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요약

그리스도인의 가정에 대하여(4)_가정은 복음공동체다(엡 5:2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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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5-06-14

본문

그리스도인의 가정에 대하여(4)

가정은 복음공동체다(5:26-27)

 

 

 

교회의 표상

성경에는 교회를 나타내는 여러 가지 표상, 혹은 상징들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표상이란 어떤 사물을 가지고 다른 사물의 본질과 속성을 나타내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교회의 표상은 여러 가지 사물을 가지고 교회의 본질과 교회의 속성을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첫째는 그리스도의 몸, 둘째는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 셋째는 하나님의 전, 넷째는 하나님의 집, 다섯째는 성전, 여섯째는 새 예루살렘, 일곱째는 진리의 기둥과 터 등 입니다. 이런 여러 표상 가운데에서 가장 많이 알려져 있고, 또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는 표상은 그리스도인의 몸입니다. 에베소서에서 몸의 표상이 가장 잘 설명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지음 받은 새 사람인 유대인과 이방인은 한 성령 안에서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가게 되었다고 이야기합니다. 유대인과 이방인이 한 성령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가게 되었는데 이들은 하나의 교회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에베소서 3장의 핵심입니다. 에베소서 4장은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지체들이 서로 연결되어 그 몸을 자라게 한다고 말씀합니다. 교회는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이 됩니다. 몸으로서의 교회는 여러 지체로 이루어져 있고, 그 지체들이 하나로 연결되어 하나의 몸이 되고 새로운 사람이 됩니다. 이 새 사람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성장합니다. 이와 같이 교회는 하나의 몸입니다. 이는 새 사람이며 이는 그리스도의 몸인 것입니다.

 

교회의 비밀을 가진 가정

에베소서에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상징되는 교회의 모습이 또 하나 등장합니다. 5장에서는 남편과 아내가 이루는 한 몸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남편과 아내가 이루는 한 몸이 또한 교회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몸이 바로 교회의 표상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31절 말씀을 보면 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즉 남자와 여자가 부모를 떠나 한 육체, 즉 한 몸이 된다고 말씀합니다. 이렇게 남편과 아내가 한 몸을 이루는 이것은 교회의 비밀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32). 본문의 말씀은 이미 창세기 2장에서 계시된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보시고 독처하는 것이, 즉 홀로 지내는 것이 좋지 않다고 하시고 그에게 돕는 배필을 지어 주셨습니다. 아담은 하와를 하나님께서 자기 앞으로 인도해 오실 때 마음속에 큰 기쁨으로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로다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면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한 몸을 이룰지어다라고 말씀하셨던 겁니다. 이것이 표상하는 거룩한 비밀은 교회라는 것입니다. 교회는 생명을 가진 새 사람으로서 이 땅에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담고 그 영광을 나타내는 기관으로 하나님께서 세워 놓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가정을 볼 때, 그리고 그 가정의 근간을 이루는 남편과 아내의 관계를 볼 때 우리는 그 속에서 교회라고 하는 영적인 기관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창세기 2장에서 하나님께서 결혼 제도를 제정하신 것은 교회를 계시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부부의 관계는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관계를 우리에게 계시하고 있습니다. 즉 우리는 가정으로부터 교회의 비밀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우리는 가정이 교회와 같이 거룩한 기관이며, 교회와 같이 영적인 기관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가정은 한마디로 작은 교회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정은 교회가 가지고 있는 거룩한 특성들을 공유할 뿐만 아니라 교회가 가지고 있는 거룩한 사명도 공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의 거룩함이라고 하는 특성이 바로 가정의 특성입니다. 교회가 가지고 있는 순결함이 가정의 특성입니다. 교회가 가지고 있는 사명이 가정이 가지고 있는 사명입니다.

