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요약

복음을 전하는 자들의 아름다운 발(7)_전도자의 영광스러운 비전(마 28: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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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3-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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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을 전하는 자들의 아름다운 발(7)

전도자의 영광스러운 비전(마 28:18-20)


지존자의 지상명령 

오늘 읽은 성경말씀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주신 지상 명령입니다. 그리고 이 지상 명령은 부활하신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비전을 담고 있으며, 또 모든 그리스도인은 주님의 이 비전을 마음에 새기고 주님과 함께 할 수 있어야 한다는 내용들을 담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 위대한 비전을 제시하실 때 당신이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진 권세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먼저 선포하고 있습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18절). 이 일에 대하여 빌립보서 2장 9절부터 11절까지에서 자세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기의 마음을 비우고 그래서 자기가 하나님이라고 하는 이 사실을 겸손히 내려놓고 이 땅에 오셔서 모든 고난을 겪으시고 그리고 주신 사명을 감당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를 지극히 높이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습니다.” 여기의 이름은 거룩한 명칭, 즉 직책을 말씀하는 용어입니다. 서양에서 이름은 그를 지칭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직분, 혹은 신분, 지위 등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다”는 것은 이 세상의 모든 지위와 신분을 가리키는 명칭들 가운데 최고의 명칭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신분을 나타내는 용어들 가운데 가장 높은 존재는 왕입니다. 그리고 왕보다 더 높은 존재는 황제입니다. 황제보다 더 높은 존재는 누구일까요? 우리는 흔히 이것을 “만왕의 왕”이라고 부릅니다. 이와 같이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최고의 왕, 최고의 직분, 최고의 지위를 가지셨습니다. 그런데 이 최고의 지위자가 가진 권세의 범위는 하늘과 땅과 땅 아래까지였습니다. 즉 존재하는 모든 세계의 유일한 왕이라고 하는 이름, 지위, 신분을 주셨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이름이 실질적인 능력과 권세를 가졌다는 것은 모든 존재들이 그 이름 앞에 무릎을 꿇게 하셨다 하는 사실에서 알 수 있습니다. 하늘에 있는 모든 천군과 천사들이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지상에 있는 모든 존재들이 그 앞에 무릎을 꿇고, 땅 아래 있는 모든 존재들도 그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하는 실제적인 권세자라는 것입니다. 그다음 이 모든 존재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시인하게 하셨습니다. “주님”은 언약 관계를 의미하는 용어입니다. 봉신계약에서 주인, 또는 왕을 주님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이 주님은 또 유대 사회에서는 하나님을 부르는 명칭이기도 했습니다. 한편 주님이라는 명칭은 로마 사회에서는 황제를 부르는 명칭이기기 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이라 부르는 것이 핍박의 원인이 되기도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황제가 어디 예수 그리스도의 권세에 비길 수 있겠습니까? 황제조차도 예수 그리스도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이름이요 신분인지 모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이렇게 높이고 찬양하며 경배함으로 이제는 하나님께 영광이 돌아가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지존자의 비전

이와 같은 권세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비전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그 비전을 지금 명령으로 표현하셨습니다. 주님의 비전은 한마디로 교회의 영광과 하나님 나라의 완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지상에 있는 교회가 영광스럽게 되기 위해서는 권세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 비전을 함께 공유하는 데 있습니다.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비전을 마음에 두지 않는다면 영광스럽게 되어야 될 수 없습니다.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비전에 마음을 두지 않는다면 그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영광스러운 존재가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흔히 여기 권세자로서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을 지상 명령, 즉 가장 크고 엄위로운 명령이라고 말합니다. 이 명령에 순종할 때 우리는 주님께서 이 명령을 하실 때 마음속에 가지셨던 비전을 함께 공유해야 합니다. 마음속에 주님의 비전이 없이 그냥 율법적으로 순종하는 흉내만 낸다면 그것은 비전을 공유하는 사람의 모습이 아닙니다. 비전을 공유하는 사람은 마음속에 기쁨이 있습니다. 비전을 공유하는 사람은 마음속에 즐거움이 있습니다. 비전을 공유하는 사람은 기꺼이 그 일을 행합니다. 비전을 공유하는 사람은 자기의 마음을 다하여 그 일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와 비전을 함께하기를 원하십니까?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비전을 자신의 비전으로 삼고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함으로 그 비전을 사랑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기뻐함으로 그 비전을 기뻐하며 순종하시는 자리에 나가기를 원하십니까? 바로 그 사람이 영광스러운 그리스도인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일에 헌신하는 교회가 영광스러운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비전을 위하여 가라

어떻게 이 비전을 성취할 수 있을까요? 첫째는 가는 것입니다. 주님은 비전을 이루기 위하여 먼저 제자들을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와 비전을 함께하는 사람들은 명령을 따라서 갔던 것이죠. 로마서 10:15에서 이렇게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가는 발걸음을 “아름답도다”고 했습니다. 왜냐 하냐 영광스러운 비전을 마음속에 품고 그 비전을 성취하기 위하여 명령에 순종하여 기쁘게 나아가는 발걸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어디까지 가야할까요? 한 두 걸음 가다가 말까요? 세 걸음 가다가 말까요? 오늘 본문 말씀에서는 모든 민족에게 가라고 하십니다. 사도행전 1:8에서는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이라고 표현 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이렇게 순종하여 가는 사람들에게 성령을 주셨습니다. 사도행전 1장 4절 말씀을 보면 “너희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에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은 성령이었습니다. 그래서 “너희는 성령을 받을 때까지 기다려라”고 말씀하셨고, 사도행전 1:5절에서는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성령 세례를 받은 자들은 권능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사도행전 1:8에서는 이 사실을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며 너희가 권능을 받고”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령 세례를 받은 자에게 권능이 임합니다. 그에게 말씀의 권능이 임합니다. 그러므로 그가 말씀을 선포할 때 권능이 있습니다. 그리하여 말씀의 영광스러운 세계가 열리고, 그 말씀을 들은 사람들의 마음이 녹아내리고, 삶이 변화되고, 생명의 구원을 얻는 놀라운 역사들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성령을 받고 나아가는 것, 바로 이것이 주님께서 전도자들에게 주신 은혜였던 것입니다.


