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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을 전하는 자들의 아름다운 발(5)_흩어짐은 교회의 본질이다(창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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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3-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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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을 전하는 자들의 아름다운 발(5)

흩어짐은 교회의 본질이다(창 11:1-9)


강제로 흩어진 이스라엘 

흩어짐은 교회의 본질입니다. 성도들은 한 곳에 모이고 자기들만 좋고 자기들만 기쁘고 해서는 안 됩니다. 왜 교회가 문제가 되느냐 하면 기존 성도들이 자기들만 좋을 때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자기들끼리는 친하고 자기들끼리는 죽고 못 살고 자기들끼리는 서로 착한 사람이 될 때 교회는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교회가 썩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리끼리만 좋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흩어져야 합니다. 교회는 항상 밖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나아가서 복음을 전파하고 영혼을 구원해야 합니다. 그런데 교회가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한 채 자기들만 좋고, 자기들만 뭉치는 모습을 갖게 된다면 하나님께서 때로 그 교회를 흩어버리시는 일들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그와 같은 경험을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들을 세상 가운데에서 불러내어 하나님의 백성을 삼고 하나님의 나라를 삼되,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이유는 세상을 하나님께로 부르시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만을 축복하고 그 축복이 그곳에 머물러 썩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경이 분명히 그 사실을 가르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실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다윗이 솔로몬을 위하여 기도했던 축복 기도 속에 분명히 세상과 만민을 향한 하나님의 축복이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왕의 통치가 정의롭게 이루어질 때 세상 만민에게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며, 그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찾아오게 된다는 흩어짐과 모임의 원리가 분명히 계시되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선민사상에 빠졌고 자기들만 만족하는 곳에 빠졌던 것입니다. 그들은 자기들만 복을 받고 자기들만 은혜받기를 원했습니다. 그리하여 결국 하나님께서 그들을 흩어버리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흩으신 방법은 나라를 멸망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을 피난 보내시고 포로로 잡아가셨습니다. 그 결과 중동 지방에는 디아스포라 백성이 생겼습니다. 디아스포라는 흩어진 유대인들을 의미합니다. 흩어지기를 원치 않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침내 강제로 흩어졌고, 흩어진 곳에서 회당을 짓고 그곳에서 하나님께 예배하는 회당예배를 시작했습니다.


디아스포라의 역설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회당예배를 드릴 때 때로는 이방인들이 찾아와서 함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러 회당에 가게 되면 그곳에서 회당예배를 드리는 이방인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회당예배를 드리던 이방인들이 사도 바울이 전하는 복음에 반응을 하고 사도 바울에게 찾아왔습니다. 즉 유대인들이 흩어졌는데 그 흩어진 일이 복음 전파를 위하여 사용되는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디아스포라의 역설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흩어지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그들은 결코 흩어질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전혀 생각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그들을 강제로 흩으셨던 것입니다 그들은 어쩔 수 없이 흩어지게 되었는데, 그 흩어짐은 사명을 붙들고 하나님을 사랑하여 사명을 감당하기 위하여 흩어진 것이 아니라 비극을 통한 흩어짐이었습니다.


축복을 상실한 노아 후손의 공동체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바벨탑 사건입니다. 노아의 홍수가 있고 난 후에 노아의 세 아들은 각자 가정을 이룬 상황에서 자녀를 낳고 번성하게 되었는데 그들은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었고 이 공동체가 점점 커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한계 상황에 이르러 더 이상 하나의 공동체를 유지하기 힘들게 되었을 때 그들은 흩어지지 않고 모일 수 있는 방안을 연구했습니다. “도시를 건설하자. 성벽을 쌓고 그 안에 거주하면서 이 도시에는 탑을 쌓아 올려서 어디에 있든지 다 볼 수 있도록 하자. 그래서 탑이 하늘 끝까지 올라가면 땅 끝에서도 볼 수 있으니 우리가 모두 하나가 될 수 있다.” 이렇게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바벨탑을 쌓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바벨탑을 하늘까지 쌓아올리고자 했습니다. 하나의 공동체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축복하신 결과입니다. 하나님께서 노아의 후손을 하나의 언약의 백성으로 삼으셨던 것입니다. 노아의 후손들은 하나님께서 노아와 맺은 언약 속에서 번창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께 받은 사명을 가지고 나아가기보다는 “탑을 쌓아 흩어짐을 면하자” 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들은 사명을 가지고 흩어지기 보다는 인간의 욕망과 인간의 힘과 인간의 지혜를 모아 공동체의 힘을 극대화시키고 자신들의 이름을 내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이 하는 모습을 보려고 내려오셨습니다. 하나님이 내려오심은 보통은 축복입니다. 부흥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 가운데 찾아오시는 것이다. 오순절의 부흥은 성령이 자기 백성 가운데 내려오신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내려오시는 일은 하나님께서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찾아오시는 것을 부흥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벨탑 사건 때 하나님께서 찾아오신 것은 부흥을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을 심판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임하심이 그들에게 축복이 될 수 없었던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의 사명과 하나님의 영광을 외면했기 때문입니다.


