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요약

영적 공동체의 성장을 위하여(4)_ 공동체의 파괴와 회복(시 13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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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3-05-03

본문

영적 공동체의 성장을 위하여(4)

공동체의 파괴와 회복(시 133:1-3)


무너진 공동체

오늘 본문 말씀은 공동체를 향한 하나님의 역사 계획 속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나타난 하나님의 뜻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오늘 시의 제목은 “다윗의 시 곧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입니다. 이 시는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성전에 올라갈 때 부르는 찬송으로 사용 되었는데, 다윗은 성전이 지어지기 전에 이 노래를 불러 하나님의 영광 앞으로 올라가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공동체의 아름다움을 노래했던 것입니다. 이 노래는 다윗시대에 있었던 한 가지 큰 사건을 그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모셔 올리는 일이었습니다. 그 일로 인해 이스라엘 12지파가 예루살렘에 모였고, 그들은 예루살렘으로 올라오는 법궤를 환영하고 크게 기뻐하였던 것입니다. 이 일이 있기 전에 법궤에 도대체 어떤 일이 일어났던 것입니까? 엘리 제사장 말년에 블레셋 족속들과 전쟁이 있었고 이스라엘은 패배하고 말았습니다. 그때 엘리 제사장의 두 아들은 법궤를 가지고 전쟁터에 나갔습니다. 그리고 또 다시 전쟁에 파배하고 그만 법궤까지 빼앗기는 비극을 겪게 됩니다. 그 와중에 엘리 제사장의 두 아들은 현장에서 죽고, 이 소식을 들은 엘리 제사장은 거꾸러져서 죽고, 며느리는 출산하다가 죽고, 온 집안이 완전히 망하는 비극을 겪게 됩니다. 한편 블레셋 족속들은 빼앗아 간 법궤 때문에 큰 시련과 재앙을 겪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영광과 권능을 나타내셨던 것입니다. 그들은 이 모든 재앙이 법궤 때문이라고 판단하고 법궤를 이스라엘에 돌려주었습니다. 그런데 법궤를 돌려받은 이스라엘 벧세메스 사람들이 법궤 안을 들여다 보려다가 몰살당하는 비극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깊은 산속에다가 법궤를 갖다 버리다시피 방치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무도 법궤를 찾지 않았습니다.


방치된 법궤

법궤는 하나님의 영광이 자기 백성과 함께하는 증거입니다. 법궤가 있으므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 가운데 함께하시는 것입니다. 법궤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 가운데 임재하시고 그 백성들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그들을 하나님의 은혜로 채워주시는 것이었습니다. 법궤를 모심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가 될 수 있었고, 하나님의 보호 속에서 원수들을 물리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법궤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즉 법궤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백성인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법궤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한마음 한뜻이 되게 만드는, 하나님을 향하여 자신들의 사랑을 고백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경배함으로 그들이 진정으로 예배 공동체가 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 속에서 법궤가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법궤는 깊은 산 속에 버려지고 오랜 세월 동안 그대로 방치되었던 것입니다. 사무엘 선지자 시대에도 법궤는 여전히 산속에 방치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사무엘 선지자를 참 사랑하고 존경합니다마는 법궤에 대한 사무엘 선지자의 태도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시대 상황이 어렵다고 해도 법궤를 제사장이 있던 실로로 다시 모셔 와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의 중심으로 삼았어야 하지 않는가? 그러나 사무엘 선지자는 그런 일을 하기에는 너무나 바쁜 나날을 보냈던 것으로 보입니다. 사무엘 선지자는 한 곳에 정착한 분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땅 전역을 순례하면서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역에 힘을 썼습니다. 그러다 보니 한 곳에 정착을 하고 수동적으로 그곳에 찾아오는 백성들을 가르치는 일을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사역의 방향이 달랐던 것입니다.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던 시대 상황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사사시대는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각자 자기 부족들 마음대로 분열하고 찢어지고 대립하고 심지어는 몰살시키는 비극이 있었던 시대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원자를 보내시지만 그때뿐이고 사사가 죽고 나면 이내 하나님께 등을 돌리고 떠나갔던 시대가 시대입니다. 사사 시대는 믿음이 무너지고 하나님의 백성의 공동체가 무너진 시대였습니다. 그리하여 사무엘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의 통합을 위하여 찾아다니면서 최대한 애쓰고 힘쓰고 노력할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모심

