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마누엘의 징조를 구하라(2)_친히 징조를 주신 하나님(사 7: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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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2-12-27본문
임마누엘의 징조를 구하라(2)
친히 징조를 주신 하나님(사 7:10-16)
불신앙은 하나님께 징조를 구하지 않는다
저는 매년 성탄절을 맞이할 때마다 성탄이 오늘날 우리에게 도대체 어떤 의미가 있으며, 우리의 현실의 삶에 어떻게 도움이 되는가 하는 문제를 놓고 늘 고민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이사야서 7장의 말씀을 읽으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이란 우리의 현실의 삶에, 우리 삶의 위기에 하나님께서 역사하신다는 징조로써 우리에게 믿음을 요구하는 사건이라는 깨달음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사야서 7장은 유다와 아하스 때에 북이스라엘과 아람 나라가 연합해서 유다를 침공하는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아하스 왕은 국가적인 위기를 맞이했습니다. 그는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고심하여 몇 가지 안을 생각해 내었습니다. 그것은 아람 나라 북쪽에 있는 앗수르에게 조공을 바치고 앗수르의 도움을 얻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앗수르를 의지하는 것이 믿음의 백성이 가져야 하는 방법이 아니라는 사실을 가르쳐주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믿음의 길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너희가 굳게 믿지 아니하면 너희는 굳게 서지 못하리라.” 즉 하나님을 믿고 언약의 백성으로서 자기의 삶을 올바로 한다면 하나님의 구원이 그들에게 임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에게 북이스라엘과 아람 나라는 연기나는 두 부지깽이 막대기에 불과했습니다. 그들은 불에 타서 없어지고 말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이 믿는 자들에게 임할 것입니다. 이 말씀을 확증하기 위하여 하나님께 징조를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아하스 왕은 “나는 징조를 구하지 않겠습니다. 하나님을 시험하지 않겠습니다. 나는 징조가 없어도 믿습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는 믿음이 있는 것처럼 하나님께 징조를 구하지 않겠다고 하였지만, 오히려 그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믿지 않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원치 않고 있었습니다. 이미 뒤로는 앗수르에 사자를 보내고 나름대로 궁리를 다 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새삼스럽게 하나님의 도우심을 얻기 위하여 회개하고 우상들을 철폐하고 산당들을 제거하는 등 거추장스러운 일들을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냥 슬그머니 앗수르하고 내통만 하면 될 일인데 무슨 난리법석을 칠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는 하나님 나라의 왕이었지만 믿음으로 행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온전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을 결코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 마음속에 살아있는 믿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징조를 주셨다
하나님께 징조를 구하지 않는 아하스 왕에게 하나님께서 친히 징조를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때 주셨던 징조가 14절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이 말씀은 마리아가 잉태했을 때 천사가 요셉에게 나타나서 한 말씀입니다. 이는 이사야서 7장 14절 말씀, 예언의 성취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므로 아하스 왕에게 지금 하나님께서 주신 징조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의 예언이었던 것입니다. 저는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을 갖게 되었습니다. 지금 아하스가 이 말씀을 들었던 때는 예수님의 탄생으로부터 730년 정도 이전입니다. 730년 정도 이전에 지금 현실에 닥쳐온 위기 앞에서 하나님의 구원을 말씀하시면서 730년 후에 있을 일을 징조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지금 현실에 위기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위기를 하나님의 능력으로 물리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믿음을 위하여 징조를 보여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위기가 오기 전의 일로 징조를 보여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지금 주신 한 아기 탄생의 징조는 나중에 730년 후에 성취가 된 것입니다. 730년, 너무나 먼 미래가 아닙니까? 너무나 먼 미래에 있을 어떤 일을 가지고 오늘날 당하고 있는 현실 위기를 극복하는 하나님의 구원의 징조로 사용할 수 있을까요? 이때 발휘되어야 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믿음입니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이 구원하신다는 사실을 믿는 것도 믿음입니다. 그러나 먼 미래의 것을 믿고 하나님의 구원을 믿는 이것이 바로 진정한 믿음인 것입니다. 그래도 저는 납득이 되지 않았습니다. 더군다나 15절 말씀 보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가 악을 버리며 선을 택할 줄 알 때가 되면 엉긴 젖과 꿀을 먹을 것이라.” 학자들은 이 부분을 예수 그리스도 메시아께서 아기로 오셔서 이렇게 음식을 먹으면서 성장하신 인간적인 성장에 대한 말씀이라고 해석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냥 쓰여 있는 대로 읽으면 이렇게 됩니다. “주께서 친히 증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그가 악을 버리며 선을 택할 줄 알 때가 되면.” “악을 버리며 선을 택할 줄 알 때가 되면,” 이 말은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을 때가 되면” 이란 말입니다. 즉 여기 아기 탄생의 예언은 한 아기가 탄생하고 아기가 한 10살 정도 되면 하나님께서 구원을 베푸신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8장에서 이루어집니다. 8장을 되면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에게 둘째 아들을 주십니다. 그리고 그 아들의 이름이 마헬살랄하스바스입니다. 이 이름의 뜻은 “노략을 당한다” 입니다. 실제 이사야 선지자가 아들을 낳고 이 아들이 10살 정도 될 때에 역사적으로 엄청난 일이 발생하게 됩니다. 유다를 침공하기 위하여 동맹을 맺은 두 나라가 멸망하는 일이 일어나는 것이지요. 아람 나라는 725년에 멸망하고 북이스라엘은 721년에 멸망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730년을 뒤로 내다보면서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예언의 말씀은 730년 후에 있을 메시아 탄생의 예언이기는 하지만, 730년에 탄생할 메시아를 막연하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10년 이내에 일어나는 역사의 격변을 또한 가리켰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예언이 있고 난 다음 불과 한 10년 사이에 두 나라가 다 망했습니다. 아기 탄생의 예언을 하나님께서 징조로 주시면서 이 징조가 현실의 삶과 동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주시기 위해서 이사야 선지자에게 아들을 주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아들이 젖을 뗄 무렵에 아람 나라가 망하고 그 아들이 10살 정도 되었을 때에 북 이스라엘이 멸망한 것입니다. 어느 날 성경을 읽다가 이 역사적 사실과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의 예언과의 관계가 저에게 충격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단지 예언 속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혹은 오늘 우리처럼 단지 역사적 사실로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매년 성탄절이 되면 지켜야만 하는 기념일도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 속에 찾아오시고 우리와 삶을 함께하시며 우리 삶의 위기를 하나님께서 도와 물리치신다는 하나의 약속으로 주어졌던 것입니다.
