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요약

영적 공동체의 성장을 위하여(7)_ 마땅히 행할 길을 가르치라 (잠 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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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3-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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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공동체의 성장을 위하여(7)

마땅히 행할 길을 가르치라 (잠 22:6)


잠언서는 자녀에게 가르치는 지혜로운 삶에 대한 교훈

잠언서는 부모가 자녀에게 가르치는 지혜로운 삶에 대한 교훈을 담고 있습니다. 잠언서는 다른 사람에게 준 것이 아니라 자녀에게 준 것입니다. 우리는 잠언서를 읽을 때 물론 우리 개인의 삶을 위하여 나를 위한 교훈으로 받을 수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이것은 부모가 자녀를 위하여 주는 교훈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세우기 위해서 부모를 영적 교사로 사용하고 계십니다. 다음 세대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잘 가르치고 양육해야 다음 세대가 하나님의 나라를 계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말씀 교육을 통해 창대하게 되는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교육하는 일을 통해 창대하게 됩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교육하는 일을 통해  다음 세대가 하나님 나라를 계승하게 되는 것입니다. 창세기 1장 28절을 보면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고 하시면서 하나님께서 창조하시려는 인간들을 축복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여기서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함”이란 단지 인구가 증가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그냥 인간이라고 하는 종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나라를 지상에 창대케 하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땅을 정복하는 것과 모든 생물을 다스리는 것이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하라는 명령 다음에 계속해서 등장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문화 명령이라고 부릅니다. 즉 인간은 지상에서 단지 생육하고 번성하고 충만하게 되는, 즉 종을 보존하기 위한 목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생물을 다스리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땅을 정복하고, 또 모든 생물을 다스리기 위하여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형상, 즉 지혜를 가지고, 또 지혜를 실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땅을 정복하고 모든 생물을 다스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땅을 정복하고 모든 생물을 다스리는 일을 문화라고 합니다. 이런 활동을 통해서 인간은 점점 이 세상을 자신들이 살고, 또 하나님의 영광의 모습을 나타내는 자리로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인간의 문화는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한 것입니다. 인간이 지상에 아름다운 문화를 건설한다면, 물론 그 문화를 건설한 인간이 그 일을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그 혜택을 누리겠지만, 이 일을 위하여 지혜와 능력을 주시고, 또한 이것을 사명으로 주신 하나님께 영광이 돌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문화 명령은 창조된 인간에게 주신 놀라운 축복이며 사명인 것입니다.


다음 세대에게 계승되고 발전하는 하나님의 나라

세상에 수없이 많은 생명체가 있습니다. 그리고 진화론에 의하면 이 생명체들은 각자 다 나름대로 발전, 진화를 해 왔습니다. 그러나 문화를 건설한 것은 오직 인간밖에 없습니다. 왜 인간만 문화를 건설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셔서 인간의 창조성을 발휘할 수 있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그 창조성을 발휘하여 문화를 발전시켜 나갑니다. 짐승들은 문화를 발전시킬 수 없습니다. 짐승도 도구를 사용할 수 있을까요? 자연 속에 있는 짐승 중에는 제한적으로 어떤 도구들을 사용하여 어떤 목적을 달성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1차적으로 먹는 것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그 이외에 놀이를 위하여 도구를 만들고 발전시키고 변형하고, 다음 세대에게 계승하여 다음 세대가 이것을 더 발전시키는 일들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한 일은 오직 인간밖에 못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이와 같은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인간에게 하나님의 형상이 주어졌기 때문이며, 그 형상으로서 바로 문화 건설할 수 있도록 사명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이렇게 문화 사명을 감당하는 존재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문화 명령에 따라서 우리 세상에 있는 모든 물질들, 그리고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원리들을 사용해서 점점 이 세상의 삶을 좀 더 풍요롭고 조금 더 의미 있게 발전시켜 왔던 것입니다. 내가 못하면 내 다음 세대가, 내 다음 세대가 못하면 그다음 세대가 그것을 사명으로 받고 계속해서 발전시켜 나왔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문화 명령입니다.


문화명령과 지상명령의 관계

우리는 마태복음 28장 19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를 지상명령이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마태복음 28장 18절에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즉 이 명령을 주신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과 땅의 권세를 받으신 분으로서 이 명령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이 가장 최고의 명령, 지상 명령과 문화 명령의 차이는 어디에 있을까요? 지상 명령은 복음 전파와 교회 건설에 대한 것입니다. 모든 민족에게 나아가 제자를 삼고, 세례를 주고, 말씀을 가르치는 일들은 바로 교회가 하는 일입니다. 지상 명령은 복음 전파와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세우는 일입니다. 그런데 지상 명령을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이 된 사람들은 창조 시에 주셨던 문화 명령을 참되게 수행해야 합니다. 타락 이후 인간의 문화는 더 이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문화가 아니었습니다. 그 문화는 인간 중심의 문화이고 인간의 이름을 내고 인간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한 문화였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인간은 문화를 발전시켰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와 같은 문화 발전, 과학 발전이 타락한 사람들의 지성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믿음을 가졌다고 해서 수학을 더 잘하는 것은 아닙니다. 믿음이 있다고 해서 과학적인 발견을 누구보다 더 많이, 더 빨리 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문제는 이것을 활용하는 목적에 있습니다. 타락한 인간들은 이 모든 것들을 하나님을 위하여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지상 명령, 즉 복음 전파와 교회 건설을 통하여 새로워진 사람들은 하나님을 기억하고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의 원리를 따라 문화를 건설하고 이용하게 됩니다.


