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요약

그리스도인의 가정에 대하여(2)_가정은 사명공동체다(창 2: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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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5-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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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가정에 대하여(2)

가정은 사명공동체다(창 2:18-24)


가정은 사명공동체

그리스도인의 가정은 세상의 가정과 다릅니다. 우리들이 그리스도인의 가정생활을 생각할 때 항상 우리가 세상에서 익히 아는 일들로 생각하기가 쉽지만, 그러나 우리는 이 모든 것들을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서 바르게 알고 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그리스도인의 가정과 부모와 자녀들의 역할에 대해서, 그 역할들의 목적에 대해서, 그리하여 그 과정이 최종적으로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에 대해서 명확하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성경은 가정은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위하여 존재하며 그 목적을 달성하는 중에 하나님께서 한없이 축복하시는 기관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오늘 읽은 24절 말씀을 보면 ‘한 몸을 이룰지어다’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한 몸을 이룬다’는 것은 하나의 유기체적 존재가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유기체적 존재라고 하는 것은 인간의 몸과 같은 존재라는 이야기입니다. 인간의 몸에는 많은 기관과 조직이 있으며, 이 기관과 조직들은 그 모양도 다르고 하는 일도 다르지만 하나의 생명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한 몸의 생명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한 가정은 이렇게 하나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가정의 모든 식구들은 한 몸입니다. 그들은 하나의 생명체로서 존재하고 있습니다. 누군가 아프면 온 몸이 아픈 것, 누군가 기쁘면 온몸이 기쁜 것 이 모든 것들은 이 몸이 하나의 유기체인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공동체라고 하는 말은 바로 이런 것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공동체는 생명을 함께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들은 생명으로 하나가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공동체라고 이야기합니다. 서로의 삶이 마치 우리의 몸처럼 하나하나 연결되어 있어서 서로가 필수적으로 필요로 하는 존재인 것입니다. 가정은 삶의 모든 것을 함께하는 공동체입니다. 성경은 삶의 모든 것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것은 성경이 가르치는 특별한 사상입니다. 인간 세상 그 어디에서도 가정은 사명을 위해 존재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물론 사회학적으로 가정은 사회를 지탱하는 중요한 기관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가정은 사회를 위해서 존재한다고 말합니다. 이에 반해 성경은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위하여 그 사명을 목적으로 하는 기관이 바로 가정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사명은 축복이다

사명이란 무엇일까요? 흔히 사명이라고 하면 어떤 의무를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물론 사명 속에는 의무가 들어가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사명을 하나님의 축복과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창세기 1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시기로 말씀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우리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 사람을 만들자’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의논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런데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존재로 창조하시기로 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은 인간을 다른 모든 동물들과 차이 나게 만드는 것들입니다. 인간이 말을 하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 그리고 인간은 사상을 만든다는 것, 그리고 인간은 어떤 개념을 조직화하여 이것을 후대에 전수하여 문화를 창조하고 발전시키고 이것을 전수하여 후대가 동일한 것들을 학습할 수 있다는 것들은 다른 동물들에게서는 볼 수 없는 일들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존재로 만드시고 이 땅의 모든 피조물과 전혀 다른 존재가 되게 하셨습니다.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인간에게 주시는 사명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창 1:26).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존재로 창조하신 것은 ‘다스림’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다스림을 위하여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즉 다스림을 위하여 복을 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다스림은 통치 행위입니다. 그리고 통치 행위는 나라에서 이루어지는 일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것이 하나님의 나라 사명을 주신 것이라 하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통치 세계를 하나님의 나라로 계시하셨고, 인간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통치하는 통치자의 권한을 주시면서 ‘다스려라’ 즉 ‘하나님의 나라를 참되게 이루어라’ 하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사명을 위하여 인간을 축복하셨던 것입니다. 생육하고 번성하고 그리하여 땅에 충만하고 통치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라 하는 것입니다. 통치 행위는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영광만이 통치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아 통치의 행위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일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명을 위하여 가정을 제정하셨다

