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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께 돌아오라_ 잃은 자녀를 끝까지 찾으시는 하나님 (눅 15: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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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3-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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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께 돌아오라

잃은 자녀를 끝까지 찾으시는 하나님 (눅 15:11-24)


가족을 잃어버린 아픔이 가장 크다

이 세상을 살다 보면 우리는 많은 아픔과 고통을 겪게 됩니다. 그런데 이런 많은 아픔과 고통 가운데에서 무엇이 정말 가장 아프고 고통스러울까요? 많은 분들이 각자 자기의 경험으로 다양하게 말씀을 하실  것입니다. 질병이 가장 아프다고 하는 분들도 있겠고, 실패가 가장 아프다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아픔들에 못지않게, 아니 그것보다 더 크게, 그리고 더 깊게 우리의 마음속에 아픔으로 다가오는 것은 사랑하는 가족과 헤어지는 것일 것입니다. 사랑하는 가족과 헤어지게 되면 참 큰 고통이 찾아옵니다. 뜻하지 아니한 사고로 인해 헤어질 수도 있고,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일시적으로 함께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때로는 불화로 말미암아 몇 년 동안 서로 얼굴도 보지 못하는 일들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어떤 이유로 헤어졌든 결코 행복하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사람들과 웃고 떠들고 있을 때에도 마음 한 구석에는 항상 앙금이 남아있어서 결코 행복할 수 없을 것입니다. 가족과 헤어지는 것, 그중에서도 많은 분들이 부모님과 헤어졌을 경우, 그 아픔과 그리움을 호소하는 경우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세상에서 가장 큰 아픔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 중 하나는 가족을 잃어버리고, 혹은 부모님을 잃어버린 것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아버지를 떠났던 아들, 아들을 잃어버린 아버지 이야기

오늘 본문 말씀 누가복음 15장 11절 이하에 나오는 말씀은 바로 이렇게 아버지와 헤어진 아들의 이야기, 혹은 아들을 상실했던 아버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본문의 제목은 아버지에게 초점을 맞춰 “잃었던 아들을 다시 찾은 아버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아버지를 버리고 떠났던 아들이 아버지를 다시 찾아와 관계를 회복한 이야기라고 말씀할 수도 있겠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를 잃어버린 데에는 여러 가지 사연이 있을 것입니다. 이 아들에게도 사연이 있었습니다. 그는 유복한 가정에서 성장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아버지 품 안에서 부족한 것 없이 성장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의 마음속에 어느 날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어갔습니다. 아버지의 재산을 빨리 상속받고, 아버지의 슬하를 떠나 자기 마음대로 살아 보겠다는 마음이 들었던 것입니다. 주변을 보면 부모를 떠나면 모든 것이 편할 것 같은 생각을 갖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특별히 청소년 시절에 유독 그런 생각을 많이 합니다. 그러나 부모님을 떠나는 것이 결코 복이 아닙니다. 이 아들은 아버지의 재산을 상속받아 마음대로 쓰면 세상에 이것보다 좋은 것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에게 자기 몫을 빨리 달라고 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의 요청대로 재산을 나누어주었습니다. 그러자 아들은 며칠이 안 되어 재산을 재빨리 처분하고 먼 나라로 떠났습니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좋았습니다. 자기 마음대로 돈을 쓸 수 있고, 친구들도 많아서 참 즐거웠습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돈이 다 떨어지고 친구들도 모두 떠나갔습니다. 거기에다 흉년까지 들어 먹고 살기도 마땅치 않았습니다. 그는 평생 일을 해서 먹고 산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아버지 품 안에서 평안히 먹고 살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사람이 이제 서야 무슨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더구나 흉년까지 들었으니 아무도 그를 도와주지 않았습니다. 겨우 어떤 사람이 그를 거두어 돼지치기로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먹을 것을 충분히 주지 않았습니다. 얼마나 배고프면 돼지 사료를 먹으려고 했을까요? 그런데 돼지 사료조차도 충분히 주지 않아 그조차도 제대로 먹지 못했습니다. 아들은 그제 서야 자신의 비참한 현실을 깨닫고 후회했습니다. 그런데 이 아들이 한 가지 잘한 것은 후회만 한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는 “내가 하나님과 아버지 앞에 죄를 지었습니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이제부터는 내가 품꾼 중에 하나로 머슴처럼 살겠습니다.” 겸손하게 마음을 비우고 아버지께로 돌아가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떠나간 아들을 기다리신 아버지

아들이 아버지께로 돌아올 때 아버지가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그를 맞이하는 아버지의 모습에 그대로 드러나 있습니다. 아들이 멀리서 다 헤어진 옷을 입고 거지로 오고 있는데 아버지는 동구 밖에서 아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들은 아버지를 잊어버리고 흥청망청 사는 동안 아버지는 마음을 졸이며 이제나 저제나 아들이 올까 동구 밖에 나와서 멀리멀리 바라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아들이 나타났는데 거지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대번에 아들을 알아보았습니다. 아직 아들이 멀리 있는데 아버지는 아들에게로 달려가서 아들을 붙들고 입을 맞추고 기뻐했던 것입니다. 여기에 아버지의 사랑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아들을 목욕을 시키고, 새 옷을 입히고, 가락지를 깨워주었습니다. 가락지를 끼운다는 것은 아들의 지위를 회복시킨다는 의미입니다. 자기 몫의 재산을 가지고 나가 남김없이 탕진한 아들입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그 아들을 품에 안았습니다. 그에게 입을 맞췄습니다. 그리고 그를 온전히 새롭게 단장하고 아들의 지위를 회복시켜주었습니다. 그리고 아들을 찾은 기쁨으로 온 마을 사람들을 불러 큰 잔치를 벌였다는 것입니다.