 

예배의 사명

우리는 흔히 교회의 사명을 크게 네 가지로 정리해서 말씀합니다. 첫째는 예배입니다. 교회는 예배의 사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교회는 예배하는 곳입니다. 교회의 핵심은 예배입니다. 그러므로 예배가 살면 교회가 살고, 예배가 죽으면 교회도 죽습니다. 2025년 우리 교회의 표어는 영광스러운 예배로 능력 있는 교회입니다. 우리 교회가 어떻게 하나님께서 주신 역사적인 사명을 감당할 수 있을까요? 그 첫 번째 발자국이 영광스러운 예배입니다. 영광스러운 예배가 없다면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께서 주신 시대적 사명을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영광스러운 예배가 없는 교회가 어떻게 이 험난한 시대를 이겨 나갈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우리 시대의 불신앙의 파고를 극복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 우리 시대는 역사 속에서 우리가 일찍이 볼 수 없었던 불신앙과 불경건의 파도가 우리를 지금 덮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럴 때 우리에게 있어야 하는 것은 예배의 능력입니다. 우리의 예배는 살아있는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예배는 능력 있는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에서 예배가 무너지면 우리는 힘을 쓰지 못하게 됩니다. 우리 시대의 불신앙과 불경건의 드높은 파도를 이기는 길은 영광스러운 예배밖에 없습니다. 이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교회의 참된 모습을 보이며 사명을 감당할 수 있을까요? 우리 교회에는 영광스러운 예배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언제나 기억해야 합니다. “예배가 살아야 한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배를 소홀하게 여기는 사람은 그 신앙이 능력 있게 발전할 수 없습니다. 살아 있는 예배를 드리지 못한다면 우리의 신앙은 성장할 수 없고 능력 있게 세워질 수 없습니다. 우리는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예배를 가장 우선순위에 두고 그 순간을 지키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기 위해 한 번 투쟁을 해보세요. 그러면 알게 될 것입니다. 어쩔 수 없어서 하나님을 예배할 수 없다고 생각하던 것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예배를 삶의 중심에 놓고 살아가려고 애쓰는 사람의 삶이 얼마나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로 충만하게 되는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교회는 예배가 살아 있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가정은 이 예배를 살리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가정은 여러 가지 문제들로 가득합니다. 그러나 예배를 중요하게 여기는 동안에 가정의 문제도 해결되는 것입니다. 하필 주일 아침에 부부가 다투는 일이 있습니다. 부부가 다 예배를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이었다면 두 사람은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리고 주님께서 그들에게 역사하여 그들을 치료하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배를 방치하는 순간 그들은 자기들의 완악함과 완고함을 버리지 않고 서로 대립하고 불화가 깊어지면서 가정이 심각한 위기로 진행되는 일들을 주변에서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배를 붙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삶의 문제들이 해결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 삶의 장애물들이 사라지게 됩니다. 예배가 살아야 교회가 살고, 예배가 살아야 신앙이 살고, 예배가 살아야 가정이 사는 것입니다.

 

교육의 사명

교회의 두 번째 사명은 교육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것이죠. 과거에는 가정에서, 교회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가정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일이 굉장히 약화되었습니다. 이것이 가정의 위기를 불러오고 있습니다. 부모들이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서지 않으니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칠 수 없습니다. 왜 가르침이 사라지고 있을까요? 부모들이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서지 않기 때문입니다. 부모가 하나님의 말씀을 소중하게 여기고 깊은 은혜 속에 있다면, 말씀의 은혜로 살지 못하는 자녀들을 볼 때 안타까워 기도하며, 어떻게 해서든지 자녀들이 말씀의 은혜를 받게 하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그런데 부모가 말씀을 마음에 두지 아니하니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소중하게 여기고 그 말씀을 배우라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자녀들의 신앙을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 교육을 위하여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교회에 맡기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저녀들을 교회에 맡길 때 정말 진실함으로 맡기는가 한번 생각을 해봐야 합니다. 교회는 교육의 사망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지 가르치려고 합니다. 그러나 가정은, 아니 부모는 어떻게 하고 있을까요?

