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요약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가 되자(3)_평신도를 깨운다(마 28: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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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3-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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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참된 제자가 되자(3)

평신도를 깨운다(마 28:18-20)


위대한 권세의 위임

지난 주일 우리는 모든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받는 그리스도의 제자라는 사실과 모든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받는 제자가 되게 하신 주님의 방법은 위임이라는 방법이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오늘은 마태복음 28장 18절로 20절 말씀을 통해 이 위임에 대해 조금 더 자세하게 생각하기를 원합니다. 본문은 대위임령, 혹은 지상 명령이라고 말씀합니다. 지상(至上)이란 “가장 높은, 가장 최고의”란 의미입니다. 이 말씀이 대위임령, 혹은 지상 명령이 되는 이유는 이 명령을 하신 분의 권세 때문입니다. 18절을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라고 말씀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의 죽음을 당하시고 부활하여 승천하시고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받으신 사실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헨드릭슨은 본문에는 세 가지 위대함, 즉 그레이트(Great)가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첫 번째 그레이트(Great)는 위대한 권세입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 두 번째는 위대한 명령입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고 … 가르쳐 지키게 하라.” 세 번째는 위대한 약속입니다. “세상 끝 날까지 내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이 모든 것은 위대한 권세로부터 출발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위대한 권세를 받으셨고, 위대한 권세자로서 엄숙하게 명령을 하셨고, 위대한 권세자로서 당당하게 약속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약속은 헛된 약속이 아니라 분명히 위대한 권세자로서 분명히 행할 수 있는 능력 있는 약속이었던 것입니다. 즉 위대한 권세자가 위대한 명령을 주셨고, 이 명령을 받아 순종하는 자들에게 위대한 약속을 주셨던 것입니다. 이 위대한 명령을 우리는 위임 명령, 혹은 대위임령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위임”은 어떤 일을 행하는 권한을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위임을 받은 사람은 위임된 권한을 가지고 행하는 것입니다. 더 높은 사람이 위임하면 더 높은 권세를 가지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로서 위임을 하셨다면 이것을 받은 사람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행하시는 분의 권세를 가지고 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가르치고 선포하는 행위가 교회 안에서 가장 소중하고 가장 권세 있는 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이 위임은 예수님의 제자들인 사도들로부터 목사들에게, 그 목사들로부터 또 다른 목사들에게 안수를 통하여 위임되고 땅 끝까지 전파되었던 것입니다.


가르침의 은사로 나타난 위임

그런데 현대에 와서 이와 같은 제도와 이와 같은 교회의 관행들에 대하여 이것이 과연 목사들에게만 위임되었는가 하는 질문이 제기되었습니다. 목사들에게만 예수 그리스도의 멍에가 지워지고, 목사들에게만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주어지고, 목사들만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가르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카톨릭에서는 교회를 둘로 나눈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하나는 가르치는 교회, 다른 하나는 배우는 교회입니다. 가르치는 교회는 성직자들을 의미하고, 배우는 교회는 평신도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성직자와 평신도 사이에는 가까이 할 수 없는 차이가 있습니다. 성직자는 성직자일 뿐이고, 평신도는 평신도일 뿐입니다. 성직자와 평신도 사이는 엄격하게 구분이 되어 있습니다. 성직자는 가르치는 교회입니다. 즉 제도 속에서 가르치는 권한을 성직자에게만 주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종교 개혁 이후 개신교는 이것을 제도와 기능으로 구분해서 제도는 보존하되 기능도 인정하는 쪽으로 발전해 왔습니다. 안수에 의하여 가르침의 직분이 계속 이어지게 할 뿐만 아니라, 때로는 안수가 없어도 가르침의 일을 행할 수 있게 하는 여지를 두었습니다. 그러면 안수 없이 이 일을 행하게 하는 기준은 무엇일까요? 그냥 아무나 무조건 가르칠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첫 번째 기준은 그가 가르침의 은사를 가지고 있는가, 그 은사가 진실인지 그의 사역 속에서 증명이 되는가라는 것입니다. 즉 은사로서의 가르침입니다. 은사로서의 가르침은 어떤 사람이 교회에서 주일학교 교사를 하고 있는데 주일학교 교사를 하는 동안에 이 사람에게 특별한 가르침의 은사가 임하여 그 가르침이 학생들에게 깊이 새겨지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하웰 해리스의 경우