비극적인 인류 역사의 원인

사람들이 많이 모이면 제일일까요? 아닙니다. 그 안에 하나님의 영광이 없으면 아무리 많은 사람이 모여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 안에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에 대한 열정이 없다면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모여도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끼리만의 사랑은 참된 사랑이 아닙니다. 교회 공동체에는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심, 성령의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없다면 그것은 순전히 인간적인 모임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인간적인 모임에 하나님의 영광이 임재 한다면 그 목적은 무엇이겠습니까? 지금 바벨탑 사건 속에 하나님께서 내려오셨습니다. 그리고 “너희가 어떻게 하는지 한번 보자”라고 말씀하시고 그들이 하는 일을 살펴보셨습니다. 그랬더니 그들은 “우리가 우리의 이름을 내고 흩어짐을 면하자”라고 말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행동의 동기가 잘못되었습니다. 그들이 행하는 모든 것들은 사실은 하나님의 축복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번창하게 된 것도 하나님께 번성케 하는 은혜를 베푸셨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이 건축 기술을 발전시킨 것도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지혜와 능력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가지고 있었던 것 중 어느 하나도 하나님의 은혜가 아닌 것이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방법이 없었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셔서 서로 말이 통하지 않게 하셨고, 그들은 결국 말이 통하고 생각이 통하는 사람끼리 흩어져 온 땅에 많은 나라와 부족들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이것은 정말 큰 비극이었습니다. 하나의 공동체가 이렇게 나뉘어지고 난 후 인류의 역사는 서로 싸우는 전쟁의 역사기 되고 말았습니다. 물론 그 이전이라고 해서 아무런 다툼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 이전의 다툼과 이후의 다툼은 그 성격과 규모가 전혀 달랐어요. 이전에 가인과 아벨의 경우는 개인 대 개인의 문제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부족과 부족, 나라와 나라의 문제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흩으신 이 비극을 통해서 인류는 얼마나 큰 비극을 겪었는지 모릅니다. 전쟁과 전쟁, 난리와 난리, 약탈과 약탈, 의미 없는 학살 등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왜냐 하면 나와 말이 다르고 생각이 다른 사람을 죽이는 것은 아무런 죄가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노아의 후손은 언약의 백성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주께 받은 사명을 잊어버렸을 때, 그리고 자신들의 영광을 구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외면했을 때, 그들은 하나님께서 흩어버리시는 심판을 받게 되었고, 그 결과 인류에게는 말할 수 없는 비극이 임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 강제로 흩어지게 되었을 때 어떤 비극이 일어났는지 기억해야 합니다.


예루살렘 교회의 비극

예루살렘 교회에도 마찬가지 일이 임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얼마나 놀라운 교회였는지 모릅니다. 그곳에 오순절에 성령이 임하고 사도들과 일단의 성도들은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마침 예루살렘에는 오순절을 지키기 위하여 사방에서 몰려든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세례를 받은 사람들이 일시에 5천 명이나 되었습니다. 그 후에 3천 명이 일시에 그리스도께 돌아오는 놀라운 역사가 있었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복음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들 가운데는 재산을 헌납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그 헌물을 가지고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는 일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자기들끼리만 좋아하는 상황에 있었습니다. 그들은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하신 주님의 말씀을 붙들고 나가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나가지 않았습니다. 결국 예루살렘 교회에 환란이 임했습니다. 안타깝게도 12사도 중 한 사람인 야고보는 일찍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그 환란으로 인하여 성도들이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흩어진 성도들이 복음을 유대인들에게만 전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 복음을 전하게 되었는데 신통하게도 헬라인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안디옥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그리고 이 이방인 교회가 후에 이방인 선교를 위하여 바울과 바나바를 선교사로 파송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교회가 이방 선교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그 사이에 예루살렘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예루살렘에서는 성도들이 대부분 흩어지게 되었고, 사도들과 일부 보수적이고 전통적인 사람들만이 남게 되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예루살렘이 로마에게 함락을 당하게 되었을 때 예루살렘에는 더 이상 교회가 존재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강제로 흩어버리셨습니다. 그때 흩어진 사도들이 비로소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예루살렘을 떠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결국 “사도들 외에 다 흩어졌더라.”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사도들조차 땅 끝까지 보내시기 위하여 예루살렘 도시 자체를 멸망시켜버리고 마셨던 것입니다. 마지막까지도 고집을 피우면서 자기들끼리 뭉쳤던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피난을 가서도 자기들끼리 모였는데 결국 그들은 이단화 되고 얼마 후에는 명맥이 끊어져서 역사 속에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이방인에게로 나아갔던 사람들은 가는 곳마다 놀라운 역사를 체험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예루살렘을 멸망시키셔서 결국은 사도들까지 흩어지게 만들어 이방인에게로 보내셨던 것입니다. 교회는 모이는 교회와 흩어지는 교회라는 교회의 양면성이 균형을 이루어야 합니다. 그것이 건강한 교회의 모습이며, 그것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교회의 모습입니다.


이번에 우리는 블레싱 데이를 정하고 5주 동안 단기 전도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일을 통하여 우리에게 어떻게 역사하실지 기대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 일을 축복하신다는 사실을 믿고 이 일을 감당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왜 전도지를 뿌리고 전도할까요? 하나님께서는 그와 같이 복음을 전하는 우리를 축복하시고 이곳에 영혼들을 보내어 주신다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축복하시고, 우리에게 그 증거를 보여주실 것입니다. 많은 교회와 성도들이 증거 하는 사실이 있습니다. 신기하게도 우리가 전도에 참여하여 헌신할 때 주님께서 축복하사 영혼들을 보내어 주시고, 새로운 영혼들이 생명의 은혜를 입는 역사들이 나타나면서 교회가 놀랍게 발전하더라 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본질은 흩어짐에 있습니다. 우리의 모임은 흩어짐을 위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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