사무엘 선지자의 시대가 지나가고 사울왕의 시대가 왔으나 사울왕도 법궤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는 오로지 자기의 왕권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왕권의 잠재적 위협자가 되는 다윗을 죽이고자 수시로 군대를 보내거나 직접 군대를 이끌고 쫓아가곤 했습니다. 사울 이후에 다윗이 유다 지파를 기반으로 왕이 되지만 다른 지파들은 유다 지파와 함께하지 않았습니다. 8년 동안 분열된 상태로 있다가 겨우 하나로 통합이 되지만 그러나 이스라엘은 이미 뿔뿔이 흩어지고 각자 마음대로 살아가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들은 공동체라고 부를 수 없었습니다. 그러는 동안 블레셋 족속과의 전쟁은 계속되었고 법궤는 여전히 산 속에 있었습니다. 그 기간이 몇 년일까요? 정확한 기간을 산출할 수는 없지만 사무엘 시대와 사울 시대와 다윗 시대까지 합치면 최소 60년 이상 방치 되었던 것입니다. 어느 날 다윗이 하나님의 법궤가 방치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결국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모셔오게 됩니다. 그때 이스라엘 군대와 이스라엘 각 지파들은 모두 나와서 법궤를 환영하고 다윗은 그 대열 앞에서 춤을 추었습니다. 사사 시대 이후로 이렇게 이스라엘 12지파가 한 자리에 모여서 하나님을 기뻐하고 즐거워했던 일이 없었습니다. 다윗의 마음속에는 감격이 넘쳐 흘렀습니다. 그리고 그 감격이 오늘의 시로 나왔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공동체를 보는 기쁨을 노래함

1절,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본문에서 “형제”는 가족구성원으로서 형제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 더 큰 범위의 공동체, 즉 이스라엘 민족 공동체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민족 공동체가 함께 거하는 것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가!” 하고 감탄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수백 년 동안 뿔뿔이 흩어져 살아왔습니다. 그들은 한 자리에 모여 하나님을 예배한 적이 언제인지 기억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다윗은 영광스럽게도 하나님의 백성들이 한자리에 모여 하나님의 법궤를 중심에 놓고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는 모습을 목도하고 그 아름다움에 너무너무 감격해서 이렇게 외쳤던 것입니다.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본문의 “아름다운고”는 원어로는 “기쁘고 즐겁다”는 의미입니다. 2절은 더 나아가서 이때 이루어진 공동체가 얼마나 거룩한 공동체인지 노래하고 있습니다.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의 옷깃까지 내림 같고.” 이것은 제사장의 임직식에서 기름을 붓는 장면입니다. 제사장의 머리에 부어지는, 즉 대제사장의 임직 때에 부어지는 기름 부음은 제사장직의 거룩함을 의미합니다. 제사장은 하나님께 드려짐으로, 하나님께 헌상됨으로, 거룩하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지상에 존재하는 단순한 국가가 아닙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바쳐진 사람들이며,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으로 불리우는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구별된 백성이요, 거룩한 백성입니다. 그들은 지금 그것을 현실에서 경험하고 있습니다. 현실에서 온몸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3절은 이 공동체의 풍성함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이슬은 영롱하게 뭉친 수많은 물방울로 이루어집니다. “헐몬의 이슬”은 수없이 많은 이슬방울들이 잔뜩 모여 있는 공동체의 모임 장면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리고 이슬은 아주 맑고 깨끗함을 상징합니다. 법궤를 중심으로 하나님을 기뻐하며 찬양하며 노래하는 이 백성들의 모습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거룩하며, 순수하며, 깨끗한  하나님의 백성들의 공동체의 모습이었습니다. 다윗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사 시대 이후로 수백 년 동안 누리지 못했던 공동체의 영광과 아름다움과 기쁨을 목격하고 노래했던 것입니다.


