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요약

영적 공동체의 성장을 위하여(5)_ 성령공동체인 교회(엡 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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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3-05-10

본문

영적 공동체의 성장을 위하여(5)

성령공동체인 교회(엡 4:1-6)


하나님의 백성들의 하나 됨 

교회의 본질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 되게 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1장 10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구원의 최종 목적을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본문 말씀은 이와 같은 목적을 교회 공동체 안에서 어떻게 달성할 수 있는지 교훈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구원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너희가 부르심을 합당하게 행하여”(1절). 성도들에게는 구원에 합당한 삶이 기대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받았다면 마땅히 그리스도의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기대되는 삶의 모습이 있는 것입니다. 사도가 가르치고자 하는 성도의 합당한 삶은 하나 됨입니다.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히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2절). 즉 하나 됨을 깨뜨리지 말고 하나 됨을 훼손시키지 말고 하나 됨을 지켜가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하나 됨은 현실 교회의 공동체의 삶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공동체라는 용어는 하나 됨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하나 됨을 지키라고 말씀한다는 것은 이것이 상당히 힘들고 어려운 일이며, 우리의 노력과 많은 힘이 필요한 일이라는 것을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 됨은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은 가만히 놓아두면 점점 무너지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모든 인간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대로 놓아두면 사랑의 관계도 점점 사라지고 맙니다. 그러므로 “힘써” 지키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하나 됨을 위하여 힘 쓸 것은 “관계”

그러면 힘써 노력해야 될 부분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관계”입니다. 본문 말씀은 관계를 위하여 필요한 것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과 사랑과 서로 용납하는 것과 평안 등과 같은 덕목들은 관계를 위하여 필요한 것들입니다. 우리는 서로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인격에도, 우리의 심성에도, 우리의 습관에도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서로 문제들을 일일이 지적하고, 그런 것들이 싫다고 무조건 내 뜻대로 바꾸려고 한다면 관계가 제대로 이루어 질 수 없습니다. 서로 용납해야만 하나 됨을 이룰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는 서로 평화하려고 해야 합니다. 평화를 제1의 덕목으로 삼아야 합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평화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오래 참고 서로 용납하고 겸손하고 또 온유하게 하는 자리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랑이 필요한 것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이런 일들을 행할 수가 없습니다. 사랑이 있어야 진정으로 이런 일들을 행할 수 있게 됩니다. 고린도전서 13장은 바로 이 문제에 대해 교훈하고 있습니다. 공동체를 위하여 가장 중요한 덕목은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사랑은 이적과 권능과 은사 같은 것들보다 더 큰 것입니다. 그런데 사랑은 사실 성령으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인간적인 사랑은 교회 공동체가 가지는 영적 특성을 무너뜨립니다. 진정한 사랑은 성령의 열매로서의 사랑입니다. 우리에게 이 사랑이 있어야 하고, 이 사랑이 충만하게 넘쳐나야 된합니다.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3절). 성령이 우리가 하나 되게 하시기 위하여 우리에게 행하시는 일은 사랑입니다. 


사회학적으로 파악되는 현실 교회

지상에 있는 현실 교회는 어떤 모습인 지, 또 어떤 모양을 가져야 할 것인 지에 대해 함께 생각 하겠습니다. 첫째 현실 교회는 많은 문제와 분쟁과 불화 속에 있습니다. 현실 교회는 많은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그 문제는 우리들이 근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문제 입니다. 우리는 지적으로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는 모든 일을 다 알 지 못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제한적인 지식을 가지고 판단하고, 그 판단의 결과 미워하고 다투는 모습을 자주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한계가 뚜렷한 사람들입니다. 우리에게는 죄의 정욕이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성령께서 우리 속에서 역사하지 않으면 이 죄의 정욕이 점점 자라나고 이것이 우리를 장악하는 자리에 이를 수 있습니다. 왜 우리가 성령 충만해야 할까요? 왜 우리가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해야 할까요? 우리 속에서 자라나는 정욕을 죽이기 위해서 입니다. 죄의 정욕을 죽이지 못하면 결국 이것이 자라나 우리를 무너뜨리고 공동체가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현실 속에 있는 교회는 세태의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사상의 흐름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흐름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현재 우리에게 가장 크게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은 세속화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영광보다는 세상의 것들을 좋아하고 세상의 것들에 자신을 맡기는 모습들을 많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세속화가 교회 안에도 교회는 세상의 생각에 영향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 세상의 생각은 세상의 세계관과 가치관입니다. 세상은 지금 개인주의 사상이 극대화된 상황입니다. 개인이 하나님의 위치에까지 올라간 상황입니다. 그래서 이 개인주의가 우리 교회 안에도 아주 깊게 뿌리를 내리고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교회가 개인들의 연합이라고 하는 생각이 아주 강하게 작용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는 교회도 사회학적 관점으로 대하고 있습니다. 사회학은 인간들의 집단, 모임에 대한 연구입니다. 국가도, 가정도 사회 입니다. 크든지 작든지 수없이 많은 단체들도 다 사회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생각할 때 사회학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교회를 대하는 자세는 교회 관계 재판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교회에서 문제가 일어나서 사회 법정으로 가게 되면 사회 법정은 교회를 영적 기관으로 취급하지 않습니다. 사회 법정에서는 교회를 법인으로도 취급하지 않습니다. 그냥 현재 있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이냐, 그들의 생각에 따라 결정해 줍니다. 극단적인 예로 신천지에서 추수꾼을 보낸 이유이기도 합니다. 교회 성도들을 포섭하고 포섭된 사람들이 다수를 이루게 되면 교회가 신천지로 바뀔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재산과 모든 것들이 그대로 바뀔 수가 있습니다. 성도들이 교회의 원리들을 바로 알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왜 교회의 헌법을 지키려고 노력을 해야 되는지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왜 우리는 성경의 원리를 따르려고 애를 쓸까요? 세상은 성경의 원리와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교회 문제를 재판할 때 성경은 아무 필요도 없습니다. 재판할 때 성경 구절을 한 구절도 인용하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현실 속의 교회는 사회학적으로 취급 받고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문제는 성도들 중에도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교회를 사회학적으로 접근합니다. 즉 친목회의 원리로 교회를 운영하려고 합니다. 그들은 전도회를 친목회 다루듯 하려고 합니다. 여러분, 교회는 친목회가 아닙니다. 교회는 좋은 일을 하자고 모인 봉사단체도 아닙니다. 교회는 조기 축구회도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과 교회법을, 그리고 그 법이 나오게 된 말씀의 원리를 잘 알고 이것을 지켜야 되는 이유가 무엇인지 잘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본질적인 교회를 늘 연구하고 본질적인 교회와 현실 속의 교회가 일치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말씀 위에 세워진 본질적인 교회

