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요약

모든 상황속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라(2)_위기속에서도 하나님을 예배하라(행 16:2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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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6-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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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상황속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라(2)

위기속에서도 하나님을 예배하라(행 16:25-34)



빌립보 사역의 역사적 의미

사도 바울은 성령의 인도를 받아 유럽의 첫 관문인 빌립보에서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유대인 회당을 찾지 못해 막막했으나, 강가에서 옷감을 염색하던 여인들과 대화하던 중 두아디라 출신의 자색 옷감 장수 루디아가 복음을 받아들이고 온 집안이 세례를 받았습니다. 루디아의 집에 거처를 정한 바울은 사역을 이어갔지만, 곧 난관에 봉착합니다. 바울을 따라다니며 괴롭히던 귀신 들린 여인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자, 수익이 끊긴 것에 앙심을 품은 여인의 주인이 바울과 실라를 고발하여 결국 두 사람은 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그날 밤에 일어난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빌립보 사역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동쪽으로 향하던 복음의 발길이 막힌 뒤 서쪽으로 방향을 틀어 처음 도달한 곳이 바로 빌립보였기 때문입니다. 이곳에서 복음 전파가 성공을 거둠으로써 로마 제국과 유럽 전역으로 복음이 뻗어 나갈 길이 열리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사도 바울의 빌립보 사역은 교회사적으로도 엄청난 사건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역사적인 사건은 한밤중에 일어난 일로부터 본격적인 힘을 발휘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밤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모두가 잠든 깊은 밤, 사도 바울과 실라는 찬송을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이 얼마나 오랫동안 찬송을 불렀는지는 알 수 없으나, 당시 감옥에 있던 모든 죄수가 그 찬송 소리를 들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유럽 전역으로 전파되는 복음

그 순간 갑자기 옥터가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큰 지진이 난 것처럼 격렬하게 흔들리더니 옥문이 활짝 열렸습니다. 마침 잠들어 있던 간수가 눈을 떠보니 상황은 이미 아수라장이었습니다. 감옥 문이 열린 것을 보고 모든 죄수가 도망쳤을 것이라는 절망적인 생각에 사로잡힌 그는, '이제 나는 죽었구나'라고 생각하며 자결하려 했습니다. 그때 사도 바울이 소리치며 그를 만류했습니다. "우리는 여기 있소!" 간수는 바울과 실라 앞에 무릎을 꿇고 부르짖었습니다.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해야 구원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자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그는 그 자리에서 예수님을 믿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바울과 실라를 집으로 모셔 상처를 씻어주고 식사를 대접했으며, 온 가족을 불러 함께 말씀을 듣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는 말씀대로 빌립보의 루디아 가정에 이어 두 번째 가정이 구원받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이를 기점으로 복음은 유럽 전역으로 전파되기 시작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를 떠나 데살로니가, 베뢰아, 아테네, 고린도 등으로 향하며 오늘날의 발칸반도 지역에 복음을 전하고 곳곳에 하나님의 교회를 세웠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바울과 실라를 통해 이루신 이 놀라운 역사는 결코 우연히 일어난 것이 아닙니다. 바울과 실라가 큰 위기와 난관 속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했을 때, 비로소 이 모든 기적이 시작되었습니다.


'죽으면 죽으리라'의 예배

하나님의 역사는 우연히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특별한 계기가 주어졌을 때, 그 순간 하나님 앞에서 마땅히 보여야 할 믿음의 결단과 행동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이를 실천할 때 비로소 하나님께서는 우리 삶의 여정 속에 개입하시고 역사하십니다. 고등학생 시절, 교회 장로님께서 빌려주신 안이숙 여사의 수기 『죽으면 죽으리라』를 읽고 깊은 감동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책의 마지막 페이지에는 '내일 일은 난 몰라요'라는 찬송가 악보가 실려 있었는데, 그때 처음 접한 그 곡을 풍금으로 연주하며 익혀 후배들에게 가르쳐주기도 했습니다. 그 책에는 수많은 감동적인 장면이 담겨 있는데, 특히 안이숙 여사가 일본 제국 의회에서 국가의 멸망을 선포하며 전단지를 배포하다 체포되어 평양 형무소에 수감되었던 일화는 매우 인상적입니다. 그중에서도 당시 형무소에서 있었던 한 감동적인 일화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감옥 속에서 주일 예배를 지킨 믿음

