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참된 제자가 되자(4)_새로운 교회 운동(눅 5:3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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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3-01-31본문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가 되자(4)
새로운 교회 운동(눅 5:36-39)
예수님과 함께 새 시대가 시작되었다
본문 말씀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시작된 새 시대는 죄인들을 물리치는 시대가 아니라 죄인들과 함께하여 죄인들을 구원하는 시대입니다. 바리새인들이 중요하게 여겼던 금식의 문제는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이 실패한 일로 인해서 생긴 일이었습니다. 왜 그들에게 금식할 수밖에 없는 비극이 생겼을까요?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을 바로 섬기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징계였고 하나님의 심판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금식하면서 자신들의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섬기는 진실된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자 하는 각오와 결심들이 있어야 했습니다. 단순히 금식하는 행위는 의미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사람들에게 금식을 강요하면서, 예수 그리스도께 당신의 제자들이 금식하지 않는 이유는 당신처럼 먹을 것을 탐하기 때문이라고 비난했던 것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하는 새 시대는 과거의 좌절과 실패를 되돌아보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과 함께 미래의 기쁨을 누리는 시대입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시작된 새로운 시대의 하나님의 계획에 대한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의 과거의 실패, 과거의 좌절에 근거한 관습을 지키면서 그것에 메여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떨쳐버리고 새로운 은혜 가운데로 나아가는 새 시대에 대해서 말씀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현대를 새 시대로 인식하고 새 교회 운동으로
그런데 이 본문을 새로운 교회 운동의 증거 본문으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현대는 새 시대이며 과거와 다르다고 주장합니다. 더군다나 예수님이 활동하던 2천년 전과 지금은 과학에 있어서, 의학에 있어서, 철학에 있어서, 그리고 물질적인 삶에 있어서 너무나 큰 발전을 이룬 전혀 다른 시대이므로, 이렇게 전혀 다른 시대에는 다른 방식의 교회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고 말씀하셨던 것처럼 지금은 새로운 부대에 새로운 포도주를 담아야 되는 시대라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 가운데 하워드 스나이더가 있습니다. 그는 1975년에 책을 한 권을 썼는데 그 책을 1981년에 우리나라에서 번역 출간을 했습니다. 책 제목은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라는 것입니다. 부제로는 “기계 문명 시대에 있어서 교회의 구조는?” 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는 그 책에서 새로운 시대에는 새로운 교회가 필요하다면서 여러 가지 사실을 제안합니다. (1) 교회 건물을 매각하고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주라. (2) 교인이 200명이 넘으면 둘로 나누어라. (3) 교회 학교나 기타 집회 선전을 중단하라. (4) 주간 모임을 폐지하고 가정에서 소그룹 모임을 모여라. (5) 목사는 세속 직업을 갖고 전문 성직자가 아닌 평신도가 되라. (7) 평신도가 교회의 지도자가 되라. (8) 주일 예배를 다른 날에 드릴 수도 있다. (9) 전도는 가난한 자들에게 하라. 이 책이 나온 지 47년이 되었는데 그 동안 이분이 제안했던 이 아이디어를 실천했던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가장 혁신적인 것은 가정 모임