타락으로 문화명령이 변질 됨

예를 들면, 최근 IT 계통에서 많은 기술의 발전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기술들을 가장 먼저 활용하는 곳은 어디일까요? 크게 두 군데 입니다. 첫째는 군대, 두 번째는 섹스와 관련된 산업입니다. 이것은 참 아이러니한 일입니다. 인간은 지혜로써 기술을 발전시키고 더 풍요로운 삶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과학과 기술이 발전되어 나가는 원동력이 되고 있는 것은 군사적인 목적과 섹스 산업이 제공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최근에 AI에 대한 뉴스가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AI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곳이 어디일까요? 똑같습니다. 군대와 섹스 산업입니다. 일반인들이 이것을 섹스와 관련하여 사용하지 못하도록 막아야 한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일반인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 기술을 돈으로 사는 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기술이 발달하면 인간에게 많은 유익이 있습니다. 원자력의 발전을 보십시오. 원자력을 개발하는 것은 괜찮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군사 목적으로 사용되면 어떻게 될까요? 인간은 원자력을 발전시켜 핵폭탄을 개발했습니다. 그리하여 인간은 스스로 자신을 멸망시킬 수 있는 무기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현재 전 세계에 존재하고 있는 핵폭탄을 터뜨린다면 지구를 수십 번 멸망시킬 수 있다고 합니다. 지금 그 정도로 엄청난 무기가 만들어져 있는 상황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무기를 더 만들려고 하는 나라들이 있습니다. 과학 기술이 발전했다고 해서 그것이 반드시 우리에게 유익하지는 않습니다. 공장을 지어 공장에서 많은 물건을 생산하고, 우리는 편리한 삶을 살게 되었지만, 그러나 공장에서 나오는 폐수와 오염물질로 말미암아 환경오염이 이루어지고, 환경오염 때문에 얼마나 많은 문제들이 발생했습니까? 기술이 발달하고 과학이 발달하고 해서 우리의 삶이 편리해지기는 했지만 그러나 우리는 다른 한편으로는 늘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이 세상이 인간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변했기 때문입니다. 인간 자신도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를 바로 사용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복음으로 새로워지는 문화

그러므로 복음을 전파하고, 교회를 건설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배워 우리의 세계관과 인생관과 가치관이 바르게 세워지는 일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야만 지상에서 우리가 발전시킨 문화를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거룩한 문화로 만들 수 있고, 이용할 수 있고,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거룩한 문화를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지상의 문화가 거룩한 문화가 되기 위해서는 그 문화를 이루어 가는 사람들이 변화되어야 합니다. 문화의 거룩함은 중생한 사람들을 통해서, 그들이 가진 삶의 목적을 통해서, 새로워진 그들의 세계관과 인생관과 가치관을 통해서 지상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바로 그것을 우리 자녀들에게 가르쳐야 합니다. 이것이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모든 생물을 다스려라” 하셨던 창세기 1장 28절 말씀의 참된 의미인 것입니다. 이 뜻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문화 명령이 우리의 삶 속에 그대로 이루어질 수 있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교회라고 하는 영적 공동체가 주어진 것입니다. 우리는 이곳에서 하나님을 배우고, 이곳에서 하나님의 뜻을 배우고, 이곳에서 인생의 참된 의미를 배우고, 인생의 참된 목적을 배우고, 이제 주께서 주신 문화 사명을 감당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부모들에게 말씀 교육의 책임과 사명을 주셨다는 것은 바로 이런 삶을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문화와 삶의 중심이다

오늘 우리가 읽은 잠언 22장 6절의 말씀은 바로 이 모든 사실들을 한 구절에 담고 있습니다.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여기서 “마땅히 행할 길”은 삶의 방식을 말합니다. 영적공동체 안에서 마땅히 행할 삶의 방식, 마땅히 행할 삶의 방법을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사실 인간은 역사와 문화와 기후에 따라 다양한 삶의 방식을 가지고 있고, 그 삶의 방식의 우열을 따질 수 없습니다. 다만 그런 삶을 살게 하는 원리로서 마땅히 살아가야 되는 원리가 있습니다. 자녀에게 그것을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여기 마땅히 행할 길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오직 하나님이 그 기준이 되시는 길입니다. 하나님께서 원리가 되는 삶의 방식, 바로 이것이 마땅히 행할 길입니다. 솔로몬 왕은 잠언을 통해서 자녀들에게 마땅히 행할 길을 가르치기를 원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잠언에서 마땅히 행할 길을 또 다른 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지혜”입니다. 그리고 그는 지혜의 근원과 근본을 9장 10절에서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즉 마땅히 행할 길은 하나님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입니다. 잠언 1장 7절 말씀에서 그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모든 지식의 근본”이라고 말합니다. 즉 지식도 여호와를 경외함이 그 원리가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윤리적으로 우리의 삶을 판단할 때 그 기준은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의 문화를 건설할 때에도 인간의 편리만을 위한, 혹은 어떤 일부 사람들만을 위하여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즉 성경은 우리의 삶의 기본 원리는 오직 하나님이라는 것을 가장 먼저 선언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볼 때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하여 세상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인생을 어떻게 볼 것입니까? 인생이 가진 의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무엇을 선택하며 살아가야 할까요? 선택의 원리도 하나님을 경외함으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을 자녀들에게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아니, 교회에서 성도들에게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그럴 때 지상에 하나님의 나라가 능력 있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성도들이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자신의 삶의 근본 원칙으로 삼아 이 삶을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갈 때 능력 있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진실 되게 순종하여 살아가는 우리의 삶속에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지상에 영적 공동체로 존재하고, 우리의 가정이 영적 공동체로 존재하는 이유는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 나라의 영광과 능력을 나타내기 위해서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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