데 골로새 교회가 은혜 가운데 발전하는 가운데 이 교회에 가만히 들어온 이단의 가르침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골로새 교회에 들어온 이단은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었을까요? 그 이단에 대하여 우리가 자세히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 이단에 대항하여 사도 바울이 어떤 말씀을 하고 있는지를 살피면 그 이단의 특성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골로새서에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것은 그리스도의 영광입니다. 골로새서는 그리스도의 영광에 대하여 아주 분명하게 구체적으로 진술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골로새서에서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것은 성도의 삶입니다. 골로새서에는 복음에 합당한 성도들의 삶에 대한 교훈이 아주 강조되어 있습니다. 골로새 교회에 그리스도론과 성도의 삶에 대한 이 두 가지 문제에 있어서 성도들을 혼란시키는 잘못된 이단 사설이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바로 세우기 위하여 사도 바울은 먼저 골로새 교회를 위하여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로써 우리도 듣던 날부터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구하노니”(9절). 물론 사도 바울은 어느 교회에 대하여든 소식을 듣게 되면 그 교회를 위하여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여기서 사도 바울은 골로새 교회가 직면하고 있었던 잘못된 모습들, 그리스도에 대한 잘못된 가르침과 잘못된 가르침에 따른 잘못된 행실의 문제를 위해서 하나님께 기도했던 것입니다. 물론 사도 바울이 골로새 교회에 대하여 부정적인 것만 들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3절부터 8절까지 말씀을 보면 골로새 교회에 대하여 긍정적인 일들에 대해서도 기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감사하노라.” 골로새 교회에 대해 감사하는 일들이 있었습니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의 믿음과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을 들었음이요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쌓아둔 소망으로 말미암음이니 곧 너희가 전에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들은 것이라. 이 복음이 이미 너희에게 이르매 너희가 듣고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너희 중에서와 같이 또한 온 천하에서도 열매를 맺어 자라는도다.”


골로새 교회에 들어 온 잘못된 가르침

그러나 감사와 더불어 사도 바울이 더 기도하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본문 말씀입니다. 기도의 제목은 골로새 교회에 꼭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기도의 제목이 바로 골로새 교회의 문제였습니다. 그러면 기도의 내용은 무엇일까요? 사도 바울은 먼저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알기를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둘째로는 “주께 합당하게 행하”기를 위하여 기도했습니다. 믿음의 삶은 대충 살아서는 안 됩니다. 그러므로 (1) “주께 합당하게” 살아기를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2) 또한 “범사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위하여 기도했습니다. (3) “모든 선한 일의 열매를 맺게 하시기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모든 선한 일”은 예배와 구제와 선행과 같이 성도들이 행해야 되는 당연한 의무를 말씀합니다. 또한 “말씀을 읽는 것과 듣는 것과 기도하는 일에 착념”하는 것입니다. (4)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나기를 위해서” 즉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성장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5)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시기를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6)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기를 위해서” (7) “하나님 앞에 감사하는 삶을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이 7가지기도 제목은 크게 둘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는 진리에 대하여, 다른 하나는 진리에 따르는 삶에 대하여 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알아야 한다

이러한 잘못을 바로잡기 위하여 가장 먼저 필요한 일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아는 것입니다. 골로새 성도들이 이러한 기도의 대상이 된 이유는 13절 이하의 말씀에 나타나 있습니다. “그가,” 즉 “하나님께서” 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사함을 얻었도다.” 즉 사도 바울이 하나님께 이와 같은 기도를 드리게 된 이유는 골로새 성도들이 분명히 해야 할 것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골로새 교회 성도들을 거룩하고 영광스럽게 하셨다는 사실입니다. 그 사실을 크게 두 가지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하나님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습니다. 전에는 흑암의 권세(나라)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의 사랑하는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습니다. 즉 그들의 국적을 바꾸셨습니다. 물론 이것은 영적인 일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흑암의 나라는 사탄이 왕 노릇 하는 곳입니다. 흑암의 나라는 사탄이 죄를 가지고 겁박을 하고, 사망을 가지고 위협하면서, 우리들을 어떻게 해서든지 멸망으로 끌어가려고 합니다. 흑암의 나라에서는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지식이 사라지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들만 남아 있습니다. 그러므로 흑암의 나라에는 소망이 없습니다. 결국 그 끝에는 멸망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의 사랑하는 아들의 나라로 옮겨졌습니다. 그 영광의 나라에 들어가는 순간 신분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죄 사함과 하나님의 자녀 됨과 하나님 나라의 기업을 상속하는 영광스러운 일이 주어졌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나라로 옮겨졌다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릅니다. 그 신분은 그들의 현재와 미래, 모든 것을 결정 짖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이 된 순간 하나님께서 그들을 책임지시고, 그 아들의 나라에 들어간 순간 그리스도께서 그들의 모든 삶에 역사하시고, 그 나라의 백성이 되는 순간 하나님의 성령께서 그들에게 역사하십니다.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모두 이 한 사람을 위하여 역사하시는 나라가 그의 아들의 나라인 것입니다. 한 나라의 영광은 어디에 있습니까? 그 나라 백성들을 지키는 데 있습니다. 우리가 그의 사랑하는 아들의 나라 백성이 되었다면 누가 그 백성을 책임지실까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께서, 성령께서 그 사람을 책임지십니다. 이것은 엄청난 특권입니다.