그중에서 가장 크게 영향을 미쳤던 것 한 가지는 주간 모임을 폐지하고 가정에서 소그룹 모임을 모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외국 사람들에게는 굉장히 혁명적인 이야기였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새로울 것이 하나도 없는 이야기였습니다. 왜냐하면 이 아이디어는 한국 교회에서 얻은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한국 교회의 구역 예배가 바로 그것입니다. 전통적으로 한국 교회는 구역예배를 가정에서 모였습니다. 그러나 미국 사람들 눈으로 보면 가정에서 소그룹으로 모이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들은 문화 자체가 가정에서 이런 모임을 모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가정에서 모이는 이 소그룹이 굉장히 충격적인 인상을 주고 그들은 이것을 실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가정 모임을 가정 교회라 부르고, 가정 교회에 상당한 지방자치의 권한을 주는 식으로 발전시켰습니다. 한국 교회의 구역모임은 중앙집권화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새롭게 개발해 낸 것은 지방자치였습니다. 그들은 구역모임에 가정 교회라는 명칭을 주고, 헌금 사용권, 선교사 파송권 등과 같은 권한들을 다양하게 이양했습니다. 그리하여 가정교회는 자체적으로 헌금을 하고, 그 헌금을 선교사역에 사용하도록 자유롭게 열어주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현대 20세기에 교회가 부흥하는 아주 중요한 요인이 되었습니다. 가정모임은 한국의 문화에서 나온 것입니다. 한국은 가정을 개방하고, 가정에서 만나고, 가정에서 대화하는 문화가 이미 오래 전부터 정착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자연스러운 이 문화를 보고 충격을 받은 사람들이 “우리도 가정에서 모이자” 라고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정반대로 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가정에서 모이지 말자 하는 쪽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한국 교회는 여러 가지로 과거와 많이 달라졌습니다. 가정에서 모이는 이 가정교회가 이제는 우리에게도 엄청난 도전이 되는 시대가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가정에서 모이는 가정 모임이 전혀 생소하고 충격적이었던 외국에서 이 운동이 왕성하게 일어나고 그 모임을 통해 교회가 성장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상황이 역전되어 버렸습니다. 우리는 가정 모임의 축복을 상실하였고, 외국은 오히려 우리 것을 참조해서 더 발전시키면서 부흥하고 있는 역전이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평신도지도자 훈련과 소그룹 활성화 프로그램
이 책이 우리나라에 번역되어 소개된 지 40년이 좀 넘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 그 책에서 이분이 제안했던 것들이 미국에서든, 우리나라에서든 하나하나 실험적으로 진행되다가 어떤 것은 성공하고 어떤 것은 실패하고 하는 것들을 목격했습니다. 그 후로 벌써 이제 한 세대 이상이 지나갔습니다. 그리고 그 제안들이 어느 정도 검증이 된 상황입니다. 그중에 교회 성장으로 증명된 것은 두 가지 입니다. 첫 번째는 평신도 지도자의 교육과 훈련, 두 번째로는 소그룹 모임의 활성화입니다. 이 부분을 몇 가지 어떤 프로그램으로 우리나라에서 시행하였는데 이것을 시행했던 프로그램들 중에는 사랑의교회에서 했었던 ‘제자 훈련 세미나’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전국의 목사님들이 사랑의교회에서 진행하는 제자 훈련 세미나에 참석하고 훈련을 받았고, 그 훈련 받은 것을 자기 교회 목회에 실천하는 일들을 벌써 오랫동안 진행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외에 새롭게 등장한 것이 “셀 처치”(Cell Church)라고 하는 것입니다. 셀 처치에서 셀(Cell)은 세포를 말합니다. 생명력을 가진 세포가 세포 분열을 통하여 2개, 4개, 8개, 16개, 32개, 64개, 이런 식으로 계속하여 성장하는 것처럼 셀(Cell)이라고 부르는 가정 모임이 성장한다는 것입니다. 셀 처치는 소그룹 모임을 지방자치화시키는 개념입니다. 그리고 셀 처치의 성공은 평신도지도자의 훈련과 헌신, 소그룹모임의 활성화에 달려 있었던 것입니다.