주일이 되었으나 감옥에 갇힌 이들은 강제 노역을 해야만 했습니다. 오늘날에는 노역에 대한 임금을 지불하지만, 당시에는 대가 없이 일만 시키던 시절이었습니다. 특히 주일에도 예외 없이 일을 시키자, 안이숙 여사는 '이날은 하나님을 예배해야 하는 날이기에 일하러 나갈 수 없다'며 버텼습니다. 이로 인해 형무소 소장을 비롯한 관리자들이 발칵 뒤집혀 그녀를 강제로 끌어내려 했으나, 안이숙 여사는 '하나님의 명령을 저버릴 수 없으며, 사람의 법으로 하나님의 법을 어길 수 없다'고 끝까지 대항했습니다. 결국 형무소 측은 안이숙 여사에게 특별히 혼자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허락해주었다고 합니다. 이런 일화도 있습니다. 밤 9시 취침 종이 울리면 모두 잠자리에 들어야 했으나, 안이숙 여사는 그 시간에 무릎을 꿇고 찬송을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이 찬송 소리는 벽을 타고 옆방으로, 다시 그 옆방으로 퍼져 나갔고, 어느덧 형무소 안의 모든 수감자가 한목소리로 찬송을 부르게 되었습니다. 당황한 간수들이 몽둥이로 철창을 내리치며 엄하게 제지했지만, 찬송 소리는 그치지 않았습니다. 평소라면 간수의 위협에 금세 조용해졌겠지만, 그날 밤만큼은 간수들도 어찌할 방도가 없었습니다. 이후로도 매일 밤 같은 시간에 찬송이 이어졌고, 온 형무소가 찬양으로 가득 차자 결국 간수들조차 감동하여 그 소리를 묵묵히 지켜보게 되었다고 합니다.


처형 11시간 전의 기적

감옥에 갇혀 앞날을 예측할 수 없던 그는 실명 위기에 처했습니다. 형무소 의사가 치료를 위해 출소를 권유하자 절망 속에서 잠시 치료 기간을 얻게 되었고, 갈 곳이 없던 그는 주기철 목사님의 사모님 댁을 찾아갔습니다. 그러나 사모님은 "순교를 결심한 사람이 고작 눈을 고치려 나왔느냐"며 호통을 치셨고, 이에 깨달음을 얻은 그는 다시 제 발로 감옥으로 돌아갔습니다. 이후 사모님도 투옥되어 두 분은 서로 의지하며 지냈는데, 1945년 8월 15일 밤 11시에는 형무소 내 모든 죄수를 처형하려는 계획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보통 패전 직전에는 죄수들을 몰살하곤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처형 집행 11시간 전인 그날 낮 12시, 일본 왕이 항복을 선언했습니다. 결국 형무소 문이 열리며 그는 자유의 몸이 되었습니다.


훈련소에서 마주한 주일 예배의 어려움

이런 일들이 그분만의 일이었을까요? 저도 나이가 들어 군대에 가게 되었는데, 군대에서도 비슷한, 도저히 여기에 다 미칠 수는 없지만, 나름대로 주님께 받은 은혜가 있습니다. 군대에 갔더니 처음에는 주일에 교회를 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 주에 부대가 이동해 새로 지은 훈련소 막사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주일에 교회를 보내 주지 않더군요. 그 이유가 무엇이냐고 가서 물어보니 "아직 이 교회가 새로운 곳으로 다 이전하지 못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교회가 아직 안 왔다는 거죠. 그래서 불교와 천주교만 인솔해 가고 기독교는 들어가라는 식이었습니다. 들어가면 새로운 곳에서 할 일이 많잖아요? 집합시켜서 일하러 보내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한 주일 동안 아침 금식을 했습니다. 아침 식사 시간에 다들 식사를 하러 갔는데, 저는 내무반에 엎드려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조교라는 사람이 마침 보고는 묻더군요. "왜 식사를 안 갔느냐? 밥은 먹었느냐?" "안 먹었다." "왜 식사를 안 가느냐?" "교회를 안 보내 주니까요." "나는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나중에 이 이야기가 중대장에게 보고되었습니다.


