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을 전하는 자들의 아름다운 발(4)_모든 사람에게 복을 주시는 하나님 (시 72:17-19)
페이지 정보
작성일2023-03-01본문
복음을 전하는 자들의 아름다운 발(4)
모든 사람에게 복을 주시는 하나님 (시 72:17-19)
아들을 위한 아버지의 축복기도
오늘 우리가 읽은 시편 72편은 하나님 나라의 영광의 왕을 통해서 가장 아름답고 이상적인 왕의 통치가 이루어지며, 왕의 통치의 결과, 세계 모든 민족이 복을 받고 하나님을 경배하게 된다는 사실에 대해서 노래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이 시편은 하나님 나라 왕의 이상적인 모습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이 노래는 20절 말씀을 보면 다윗의 기도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새의 아들 다윗의 기도가 끝나니라” 그리고 이 시의 제일 앞에 보면 성경 본문은 아니지만 표제가 등장하는데 이 시의 표제는 “솔로몬의 시”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이 도대체 무슨 의미일까? 다윗의 기도인데 솔로몬의 시다. 그러면 이 시는 솔로몬의 시인가? 아니면 다윗의 시인가? 저는 이 성경을 보면서 이 시는 다윗이 솔로몬을 왕으로 세울 때 솔로몬을 축복하는 축복 기도였다고 생각을 합니다. 이것은 다윗이 솔로몬을 자기의 후계의 왕으로 세우면서 그를 위하여 축복했던 겁니다. 과거의 족장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자기의 자손들을 위하여 축복하였던 것처럼 이제 다윗도 왕이 되는 솔로몬을 위하여 축복의 기도를 했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솔로몬은 이 축복의 기도를 이제 마음에 새기고 있다가 이것을 다윗의 시편에 수록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솔로몬이 실제로 이런 통치를 이루었다가 아니고 다윗이 바라보는 하나님 나라의 영광스러운 왕의 통치이며 그리고 그것이 솔로몬에게 그대로 이루어지기를 원하였던 축복의 기도였다는 것입니다. 아버지들이 자녀들을 축복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자녀를 잘 가르치는 방식 가운데 하나가 축복입니다. 자녀들에게 축복의 말, 긍정적인 말을 많이 하시고 특별히 기도할 수 있도록 기회를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어머니들도 마찬가지예요. 우리는 믿음의 부모들로서 자녀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사람이 되고 또 축복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 나라 왕의 통치의 영광
다윗의 축복은 하나님 나라의 왕의 도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왕도는 왕의 통치의 가장 이상적인 모습을 이야기하는 용어입니다. 시편 72편은 하나님 나라의 왕의 도, 즉 하나님 나라의 왕의 통치의 참된 도리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왕의 통치와 함께 복에 대해서 많이 말씀하고 있어요. 통치의 결과 어떤 복된 일들이 이루어지는가 하는 것이죠. 가장 먼저는 공정한 재판이 등장합니다. "하나님이여 주의 판단력을 왕에게 주시고“(1절). 왕의 판단력은 재판을 위한 것입니다. 왕은 재판을 잘해야 합니다. 그런데 왕이 재판을 잘한다고 하는 것은 공의롭게 판정한다는 말입니다. 즉 왕의 모든 판단과 재판의 결과는 정의를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어떤 재판에는 다른 요인들이 작용해서는 안 됩니다. 가령 부자에게 유리하게 판정을 내린다든지, 혹은 가난한 사람에게 유리하게 판단한다든지 해서는 안 됩니다. 재판이 공정하게, 정의롭게, 공의롭게 이루어지는가? 이것은 통치의 영광을 나타내는 단적인 모습입니다. 그 나라의 왕의 통치가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무엇을 보아 알 수 있을까요? 재판 과정과 재판의 결과가 오직 정의를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 진정한 하나님 나라의 왕의 모습입니다. 그리하여 2절은 바로 그 정의로운 재판에 대해 노래합니다. “그가 주의 백성을 공의로 재판하며 주의 가난한 자를 정의로 재판하리니.” 3절 말씀을 보면 “의로 말미암아 산들이 백성에게 평강을 주며 작은 산들도 그리 하리로다” 재판이 정의롭게 이루어지므로 통치가 의롭게 이루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의로운 통치로 인해서 평강이 임하게 된다. 평강은 샬롬입니다. 샬롬은 하나님의 통치가 참되게 이루어진 가장 아름다운 상태를 의미하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인간들의 모든 다툼, 시기, 질투가 없고 진정 하나님의 사랑이 모든 사람들에게 임하여서 그들의 삶이 정말 평화롭게 회복되는 것, 이것이 바로 샬롬입니다. 이것이 지상에 있는 나라에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샬롬이 왕의 의로운 통치를 통해서 성취가 되는 것입니다.