소아(小我)는 공동체를 파괴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공동체성을 상실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영광에 대하여 무지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지식이 사라졌습니다. 아예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물이 흘러갔던 흔적은 남았는데 그곳에 더 이상 물이 흐르지 않았던 것입니다. 우리의 영혼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마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기뻐하며 즐거워했었던 과거의 기억들은 남아 있는데, 그러나 지금은 그러한 감격들이 사라졌습니다. 모두 메말라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한 메마름 속에 그들은 세상의 유혹에 빠져 넘어지게 되었고, 자기의 욕심과 정욕에 빠지게 되었고, 자기 한 몸, 자기 가정, 소아(小我)만 챙기는 상황으로 빠져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소아’는 나와 관계된 것만 나로 인식하는 것을 말합니다. 나랑 친한 사람만 챙겨주는 것입니다. 소아가 발달하면 공동체는 무너지고 마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유달리 친하게 지내는 분들은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들과 유달리 친해지는 것은 막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공동체가 모였을 때에는 조심해서 표내지 말아야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서로 자주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로 모였을 때에는 티 내지 말자는 것입니다. 기존 성도들 가운데 유달리 친한 사람들이 있으면 교회에 새로 오신 분들은 매우 부담스러워하기도 하고 여러 가지 부작용들이 일어나게 됩니다. 소아에 빠지면 안 됩니다. 나이가 같다고 해서 유달리 친해져 늘 같이 다니는 분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교회의 교제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 흘리심으로 말미암아 세워졌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이 교회를 이루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경험하는 현실 교회는  그렇게 이루어지지 않는 일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세워진 성령공동체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교회를 현실에 이르게 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교회를 이곳에 나타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사명입니다. 이것을 위해서 인간적으로는 당연한 것들이지만 절제해야 하는 부분이 있는 것입니다. 왜 우리가 혈연 중심으로 교회를 이루면 안 된다고 할까요? 친척만 20명, 30명이 있는 교회가 있습니다. 그 친척들 중에 누구를 건드렸다가는 큰일 납니다. 그 친척들이 모두 등을 돌리거든요. 여러분, 교회는 혈연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습니다. 혈연이 있다고 한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피 밖에 없습니다. 정말 우리가 혈연으로 이루어져 있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하나가 되었을 뿐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서로 형제와 자매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현실적으로 교회 안에는 인간적인 각양의 요소들로 친밀한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그런 것을 우리가 막을 수는 없지만 그것이 교회 공동체 안에 표 나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친함이 교회 일에 영향을 미치게 해서는 안 됩니다. 그 친함이 단지 나이가 같아서, 단지 키가 비슷비슷해서, 단지 지역이 같아서 어떤 이러저러한 인간적인 공통점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것이 진정한 교회 공동체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우리 서대신 교회가 그리스도의 피로 세워진 하나님의 교회라고 하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기억합시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성령께서 우리 가운데 임하셔서 우리에게 역사하실 때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 몸의 지체가 된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몸의 공동체를 이루게 된 사실은 성령이 우리 가운데 임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공동체성을 우리가 이루기 위해서 보존하고 더욱더 영광스럽게 이루어가기 위해서는 성령의 공동체를 이루어야 합니다. 성령의 공동체는 어떻게 이루어집니까? 이 부분에 대해서는 또 다시 한 시간의 말씀이 필요합니다. 그리스도인의 피로 세워진 성령 공동체, 이것이 오늘 우리 교회입니다. 우리는 현실 속에서 우리가 경험하고 부대끼는 이 교회가 그리스도의 피로 세워진 성령 공동체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이 일을 위해서는 내 마음속에 있는 온갖 정욕과,  인간적인 친밀함과, 이런 것에 자기를 맡기지 않고 오직 그리스도와 성령의 인도하심에 자신을 맡겨야 합니다. 이 시대에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거룩한 사명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세워진 성령 공동체를 세우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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