18세기 웨일즈에서 하웰 해리스는 어느 날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는 은혜를 받고 나서 마음속에 결심을 이런 합니다. “나는 주님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어떻게 섬길 수 있을까?” “그래 내가 책을 읽을 수 있으니 환자들을 방문해서 책을 읽어주자.” 그리하여 그는 로버트 베일리의 『경건의 실제』를 가지고 환자를 방문하여 환자에게 이 책을 읽어주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지요. 책을 읽어주는 동안에 환자가 눈물을 흘리고 감격하고, 같이 있던 가족들도 감동을 받고는 하는 것입니다. 그다음 집에서도 그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다음 집에서도 그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는 이 책을 읽어주면서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그랬더니 환자들이 감격하고 눈물을 흘리고 회개하는 일들이 일어나는 것이었습니다. 이 일이 소문이 나자 사람들이 해리스의 심방 일정을 확인하고 그 집에 먼저 가서 기다리기 시작했습니다. 한 번은 해리스가 도착하자 집 안에 들어갈 틈이 없이 이미 많은 사람들이 와 있었습니다. 그래서 마당에서 사람들에게 책을 읽어주고 설명을 했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모두 은혜를 받았습니다. 하웰 해리스가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몰려오고, 은혜 받고, 회개하고, 변화되는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결국 그는 고향 마을을 떠나 순회 설교 사역을 했습니다. 그는 안수를 받은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교회는 그를 강사로 청하고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았습니다. 해리스는 당시 웨일즈의 놀라운 부흥을 일으키는 부흥의 주역이 되었습니다. 해리스에게 은사로서의 가르침이 주님께로부터 임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의 가르침 속에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진정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자신의 삶을 새롭게 하고,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던 것입니다.


D. L. 무디의 경우

어떤 분은 주일학교 교사 타이틀만 가지고 교사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당신 교사로 임명합니다.” 그런데 학생은 한 명도 안 줬습니다. 그랬는데 나중에 이 사람이 200명, 500명 학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그 사람의 사역속에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 사람이 바로 디 엘 무디입니다. 디 엘 무디는 정말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습니다. 있을 데가 없어 엄마 밑을 떠나 멀리 친척 집에 가서 구두 수선을 하는 조수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주일학교 선생님이 결석을 하던 무디를 심방하고 권면 했습니다. 선생님이 그를 위해 기도할 때 그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임했습니다. 이제 무디는 정기적으로 교회에 출석하면서 말씀을 배웠습니다. 무디는 자기도 학생들을 가르치고 싶었습니다. 교회에 교사로 임명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교회는 그를 교사로 임명했지만 학생은 주지 않았습니다. 무디는 열심히 전도하여 학생들이 점점 늘어났습니다. 어느덧 학생들이 몇 백 명으로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디 엘 무디는 안수를 받은 적이 없습니다. 그는 학교에 다닌 적이 없어 말도 투박하고 글도 매끄럽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가르침에는 놀라운 역사가 있었습니다. 영국에 가서 집회를 하는데 박사학위를 가진 한 사람이 그의 집회에 참석 했습니다. 무디의 설교를 들어보니 너무나 말을 못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박사님에게 무식한 디 엘 무디의 메시지가 역사했습니다. 그래서 이 박사님이 “내가 가진 박사 학위가 아무 소용이 없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면 그 사람이 가르치는 것이 사람의 영혼에 들어가고 그 영혼 속에서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존 번연의 경우

