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요약

영적 공동체의 성장을 위하여(6)_ 영적공동체로서의 가정(신 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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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3-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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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공동체의 성장을 위하여(6)

영적 공동체로서의 가정(신 6:1-9)


신명기서, 다음 세대를 위하여 주신 말씀 

5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우리 교회 모든 성도들의 가정이 복을 받고, 또 기쁨과 즐거움이 충만하시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 말씀은 “쉐마 분문”이라고 하는 유명한 성경 본문입니다. 이 본문은 “쉐마 이스라엘”로 시작 됩니다. “쉐마”는 “들어라” 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엄숙하게 듣고 그 계명을 순종하라는 말씀입니다. 신명기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직전 모압 광야에 진을 치고 있을 때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과거 40년 동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하여 행하신 일과 그동안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셨던 말씀들을 총정리해서 전달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하신 목적은 새로운 세대, 즉 다음 세대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바로 설 수 있도록 세우기 위해서였습니다. 지금 이 말씀을 듣는 사람들은 가데스 바네아에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40년 동안 광야를 방황하리라” 하고 말씀하셨을 때 20세 이하였던 어린 세대들과 광야 40년 동안에 태어난 사람들이었습니다. 현재 모압 광야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연령 분포는 60세 밑이었고 그중 대부분은 광야에서 태어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의 크신 역사에 대하여 잘 모르는 사람들, 혹은 아예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었던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지금 백성들의 장로요, 리더가 되어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하나님의 백성 되게 할 수 있을까요? 모세는 그런 상황에서 다음 세대를 세우기 위해서, 다음 세대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세우기 위해서, 아니 다음 세대가 자신들이 언약의 백성이 된 것을 분명히 알고 언약의 백성으로서 살아갈 수 있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역사와 교훈들을 전체적으로 정리해서 일목요연하게 제시하였던 것입니다. 그들은 언약의 백성이 되어야만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그 땅을 언약의 축복으로 받을 수 있습니다. 그들이 비록 그 땅에 들어가서 가난한 족속들을 물리칠 수 있다 할지라도 자신들이 언약의 백성임을 망각한다면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모세는 그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언약의 백성을 언약의 백성으로 바로 세우기 위해 신명기의 교훈을 주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신명기서를 모압 언약이라고도 부르는 이유입니다.


언약은 나의 언약이 되어야 한다

신명기서 5장 3절 말씀을 보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이 언약은 여호와께서 우리 조상들과 세우신 것이 아니요 오늘 여기 살아 있는 우리 곧 우리와 세우신 것이라.” 즉 하나님과 맺은 언약은 조상들의 언약이요, 부모의 언약으로 남아 있으면 안 됩니다. 언약은 언제나 “나의 언약”이 되어야 합니다. 믿음의 고백이 부모의 고백이 아니라 나의 고백이 되어야 하는 것처럼 언약도 부모의 언약이 아니라 나의 언약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되 말씀하신 분이 나의 하나님이 되어야 합니다. 6장 4절 말씀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라고 말씀하는 것처럼 여호와 하나님이 바로 나에게는 유일한 하나님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유일한 관계를 맺고 그 관계가 언약이라고 하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하나님의 언약의 자손이요 언약의 백성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모세는 지금 가나안 땅에 들어가야 하는 이스라엘 자손들을 보면서, 다음 세대에 대하여 마음을 많이 기울이고 있습니다. 다음 세대가 곧 광야 생활을 끝내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런데 다음 세대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언약의 백성의 정체성을 상실하게 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들이 언약의 백성의 정체성을 상실한다면 몸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 있어도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가나안 땅이 젖과 물이 흐르는 축복의 땅이 아니라 이방 민족들에게 끊임없이 침범을 당하고 고통을 당하는 비극의 땅이 되어 버리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런 사실을 사사기서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직 하나님의 크신 역사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이 살아 있을 때에는 그들이 하나님을 섬겼지만, 그러나 그들이 모두 죽은 이후 다음 세대가 이스라엘 자손의 주축이 되었을 때 그들은 하나님을 져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가나안 땅에서 축복을 누리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늘 침략을 당하고 약탈을 당하고 전전 긍긍하면서 비극적인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때로 하나님께서 사사들을 보내어 그들을 구원하셨지만 그것도 한 때의 삶에 불과했습니다. 그들은 다시 하나님을 저버리고 다시 비극을 겪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축복의 땅에서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야 할 사람들이 이방 민족들에게 멸시를 당하고 침략을 당하고 발에 밟히는 존재들이 되어 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부모는 영적 교사이다

