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주님이신 예수를 바라보자(3)_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는 이유(롬 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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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3-08-01본문
믿음의 주님이신 예수를 바라보자(3)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는 이유(롬 8:32)
간증, 하나님은 내 아버지
제가 어느 교회에서 사역할 때 그 교회에서 큰일을 감당하는 권사님의 간증을 하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분은 친가와 시가 부모님 모두가 장로님 권사님이신 집안이었고, 본인은 여전도회 회장이요, 남편은 안수집사였는데, 문득 이제까지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던 자신의 구원에 대하여 의문이 생겼다고 합니다. 아무에게도 감히 말하지 못하고 혼자 고민하다가 불경을 들고 읽기 시작을 했다고 합니다. 한동안 불경을 읽다가 어느 날, “내가 참 바보 같다. 구원을 확인하려면 평생 믿어왔고 읽어왔던 성경 말씀을 읽어야지 갑자기 불경을 읽어서 뭘 하려고 하느냐” 하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그때부터 그 권사님은 창세기 1장 1절부터 성경을 차근차근 읽어나가기 시작 했습니다. 그런데 로마서 8장 32절, 오늘의 본문 말씀을 읽게 되었을 때, 그때 자기가 품고 있었던 모든 의심과 염려들이 갑자기 마음속에서 다 사라지는 체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이 말씀을 읽게 되었을 때 깨달음이 임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의 아들을 아끼지 않고 주셔서 십자가에 매달아 죽게 하셨는데, 그렇다면 우리에게 그 무엇인들 내주시지 않겠느냐? 그것이 구원이라면 구원도 주실 것이고, 그것이 축복이라면 축복도 주실 것이다. “그리스도를 주셨다면 무엇이든 아끼지 않고 다 주실 것이다. 그리스도를 주신 분이 구원을 안 주실까?” 그리스를 주셨다면 구원도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주셨다면 모든 것을 다 주시는 것입니다. 그 순간 마음속에 깨달음이 오고 그를 얽매이고 있었던 모든 무거운 것들이 풀리는데 갑자기 온 세계가 밝게 빛나더랍니다. 공기도 빛나고 창 밖의 정원도 밝게 빛나더래요. 창문을 통해서 불어오는 바람이 뺨에 부딪히는데 그렇게 부드럽고 좋았다고 합니다. 그 이후에 그분의 인생이 바뀌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 그리스도를 주시기까지, 자기 아들을 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 그 사랑이라면 우리에게 더한 모든 것들도 주실 수 있다는 믿음이 마음속에 새겨졌습니다. 그리스도보다 더 귀한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자기 아들보다 더 소중한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그 아들을 주셨다면 다른 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 후부터는 “하나님은 내 아버지이시다”라는 생각이 이분의 마음속에 있어서 어디에 가도 두렵지 않고 무슨 일을 만나도 무섭지 않았고, “하나님 내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해 모든 것을 내어주신다” 이것을 믿으면서 살아왔노라고 고백을 했습니다.
버림받는 아들의 아픔과 고통
로마서 8장은 지난주에 대략 그 내용을 살펴 본대로 구원의 확실성에 대하여, 하나님의 사랑의 영원함에 대하여 논증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전체의 메시지 가운데에 가장 중간에 아주 영광스럽게 보석처럼 박혀 있는 말씀 중에 하나가 바로 32절의 말씀입니다. 32절 말씀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관계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버지요 예수님은 아들로서, 성부와 성자의 관계이지만 이 관계가 얼마나 밀접한 관계인지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친아들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하나님께서 아무 가치도 없는 우리 죄인들을 위하여 친아들을 내어주셨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께서 죽음에 이르도록 십자가에 매달려 피 흘려 돌아가시는 그 자리까지 그를 내어버리셨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내버리심을 몸소 겪으셨습니다. 그것이 겟세마네 동산에서는 피땀 흘린 기도로, 십자가 위에서는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외침으로 나타났던 것입니다. 이 버리심의 아픔과 고통이 예수 그리스도에게는 얼마나 큰 아픔이 되었는지 제자들에게 “내가 민망하여 죽게 되었다”라고까지 말씀합니다. 그리하여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라고 기도드리는 자리까지 나아갑니다. 사랑하는 아버지에게 버림받는 아픔과 고통과 괴로움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아픔 속에 그리스도와 함께 모든 것을 주신 하나님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도 편치 않았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운명하시기 직전 3시간 동안 온 하늘은 캄캄하게 변해버렸습니다. 해도 빛을 잃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여 나의 영혼을 아버지께 부탁하나이다” 말씀하시고 운명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자기 아들을 죄인들을 위하여 내어주셨던 것입니다. 의인들을 위해 내주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국가의 공로자를 위해서 내주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법을 어겼던 원수들을 위하여 내어주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아들을 내어주시는 것은 아버지의 아픔과 고통이었습니다. 그 아픔과 고통이 캄캄한 어둠 속에, 그 절망적인 외면 속에 나타나 있었던 것입니다. 여기에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극진하신 사랑이 나타나 있습니다. 존 머레이는 이 본문을 가지고 설교하면서, 여기에는 하나님의 익스트림 러브(extreme love)가 나타나 있다고 말합니다. 익스트림(extreme)은 '극한의‘ 라는 뜻입니다. 죄인들을 위하여 자기 아들을 내어주시는 것에 하나님의 사랑이 극한적으로 나타나 있다는 것입니다. 이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자기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내어주셨습니다. 자기 아들을 내어주실 때 자기 아들이 받을 모든 것들을 함께 내주신 것입니다. 자기 아들이 받게 될 영광, 자기 아들이 상속하게 될 하나님 나라의 모든 기업들, 이런 모든 것들을 우리들에게 주신 것입니다.