본질적인 교회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로 말씀 위에 세워진 교회입니다. 현실 교회는 사회학적인 교회입니다. 사람들이 자신의 의지로 교회에 등록을 하고 등록 교인이 됩니다. 그리고 세례 교인은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가지면서 교회의 여러 일들을 결정하게 됩니다. 이러한 사회학적 과정은 역사 속에서 다양한 상황 속에서 만들어져 왔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나 교회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로 말씀 위에 세워진 기관이라고 하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본질적인 교회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즉 말씀을 듣고 성령의 역사로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믿을 때 성령께서 우리를 그리스도 몸의 지체가 되게 하심으로 이루어집니다. 우리는 이 원리가 현실 교회 속에서도 그대로 작용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언제나 우리는 교회를 생각할 때 현실 교회를 사회학적인 입장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교회를 만드신 근본적인 원리로서 접근해야 하는 것입니다.


성령강림으로 활성화 된 교회

우리가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몸의 지체가 되는 일은 오순절 성령 강림 때 최초로 일어났습니다. 사도 베드로가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라고 고백했을 때 예수님은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내 교회” 즉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최초로 등장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교회는 아직 교회로서 기능하지 못합니다. 교회가 교회로서 비로소 작용하기 시작하는 것은 오순절 성령 강림 때부터입니다. 보혜사 성령이 임하시면서 비로소 교회가 활성화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내 교회를 세우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물론 베드로가 신앙고백을 하였을 때 제자들은 그리스도의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그 교회가 진짜 교회로서 기능을 하게 될 때는 성령이 강림하셨을 때, 각 사람 머리 위에 성령이 임하셨을 때 였습니다. 성령으로 충만했던 제자들은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하기 시작 했습니다. 그들은 밖에 나가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하는데 두려움이 없었습니다. “사람의 말을 따르는 것이 마땅한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이 마땅한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이 마땅하다.” 그들은 온갖 위협에도 굴하지 아니하고 복음을 전파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한자리에 모였습입니다. 그들은 모임을 가장 중요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들은 모임을 통해 성령께서 그들을 활성화시키신 그 놀라운 일들을 그 자리에서 확인했습니다. 성령이 활성화하시는, 즉 그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가운데 놀라운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성령께서는 말씀과 성례를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교회를 진정한 공동체로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들이 공동체가 되었습니다. 성찬에 참여하고 세례를 받는 사람들이 공동체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사회학이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성령께서 사용하시는 은혜의 수단들입니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은혜의 수단으로서 공동체를 새롭게 하시고 공동체를 세워 나가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께서는 각 사람에게 성령의 열매, 즉 인격적으로 변화를 겪게 하시고, 성령의 은사, 즉 다양한 기능들과 재능들로 공동체를 섬기게 하심으로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영광스럽게 세워 나가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성령께서 세워나가시는 교회는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현존을 달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현존인 교회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는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임재가 됩니다. 그리하여 교회는 지상에 그리스도께서 계신 것을 증명하는 곳이 되는 것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영광을 나타내는 곳이 되는 것입니다. 교회 공동체 안에 그리스도의 현존이 있으며, 그리스도의 현존이 세상에 증명되는 것입니다. 교회를 영적 공동체라고 부르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바로 이렇게 성령께서 말씀과 성례를 은혜의 수단으로 사용하셔서 공동체를 세우시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 성도 한 사람 한 사람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연합되게 하시되 그 사람의 인격을 성령의 열매로 충만하게 만드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성령의 은사로 말미암아 교회 공동체를 섬기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이루어진 이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는 그리스도의 영광을 나타내는 그리스도의 현존으로서 이 세상에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영적 임재의 현장입니다. 그래서 교회가 영적 공동체가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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