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새해의 신앙원리(1)_능력있는 기도로 새 힘을 얻으라(사 4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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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6-01-09본문
2026년 새해의 신앙원리(1)
능력있는 기도로 새 힘을 얻으라(사 40:31)
새해라는 희망의 역설: 반복되는 결심과 좌절
우리는 매년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할 때마다 가슴 한편에 말로 다 할 수 없는 벅찬 소망을 품습니다. "올해는 정말 작년과는 다른 삶을 살리라", "내 삶의 고질적인 문제들이 해결되고 진정한 변화가 일어나리라"는 기대를 하며 송구영신 예배의 자리에 나옵니다. 저 또한 목회자로 부름받아 수많은 세월 동안 성도들과 함께 이 예배를 드려왔습니다. 그런데 한 해 한 해 나이가 들고 목회 경험이 쌓일수록, 새해를 맞이하는 기쁨과 감격 뒤편에 자리 잡은 어떤 ‘답답함’을 발견하곤 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새해는 맞이하지만 정작 새롭게 되지는 않는 우리 자신의 모습’ 때문이었습니다. 달력의 숫자는 2025년에서 2026년으로 바뀌었지만, 어제 가졌던 고민은 오늘도 여전하고, 작년에 나를 괴롭혔던 연약한 성품과 습관들은 여전히 내 삶의 발목을 잡고 있는 현실을 보게 됩니다. 이러한 괴리는 우리를 지치게 만듭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에게 새해는 더 이상 설레는 시작이 아니라, 또다시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나 무덤덤한 의무감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왜 우리는 그토록 새로워지기를 갈망하면서도, 실제로는 제자리걸음을 반복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우리가 '새로워지는 길'에 대해 근본적으로 오해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진정한 새로움의 기점: 내 힘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
우리가 새로워지기를 원하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시간이 흐르며 우리의 마음도 어느덧 세상의 풍파에 씻겨 퇴색되어 가기 때문입니다. 뜨거웠던 결심은 차갑게 식어버리고, 삶의 무게와 예상치 못한 고통들이 우리를 짓누를 때 우리는 본능적으로 "이대로는 안 된다, 바뀌어야 한다"고 소리칩니다. 하지만 진정한 변화는 해가 바뀐다고 해서 절로 찾아오는 것이 아닙니다. 2026년 새해를 맞아 국가의 제도가 바뀌고, 사회적 트렌드가 달라지며, 신문 지면마다 '올해 달라지는 것들'이 나열된다고 해서 우리 영혼의 본질적인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외적인 환경의 변화는 잠시 신선함을 줄 수 있으나, 우리 내면의 갈급함과 무능력을 근본적으로 치유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새로워지기 위해 가장 먼저 통과해야 할 관문은 바로 '인간의 힘에 대한 파산 선고'입니다. 내 의지와 내 지혜, 내 경험으로 새해를 멋지게 꾸려보겠다는 교만을 내려놓는 지점에서 비로소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이사야 40장의 말씀은 바로 그 절망의 끝에서 소망의 근거를 찾는 이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강력한 해답입니다.
이사야 40장의 배경: 창조주의 영원한 권능에 기대라
오늘 본문이 기록될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벨론 포로라는 극심한 고난 속에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우리 사정을 모르신다", "우리는 이제 잊혀진 존재다"라며 깊은 불신과 우울감에 빠져 있었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를 통해 그들의 시선을 땅에서 하늘로 옮기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끝까지 창조하신 이는 피곤하지 않으시며 곤비하지 않으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이사야 40:28-29) 이것은 단순히 위로의 말이 아니라, 우주의 창조주께서 당신의 이름을 걸고 하시는 보증입니다. 인간의 인생은 들의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들의 꽃과 같아서,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불면 시들어버리고 마는 유한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 있습니다. 하나님은 창조의 권능으로 지금도 만물을 붙들고 계시는 분입니다. 이 위대한 창조주 하나님이 바로 우리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기억할 때, 우리는 비로소 2026년이라는 새로운 시간을 직면할 용기를 얻게 됩니다.
'앙망'의 신비: 하나님께 시선을 고정하는 훈련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여기서 '앙망(仰望)'이라는 단어는 우리 신앙생활의 핵심적인 태도를 보여줍니다. 히브리어로는 '카와'라고 하는데, 이는 '기다린다', '소망한다'는 뜻과 더불어 "모든 시선을 한곳에 집중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앙망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이 보이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분을 바라보는 우리 시야를 가로막는 장애물들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우리 삶에는 하나님을 가리는 수많은 '영적 가림막'들이 존재합니다. 세속적 쾌락과 집착, 번잡한 생각과 걱정, 내면의 죄성 등은 우리 영혼의 렌즈를 오염시켜 하나님을 일그러지게 보이게 합니다. 하나님을 앙망하기 위해서는 먼저 이러한 가림막들을 치워야 합니다. 마음의 번잡함을 내려놓고, 세상에 대한 과도한 집착을 거두어야 합니다. 제자들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여" 기도하지 못하고 잠들었던 것처럼, 우리도 자꾸만 감기는 영적인 눈을 깨워야 합니다. 2026년 새해,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훈련은 바로 '하나님께 시선을 고정하는 훈련'입니다.