 

선교의 사명

교회의 세 번째 사명은 선교입니다. 선교는 가정을 이루는 데서부터 출발합니다. 성경은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부모를 떠나는 것은 분가입니다. 그리고 분가를 통해 창대하게 되는 것입니다. 즉 분가를 통해 온 땅에 충만하게 되는 것입니다. 분가를 통해 복음이 전 세계에 전파되는 것입니다. 즉 모든 민족에게 복음이 전파되는 선교의 가장 원시적인 계시가 가정 속에 주어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정을 신실한 믿음의 자녀들로 양육하는 기관으로, 그리고 이 신실한 자녀들이 장성하여 믿음의 가정을 이루고, 또 이 믿음의 가정이 새로운 믿음의 가정을 이루어 온 땅에 충만하게 되는 일을 감당해야 합니다. 신실한 경건한 자녀들 양육하는 일과 그들이 장성하여 부모를 떠나게 될 때, 즉 새로운 가정을 이룰 때, 그 새로운 가정들 역시 그리스도의 비밀을 간직한 기관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자녀들을 키우다 보면 자녀들이 부모 마음대로 되는 것도 아니고, 더군다나 믿음은 부모 뜻대로 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절감합니다. 그러나 그럴수록 부모들은 하나님 앞에 더 간절하게 더욱더 정말 온 마음과 뜻을 다하여 기도하면서 이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섬김의 사명

교회의 네 번째 사명은 봉사입니다. 교회는 섬기는 기관입니다. 교회의 모든 직분은 봉사직입니다. 직분은 섬기는 자리입니다. 군림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물론 그 하는 일들을 가지고 가령 치리 장로이런 식으로 치리라는 용어들을 사용하고는 있습니다. 치리회 같은 용어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교회법상 사용되는 용어들입니다. 그러나 성경적으로는 어떤 직분이든지 근본적인 의미는 섬김입니다. 교회 직분에서 가장 원형적인 직분은 집사입니다. 집사직으로부터 다른 모든 직분들이 파생된 것입니다. 그러면 집사는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요? 집사는 봉사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집사는 디아코니아인데 이 말에서 영어의 디콘’(deacon)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이 디콘이 어떤 곳에서는 성직자를 가리키는 용어이기도 합니다. 디콘이라고 하는 말 자체가 직분의 원형이기 때문입니다. 디톤은 마치 줄기세포와 같은 것입니다. 우리 몸에서 줄기세포라는 하나의 세포는 다양한 기관으로 발전해 갑니다. 줄기세포는 모든 세포의 원형이 되는 세포입니다. 마찬가지로 직분에 있어서 가장 원형은 집사인데 집사의 의미는 봉사입니다. 섬기는 사람이란 말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누구나 다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교회에서 어떤 직분을 받았든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직분을 안 받았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래도 섬겨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가 섬기는 자가 되어야 교회가 참된 모습을 나타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직분을 안 받았으니까 대접만 받으면 된다하는 분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서로 봉사하는 마음으로 섬겨야 하는 기관입니다. 섬김은 교회의 사명입니다. 봉사가 세상을 향하여 열리면 세상을 향하여 나아가 봉사하고, 그러면서 교회가 하나님의 영광, 그리스도의 몸의 거룩함을 나타내게 되는 것입니다.

 

가정을 작은 교회라 부르는 것은 말장난이 아니라 성경의 계시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가정을 작은 교회로 거룩하고 아름답고 순결한 곳으로 세워 나가야 합니다. 모든 남편과 아내 여러분, 또는 모든 부모 여러분, 여러분은 주님께서 하나의 교회를 이루도록 부르심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이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교회가 가진 네 가지 사명을 우리 가정에서도 이룰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예배와 교육과 선교와 봉사의 사명을 잘 감당하여 우리 가정을 통해 온 땅에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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