부모를 찾는 자녀들의 안타까운 이야기

여기 이 말씀은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들의 관계를 비유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아버지이신 창조주 하나님과 그만 멀리 떨어지게 되었고, 우리는 부모 잃은 사람처럼 살았던 것입니다. 우리는 마치 먼 나라로 입양 간 입양아처럼 살았던 것입니다. 우리나라에는 해외로 입양 간 아이들이 참 많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살다가 어느 날 뿌리를 찾아 한국으로 오는 사람들 이야기가 종종 있습니다. 그곳에서 양부모의 사랑을 마음껏 받은 사람들도 있고, 때로는 양부모의 학대 속에서 고통하고 눈물 흘리던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에는 양부모의 사랑을 아무리 많이 받아도 결코 만족되지 않는 허전함이 있었습니다. 친부모를 잃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에는 아무리 기쁘고 즐거운 일이 있어도 마음 구석에는 여전히 아픔과 고통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결국 한국으로 돌아와서 “내 부모님을 좀 찾아주세요” 하고 요청하는 것입니다. 그들 중에는 다행히 자신의 부모님을 찾은 사람도 있지만 끝까지 못 찾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자녀를 잃어버렸던 경험

몇 년 전에 있었던 일입니다. 대구경찰서에서 오래 전 잃어버린 미아를 찾는 일을 중점적으로 시행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38년 된 아들을 찾은 사람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버지는 세 살 때 친척 결혼식에 아이를 데리고 갔는데 그만 잠깐 사이에 아들을 일어버린 것입니다. 부모는 아들을 찾느라 사방을 헤매고 전국으로 찾아다녔지만 결국 아들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 사이에 아이는 고아원에 보내지고, 미국으로 입양을 가서 미국에서 성장했습니다. 후일 경찰에서 추적을 하여 DNA 검사를 해보니까 부모와 일치했습니다. 38년 만에, 그래도 찾았으니 얼마나 다행입니까?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습니다. 저희 아이들이 이제 서른이 넘었습니다마는, 둘째, 셋째가 다섯 살, 여섯 살 일 때 서울에서 엄마 손을 잡고 가다가 잠깐 사이에 아이들이 없어진 것입니다. 제가 교회에 있는데 전화가 왔습니다. 나중에 얼마 있다가 교회로 연락이 왔는데 “아이들이 안국동역 역장실에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가보니까 아이들은 과자 먹으면서 잘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이에 부모인 우리는 얼마나 마음고생을 했는지 모릅니다. 아이들은 보모와 집에 대해 여러 가지를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부모님 이름과 주소, 등등을 물어보니 착착 대답을 하더랍니다. 그래서 교회로 연락해서 찾아주었던 것입니다. 부모에 대해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러면 큰일 나는 것입니다. 다행히 요새는 미아 방지 프로그램이라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 아이들이지만 지문 등록을 해놓으면 언제든지 잃어버린 아이가 나타나면 지문을 가지고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잠깐이었지만 얼마나 정신이 없었는지, 사방을 헤매 다닐 때 마음이 녹아내리는 것만 같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참된 아버지시다

그때 우리가 절실하게 깨달은 것은 이것입니다. 부모와 자녀가 헤어지는 것은 자녀에게도 불행이지만 부모에게도 말할 수 없는 고통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니 비슷한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어린 아이를 잃어버린 이야기는 아닙니다. 다 큰 아들이 정신을 못 차리고 자기 멋대로 살고 싶어서 마음대로 행한 경우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본래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인간을 에덴동산이라고 하는 아주 복된 곳에 두셨는데, 인간은 그곳에서 그만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일을 행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인간은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게 되었고, 그들은 하나님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인간의 마음속에서 하나님께 대한 기억 자체가 사라지게 되었고, 인간은 하나님이 없이 마음대로 살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섬기도록 창조된 인간의 영혼 속에는 하나님께 대한 갈망이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어거스틴이라고 하는 위대한 분은 그의 책 고백록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 아버지를 만나기 전까지는 내 마음속에 안식이 없었나이다.” 그것이 인간의 본질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우리의 아버지로 확실하게 깨달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자기의 아버지로 알고 살던 사람이 자기의 친아버지를 알게 되었다면 그 아버지에게로 돌아오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혼의 아버지라고 말씀하시며 우리를 부르고 계신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들이 해야 하는 일인 것입니다. 그럴 때 아버지도 기뻐하고 자녀 된 우리도 행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오늘 우리가 블레싱 데이를 진행하게 된 이유입니다. 우리 이웃들에게 “하나님께로 나오세요. 함께 한번 예배를 드립시다”라고 했던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영혼의 참된 아버지를 발견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제까지 우ㄹ의 진정한 아버지를 알지 못한 채 엉뚱한 존재를 아버지라고 부르며 살았던 사람처럼 살아왔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기다리고 계신 아버지이십니다. 멀리서부터 우리를 알아보시고, 우리에게 달려오시고, 우리의 목을 안고, 입을 맞추고, 우리를 깨끗하게 씻겨 회복시키시고, 우리를 위하여 큰 잔치를 베푸시는 아버지이십니다. 우리는 아버지께로 돌아가야 하겠습니다. 부모에게로 돌아와야 참된 행복과 참된 영혼의 만족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블레싱 데이를 맞아 하나님께 돌아오시고, 하나님께서 크게 축복하시는 참된 블레싱, 참된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임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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