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의 메시지(4)_오직 그리스도 ② (행 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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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5-09-20본문
종교개혁의 메시지(4)
오직 그리스도 ② (행 4:12)
우리 시대의 ‘오직 그리스도’
지난주 우리는 종교개혁의 두 번째 모토인 오직 그리스도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았습니다. 종교개혁 당시에 로마 가톨릭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구원의 유일성, 완전성에 대해 잘못된 가르침과 교회의 전통을 가지고 있었는데, 종교 개혁은 이러한 잘못을 성경적으로 증명하고 성경에 근거한 분명한 기독론을 세워 '오직 그리스도'라는 진리로서 교회를 새롭게 하려는 정신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종교 개혁의 정신에 따라 세워진 우리 개신교와 개혁주의 신앙은 그리스도의 속죄의 완전성과 유일성, 그리고 그리스도를 대신하는 어떤 존재도 용납할 수 없다는 이 복음의 참된 정신 위에 굳게 서 있는가 하는 질문을 던져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시대를 돌아보면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현대 기독교에 대한 비평서를 쓴 세 명의 저자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미국제 복음주의를 경계하라
첫 번째 저자는 마이클 호튼이라는 분입니다. 그는 1980년대 후반에 『MADE IN USA』라는 책을 냈는데, 이 책은 '미국제 복음주의를 경계하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었습니다. 그는 이 책에서 미국 교회의 잘못된 모습 열 가지를 지적했습니다. 저는 이 책을 읽고 애국주의 기독교가 무엇인지 깨달았습니다. 강단에 태극기나 성조기를 세워 놓는 것과 같이, 기독교는 애국하는 종교이며 나라를 위하는 종교라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사는 나라를 사랑하고 그 발전을 위해 신실하게 도리를 다해야 하는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그것 자체가 기독교의 본질은 아닙니다. 기독교가 애국주의인가 하는 질문에 대해 솔직히 말씀드리면, 기독교는 애국주의가 아닙니다. 기독교는 그냥 그리스도교일 뿐입니다. 예를 들어, 유럽에서 전쟁이 벌어졌을 때 독일과 영국 모두 기독교 국가였고, 양쪽 모두 자기 나라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기독교는 국가 정치에 관여하여 특정인을 대통령으로 밀거나 특정 정당을 하나님의 뜻과 함께하는 정당이라고 설교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또한 기독교는 실용주의도 아닙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의 축복으로 삶이 풍성해지는 일은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삶이 편안해지고,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지며, 평안해지는 것이 목표가 되어 믿음이 이를 위한 도구나 수단이 된다면, 그 믿음은 올바른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삶을 축복하시고, 사회에서도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성공하는 원리와 만나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일들이 일어나기는 하지만, 그것이 우리의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이 성경이 가르치는 삶이라고 말하거나 믿음 이후의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위에 덧붙이지 말라
『미국제 복음주의를 경계하라』는 바로 이런 문제들을 다루고 있었습니다. 저는 젊은 목사로서 이 책을 통해 기독교 신앙에 대한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현대 기독교에서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위에 있어야 할 하나님과 그리스도,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가 완전히 뒤집히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세상에서 편하고 부유하며 성공적인 삶을 위해 믿음이 필요하다고 여기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목표와 수단이 역전된 것입니다. 우리가 로마 가톨릭의 신학이 잘못되었다고 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속죄의 완전성과 유일성을 굳게 붙든 것은, 그리스도에 다른 것을 덧붙여 유익을 얻으려는 잘못된 방식이 교회에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당연한 것이고 거기에 덧붙여진 것이 주요한 목적이 되는 것, 이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로마 가톨릭의 신학을 반펠라기우스주의라고 이야기하는데, '반'은 '절반'이라는 뜻으로, 절반은 펠라기우스주의라는 의미입니다. 펠라기우스주의는 인간이 완전히 타락하지 않았고 선함이 남아 있어 선행을 통해 구원의 길을 갈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성 어거스틴은 이러한 펠라기우스의 주장에 반박하며 우리가 오직 은혜로만 하나님의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중세 교회, 즉 로마 가톨릭에 펠라기우스 사상이 들어와 영향을 미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선행을 행해야 온전한 구원에 이른다고 하여 믿음에 선행을 덧붙였습니다. 그래서 은혜와 선행이 반반씩 섞였다 하여 반펠라기우스주의라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현대 기독교는 믿음에 실용주의나 애국주의와 같은 다른 무엇인가가 덧붙여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것들이 사람들을 끄는 마케팅 기법이 된 것입니다. 사람들은 믿음보다 애국주의를 더 소중하게 여기고, 애국주의를 부정하면 믿음까지 버리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실용주의도 마찬가지입니다. 현대 기독교는 마치 쇼핑하는 것과 같다고 이야기합니다. 현대 교회 성도들은 교회를 쇼핑하며 다니고, 진리보다는 자신의 취향에 맞는 교회를 찾습니다. 그리고 교회는 이러한 고객들의 욕구에 어필할 수 있는 것들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현대인들의 관심사가 교회의 관심사가 되는 상황이 벌어진 것입니다. 교회가 제공해야 하는 것은 인간의 근본, 즉 영혼과 영원에 대한 것과 이를 위한 하나님의 뜻과 방법입니다. 하지만 현대 교회는 현대인들의 다양한 욕구, 즉 불안한 심정에 평안을 주고, 성공을 원하는 사람에게 성공의 길을 제시하며, 죄책감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심리 치료를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해서 교회가 현대인들의 심리적 욕구에 대한 대증 요법을 마련하고, 그것으로 소문나 사람들이 찾아오는 방식이 된 것입니다.
