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요약

영적 공동체의 성장을 위하여(3)_ 공동체의 창조(창 2:18-23)

페이지 정보

작성일2023-04-26

본문

영적 공동체의 성장을 위하여(3)

공동체의 창조(창 2:18-23)


군집, 사회, 교회

학자들 중에는 인간 이외에도 사회생활을 하는 동물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자세히 관찰하고 연구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개미들은 여왕개미를 중심으로 질서정연하게 살아가는 모습들을 볼 수 있고, 사자 같은  맹수들도 공동으로 사냥하고 공동으로 먹고 양육하고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인간과 같은 사회, 즉 공동체인지에 대해서는 많은 의문이 있습니다. 동물이 어떤 무리를 이루었을 때 그것은 하나의 사회라기보다는 군집이라고 말합니다. 군집은 본능에 의해 모인 것을 의미합니다. 동물들의 모임이 공동체가 아닌 이유가 그것입니다. 인간 공동체의 특징은 인간의 의지에 달려 있습니다. 인간은 모임은 인격적인 결단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인간 사회에는 많은 의지의 결과로 많은 사회들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 공동체는 인간의 의지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 공동체는 인간의 계획이나 의도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 계획 속에 있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하나님의 예정과 작정 속에서 하나님의 교회 공동체가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 창세기 2장은 아담과 하와, 그리고 그들이 이루는 가정에 대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하나의 공동체를 만드시고, 이 공동체를 기반으로 온 세상에 창대하게 되는 공동체를 이루고자 하시는 최초의 시도에 대한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가 교회 공동체를 생각할 때 반드시 살펴보아야 하는 부분입니다. 18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라고 판단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않다,” 이것은 오늘날 사회적으로, 문화적으로 우리 부모들도 다 같이 가지는 생각입니다. 부모들은 자녀들이 일정 연령이 되면 “빨리 결혼시켜야 하는데”하는 마음을 가집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사회적으로 결혼 적령기가 있고 그때 결혼을 반드시 해야 한다는 것들이 우리의 의식 세계 속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하나님도 아담을 보실 때 우리와 똑같았구나.”라고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이 혼자 사는 것을 좋지 않게 보셨던 데에는 다른 이유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공동체성의 영광

창세기 1장 26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다.” 여기 보면 우리의 형상과 우리의 모양대로 사람을 만들자 이렇게 어떤 의논하는 형태의 말씀이 나옵니다. 우리는 하나님은 한 분이시라고 알고 있는데, 한 분이신 하나님이 “우리가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가 만들자”라고 말씀하신다면 이상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한 분이신데 어떻게 우리라고 하는 말을 쓸 수 있습니까? 과거 어떤 분들은 이것을 히브리어에만 존재하는 어떤 특별한 문법으로 해석을 한 일이 있었습니다. 히브리어에는 장엄 복수라고 하는 문법이 있어서 매우 영광스러운 존재, 즉 장엄한 위엄을 가지고 있는 존재가 “나”를 가리킬 때 “우리”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히브리어 문법에 대한 연구가 더 진행되면서 장엄 복수라고 하는 것은 히브리어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러면 이 ‘우리’는 도대체 무엇일까요? 이 말은 삼위일체, 즉 하나님의 공동체성을 떠올리게 하는 말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은 삼위일체 하나님으로서 한 분이시지만, 신비하게도 성부, 성자, 성령은 각각 구별되는 존재이십니다. 서로를 향하여 “나와 너”라고 부를 수 있는 구별된 존재로서 존재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하나님은 한 분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존재의 신비입니다. 하나님은 인격이 우리라고 부를 수 있는 연합된 공동체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드셨다면 바로 이 공동체성도 인간에게 그대로 나타나 야 하는 것입니다. 다만 인간은 자기 혼자로서는 이 공동체성을 나타낼 수 있는 길이 없습니다. 인간은 혼자서는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하나님의 공동체성을 나타낼 길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보시고 혼자 사는 것이 좋지 못하다고 말씀하신 이유가 바로 그것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하와를 창조하시고, 아담과 하와를 부부가 되게 하시고, 가정 공동체를 이루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가정 공동체를 통해 온 세상을 가득 채우는 하나님의 나라 공동체를 이루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부부 관계가 담고 있는 영적 비밀

아담과 하와가 가지고 있는 이 영적인 의미가 에베소서 5장에 나와 있습니다. 에베소서 5장 22절로 33절 말씀을 보면 남편과 아내의 관계를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에 근거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내가 너희에게 말하는 것은 교회와 그리스도와의 관계, 즉 비밀”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아담과 하와가 부부가 되되 서로 사랑하고 복종하는 관계는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관계애 대한 계시를 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셔서 교회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그 비밀을 어디에 담아 놓으셨는가? 남편과 아내의 관계에 담아 놓으신 것입니다. 에베소서 5장 22절부터 말씀을 보면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남편과 아애의 관계에 주님이 등장합니다.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됨과 같음이니,” 즉 남편과 아내의 관계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그가 바로 몸의 구주시니라 그러므로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자기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그리스도인 가정은 세상적인 기준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가 남편과 아내 사이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25절,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되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하여 자신의 생명을 주신 것처럼 사랑해야 합니다. 28절,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자신과 같이 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왜냐 하면 남편과 아내는 한 몸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서로 사랑하는 것이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 되는 것은 한 몸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부부의 연합은 그리스도와 교회 사이에 있는 연합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29절, “누구든지 언제나 자기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오직 양육하여 보호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에게 함과 같이 하나니.”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보호하고 사랑하시는 이유는 그리스도와 교회가 하나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32절, “이 비밀이 크도다.” 이 비밀은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입니다. 하나 됨의 관계입니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하나님의 형상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하여

