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공동체의 성장을 위하여(2)_ 그리스도 없이 교회 없다(요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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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3-04-09본문
영적공동체의 성장을 위하여(2)
그리스도 없이 교회 없다(요 15:1-7)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 그리스도인은 그 몸의 지체
지난주에 우리는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사실과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로서 몸이 없이 지체만으로 존재할 수 없다, 즉 몸 안에 붙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함께 생각했습니다. 제가 가진 책 가운데 하나는 이런 책 제목을 가지고 있습니다. 『절름발이 교회』. 이 책은 에베소서에 대한 책인데, 에베소서는 그리스도의 몸, 즉 교회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 몸의 어딘가 지체에 손상이 있으면 안된다는 교훈을 담고 있는 제목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 몸의 온전한 성장과 안전은 목사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이 일은 모든 성도들이 다 함께 해야 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 몸, 즉 교회의 참된 특성을 이해하고, 그리스도의 몸에 합당한 지체들이 되도록 스스로 노력을 해야 하며, 서로 지체가 되어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려고 하는 일로 서로를 도와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번 말씀을 생각하는 목적도 바로 그것입니다. “영적 공동체의 성장을 위하여,” 여기의 공동체는 사회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사회라는 말을 쓰면 무언가 좀 딱딱하고, 인간들이 의지로써 어떤 사회를 이루어 간다는 의미가 더 강하게 느껴지기 때문에 공동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결국 공동체란 사회를 의미하는 말입니다. 사회는 인간의 의지, 공통의 목적을 위하여 모인 결사체의 의미를 갖기가 쉽습니다. 교회를 사회라고 할 때 교회는 내가 내 뜻을 가지고 참여했고, 교회는 내가 내 목적을 이루기 위한 곳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현대 교회는 사회의식이 성도들의 마음속에 많이 작용하고 있는 시대로 변하고 있습니다. 즉 현대 교회는 사회의 원리가 교회의 원리로 대치되는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런 고민을 다 함께 공유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사회적 존재로 창조하셨다
지난주에 우리는 교회는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사람들이 함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신앙 공동체이며 영적 공동체라는 사실을 함께 생각했습니다. 교회가 그런 특성을 갖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어떻게 교회는 그런 특성을 가지게 되었을까요? 교회는 왜 세상의 다른 단체들과는 다를까요?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정치학』에서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정치적 동물이라고 번역을 하기도 합니다.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인간은 홀로 살 수 없고 반드시 사회를 이루어 살아간다는 의미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사회성을 인간의 본질로 보았던 것입니다. 우리도 자녀를 양육할 때 학업 능력도 중요하게 보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사회성입니다. “아이가 다른 아이들과 친구가 될 수 있는가? 그리고 다른 아이들과 놀 때 서로 화합하면서, 함께 협력할 수 있는가? 또 사람이 바뀌었을 때 새로운 사람하고 교우 관계를 쉽게 맺을 수 있는가?” 이런 사회성에 관심을 크게 기울입니다. 그리고 사회성은 인간의 어떤 필요에 의해서 생긴 것인지, 아니면 본성적으로 존재하는 것인지 하는 철학적인 논쟁들이 있습니다. 디트리히 본회퍼라고 하는 독일의 신학자가 있습니다. 그분이 21세에 쓴 박사학위 논문 『성도의 교제』가 있습니다. 본회퍼는 인간은 사회성을 가진 존재로 하나님께 지음을 받았으나 인간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이 사회성에 문제가 생겼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실 때 함께 살아가는 존재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거룩한 사명을 함께 받았습니다. 이 사명을 이루기 위해서 함께 서로 협력하고 살아가야 했습니다. 그들은 함께 모여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타락으로 말미암아 이 모든 것들이 다 깨어지고 무너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서로 사랑하면서 사회를 아름답게 이루어 가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어떤 때에는 한 사회가 다른 사회를 죽이는 일도 보여줍니다. 이러한 행동들이 부족간의 야갈, 또는 전쟁으로 나타납니다. 사회는 어떤 특성이 있습니까? 사회는 공동체로서 함께 살아가는 특성을 가집니다. 서로의 유익을 위하여 서로 돕고 서로 세워주는 특성을 가집니다. 그런데 그 사회가 어떤 때는 전쟁을 하고, 상대방을 철저하게 살육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이 모든 일들은 어디서 온 것일까요? 타락으로 말미암아 인간의 사회성에 심각한 문제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회성에 생겨난 이 문제를 해결하고 참된 사회, 거룩한 신앙 공동체, 사명 공동체를 이루게 하시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뜻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흘림을 통하여 이루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행하신 모든 일들, 즉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을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어 이렇게 영광스러운 사회, 공동체를 이루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교회인 것입니다.