교육과 훈련이 사라졌던 시대
교회 역사를 보면 평신도의 훈련과 소그룹 모임의 활성화는 시대에 따라 시행되기도 하고 폐지되기도 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초대 교회는 교육과 훈련에 힘을 썼습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 목사에게 “가르치는 일에 착념하라”고 권면했습니다. 그런데 가르치는 일이 소홀하게 되는 시대가 왔습니다. 기독교가 로마의 국가 종교가 되었을 때입니다. 즉 한 나라가 기독교로 전환하고, 한 부족이 기독교로 전환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 시대는 전도나 교육을 통하여 교회가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부족장의 결단에 의해서 한 부족 전체 몇 천 명이, 몇 만 명이 기독교인이 되는 시대였습니다. 그 때에는 일시에 기독교인이 된 사람들에게 일일히 성경을 가르칠 수 없었습니다. 그냥 교회 예배와 예배 의식에서 어떻게 행할지만 가르치면 되었습니다. 그리고 기독교인의 삶은 법으로 반포하고 그 법에 따라서 행하게 하면 되었습니다. 즉 교육이 아니라 법에 의해서 기독교인을 만드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 이러한 시대가 로마 시대를 거쳐 중세를 거쳐 기독교 국가들에게까지 그대로 이어졌습니다. 법으로 기독교인을 만드는 시대, 즉 법으로 기독교인의 행동을 규정하는 시대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가르칠 이유가 없었습니다. 법만 만들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마음속에 있는 믿음을 따라, 마음의 감동으로 교회에 나오는 것이 아니라 벌금 때문에 교회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국가가 법으로 신앙의 모습을 규정하던 시대가 오랫동안 지속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 시대에는 진리를 가르치는 것이 큰 의미가 없었습니다. 국가와 교회는 법만 만들면 되었고, 그 시대의 성직자들은 예식만 집행할 수 있으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말씀을 제대로 배울 필요도 없었고 성도들을 찾아가 말씀을 가르칠 필요도 없었습니다. 결국 기독교 신앙은 점차 형식화, 미신화 되어 가기 시작했습니다. 그와 함께 마음의 감동이 없는, 진리의 깨달음과 진리의 영광에 대한 소망 같은 것들이 없는 상황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새로운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그와 같은 시대를 더 이상 살아갈 수 없습니다. 아니 우리는 그런 시대와 상관이 없는 상황에 있습니다. 우리는 기독교 국가도 아닙니다. 우리는 선교사들을 통해 복음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국가적으로 기독교인이 된 것도 아니고, 부족적으로 기독교인이 된 것도 아니고, 법으로 기독교인의 삶을 강요받는 입장에 있지도 않습니다. 우리는 말씀을 배우고 우리의 인격이 말씀 앞에 복종하고, 그리하여 말씀의 가르침이 우리에게 감동이 되어 자발적으로,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자리에 나아온 자들이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에게 참으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평신도 지도자들의 교육과 훈련입니다. 그리고 평신도 지도자들이 활동할 수 있는 소그룹 모임의 활성화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평신도들이 수동적인 입장이 아니라 적극적인 입장이 되고, 평신도들이 일방적으로 받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도 베푸는, 이런 적극성을 가지고 섬기도록 하는 자리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가르치는 것이 곧 배우는 것이다. 즉 더 수준 높은 진리의 세계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가르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배우기만 해서는 수준 높은 진리의 세계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평신도 지도자의 교육과 훈련은 성도들을 영적으로 성숙시키고 교회를 성숙시키는 아주 중요한 일인 것입니다. 그리고 평신도 지도자들이 활동할 수 있는 활동의 장이 마련되어야 합니다. 소그룹이 바로 그 장입니다. 그렇게 평신도지도자들이 마음껏 활동하고, 평신도 지도자들이 양성되는 대로 활동의 장인 소그룹은 둘로 나뉘고, 다시 둘로 나뉘고 하면서 더욱더 증가해야 합니다. 마치 세포가 분열을 이루어서 우리의 몸이 성장하는 것처럼 이렇게 셀처럼 교회가 성장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이 힘써야 할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2023년 표어를 보겠습니다.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가 되어 새로워지는 교회.” 바로 이것을 이루기 위해 오늘 우리한테 필요한 구체적 실천은 무엇입니까? 평신도 지도자의 교육과 훈련이며, 그들이 활동할 수 있는 소그룹 모임의 활성화입니다. 평신도 지도자들을 양육하고 소그룹 모임을 활성화시킨다면 우리 교회는 새로운 시대에 부응하는 교회, 발전하는 교회, 사명을 감당하는 교회가 될 줄로 믿습니다. 이런 교회가 되도록 앞으로 우리가 행하는 모든 일에 우리 성도 여러분들 기도하시고 또 적극적으로 참여하시면서 함께 이 영광을 이루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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