이와 같은 일은 청교도 시대에도 있었습니다. 존 번연은 『천로역정』의 저자로 유명합니다. 그러나 그는 학식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성경을 열심히 읽었습니다. 그의 자서전을 보면 그가 진리를 깨닫기 위해 얼마나 성경을 많이 읽었는지 모릅니다. 성경이 그 사람에게 완전히 녹아들어갔습니다. 그가 쓴 『천로역정』의 문체는 성경의 문체를 그대로 따르고 있습니다. 배움이 없는 이 사람이 자기가 다니는 교회 목사님의 후임이 됩니다. 그런데 번연의 설교가 얼마나 은혜로운지 그 당시 최고의 학자로 인정을 받던 존 오웬이 그 설교를 들으러 갔습니다. 당시 영국 왕 찰스 2세가 존 오웬 박사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존 오웬 박사, 당신은 그 높은 학식을 가지고 어떻게 그 불학무식한 땜쟁이의 설교를 들으러 갈 수 있습니까?” 그랬더니 존 오웬이 이렇게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폐하, 저의 모든 학식을 주고라도 존 번연의 설교를 가질 수 있다면 기꺼이 바꾸겠습니다.” 이 불학무식한 땜쟁이의 설교의 능력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요? 하나님의 은혜로, 성령의 능력으로 그에게 임한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가르침의 은사의 의미입니다. 목사 안수를 받은 적은 없으나 성령께서 그에게 역사하여 그의 사역에 큰 능력을 베풀어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그의 가르침에 감동을 받고 변화되고, 그리하여 삶이, 교회가, 시대가 변화되는 놀라운 역사들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교육과 훈련의 위임

또 다른 위임의 일은 프로그램으로서 교회의 교육과 훈련입니다. 이것은 80년대부터 교회 목회 속에서 실천되었던 제자 훈련입니다. 오늘의 설교 제목이 “평신도를 깨운다”인데 이것이  이 운동을 일으켰던 옥한흠의 목사님의 책 제목입니다. 이 책은 목사님이 미국에 가서 공부할 때 썼던 학위 논문입니다. 이 책의 내용은 평신도는 목사의 조력자요 동역자로서, 복음을 전파하고 가르치고 교회를 세우고 영혼을 구원하는 일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마태복음 28장에 있는 대위임령을 단지 사도들에게만 국한시키지 아니하고 사도들에게 가르침을 받은 사람들에게 위임되고 위임되어 왔는데, 이 가르침을 받아 위임된 사람들은 단지 목사만이 아니라 평신도도 해당이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평신도들도 예수 그리스도의 멍에를 메고 예수님에게 배우고 또한 자기에게 주어진 사람들에게 이것을 가르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 삼는 일들을 할 수 있다고 한 것입니다. 이 일로 인해 전국적으로 목회 혁명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 수없이 많은 교회에서 제자 훈련이라는 이름으로 평신도 교육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선한 결실들을 많이 맺었습니다.


위대한 명령이 우리에게도 이루어지기를

오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 위대한 명령이 우리 교회 안에서 이루어지기를 소망하고 이것이 언약의 복을 받는 길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이 위대한 명령이 오늘 나에게 이루어지고 또한 우리 교회에서 실현되어야 하겠습니다. 2023년 표어를 한번 보겠습니다.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가 되어 새로워지는 교회” 


예수 그리스도의 이 대위임령이 우리 교회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 권세 있는 명령이 우리에게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것을 잊어버리고, 이것을 거부하는 삶은 올바른 삶이 아닙니다. 이제 와서 우리들이 알게 되는 것은, 아니 교회의 역사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멍에로서의 교육, 말씀을 전파하고 가르치는 일, 제자 삼는 이 영광스러운 일은 목사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평신도들도 목회자와 함께 이 거룩한 사명을 함께 감당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사명을 감당하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서 그리스도를 자신의 삶의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가는 진정한 제자의 삶을 실천해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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