포도원 비유의 의미
요한복음 15장 본문 말씀은 이런 내용들을 알고 보시면 이해가 쉽습니다. 본문 말씀은 하나님은 포도원을 가꾸는 농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포도원의 주인이며, 포도원을 가꾸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포도원에 애착을 가지고 사랑하며 늘 관심을 가지고 나무 한 그루, 가지 하나, 줄기 하나까지 일일이 살피면서 포도원을 아름답게 가꾸어 나가고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포도나무들이 열매를 많이 맺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여기 포도원은 교회를 가리킵니다. 포도원에 들어오기 위해서는 포도나무의 가지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포도나무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포도원 주인이신 하나님은 포도나무에 생명력으로 붙어 있는 가지는 놓아두시지만 생명력이 없는 가지는 잘라버립니다. 생명력을 확인하는 기준은 열매를 맺느냐 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우리가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는 생명의 포도나무라는 것입니다. “나는 참포도나무요,” 즉 생명력이 충만한, 아니 생명 그 자체인 포도나무,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가지는 그리스도에게 붙어있어야만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에게 붙어있지 않는 가지에게 생명과 영양분이 공급되지 않습니다. 그러면 이 가지는 열매를 맺지 못하고 바짝 말라버리고 맙니다. 그런 가지는 농부가 다 잘라버립니다. 저는 포도 농사를 안 해봐서 잘 모릅니다. 그러나 하시는 말씀을 들으면 봄이 되면 옛날 가지들을 다 잘라버린다고 합니다. 그래야만 새로운 가지가 나오면서 열매를 맺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포도 농사를 하시는 분들은 봄에 가지치기를 하는데 이것은 정말 많은 품이 들어가는 일입니다. 하루 종일 한 그루, 한 그루 모두 가지치기를 해줘야 합니다. 그래야 새롭게 순이 돋아나고 가지가 자라나고 잎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게 된다는 것입니다. 농부 되신 하나님께서 포도원에 있는 포도나무에 그 일을 행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포도원에는 생명의 포도나무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들은 생명을 공급받고 영양을 공급받고 열매를 맺게 됩니다. 신학자들은 성경에서, 특별히 사도 바울의 서신을 보면서 사도바울의 신학에 주목을 했습니다. 사도 바울의 신학의 중심 사상, 중심 신학을 연구했습니다. 그들은 사도 바울이 사용하는 특정의 용어에 주목했습니다. 그리고 자주 반복되는 그 용어가 사도 바울의 중심 신학이라고 주장 했습니다. 그 용어는 “그리스도 안에”라는 말입니다. 혹은 “그리스도 안에서” 라는 말입니다. 바울 서신에는 “예수 안에서,” 혹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혹은 “그리스도 안에서,” 혹은 “그 안에서”라는 말들이 수백 번 등장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일들이 진행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교회 계획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교회 경륜
하나님은 이 땅에 교회를 세우실 뜻과 계획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그 뜻과 계획을 이 세상 역사 속에서 하나하나 실현해 나가시고 계십니다. 성경을 보면 구약 이스라엘을 광야교회라고 부르는 장면이 나옵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 이후에 광야에서 하나의 교회로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광야에 있었던 이 교회는 출애굽 사건을 근거로 하며 모세 언약이라고 부르는 시내 산 언약에 근거하여 만들어진 교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광야교회, 출애굽과 모세의 언약에 근거한 교회는 역사 속에 묻어버리시고, 새로운 교회 계획을 세우시고 새로운 교회를 시작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신약 교회입니다. 신약 교회는 에클레시아라고 부릅니다. 이 에클레시아, 신약 교회는 새 언약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졌습니다. 새 언약은 모세 언약과 동일한 것이 아닙니다. 그냥 이름만 다른 것이 아니고 새로운 바탕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최후의 만찬 자리에서 “이것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새 언약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 흘리심으로 세워졌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 새 언약 아래에서 신약 교회를 세우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새 언약으로 말미암아 신약 교회, 즉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들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와 연합을 하고, 그리스도 안에 존재하게 되는 겁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생명으로 그 안에 존재하시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인 사이에는 생명의 연합, 하나 됨이라고 하는 것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은 이것이 역사 속에서 실현되게 하십니다.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그것이 생명을 주고받는 관계라는 의미도 있지만, 교회가 지상에 존재하는 것 자체가 그리스도의 영광을 나타내는 것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는 육체로서 부활하셨고, 승천하셨고, 하나님 우편 보좌에 앉아 계십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지상 교회를 자신의 몸으로 삼아 지상에 그리스도의 영광을 나타내고 계시는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지 아니하면 잘라 버려지는 가지라고 하는 것입니다. 즉 그리스도인은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며 그리스도의 생명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 없이는, 즉 그리스도의 몸이 없이는 그리스도인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피 흘리심 위에 교회를 세우셨다
교회는 인간으로부터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포도원을 만드시고, 그곳에 포도나무를 심으시고, 가지치기를 하시면서, 포도원을 가꾸어 나가십니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것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피 흘리심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것입니다. 교회는 인간의 의지로 된 것이 아니라고 하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물론 사람들이 모여서 “교회를 해보자” 해서 개척교회를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인간에 의해 교회가 세워졌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얼마든지 개척 교회를 시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개척교회를 시도하는 사람들 속에 그리스도가 없고, 하나님의 참된 역사가 없다면 사적 단체를 만든 것에 불과한 것입니다. 교회는 참된 하나님의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끼리 모였으니 우리끼리 정한 원칙으로 우리끼리 해 나간다” 하면 그것은 교회가 아닙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교회의 원리를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교회의 시작, 교회를 만드신 분은 누구십니까? 하나님이십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 흘림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성령의 역사로 이루어집니다. 성령이 우리 속에서 새 생명으로 역사하셔야 합니다. 그다음 성령께서는 말씀을 가지고 역사하십니다. 그렇게 해서 교회의 영적 특성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교회를 영적 기관, 영적 공동체라고 하는 이유는 이렇게 삼위일체 하나님, 그리스도의 피 흘리심, 성령의 생명의 역사, 그다음 말씀을 사용하시는 성령의 역사가 있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교회를 이루기 위해서는 이 원리를 알고 이 원리 가운데로 나가야 합니다. 이 원리가 없으면 교회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교회의 창설자는 하나님이십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 흘림으로 세워진 것입니다. 성령께서 생명으로 역사하셨고, 말씀으로 역사하셨기 때문에 교회가 세워지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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