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주님이신 예수를 바라보자(7)_영원 전에 구속의 언약이 있었다(요 10: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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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3-08-29본문
믿음의 주님이신 예수를 바라보자(7)
영원 전에 구속의 언약이 있었다(요 10:17-18)
영원 전에 이루어진 구속의 언약
하나님은 이렇게 우리를 구원하실 뜻을 세우시고 구원의 계획을 세우십니다. 그런데 이 구원의 계획을 이루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행하신 놀라운 일이 있었는데 그것은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구원 사역에 모두 함께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특별히 성자 되시는 분이 죄인들의 구원을 위하여 중보자가 되시는 일을 작정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구원을 삼위일체 하나님의 의논과 합의와 결정으로 이루어 나가셨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 과정 속에서 성자께서 죄인들을 위하여 대신 죗값을 담당하시는 중보자가 되시게 하시는 일을 작정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성자는 중보자로서 죄인들의 죄를 감당하기 위하여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시기로 하신 것입니다. 삼위 하나님 사이에 이 모든 의논과 결정들이 이미 영원 전에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가리켜서 구속의 언약이라고 부릅니다. 성경은 여러 곳에서 이 일들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스스로 그러나 아버지의 결정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 말씀은 요한복음 10장의 일부 말씀입니다. 여기 요한복음 10장은 몇 개의 비유로 이루어져 있는데 1절부터 6절까지는 양의 우리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양의 우리는 반드시 문으로 들어가야 된다. 양이든지 목자든지 문을 통과해야 된다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문을 통하지 않으면 목자의 옷을 입었는데 우리를 넘어 다니면 그는 참된 목자가 아닙니다. 우리를 넘어 다니는 존재는 강도요 도둑밖에는 없는 것이죠. 그렇다면 이 우리에 있는 문, 양이든지 목자든지 누구든지 이 문을 통과해야 되는데 이 문은 누구를 가리키는 것이냐?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으면 그 누구도 우리에 들어갈 수가 없고 우리에서 나올 수 없습니다. 문을 통과하지 않고 다닌다면 그것은 비정상이죠. 예전에 동네 공터에 서커스단이 오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러면 서커스를 보고 싶은데 집에서 보내줄 수 없는 아이들은 서로 모여 어떻게 하면 서커스를 볼 수 있냐 하며 의논이 많았죠, 한 사람이 이런 이야기를 한 것입니다. 밤에 몰래 서커스 천막을 들치고 들어가는 거죠. 그러다 걸리면 “야 이 녀석아 어딜 들어와” 하는 거죠. 그러자 다른 친구가 이렇게 말합니다. “머리부터 들어가지 말고 엉덩이부터 밀고 들어가.” 그러면 지키던 사람이 “야 거기는 나가는 데가 아니야” 하면서 엉덩이를 잡아당긴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고 그리스도 몸의 지체가 되는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밖에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말미암지 않고는 구원을 받을 길이 없으며, 교회 공동체의 지체가 될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1절로 7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양의 문이시기 때문입니다(7절). 8절부터는 그리스도께서 참된 목자라고 말씀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참된 목자로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방법은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하시는 가운데 참 수수께끼 같은 말씀을 하십니다. “내가 내 목숨을 버리는 것은 그것을 내가 다시 얻기 위함이니 이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느니라”(17절). “이를(생명을, 목숨을)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18절). 양들을 위해 바친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누가 빼앗아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스스로 바쳤다는 말씀입니다.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모든 것들은 예수 그리스도 자신의 의지의 결과입니다. 그런데 18절 끝을 보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도대체 언제 하나님 아버지에게로부터 생명을 바치는 일에 대한 말씀을 들었고, 스스로 양들을 위하여 생명을 바치겠다고 결심을 하셨을까요?