그리스도의 영광을 알아야 한다

그런데 이런 특권을 받게 되는 것은 무엇보다도 죄 사함 때문입니다. 14절, “그의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그 아들이 어떤 분이시길래, 그 아들 때문에 이런 엄청난 일들이 일어났을까요? 도대체 그 아들이 누구입니까? 15절부터 그 아들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아들은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다.” 그렀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셨습니다. 그리고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가 되었습니다. 즉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교회사를 보면 초대 교회 때부터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한 의심들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고대의 모든 철학들, 사상들 그리고 동양에 있었던 사상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물질세계나 인간의 육체는 더럽고 추하며, 영적인 것에 비해 하등한 것이라는 생각이 보편적입니다. 그래서 영적인 존재가 육신을 입었다는 것은 분명히 문제가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더구나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실 수 있나? 불가능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리스도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는 사실을 부인하는 각종 해석들을 내놓기 시작했습니다. 그중에는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는 사람도 있었고, 그리스도의 인성을 부인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이 모든 일들의 씨앗이 되는 생각과 주장과 가르침이 골로새 교회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는 어떤 분이신가?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시다. 모든 만물보다 먼저 나신 이로써 모든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이시다.”라고 가르쳤던 것입니다. 그리고 “하늘에 있는 것과 땅에 있는 모든 것, 보이는 것들, 보이지 않는 모든 것들, 이 세상의 통치자, 영적인 모든 존재를 다 그리스도께서 창조했다” 고 말씀했던 것입니다(16절). 더 나아가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 그가 근본이시오”(18절).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가 되신다고 말씀합니다. 그리스도가 계심으로 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리스도가 없으면 교회는 시작되지 않습니다. 그분은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먼저 나신 븐입니다. 부활의 주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이 그리스도에게 모든 충만을 충만하게 거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 죄악 된 세상과 화목하게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로 화목하게 하는 일을 이루셨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요, 만물의 창조자가 되시는 이 분이 죽은 자의 첫 머리요, 교회의 머리요, 으뜸으로서, 만물을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시는 분으로서 이 땅에 오셔서 역사하시는 이 모든 일들은 하나님의 계획, 하나님의 뜻으로 된 일들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아는 일에 충만하게 채워주기를 기도했던 사도 바울은 그 하나님의 뜻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어떻게 나타났는지, 어떻게 실행이 되었는지에 대해서 진술했던 것입니다. 즉 그리스도에 대하여 바로 알지 못하면 잘못된 가르침에 넘어지기 쉽습니다. 


신령한 지혜와 총명으로만 알 수 있는 하나님의 뜻

그런데 이 교훈은 무엇으로 인하여 깨달음으로 우리에게 올까요?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9절). 하나님의 뜻은 인간의 상식, 인간적인 지식으로 되는 일이 아니라,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으로 알게 됩니다. 성령께서 하나님께서 주신 진리를 깨닫게 하시는 성령의 지혜가 있어야 되는 일입니다. 왜 우리가 믿음을 갖기 어렵습니까? 왜 우리가 진리를 깨닫기 어렵습니까? 왜 우리가 진리의 영광을 대면하지 못합니까? 그것이 인간의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것이요, 영광스러운 것입니다. 이것은 성령께서 우리의 영혼에 진리의 빛을 비추어야만 알 수 있는 일입니다. 구원의 계획, 창조, 그리고 역사의 완성, 이 모든 것들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 속에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향하신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우리의 인생을 향하신 하나님의 계획이 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이 거룩한, 역사적으로 장엄한 우주적 뜻에 우리 개인 개인이 그 속에 들어가 있습니다. 우리가 이 모든 것을 깨달아 알고 하나님 안에 있기 위하여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으로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그 뜻으로 충만하게 채워지기를 위해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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