언약의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습니다. 신명기서 5장 33절,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령하신 모든 도를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 것이요 복이 너희에게 있을 것이며 너희가 차지한 땅에서 너희의 날이 길리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할 때 생명이 임하게 됩니다. 삶이 번창하게 됩니다. 그리고 장수의 복을 누리게 됩니다. 모든 부모들은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이 말씀을 자녀들에게 가르쳐야 합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하나님의 명령과 법도와 규례를 가르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모세는 부모들에게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가르쳤습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어떤 과정이 나오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고, 모세는 이 말씀을 가르칠 사람들에게 가르칩니다. 본문 말씀을 보면 말씀을 가르칠 사람들은 바로 부모들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신명기 6장 1절 이하에서 “너”라는 말이 계속 반복해서 나옵니다. “이는 곧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가르치라고 명하신,” 여기 “너희”는 누구일까요? 이스라엘 백성입니다. 그런데 그 너희는 또 누구를 가르쳐야 합니까? 자신의 자녀들을 가르쳐야 합니다. 6절 말씀을 보면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즉 자신이 먼저 말씀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다음에는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라,” 즉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면 모세에게 말씀을 배운 부모들은 그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말씀의 사람이 되어 자녀들에게 이 말씀을 가르쳐야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공동체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책임이 부모들에게 엄숙하게 주어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즉 부모들이 영적인 교사가 되고 영적인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자녀를 가르치기 전에 먼저 말씀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

부모들이 영적인 교사가 되어야 하고, 부모들이 말씀을 가르치는 교사가 되어야 합니다. 부모들은 어쩌다 보니까 결혼을 했고 어쩌다 보니까 자녀를 낳았고 어쩌다 보니까 자녀를 키우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모든 일에는 하나님의 거룩한 뜻과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습니다. 왜 언약이 부모의 언약, 조상의 언약이 아니라 나의 언약이 되어야 할까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스라엘 백성의 가정으로 부르셨다. 그러므로 당연히 나는 그 나라 백성이 된다.” 그렇지 않습니다. 언약은 항상 나의 것이 되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모태 신앙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르신 것이지요. 우리를 가정으로 부르신 것입니다. 때로는 친구를 통해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부르심”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먼저 우리를 교회로 부르셨습니다. 그러나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마음속에 참 믿음을 갖도록 해야 합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먼저 교회로 부르심이 있고, 다음으로는 믿음으로 부르심이 있습니다. 교회는 나오는데 마음속에 믿음은 없을 수 있습니다. 믿음이 우리의 마음속에 일어나야 합니다. 마음속에 믿음이 생기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배워야 합니다. 말씀을 배우지 않으면 마음속에 믿음이 생기지 않습니다. 말씀을 배울 때 성령께서 말씀을 깨닫게 하시고 말씀의 가르침을 따라 우리의 생각이 잘 정리되도록 하십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누가 책임지고 합니까?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 세계에서는 부모들이 그 책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어떨까요? 지금도 말씀을 가르치는 책임은 부모에게 있습니다.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뿐만 아니라 영의 양식도 주어야 합니다.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야 합니다. 그러므로 부모들이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부모들이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잘 알아야 합니다. 부모들이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말씀의 사람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5절 말씀,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이 말씀은 지금 누구에게 하는 것입니까? 부모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부모들이 먼저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6절) 하나님의 말씀이 부모의 마음속에 먼저 새겨져야 합니다. 그런 후에 이 말씀을 자녀들에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다음 세대를 세우려면 부모가 세워져야 한다

“다음 세대를 세우자.” 우리는 이것을 우리 교회가 직면한 역사적인 사명으로 알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음 세대를 세우기 위하여 가장 중요한 첫 번째 발걸음은 부모 세대가 바로 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부모들이 말씀 위에 세워지지 않으면 다음 세대를 말씀 위에 세울 수 없습니다. 이제 우리가 새롭게 깨닫고 결심해야 합니다. 다음 세대를 위해 기도할 때 부모 자신들을 위해서 함께 기도해야 합니다. 다음 세대를 믿음 위에 세우고 말씀으로 양육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할 때, 이 일을 책임지고 감당할 수 있도록 부모들이 세워지기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부모가 세워지지 않으면 다음 세대를 세우는 일을 성공할 수 없습니다. 물론 이 일에는 많은 난관들이 있습니다. 부모 자신이 충분한 훈련과 교육을 받지 못했다 는 문제도 있고, 부모에게 진정한 믿음이 살아서 역사하지 못하는 문제도 있습니다. 또한 사춘기 자녀들을 어떻게 대하고 다뤄야 할지 난감하기만 합니다. 저나 여러분이나 지금 큰 숙제를 안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문제는 반드시 풀어야 하는 문제입니다. 우리들이 이 문제를 함께 내어놓고 이 문제를 함께 기도하고, 함께 힘을 합쳐 해결해 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삶 속에서 말씀을 가르쳐야 하기 때문

한편 말씀을 어디에서 가르치며 언제 가르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7절, 8절 말씀을 보면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집이든 길이든 상관없이 어디에서나 말씀을 가르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즉 언제, 어느 때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야 합니다. 이것은 삶 속에서 말씀을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모든 삶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을 언제나 기억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8절,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즉 말씀을 기억하는 장치를 두는 것입니다. “또 내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 우리는 언제든지, 어느 곳에서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즉 말씀을 삶속에 살아있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가르침의 방법은 강론입니다. 즉 말씀을 풀어서 설명해주는 것입니다. 부모들에게 이 사명을 주신 것입니다. 부모들에게 말씀을 가르치는 사명과 책임을 주신 것은 이와 같이 말씀이 생활 속에, 삶 속에 살아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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