비전을 위하여 가는 자에게 성령을 부어주

많은 사람들이 성령 받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사명을 감당하지 않으면서 성령 받기를 원한다면 이것은 올바른 일이 아닙니다. 그냥 아무것도 안 하는 사람이 성령 받으면 좋다는 말만 듣고 성령을 소망한다면 그에게 성령이 임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성령은 무엇보다도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역사하시고, 또한 우리의 사명을 위하여 역사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사명을 감당하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성령은 여러분에게 역사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에게 주님께서 주신 사명이 있음을 알고 계십니까?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명령하신 일이 있음을 알고 계십니까? 여러분은 그것을 감당하기를 원하십니까? 순종하기를 원하십니까? 그리고 순종하여 발걸음을 떼고 계십니까? 바로 그 사람에게 성령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사명에 순종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성령이 임하지 않습니다. 또한 성령은 가만히 있는 사람에게 내리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라고 하셨을 때 사도들은 전심으로 기도했습니다. 사도들은 “기다리라” 하는 말씀을 “기도하라”는 말로 해석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다락방에서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그때 그들의 기도 내용은 무엇이었을까요? 그들은 주님의 비전을 위하여, 주님께서 주신 사명을 위하여, 주님께서 명령하신 것을 감당하기 위하여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그 기도를 축복하셔서 오순절 때가 이르매 그들에게 성령을 부어주셨습니다. 그 후로도 주님은 주님의 사명을 감당하기를 원하는 사람들, 교회를 섬기고 주신 직분을 감당하기를 원하는 사람들, 복음을 들고 나아가서 생명을 구원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성령을 부어주셨던 것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누구에게 성령이 임하는 것입니까? 기도하는 사람에게 성령이 임합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누구에게 성령이 임하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기를 원하는 사람에게 성령이 임합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누구에게 성령이 임하시는 것입니까? 주님께서 주신 사명을 감당하기를 원하는 사람에게 성령이 임하는 것입니다. 성령이 누구에게 임합니까? 복음을 들고 나가서 영혼을 구원하기를 원하는 사람에게 성령이 임하는 것입니다.


증인 삼기 위하여 성령을 주심

주님께서 성령을 주시는 목적이 사도행전 1:8에 나와 있습니다. “너희가 내 증인이 되리라.”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증거하며, 하나님께서 주신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이루는 참된 증인이 되게 하는 것이 성령을 부으시는 목적입니다. 그래서 사명자가 성령을 받고, 헌신자가 성령을 받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고 싶어 하는 소망자에게 성령이 임하고, 복음을 들고 나아가는 자에게 성령이 임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령은 증인되게 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을 보면 “증인”이라는 말이 여러 차례 등장하는데, 증인들에게 붙는 몇 가지 용어들이 있습니다. 첫 번째 용어는 충성입니다. 요한계시록 1장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충성된 증인이시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증인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성령으로 충만하여 기뻐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언제나 성령 충만함 가운데 계셨습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며 하나님의 뜻을 전하며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는 증인이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는 “충성된” 증인이셨습니다. 요한계시록에서 충성은 죽음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는 죽음으로써 하나님의 뜻을 증거하신 증인이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의 역사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죽음으로써 복음을 증거했던 충성된 증인들의 대열이었습니다.


교회에 대한 주님의 비전

이 교회의 영광과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위한 그리스도인의 비전을 이루기 위하여 네 번째로 주님께서 제시하신 일은 교회를 세우는 일입니다. 19절 말씀을 보면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새례를 베풀고”라고 말씀합니다. 세례는 교회를 세우는 것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즉 세례를 준다는 말은 교회를 세운다는 말입니다. 즉 세례를 받은 자가 교회를 이루는 것입니다. 즉 우리 권세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비전은 복음 전도 후에 전도자들에게 성령을 부어 권세에 있는 증인으로 삼으시되 그들의 활동을 통하여 무엇을 세우는 것입니까? 교회를 세우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제자를 양육하는 것입니다. 제자를 양육하는 방법은 두 가지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라” 두 번째는 “지키게 하라” 입니다. 말씀을 가르치고 지키게 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가르치는 사람들이 말씀을 배운 사람들이 말씀에 순종하며 사는지에 대하여 아무런 관심도 기울이지 않는다면 이는 올바른 일이 아닙니다. 말씀을 가르치고 나면 반드시 순종을 권면하고 촉구하는 일이 따라야 합니다. 그리고 순종 하는지 안 하는지를 분명히 따져봐야 합니다. 그렇게 하여 충성스러운 제자를 양육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과정을 우리는 “목회”라고 부르는 겁니다. 주님은 그런 일들을 통해서 교회가 주님의 비전을 이루어 나갈 수 있게 하셨던 것입니다.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고 마음속에 품으셨던 교회의 영광에 대한 비전, 하나님 나라의 완성에 대한 비전을 우리들도 마음속에 동일하게 품읍시다. 이 비전을 마음에 품고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주님께서 은혜와 능력을 베푸시고, 충성하는 이 교회를 영광스럽게 세우실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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