사랑의 크기는 희생의 크기로 증명 된다
우리는 어떻게 그 모든 것들을 받는 자가 되었을까요? 우리는 하나님의 친아들을 구주로 믿어 하나님의 양자가 되어 이 모든 것들을 받게 되었습니다. 친아들은 아픔과 고통을 겪었는데 우리는 양자가 되어 친아들이 받을 모든 사랑과 모든 축복과 모든 기업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하나님의 사랑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친아들이셨던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도 함께 있었습니다. 요한복음 15장 9절 말씀을 보면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예수님께서 13절, 14절에서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친구라 부르시면서, 친구 되는 우리를 위하여 자기의 생명을 버리셨던 것입니다. 요한복음 10장 10절 이하의 말씀을 보면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과 같은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사랑이 크기가 있다면 그 크기는 무엇으로 증명이 될까요? 희생으로 증명이 되는 것입니다. 부모님의 사랑이 크다고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부모님들이 자녀들을 위하여 희생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희생이 세상의 어떤 누구의 희생보다 더 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큰 것은 무엇으로 증명이 될까요? 하나님께서 희생하신 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증명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희생하신 것은 자기의 친 아들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큰 것은 무엇으로 증명이 되는 것일까요? 예수님께서 자기의 생명을 우리를 위하여 희생하신 것을 통해 증명이 됩니다. 에베소서 5장 25절 말씀을 보면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자기의 목숨을 바치신 겁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의 보증이다
그런데 더 나아가서 그리스도의 희생과 죽음은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신다는 것을 보증하고 있습니다. 제가 서론에서 말씀드렸던 권사님이 로마서 8장 32절의 말씀에 도달했을 때 깨달은 것이 무엇일까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이 있기 때문에 나의 구원은 확실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있기 때문에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와 은혜가 확실하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내게 모든 것을 내어주신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믿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이 모든 것을 확실하게 보증하고 있습니다. 보증이 없다면 믿을 수 없습니다. 사회생활을 할 때나 금융기관에 가서 일을 볼 때 보증이 없이는 아무 일도 못합니다. 옛날에는 은행에서 대출을 받을 때 보증인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부도가 나면 보증인이 모든 것을 다 책임져야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셨다고 하셨을 때 그 모든 것의 보증이 되셨습니다. 우리에게는 종종 우리의 현실이 이 말씀을 부인하는 것처럼 보이는 때가 있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들이 계속되고, 힘들고 어려운 사정들이 변하지 않는 때가 있습니다. 그때 여러분,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라.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면 하나님의 사랑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면 하나님의 보증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이미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시겠다 약속하셨고 그 약속을 확실하게 보증하셨으니 반드시 이루실 것이다. 우리는 확신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의와 우리의 거룩함과 우리의 영화를 확실히 믿을 수 있는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지키시고 보호하신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믿을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십자가 위에 못 박아 죽이셨기 때문입니다. 십자가가 바로 이 모든 것의 보증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느 때 어디에서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아야만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여러분의 눈앞에 보이지 않습니까? 십자가가 여러분의 마음에 위로가 되고 기쁨이 되고 용기가 되지 않습니까?
십자가를 바라보라
십자가를 바라볼 때 우리는 예수님께서 약속 하셨던 모든 것을 함께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내가 떠나가면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보내겠다” 약속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약속하셨던 또 다른 보혜사, 즉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속에 임재하시고 내주하십니다. 내주하시는 성령은 결코 우리를 떠나지 않으십니다. 또한 우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고, 우리의 삶을 하나님의 거룩함으로 인도해 가고 계십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도우시고 계십니다. 우리의 영혼을 붙드시고, 우리 영혼과 함께 기도하시며,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도록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고 계십니다. 이와 같은 성령의 역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볼 때 확실하게 우리에게 보증이 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지금도 우리를 위한 대언자로서 하나님께 말씀하고 계십니다. “내가 그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었나이다.” 대언은 변호입니다. 변호의 논증은 십자가 입니다. “내가 그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었나이다.” 이 논증 앞에서는 사탄의 모든 음모가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사탄이 우리를 찌르고, 우리를 아무리 괴롭혀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 흘리심 앞에서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우리의 삶에 그 어떤 아픔과 고통이 있다 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 흘림이 이 모든 것들을 다 덮어 나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굳게 붙들 때, 우리가 이 세상에서 그 어떤 아픔과 고통을 겪는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우리 죄를 모두 깨끗이 씻으시고 용서하셨다는 사실, 우리를 의롭다 하셨다는 사실, 그리고 우리에게 최후 구원을 허락하시되 이 땅에서 당했던 모든 고난들은 아무 것도 아닌, 비할 데 없는 영광을 우리에게 허락해 주신다는 사실을 믿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참 위로와 참된 기쁨은 어떻게 임하는 것일까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볼 때 입니다. 그분을 바라볼 때 그분의 십자가, 그분의 피 흘리심, 이 모든 것들이 우리의 마음에 위로가 되고, 힘이 되고, 용기가 되고,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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