성부와 성자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
성경을 보면 예수님과 하나님 아버지 사이에 이미 이런 일들에 대하여 의논이나 무슨 결정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구절들이 있습니다. 요 5:30 말씀을 보면, “내가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 듣는 대로 심판하노니 나는 나의 뜻대로 하려 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뜻대로 하려 함으로 내 심판은 의로우리라.” 여기 보면 “나는 나의 뜻대로 하려 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이에 뜻대로 하려 한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육신의 출발이 있는 분입니다. 그런데 지금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보면 육신의 출발 이전에 하나님과 무슨 의논이 있었고 무슨 결정이 있었다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게 하는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요 6:38을 보면,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라고 말씀합니다. 즉 예수님은 분명히 육신적으로는 어머니에게서 출생하게 된 시점이 있는 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하늘에서 내려왔다고 말씀합니다.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그런데 아버지의 뜻은 무엇이었습니까?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즉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생을 얻는 이 일이 아버지의 뜻인데 그 뜻이 하늘에서 내려오기 전에 이미 알려졌다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 17:4, 5도 보면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아버지여 창세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서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여기 말씀을 보면 이런 말씀이 나와요.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창세전에’ 예수님은 아버지, 즉 성부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런 모든 것을 생각할 때 창세전에, 즉 영원 전에 성부와 성자 사이에 무엇인가 의견이 있었고 그것을 가지고 서로 무엇인가 목표를 정하고 결정하는 일이 있었다 하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흔히 “평화의 의논”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슥 6:13은 이스라엘의 미래, 영광의 완성, 하나님 나라의 회복에 대해 예언하면서 ‘싹이라고 하는 사람’이 와서 회복한다고 말씀합니다. 여기의 싹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이사야서를 보면 싹에 대한 예언이 있습니다.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이 돋아나,” 이 싹은 바로 오시는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이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고 영광도 얻고 그 자리에 앉아서 다스릴 것이요 또 제사장이 자기 자리에 있으리니 이 둘 사이에 평화의 의논이 있으리라.” 싹이라 이름 하는 자가 왕이요 제사장으로서 이 회복의 사역을 하는데 그 사역을 위한 의논이 있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중보자를 세워 죄인을 구원하신다는 약속
그 의논에서 특별히 죄인의 구원을 위한 구원의 방법, 즉 죄인은 죗값을 반드시 치르되 중보자를 세워 죗값을 치르게 하고 그것을 믿는 자들에게 구원의 은혜를 주기로 결정하셨던 것입니다. 죗값은 무엇일까요? 죽음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 입니다. 그래서 성자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와서 육신으로 죽임을 당하는 일을 감당하기로 하신 것입니다. 그것을 결정할 때 성자께서 “내가 감당하겠습니다,” 스스로 그 일을 감당하기로 하셨습니다. 그렇게 해서 성자께서 이미 영원 전에 죄인의 구원을 위하여 죄인들을 대신해서 죗값을 치른다고 하는 이 일을 결정한 것입니다. 성자께서 죄인들을 대신하여 죗값을 치르기 위하여 필요한 일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 육신은 죗값을 치러야 되기 때문에 무죄 상태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는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시되 죄 없는 분으로 오셔야 했습니다. 죄 없는 분으로 오시기 위하여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성령으로 잉태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남성과 여성, 즉 아버지와 어머니라고 정상적인 관계 속에서 탄생하는 사람은 모두 죄를 가진 존재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탄생하신 것은 죄 없는 인간이 되시는 하나님의 방법이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는 죄가 없으신 분으로서 죄인들을 대신하는 분이 되셨습니다. 그래서 이분을 우리는 중보자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죄인 사이를 화목하게하기 위하여 중개인이 되셨고, 이 일을 성취하기 위하여 친히 보증인이 되셨습니다. 죄인이 하나님과 화목하기 위하여 필요한 조건이 무엇일까요? 죗값을 치르는 것입니다. 또한 죄인이 복권되기 위한 조건은 무엇일까요? 죄인들이 의로운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화목하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입니다. 그 조건 두 가지를 모두 보증인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담당하시는 것입니다. 그 내용이 하나님 아버지와 성자 예수 사이에 영원 전에 이미 약속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구속의 언약이라고 부릅니다. 우리가 사도신경에서 그리스도에 대해 고백하는 8가지 사실은 모두 구속의 언약에 서 결정된 사실들입니다. 죄인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영원 전에 성부 하나님과 이미 의논과 합의와 결정이 있었습니다. 구속의 언약이 있어야 우리가 믿음으로 구원 얻는다고 하는 일이 가능하게 됩니다. 즉 구속의 언약이 있어야 은혜 언약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의로우신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계속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묵상하는 중에 있습니다. 아직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모든 일들을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지 않습니다. 그것에 도달하기 위한 작업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소위 말하면 기초 작업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 기초가 무엇입니까? 그 기초는 하나님의 영원한 뜻입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 속에 구속의 언약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의 구원이 우리에게 달려 있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라고 하는 사실을 흔들리지 않게 붙들 수 있습니다. 우리의 구원이 영원 전에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 우리는 우리의 구원이 즉흥적이거나, 우연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통해 깊은 감동을 받게 됩니다. 영원 전에 이미 하나님께서 정하신 일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을 이루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억지로 죽지 않으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도 보면 “내가 스스로”라고 말씀하십니다. 십자가에 죽으심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스스로 결정하신 일입니다. 십자가의 죽음은 그분이 자신의 뜻대로 정하셨기 때문에 이루어진 것입니다. 죄인은 반드시 죗값을 치러야 합니다. 하나님은 의로우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믿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죄인을 대신하여 죄 없는 중보자가 죗값을 대신 치르되 죄인은 그것을 “믿는다”고 인정해야 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도장을 찍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영원 전에 이 모든 일들을 작정하셨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스스로 이 모든 일을 자원하시고 이 모든 일을 계획하셨다 할지라도 막상 그 일은 우리가 인정하고 믿어야 우리 것이 되게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믿기 전에 이미 하나님께서는 영원 전에 이 모든 일들을 작정하셨고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 전에 우리의 죗값을 대신 지시기 위해 십자가 위에서 죽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러나 오늘 이 순간 우리는 이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그래야 이 모든 것들이 우리 것이 되는 것입니다. 영원 전에 작정하셨더라도 믿는 자에게 그 은혜가 임하는 것은 바로 지금 믿음의 순간에 우리의 것이 된다는 것이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복음입니다. 우리 구원은 영원 전에 삼위일체 하나님의 의논 속에서, 결정 속에서, 언약 속에서 이미 다 정해진 것입니다. 그것이 오늘 우리의 것이 되도록 우리는 믿음으로 예수님을 바라보고 또한 그 은혜를 감사하면서 우리를 구원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삶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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