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공동체의 성장을 위하여(11)_새 사람의 삶을 살라 (엡 4:2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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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3-06-20본문
영적 공동체의 성장을 위하여(11)
새 사람의 삶을 살라 (엡 4:25-32)
구원의 목적 하늘과 땅에 있는 존재들이 하나가 됨
에베소서는 우리의 구원을 위한 성부, 성자, 성령의 영광스러운 사역에 대해서 또 우리 구원의 목적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밝히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은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찬송하게 하기 위함이며, 이 구원을 통해 이 땅에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공동체를 이루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디도서 2장 14절 말씀을 보면 우리 구원의 목적에 대하여 선한 일에 열심 하는 하나님의 친 백성을 만들기 위함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 드리면 새로운 생명, 새로운 사회를 이루는 것이 하나님의 구원의 목적이라는 것입니다. 존 스토트는 그의 에베소서 강해 제목을 『하나님의 새로운 사회(God's new society)』라고 했습니다. 에베소서의 내용을 살펴보면 1장에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늘에 속한 신령한 모든 복을 주셨다고 말씀합니다.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이란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계획하시고, 성자와 더불어 언약하신, 죄인들의 구원과 구원받은 백성에게 베푸시는 모든 선한 것들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모든 신령한 복,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능력으로 우리에게 주시는 구원의 모든 은혜를 말씀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구원의 최종적인 모습은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가 되었다”는 말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공동체가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하늘에 있는 존재들, 천사들이나 먼저 하나님께 가 있는 우리 신앙의 선배들이나, 그리고 땅에 있는 우리들과 우리 뒤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될 모든 사람들까지 다 하나가 되는 것,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이며 그것이 바로 구원의 궁극적인 모습인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지상에 사는 동안 구원의 은혜로 말미암아 나중에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과 땅의 모든 것들이 하나가 되는 그때까지 이 땅에서 우리들은 하나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구원 받은 자는 성화의 삶을 살아야 한다
에베소서 2장의 말씀을 보면 우리를 구원하신 과정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를 살리사 십자가로 화목하게 하셨습니다. 화목은 무엇일까요? 서로 불화했던 둘 이상의 존재가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화목을 만들어냈습니다. 먼저는 하나님과의 화목이 기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우리 모두가 서로 화목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화목하게 되었고, 함께 성전으로 지어져 갑니다. 3장은 잠시 곁길로 갑니다. 이와 같은 영광의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이 사도 바울 자신에게 주어졌다고 합니다. 그리고 4장에서 다시 본래의 말씀으로 돌아오면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우리를 화목하게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이방인과 유대인 사이의 중간에 막힌 담을 허무셨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렇게 하나 되게 하시는 것을 힘써 지켜야 합니다. 하나 되게 하시는 것을 힘써 지키는 성도의 삶은 새 사람의 삶입니다. 너희는 구습을 쫓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으라. 새 사람을 입으라는 것은 우리가 새로운 존재가 되었으나 이제는 새로운 옷을 입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새로운 신분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새로운 신분에 걸맞은 옷을 입어야 됩니다. 이것이 새로운 옷입니다. 새 사람을 입으라는 말씀은 새로운 존재에 걸맞은 새로운 옷을 입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죄 사함을 받고 새 생명을 얻었다면 이제부터는 새로운 옷을 입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렇게 새로운 옷을 입고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성화라고 부릅니다. 성화, 즉 새롭게 된 우리들이 하나님의 자녀로 거룩한 백성이 되었으니 이제는 하나님의 영광에 합당한 자로, 새로운 신분에 합당한 자로 살아야 합니다. 그러한 삶이 바로 성화입니다.