그리스도 없는 기독교
이러한 상황에서 믿음은 언제나 도구적인 것으로 사용됩니다. "믿느냐? 성공할 것이다. 믿느냐? 출세할 것이다. 믿느냐? 잘 될 것이다"와 같은 메시지를 통해 믿음이 인간의 신념이나 자기 최면으로 변질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한때 유행했던 심리 치료 기독교도 이런 모습의 일환이었습니다. 신학을 공부한 후에도 심리학이나 상담학을 공부하고, 그것을 성경적 이야기라고 풀어내는 일들이 많았습니다. 마치 음악을 전공한 목사가 음악을, 경영학을 전공한 목사가 경영학을 목회에 접목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2000년대에 들어와서는 '긍정의 힘'이라는 책이 크게 유행했습니다. 이는 1950년대에 노만 필이 주장한 '적극적인 사고 방식(positive thinking)'과 같은 맥락입니다. 이 '적극적인 사고 방식'은 60, 70년대에 전 세계 교회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고, 우리나라에서도 '성공의 복음'이라는 이름으로 전파되었습니다. "믿는 자는 반드시 성공한다", "네가 제대로 못 믿어서 삶이 변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주장들은 "생각이 바뀌면 삶이 바뀌고 인생이 바뀐다"는 전제가 깔려 있습니다. 여기에 믿음이 덧붙여진 것입니다. 노만 필의 'positive thinking'은 'possibility thinking(가능성 사고)'로도 불렸으며, 조엘 오스틴이 '긍정의 힘'을 주장하며 다시 유행시켰습니다. '생각이 바뀌면'이라는 말은 인간의 사상에 깊이 자리 잡고 있으며, 사상의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반복되어 왔습니다. 이것이 20세기에 들어와 미국에서 기독교 메시지로 변질된 것입니다. 신념, 소망, 자신이 이루고 싶은 목표가 믿음으로 변한 것입니다. 이제는 더 나아가 각자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각자 취향에 맞는 사람끼리 모이는 상황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이머징 처치(emerging church)'라고 불리는 현대 미국 교회는 복음의 내용보다는 사람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형식, 즉 교회 인테리어나 예배 분위기를 강조합니다. 사람들은 분위기를 느끼는 것을 좋아하고, 이것은 자기중심적인 태도입니다. 감성으로 이야기하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 결국 기독교 신앙은 도구로, 수단으로 변하고, 자기가 바라는 것들이 목표가 되는 것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마이클 호튼은 『그리스도 없는 기독교』라는 책에서 이러한 현상을 분석하며 현대 기독교가 그리스도 없는 기독교로 변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이는 현대인들이 그리스도를 싫어하면 그리스도를 뒤로 숨기고, 그들이 원하는 것을 앞에 내세워야 한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이 메시지를 묵상하다가 갑자기 찬송가 '이제 내가 살아도 주 위해 살고, 이제 내가 죽어도 주 위해 죽네'가 떠올랐습니다. '사나 죽으나 나는 그리스도의 것'이라고 고백했던 신앙은 어디로 갔는가, '오직 그리스도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했던 그 믿음은 어디로 갔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용기 있는 기독교
두 번째 저자는 데이빗 웰스입니다. 그는 현대 기독교 비판 4부작 시리즈인 『신학실종, 윤리실종, 위대하신 그리스도, 거룩하신 하나님』으로 유명합니다. 전에 우리 청년부 수련회 때 이 책을 한 권씩 한 권씩 다루어 나갔던 적이 있습니다. 그는 이 네 권의 비평서 내용을 정리한 『용기 있는 기독교』라는 책을 냈습니다. 그는 현대 사회에서 기독교인으로 살아가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성경적 기독교를 이야기하면 손가락질과 멸시를 당하기 때문에 오히려 성경적 기독교 신앙을 가졌다고 말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심리적인 만족과 위로를 경험하는 곳, 소비자의 욕구를 만족시켜 주는 마트로 변질되고 있는데, 이것이 대세가 되어 성경적 참 신앙을 이야기하는 것은 무모한 일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참된 기독교인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는 성경적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이미 소수가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지금 현대 미국 교회의 상황입니다.
그리스도만으로 충분한 기독교
세 번째는 존 맥아더입니다. 그는 『그리스도만으로 충분한 기독교』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리스도만으로 충분한데, 교회는 자꾸 다른 것을 덧붙여 나가려 한다는 것입니다. 종교 개혁 당시 개혁자들이 직면했던 교회도 그리스도만으로 충분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것을 덧붙였습니다. 개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다른 것을 덧붙이는 현대 기독교의 모습에 대해 그는 '그리스도만으로 충분하다'고 이야기한 것입니다.
시대의 도전을 극복하라
우리는 정말 참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용기가 필요한 시대에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에 성경적 진리와 교회를 바르게 선포하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지, 진정으로 용기가 필요한 시대가 되어 버렸습니다. 우리는 이 시대의 도전에 굴복해야 할까요? 아니면 이 흐름에 저항하며 물기를 되돌리려는 노력을 해야 할까요? 우리는 이 현실을 분별해야 하는 이유가 단지 말하기 위함이 아니라, 이 흐름을 알고 역행하기 위함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비록 연약하고 부족하지만, 하나님은 강하십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우리 가운데 임재하시고 은혜를 더하신다면, 이 물줄기를 능히 되돌릴 수 있는 놀라운 역사가 우리 가운데 함께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이 믿음을 끝까지 붙들고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하여 이 믿음 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고 그분의 크신 힘과 능력을 체험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가 이 시대에 이 사실을 증명하는 교회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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