식당에서 드린 예배

그리고 토요일에 제가 중대 행정반을 찾아갔습니다. 그곳의 인사 담당자는 예전에 ‘인사계’라고 불렸는데, 지금은 뭐라고 부르는지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그 사람이 완장을 차고 당번을 서고 있었어요. 그래서 그 사람을 만나서 물어봤습니다. “내일 종교 행사가 있습니까?” 그러자 “아이, 모르겠다. 교회가 왔는지 모르겠다”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다음 날 아침에 또 찾아갔습니다. 이번에는 교회가 오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종교 집합이라고 해서 다 모였는데, 천주교 인솔은 있고 불교 인솔도 있었지만 기독교는 오늘 없다고 하더군요. 그러더니 그 인사 담당자가 저를 불러서 “내가 지금 기독교를 식당으로 모아 줄 테니, 네가 예배를 인도해라”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식당에 우리 중대뿐 아니라 다른 중대와 방위 중대까지 합쳐 200명 이상이 모였습니다. “다 모여라”라고 해서, 제가 그 앞에서 예배를 인도했습니다. 찬송을 부르고 성경을 읽고 설교도 하면서 예배를 진행했습니다.


계속되는 종교행사 누락과 단독 예배

그 다음에 또 주일날 전에 제가 찾아가서 "내일 종교 행사에 있습니까?"라고 물었더니 "아, 없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내일 종교 행사가 없으면 안 됩니다.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라고 했더니 "아, 그건 내일 가 봅시다"라고 하더라고요. 그러더니 다음 날 불교, 천주교는 제외되고 기독교만 남았어요. 그러더니 "집합! 작업!"이라고 하는 거예요. 작업하러 가야 했어요. 그래서 제가 이 선임하사를 찾아갔어요. "아니, 주일날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라고 했더니 이분이 하는 말이 "그럼 내려가서 너 혼자 예배를 드려라"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다른 병력들은 다 작업하러 데려갔는데 저는 혼자 내무반으로 보낸 거예요. 그래 제가 내무반에 혼자 있었는데 어떤 사람이 따라오더라고요. 그러더니 "같이 예배를 드리자"고 해서 두 사람이 내무반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 다음 주가 되었는데 "종교 행사 있습니까?"라고 하니까 "내일은 있다"고 하더라고요. 성탄절을 앞두고 성탄 주일 감사 예배가 있다는 거예요. 그래 오랜만에 성탄절 예배를 드리러 교회를 갔습니다.


옥상에서 드린 감격적인 예배

그다음에 퇴소식을 하게 되었는데, 퇴소식 후 맞은 주일날 "오늘 너희들은 훈련소 소속도 아니고 각자 갈 부대들의 인수인계가 아직 끝나지 않아서 너희들은 임시 병력이다. 그래서 예배를 드리는데 교회에 못 간다"고 하더라고요. 퇴소식이 끝났으니까 "너희는 우리 소속이 아니야. 또 각 부대로 아직 배치도 못 갔으니 너희들은 교회에 못 간다"고 하더라고요. 얼마나 실망이 되겠어요? 그런데 마침 그때 그 장교, 인사계 담당관이 좋은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네가 방송을 해서 예배드릴 사람들을 모아서 예배를 드려라. 장소는 옥상이다." 그래서 제가 방송을 했어요. 중대본부에서 마이크로 "몇 시에 옥상에서 예배가 있으니 예배드릴 사람들은 모여라"고 방송했더니 그 시간에 약 20명 정도가 모였어요. 그 옥상에는 마침 폐기된 강의용 의자가 있어서 그 의자들을 놓고 둥글게 둘러앉아 예배를 드렸는데, 사방은 눈이 소복이 덮여 있었어요. 그리고 햇볕이 따스하게 내리쬐는 가운데 얼마나 정말 황홀한지 몰라요. 그런 속에서 하나님께 찬송하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그날 밤에 각 부대로 흩어지게 된 겁니다.


예배를 포기하지 않는 믿음을 기뻐하시는 하나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삶속에 위기가 찾아왔습니까? 난관이 찾아왔습니까? 사방이 막혀 있습니까? 도저히 여러분에게 다른 길이 열리지 않습니까? 모든 것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을 가로막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까? 그러나 여러분, 포기하지 마세요. 여러분이 하나님을 예배하기를 원하면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 주십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찬송한다면 여러분의 막혀 있는 담을 허물어 주실 것입니다. 빌립보 감옥에서 있었던 놀라운 역사가 오늘 여러분의 것이 되실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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