두 가지 방향의 성화
성화는 두 개의 방향으로 이루어집니다. 하나는 거룩함을 이루는 방향입니다. 거룩함을 이루는 방향에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즉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삶입니다. 우리는 예배를 통해, 찬양과 기도를 통해 하나님 앞에 나아갑니다. 이것은 물론 개인적으로도 할 수 있는 일이지만, 무엇보다도 공동체가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예배는 항상 공동체로서 진행이 되는 것입니다.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가운데 있다”라고 말씀하신 주의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두 세 사람이라고 하는 것은 공동체의 모임을 말씀하고는 것입니다. 예배에 있어서나 기도에 있어서나, 공동체의 예배, 공동체의 기도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물론 개인의 경건도 중요합니다. 한적한 곳에 가서 단독자로서 하나님을 만나는 일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로서 살아가는 모습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공동체의 예배와 공동체의 기도가 없으면 이 모든 것이 의미가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감, 하나님이 그 앞에 있어 하나님을 향해 나아가는 방향, 바로 이것이 성화의 첫 번째 방향입니다. 이것 ‘거룩하게 함,’ 거룩한 삶입니다. 이것을 때로는 Vivification, “은혜 살림”입니다. 성화의 두 번째 방향은 죄에 대한 것입니다. 죄를 제거하여 깨끗하게 하는 것입니다. 죄를 제거하여 깨끗하게 하는 것을 굉장히 강력한 의지로서 표현하는 용어는 “죄를 죽임”입니다. 우리가 천국 갈 때까지 우리 몸에서 죄가 죽을까요? 우리가 천국에 갈 때까지 우리 몸에서 죄는 결코 죽지 않습니다. 이것은 죄에 대한 우리의 단호한 자세를 표현하는 용어입니다. 우리는 죄를 죽이려고 하는 단호한 결심과 자세를 가지고 죄를 대적해야 합니다. 이렇게 해서 죄를 죽이는 삶을 Mortification 이라고 부릅니다. mort는 것은 죽음을 의미합니다. 즉 mortification은 죽이는 것입니다. 무엇을? 죄를 죽이는 것입니다. 이렇게 은혜를 살리고 죄를 죽이는 것이 성화입니다. 은혜를 살리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것이고, 죄를 죽이는 것은 죄를 향한 것입니다.
성화의 삶은 공동체적이다
우리는 믿고 구원을 받고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다면 새로운 옷을 입어야 합니다. 이 새로운 옷은 성화의 옷입니다. 성화의 옷의 겉감은 거룩함을 향하는 것이고, 성화의 옷의 안감은 죄 씻는 죄 죽임의 삶입니다. 그리고 이 옷은 항상 공동체적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은 바로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25절 이하에는 성화의 두 번째 모습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화의 두 번째 모습은 mortification 입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가 읽은 25절로 32절까지의 내용입니다. 먼저 25절에 “거짓을 버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거짓을 버리는 것은 혼자 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다른 사람과 관계해서 행하는 것일까요? 거짓을 버리는 것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이 성화가 공동체적이라고 말씀드린 이유입니다. 공동체적이라고 하는 것은 항상 이렇게 상대가 존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거짓을 버리라”고 할 때 거짓을 행하는 대상이 있기 때문입니다. 즉 관계가 있고 공동체가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성화의 두 번째 모습, 죄 죽임은 항상 공동체적이다 라고 하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다음 말씀도 보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웃과 더불어,” 바로 이 말씀이 성화가 공동체적이라고 하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왜 우리가 거짓을 말하지 말아야 하며, 참된 것을 말해야 할까요?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라.” 그리스도인의 삶은 공동체 안에서의 삶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연단은 공동체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자기의 인격을 성장시키기 위해서 항상 공동체 안에서 성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른 곳에서는 그렇게 착한 사람이 교회만 오면 싸움을 합니다. 그러면 그것은 온당한 것이 아닙니다. 다른 곳에서는 상냥하게 말하는 사람이 교회에 와서는 항상 투지가 넘친다면 그것은 올바른 것이 아닙니다. 청교도들은 이런 우리의 모습을 “위선”이라고 했습니다. 청교도들은 위선자들에 대해 교훈을 많이 했습니다. 그리고 위선자들은 하나님께 복을 받지 못한다고 힘써 가르쳤습니다. 하나님의 복은 영원한 운명과 영원한 상급에 대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주신 모든 선한 것들에 대한 것입니다. 그런 것들은 위선과 거짓으로서는 얻을 수가 없습니다.