임마누엘의 징조,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신다
이와 같이 인생의 위기를 맞이한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면, 그리고 그분을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구원의 징조로 믿는다면 하나님께서 그의 믿음에 역사하실 것입니다. 성탄절은 단순한 기념일이 아닙니다. 성탄절은 하나님께서 지금도 우리의 삶 속에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계시입니다. 성탄절은 지금도 하나님께서 우리와 동행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우리들에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 역사하신다는 사실을, 우리의 삶에 찾아온 위기와 우리의 삶에 찾아온 난관들을 하나님께서 물리치신다는 사실을 우리들에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2천 년 전에 있었던 옛날 사건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때에만 있었고 그때만 유용했던 사건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우리의 영혼을 구원하는 구세주의 탄생이라고 하는 의미로만 머무르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별명이 임마누엘입니다. 임마누엘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의미입니다.
성경은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임마누엘,”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주를 창조하시고, 그 가운데 지구를 창조하시고, 지구에 에덴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곳에 아담과 하와를 두셨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에덴 동산에서 하나님께서 그들 가운데 함께하시는 가운데 살았습니다. 에덴 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는 언제나 하나님을 만났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곳은 하나님과 친밀한 사랑의 교제가 이루어지는 공간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일이 인간의 범죄와 타락으로 말미암아 그만 깨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타락한 죄인들을 구원하시는 일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과 함께하시는 일의 회복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과 함께 하시는 이것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실현시키시는 것입니다. 이 일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알려주는 상징이 성막이었습니다. 성막은 하나님의 영광이 그곳에 임재하여 이스라엘 백성들 한 가운데 거하시는 장소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진을 치면 한 가운데에는 성막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성막의 지성소에서는 구름이 하늘로 올라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진을 덮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낮에는 구름이 자기들의 진에 길게 뻗어 덮고 있는 것을 목도할 수 있었고, 밤에는 그 구름이 밝게 빛나는 불빛같이 빛나는 것을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이 구름이 바로 쉐키나라고 부르는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쉐키나, 즉 하나님의 영광은 하나님께서 눈에 보이는 상징으로 그 백성과 함께 계시는 상징이었습니다. 솔로몬 왕 때 성전을 지어 하나님께 봉헌할 때 지성소에 연기가 가득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 가운데 눈에 보이는 상징으로 함께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과 함께 계시는 분이셨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와서 자기 백성과 함께 거하시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었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사건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과 광야 시절 함께 계셨던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으로서 이 땅에 있는 자기 백성 가운데 찾아오신 것입니다. 우리가 천국에 가게 되면 그곳에서 누구와 함께 거하게 될까요? 모두 임마누엘을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임마누엘은 먼 옛날 예수님의 탄생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오늘도 세상 끝 날까지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아하스 왕 때의 임마누엘 아기의 탄생은 멀고 먼 후일의 사건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임마누엘 아기의 탄생은 단순한 하나의 예언도 아니고, 먼 미래의 어떤 일도 아닙니다. 현실을 위한 하나님의 다짐이었고, 현실을 위한 하나님의 약속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이것이 징조가 되는 것입니다.
한 아기의 탄생, 임마누엘의 하나님
오늘날 우리는 유례없는 경제적인 위기에 대한 전망에 대해서 듣고 있습니다. 그런 전망을 들을 때마다 우리는 우리의 삶은 위기라는 생각을 갖습니다. 현실적으로 우리 각 가정에는 갖가지 위기가 있습니다. 우리와 우리 자녀들이 이 세상을 자신 있게 살아가기에는 현실이 녹녹치 않습니다. 힘들고 어렵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한계도 있습니다. 우리가 잘난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다 평범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더욱 걱정들이 많습니다. 이럴 때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만일 너희가 굳게 믿지 아니하면 너희는 굳게 서지 못하리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믿을 수 있는 징조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손길, 하나님의 도우심을 약속하는 징조를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살아 역사하신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살피신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풍성케 하신다. 모든 위기를 하나님께서 극복하게 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과연 우리를 도우실 것이다.” 이 모든 것을 믿을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징조를 주셨습니다. 2천 년 전에 이미 태어난 아기의 탄생, 바로 그것을 우리에게 징조로 주신 겁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미 이것은 이루어진 사건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미 아이 탄생이라고 하는 징조를 알고 있습니다. 우리 눈으로 보고 있습니다. 매년 이 아기의 탄생을 기념하고 축하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 아기 탄생의 징조를 가지고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신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구원하신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 역사하신다” 는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믿음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합니다. 이미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징조가 나타나 있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믿음뿐입니다. “만일 너희가 굳게 믿지 아니하면 너희는 굳게 서지 못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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