메시야 왕의 통치를 통해 성취되는 축복
그다음 “그가 가난한 백성의 억울함을 풀어주며 궁핍한 자의 자손을 구원하며 압박하는 자를 꺾으리로다.” 이 귀절은 그 땅에서 항상 약자들이 당하고 사는 삶을 이런 의로운 통치를 통하여 약자들도 평화롭게 살 수 있도록 한다는 말씀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늘 피해의식에 젖어 있습니다. 여기 물건이 있습니다. 부자들은 당당하게 삽니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은 자기가 정당하게 값을 치르는데도 불구하고 눈치를 보며 삽니다.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똑같은 고객입니다. 그러나 물건을 파는 사람도 잘 차려 입은 부자에게는 굽실굽실하지만 허름하게 입고 눈치를 보면서 사는 사람에게는 자기가 선심을 베푸는 것처럼 물건을 팝니다. 오늘날도 가난한 사람은 기가 죽어서 똑같은 돈을 내면서도 눈치를 보면서 사야 되는 상황이 자주 발생합니다. 그러나 의로운 통치가 이루어지면 부자라고 해서 더 대우를 받고 가난하다고 해서 멸시를 받는 일이 없어질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통치의 결과, 그 나라가 얼마나 부강하게 될 것입니까? 6절 말씀을 보면 “그는 벤 풀 위에 내리는 비 같이” 라고 했습니다. 비는 하나님의 축복에 대한 비유입니다. 비는 더 많은 지역을 한꺼번에 적시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7절을 보면 “그의 날에 의인이 흥왕하여,” 또 “평강의 풍성함이”라고 말씀합니다. 평강의 풍성함은 샬롬의 풍성함입니다. 더 나아가서 통치의 영역이 점점 확대 됩니다. 8절, “그가 바다에서부터 바다까지 강에서부터 땅 끝까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10절, “다시스와 섬의 왕들이 조공을 바치며,” 이것은 바다의 영역입니다. 그 다음 “스바와 시바 왕들이 예물을 드리리로다.” 이것은 아주 많은 나라, 심지어 아주 먼 나라를 의미합니다. 다윗의 이 축복의 기도는 솔로몬의 생애 동안에 많이 성취가 됩니다. 그러나 다 이루지는 못합니다. 이 시에서 말씀하는 왕의 통치는 솔로몬의 통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메시아 왕의 통치의 영광을 나타내는 예언이기 때문입니다. 메시아 왕의 시, 즉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왕이 되시는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나라, 그 왕의 통치와 그 통치의 결과, 그 백성들에게 임하는 축복과 또 그 축복이 세상 만민 땅 끝까지 이르게 되는 영광에 대해서 노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17절 말씀은 왕의 영광에 대하여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그의 이름이 영구함이여 그의 이름이 해와 같이 장구하리로다.” 그리고 “사람들이 그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니 모든 민족이 다 그를 복되다 하리로다.” 이러한 일은 오직 메시아 왕에게서 성취되는 일들입니다.