하나님께서는그 일을 시행하기 위하여 가정을 제정하셨습니다. 가정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이루기 위한 가장 기초 단위로서 만드신 기관입니다. 우리가 읽은 성경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이 사람은 아담입니다. 하나님은 왜 아담이 혼자 있는 것을 좋지 않다고 하셨을까요? 부모님들이 홀로 있는 자녀를 볼 때마다 안타까워하는 것과 같은 심정이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신 것은 바로 사명 때문이었습니다. ‘돕는 배필’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물론 아담의 상대이니 그의 부인을 가리키는 것이겠죠. 그러나 여기 돕는 배필은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함께 감당하는 동역자라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해석해야 하는 이유는 19절 이하에 나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죄를 지으시고 아담이 무엇이라고 부르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가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부르는 것이 곧 그 이름이 되었더라.” 아담은 짐승들의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이름을 지어주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다스림의 일을 행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인간은 낯선 것을 만나면 그것에 이름을 붙이는 습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름을 붙여야 비로소 그 대상은 나와 관계를 맺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름을 붙이는 것은 고도의 지적인 행위로서 문화 활동인 것입니다. 아담이 짐승들의 이름을 붙였다는 것은 아담이 자연 세계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자연 세계를 자기의 통제 아래 두었다는, 즉 다스림을 하고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그 일을 아담 혼자 하는 것이 안 좋았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그 일을 함께 하는 돕는 배필이라는 말씀이 나온 것입니다. 그다음 20절을 보면 “아담이 모든 가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이름을 준 것과 돕는 배필이 하나의 문단 속에서 같이 이어지는 문장 속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아담이 이름을 붙이는 것과 돕는 배필이 함께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름을 붙이는 것과 돕는 배필의 관계입니다. 즉 다스림의 행위와 돕는 배필의 문제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애초에 인간을 지으시고 축복하셨습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생육하고 번성’ 아담 혼자 할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에게는 다 계획이 있으셨습니다. 그래서 지금 아담에게 이 사명을 함께 할 수 있는 동역자를 주시기로 하신 겁니다. 그리하여 아담을 재우시고 그의 갈빗대를 가지고 여성을 만드셨습니다. 그는 아담과 근원이 같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아담과 한 몸이 되어 한 공동체를 이루었습니다. 그리하여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는 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게 되고 다스리게 되는 일에 기초 단위인 이 가정 공동체가 이루어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 가정 공동체는 번성하고 땅에 충만하게 되는데 항상 이 번식의 방식, 서로 나뉘는 방식으로 번성하고 충만하게 되어 있습니다. 24절에서는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라고 말씀합니다. 부모를 떠나는 것은 새로운 가정 공동체를 만드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녀가 결혼을 하여 새로운 가정 공동체를 이루어 부모를 떠나라고 하는 것은 새로운 가정 공동체가 만들어진 것을 가리킵니다. 그리하여 그 두 사람은 이제부터 새로운 가정 공동체를 이룹니다. 이렇게 온 땅에 새로운 가정 공동체가 계속해서 만들어 나아가게 하는 것, 바로 이것이 번성입니다. 생육은 자녀를 낳아 양육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번성은 가정 공동체를 이루는 것을, 땅에 충만한 것은 이 공동체가 온 땅에 충만하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하여 가정 공동체는 다스림의 사명을 감당하는 기초 기관이 되는 것입니다.


가정의 사명은 하나님 나라의 사명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라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교회와 똑같을까요? 교회와 다를까요? 저는 하나님의 나라는 교회와 동일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교회가 아닙니다. 다만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이루기 위하여 성도들이 자신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참되게 이룰 수 있도록 잘 가르치고 인도하는 기지입니다. 교회에서 신앙으로 잘 양육된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깨닫고 가정 공동체를 이루어 나가는 것입니다. 가정 공동체는 하늘과 땅과 바다의 모든 것을 다스리기 위하여 자녀들을 양육합니다. 교회는 가정이 그것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영적으로 가정구성원들을 새로운 사명자로 늘 깨우치며 그들을 가르치는 일을 감당하는 기관입니다. 복음을 땅 끝까지 전하는 것과 하나님의 나라를 땅 끝까지 이루는 일은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지만 동일한 것은 아닙니다. 각 가정은 부모와 자녀들이 함께 이 땅에서 다스림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즉 다스림의 삶은 땅의 삶입니다. 이 땅에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자신의 삶 속에 실현시키는 삶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이 땅에 이루는,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일들은 다양한 영역에 걸쳐 있습니다. 지금 아담은 간단하게 이름을 짓는 일 하나로 표현되어 있지만 어디 이름을 짓는 일 뿐이겠습니까? 퉁소를 부는 일도 성경에 등장하고, 양을 치는 일도 등장합니다. 목축업도 다스림이고, 퉁소를 부는 일, 음악을 발전시키는 것도 다스림이고, 미술을 발전시키는 것도 다스림입니다. 이 땅에 하나님의 형상의 아름다움을 나타내는 모든 일들이, 그리하여 하나님의 창조 세계를 하나님의 영광으로 충만하게 하는 모든 일들이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삶인 것입니다. 이것은 각 가정과 여러분의 자녀들에게 맡겨져 있습니다. 교회는 다만 그런 일들을 여러분이 할 수 있도록 영적 생명과 진리를 가르쳐 사명을 깨닫게 하는 일과 바르게 지도하는 일들을 계속해서 감당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일을 행하는 모든 사람들이 함께 하나님을 경배하는 예배의 자리로 인도하는 것이 교회가 하는 일인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는 하나님의 나라를 이룰 사명이 주어져 있습니다. 가장 거룩한 일은 무엇인가라는 논쟁이 있습니다. 가장 거룩한 일은 목사님이 되는 일인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어떤 일을 이 땅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일들을 가장 거룩한 것이라고 구별할 수 있을까요? 구약 시대에는 그런 구별이 가능했습니다. 왜냐하면 제사장은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는 사명을 가졌고, 제사장 사이에도 서열을 두어 대제사장이 하나님의 영광을 가장 드러내는 존재로 세워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신약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이 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이 땅에서 살아가는 모든 삶을 하나님께서 주신 거룩한 사명으로 알고 자랑스럽게 감당해야 합니다. 그리고 자녀들이 이 땅의 삶에 기여할 수 있도록 양육해야 합니다. 이 땅의 삶 속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재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다만 그가 마음속에 하나님께 대한 경건을 가지고 있느냐, 하나님을 모시고 있느냐, 하나님께서 주신 삶의 원리를 마음속에 확실하게 세우고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과거의 에덴동산에서 아담의 가정이 무너졌다는 사실을 오늘 우리는 기억합니다. 우리의 가정은 하나님 나라의 사명을 회복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이루는 가정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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