이것이 우리가 교회를 이루고 교회를 섬기는 모든 일의 배경이 되고 있습니다. 왜 하나님은 이와 같은 뜻을 가지고 이 뜻을 우리 가운데 나타내셨을까요? 첫째는 하나님의 형상의 영광을 나타내게 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이미 말씀드렸던 것처럼 하나님은 성부, 성자, 성령, 비록 한 분 하나님이시지만, 그러나 서로를 향하여 너라고 부를 수 있는 구별된 존재였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생각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존재의 신비입니다. 하나님의 존재의 신비는 하나님의 공동체성, 하나 됨 입니다. 어떻게 성부, 성자, 성령이 구별되는 분이신데 한 분일 수 있을까요? 하나님은 단지 하나가 아니라 한 분입니다. 하나의 단체나 하나의 사회가 아닌 한 분이십니다. 중세 시대에 이 문제를 가지고 많은 논쟁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라고 하는 이름은 유(類)를 가리키는 명칭인가? 성부, 성자, 성령은 구별된 개체지만 하나님이라고 하는 종류 속에 포함되어 하나의 하나님 종류다 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적은 분명하게 하나님은 인격적으로 한 분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이 영광을 나타내는 방식으로 우리에게 주신 것이 바로 공동체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가정을 이루고, 부부 간의 연합과 부모와 자녀 간의 연합을 통하여, 그리고 모든 인류가 형제와 자매로 부를 수 있는 하나의 큰 가족을 이루게 하셔서, 온 세계가 하나의 가족으로서 공동체를 이루게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가 그만 범죄하여 이 공동체를 파괴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공동체가 파괴되자 이것이 아담의 가정의 비극으로 다가옵니다. 형이 동생을 죽이는 일이 벌어지게 되고, 가인의 후손 중에는 자기의 기분을 나쁘게 했다고 하여 사람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죽이는 라멕과 같은 존재도 나오게 됩니다. 또 그 후손들은 자기 마음에 좋은 대로 행하게 되고, 이 일이 너무나 악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지상에 사람 지으셨음을 후회하셨다고 표현할 만큼 악이 창궐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악을 심판하시기 위하여 노아의 홍수 심판이 임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타락한 인간은  공동체성을 파괴하였고, 결국 하나님의 형상의 영광을 나타내는 사명을 깨뜨리고, 공동체가 온 세상에 창대하여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나타내는 것을 파괴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을 통하여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개인적으로 구원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최종 목적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최종 목적은 바로 공동체성의 회복입니다. 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받았는데 교회 생활을 해야 할까요? 우리는 교회 생활을 통해 우리의 공동체성을 깨닫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몸을 영광되고 아름답게 이루어서 하나님의 형상의 영광을 나타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형상의 영광을 나타내면서 이 땅에 하나님의 통치의 영광을 나타내야 합니다.


하나님의 통치대권의 영광, 그리스도 몸의 영광

지난주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하여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두 가지 방향으로 생각 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통치 대권을 나타내라. 둘째는 그리스도 몸의 영광을 나타내라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셨을 때 인간에게 주셨던 사명이며 목적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타락한 인생들을 구원하실 때 이 뜻과 목적을 더욱더 영광스럽고, 더욱더 아름답게 이루기를 원하셨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이것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이 뜻을 깊이 깨달았더라면 모든 것이 달라졌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도 예수님을 믿고 보니 교회라는 제도가 있고, 우리는 그냥 교회라는 제도 속에 들어와 있을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교회가 왜 존재하게 되었으며, 우리에게 어떤 목적과 뜻이 주어져 있는지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그 뜻의 비밀을 마음속에 품고 살아야 합니다. 성경은 이 공동체의 영광을 위하여, 그리스도를 사랑하듯 교회를 사랑하고 섬겨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일을 이루는 원리는 사랑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라,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령께서 우리를 사랑으로 하나 되게 하셨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성경을 공동체의 관점에서 읽으면 성경의 비밀이 우리 앞에 드러나게 됩니다.


“우리는 사랑의 띠로 하나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사랑의 띠로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거룩한 뜻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 안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뜻을 알고 이 뜻을 어떻게 이루어야 할지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뜻을 반드시 이루어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공동체에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가 있으며, 그 영광이 찬란하게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한 교회 공동체의 모든 지체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임재하사 놀라운 은혜와 축복을 주시며, 은혜와 축복이 넘쳐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임하시는 것,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 공동체 안에 임하시는 것, 그리하여 우리에게 놀라운 사랑과 은혜가 넘쳐나게 되는 것, 바로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축복인 것입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