디아스포라, 흩어짐의 역설
물론 이 축복 기도 속에 나타나 있는 왕의 도, 즉 왕도는 이스라엘 모든 왕들이 소망해야 되는 것들입니다. 이스라엘의 왕들은 이것을 마음에 새기고, 이 왕도를 행하며 영광스러운 축복이 성취되기를 소망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비극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나라를 세우시고, 이 나라를 통해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의 영광을 나타내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이 일을 성취하기 위하여 이스라엘에 왕을 세우신 것입니다. 그런데 솔로몬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의 모든 역대 왕들은 이 왕도를 행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통치에 정의와 공의를 실천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여 이 모든 통치를 정의롭게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로써 감당해야 했습니다. 그들은 가난한 사람들이 멸시를 받고 연약한 자들이 버림을 받지 않도록 항상 신경을 써서 그들이 함께 평화를 누릴 수 있는 통치를 해야 했습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축복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나라를 튼튼하게 세우시고, 그의 왕권을 영원히 세우시고, 그 통치의 영역을 땅 끝과 바다 모든 끝까지 확장시키실 것입니다. 모든 민족들이 그 앞에 찾아올 것이고 모든 민족들이 하나님의 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역대 왕들은 이 부분에서 실패를 했습니다. 그들은 이와 같은 왕의 통치의 영광에 대하여 바로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실현하기 위하여 헌신하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하나님께 버림을 받게 되었고 흩어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 흩어짐을 ‘디아스포라’라고 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서 흩어지는 방법은 나라가 멸망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그 땅에서 더 이상 살 수 없어서 피난을 가든지 또는 강제로 포로로 붙잡혀 가게 되어 결국 흩어지게 된 것입니다. 땅 끝까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나아가야 되는 일은 하나님의 나라를 영광스럽게 이루어 성취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가 망하게 되면서 강제로 흩어져서 그곳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되는 비참한 상황으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후에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중동 각 지역과 그리스와 로마에까지, 이집트와 북아프리카 사막 각 나라들에게까지 흩어지게 되었고 그들이 세워 놓은 회당이 복음을 전하는데 사용됩니다. 신약 시대에 사도 바울은 항상 회당을 찾아가서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전했던 것입니다.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세운 회당이 일차로 복음 전도를 위하여 사용되었습니다. 참 아이러니한 일입니다. 그들이 가나안 땅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소망하고,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선택하신 뜻을 바로 깨닫고 순종하는 삶을 살았더라면, 그 땅에서 영광스럽게 그 나라가 발전하였을 것이고, 오히려 세계 만민이 찾아오는 은혜를 입었을 것이며, 그들은 세계 만민에게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전하는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순종치 아니하다가 비극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복음은 그 비극 속에서 전파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일은 이스라엘 민족에게만 일어났던 일은 아닙니다. 예루살렘 교회에서도 일어났던 일입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얼마나 큰 은혜를 입었습니까? 예루살렘 교회가 얼마나 큰 능력으로 세워졌습니까? 5천 명, 3천 명들이 돌아오고 제사장들과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도에 굴복하는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놀라운 이적들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복음을 들고 나아가지 아니하였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쳐서 흩어 사도행전 1장 8절의 말씀을 강제로 이루셨던 것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루러 내 증인이 되리라.” 예루살렘교회에 환란이 임하자 그들은 예루살렘을 떠나 피난가고 도피하고 그러면서 가는 곳마다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사마리아 땅에 복음이 전해졌고, 그래서 이방 땅에 복음이 전해졌던 것입니다.
왜 우리는 안 될까?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나가는 곳에 하나님의 축복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외면하고 순종치 않을 때 임하는 것은 하나님의 강제하시는 역사밖에는 없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사실을 깊이 무겁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왜 우리 교회는 안 될까?” 하는 생각을 하는 분들이 계신다면 바로 이것을 생각해야 됩니다. “왜 우리 교회는 이럴까?” 하는 생각이 드신다면 바로 이 부분을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는 복음을 들고 나아가는 일에 순종하지 아니하였고 헌신하지 아니하였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전도의 일을 힘쓰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쳐서 흩으실 것이고, 결국 우리는 흩어진 파편 쪼가리로서 이 일을 감당하게 하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번에 우리가 블레싱 데이를 앞두고 5주 동안 짧은 기간 동안 전도를 하게 될 것이지만, 이것은 하나의 행사가 아니라 실상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본질이라는 사실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번에 우리는 이 일을 통해서 우리의 본질을 회복하는 자리로 나아갈 수 있게 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목적이 있습니다. 그 목적을 이루지 못한다면 우리는 이 땅에서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이 시대가 얼마나 무서운 시대입니까? 이 나라도 망할 수 있다는 전망이 있는 시대입니다. 그러면 이 땅에 있는 교회는 오죽하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감당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땅에서 더욱더 창대하게 하시고 복의 근원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 이 은혜를 믿고 이 약속을 붙들고 나아가 하나님의 복을 온 땅에 전하는 우리가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