마귀는 우리 죄를 이용하여 공동체를 깨뜨리려 한다
두 번째로는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라”고 합니다. 분냄도 상대가 있습니다. 물론 우리는 혼자 화를 낼 수 있습니다. 그럴 때에도 항상 대상이 있습니다.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라.” 이 말씀은 우리가 어떨 때는 화가 나기도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화가 나지만 죄 짓는 데까지는 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해질 때까지 분을 품지 말고 풀라는 것입니다. 왜 분을 신속하게 풀어야 할까요? 그다음에 나오는 이유 때문입니다. 27절을 보면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마귀가 그 틈을 이용하기 때문입니다. 마귀는 그 기회를 이용하여 교회의 하나 됨을 깨뜨리려고 합니다.
세 번째는 “도둑질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도둑질은 공동체를 해치는 일입니다. 물론 생활이 어려워서 도둑질을 했을 수 있습니다. 물론 이에 대해 일정한 부분 공동체 안에 책임이 있습니다. 우리 가운데 어려운 사람이 있으면 공동체가 그를 살피고 필요한 부분들을 도와줘야 하는 책임이 있습니다. 공동체는 그러한 일들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어려운 사람도 우리 공동체 안에서 그 어려움을 여러 성도들의 관심과 기도와 도움 속에서 이겨 나갈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사람도 분명히 자립의 목표를 가져야 합니다. “도둑질하는 하는 자는 다시 도둑질하지 말고 돌이켜 가난한 자에게 구제할 수 있도록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 한때는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립을 목표로 성실하게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자립하고 난 다음에는 선한 일, 즉 자기처럼 어려움 가운데 있는 사람을 돕는 일을 하라는 것입니다. 네 번째는 “더러운 말을 입 밖에 내지 말라” 입니다. 더러운 말은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31절) 등을 말씀합니다. 이 모든 것은 그 사람의 속에 있는 악의에서 나옵니다. 그리스도인은 자신 속에 있는 악의와 함께 이 모든 더러운 말을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오히려 선한 말로 은혜를 끼쳐야 합니다. 다섯 번째는 “서로 친절하라” 입니다. 32절 “서로 친절하라, 불쌍히 여기고 용서하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셨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셨기 때문에 우리도 역시 하나님을 닮아야 하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공동체를 이루는 것은 시대적 사명이다
오늘 우리는 성화가 공동체적이라는 사실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신앙이 정말 아름답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공동체가 필요합니다. 공동체 안에서 훈련받고 연단받고 변화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공동체 안으로 부르셔서 그 안에서 연단 받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연단 받은 자들이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들이 연합되는 그 하나 됨의 자리에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새사람의 윤리는 공동체적이라고 하는 사실을 꼭 기억을 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지금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목적은 아름다운 공동체를 이루는 것이다. 저는 이것이 우리 시대를 향하신 시대적인 사명이라고 봅니다. 물론 아름다운 그리스도 몸의 공동체를 이루는 것은 우리가 가지는 존재의 사명입니다. 그러나 시대적으로 교회가 아름다운 공동체성이 퇴색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아름다운 공동체를 이루는 것이 우리 시대에 더욱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그럴 때 이것이 시대적 사명이 되는 것이지요. 시대의 경향에 대한 답이 시대적 사명입니다. 아름다운 공동체를 이루는 것이 우리 시대를 향한 답일 때 이것은 시대적인 사명입니다.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나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된 공동체를 아름답게 이루어야 하지만 무엇보다도 우리 시대에 더욱더 이 부분이 필요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서대신교회가 받은 이 시대적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고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한 서대신 교회가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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