'카와'의 어원: 기도로 꼬아 만든 튼튼한 생명줄
'앙망'을 뜻하는 '카와'의 어원을 더 깊이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 단어는 본래 **"노끈을 비비 꼬아서 하나로 묶는 것"**을 의미합니다. 양털 조각이나 짧은 실오라기들은 하나하나 보면 매우 약하고 짧습니다. 그러나 이것들을 한데 모아 강하게 비비고 꼬으면, 거대한 배도 묶어둘 수 있는 튼튼한 밧줄이 됩니다. 이것이 우리와 하나님의 관계입니다. 하나님과 우리를 꼬아 묶는 그 밧줄이 무엇입니까? 바로 '기도'입니다. 기도는 단순히 내 요구 사항을 나열하는 시간이 아니라, 약하디약한 나의 존재를 전능하신 하나님께 기도의 줄로 비비 꼬아 단단히 묶는 시간입니다. 우리가 기도의 줄을 놓아버리면, 우리의 마음은 세상 풍파에 흩어지고 맙니다. 그러나 기도로 하나님께 단단히 묶여 있으면,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흘러나오는 하늘의 생명력이 우리 삶으로 고스란히 전달됩니다. 기도는 또한 '간절한 기다림'입니다. 약속 장소에 미리 나가 친구를 기다리는 사람은 그 친구가 올 방향에서 시선을 떼지 않습니다. 누군가 뒤에서 장난스럽게 놀라게 하려 해도, 기다리는 마음이 간절한 사람은 오직 상대가 올 그 길목만을 주시합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무릇 기다리는 자에게나 구하는 영혼에게 여호와께서 선을 베푸시는도다." 여기서 기다림과 기도는 같은 단어입니다. 2026년 한 해 동안 기도의 노끈으로 여러분을 하나님께 단단히 매어두십시오. 그 줄을 타고 하나님의 능력이 여러분에게 임할 것입니다.
새 힘: 보조가 아닌 전면 교체'
하나님을 앙망할 때 주어지는 약속은 '새 힘'입니다. 여기서 '새 힘'의 진정한 의미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새 힘은 지쳤을 때 비타민을 먹거나 잠시 쉬어서 기운을 보충하는 수준입니다. 하지만 성경이 말하는 새 힘은 "힘의 교체(Exchange of strength)"를 의미합니다. 우리는 종종 하나님을 내 삶의 '보조자' 정도로 여깁니다. 내가 주인이 되어 내 인생을 운전해 가는데, 힘든 오르막길이 나오면 뒤에서 밀어주시는 분 정도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결코 보조자가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삶의 주권자이십니다. 내 힘으로 하려던 모든 시도가 멈추고, "주님, 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오직 주님의 힘으로만 살겠습니다"라고 고백하며 내 힘과 하나님의 힘을 완전히 교체할 때, 비로소 성경이 약속한 '새 힘'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새 힘을 얻은 성도의 삶을 '독수리'의 비행으로 묘사하셨습니다. 독수리는 새들 중에서도 가장 탁월한 비행 능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참새나 다른 작은 새들은 공중에 떠 있기 위해 끊임없이 날개짓을 해야 합니다. 조금이라도 쉬면 아래로 추락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네 인생도 이와 같을 때가 많습니다. 생존을 위해, 성공을 위해 잠시도 쉬지 못하고 파닥거리는 날개짓에 온 몸이 만신창이가 된 채 살아갑니다. 하지만 독수리는 다릅니다. 독수리는 보이지 않는 거대한 상승 기류를 탈 줄 압니다. 태풍이 불어와도 독수리는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강한 바람을 이용하여 날개를 펴고 더 높은 곳으로 솟구쳐 오릅니다. 이것이 '앙망하는 자'의 비결입니다. 내 근육의 힘으로 파닥거리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바람에 인생의 날개를 맡기는 것입니다. 새 힘을 얻은 자는 세상의 환난과 고통이 닥칠 때 그 고통의 바람을 타고 오히려 더 높은 영적 경지로 도약합니다. 독수리가 높은 하늘 위에서 세상을 내려다보듯, 우리도 현실의 문제 아래 깔려 신음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시선으로 문제를 바라보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고 싶어 하시는 승리자의 삶입니다.
달음박질과 걸어감: 일상에서 증명되는 능력
새 힘의 증거는 두 가지 차원에서 나타납니다.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며,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1. 달음박질(Running): 이것은 우리 인생의 특별한 순간들을 의미합니다. 큰 프로젝트를 수행하거나, 새로운 사역을 시작하거나, 인생의 중요한 목표를 향해 전력 질주해야 하는 때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새 힘을 가진 자는 이런 비상사태나 집중적인 에너지가 필요한 순간에도 영적으로 고갈되지(곤비하지) 않습니다. 하늘의 에너지가 계속해서 공급되기 때문입니다.
2. 걸어감(Walking): 사실 우리를 더 힘들게 하는 것은 특별한 위기보다 '지루하고 반복되는 일상'입니다. 매일 아침 일어나 직장에 가고, 가사 노동을 하고, 아이들을 돌보고, 익숙한 사람들을 만나는 평범한 일상의 걸음이 우리를 지치게 만듭니다. 그러나 새 힘을 얻은 자는 이 일상의 걸음 속에서도 피곤치 않습니다. 매 순간 하나님과 동행하는 기쁨이 있기 때문입니다. 특별한 기적을 경험하는 것보다 더 큰 기적은, 지루한 일상을 감격으로 살아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2026년 한 해 동안 거창한 영웅이 되기만을 바라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루하루 주어진 삶의 길을 주님 손 잡고 묵묵히, 그러나 기쁘게 걸어가는 '일상의 승리자'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2026년, 결단과 헌신으로 여는 새 지평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우리는 2026년이라는 미지의 땅에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이 땅은 우리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입니다. 어떤 장애물이 있을지, 어떤 복병이 숨어 있을지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땅끝까지 창조하신 우리 아버지가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올 한 해, 여러분의 삶의 방식을 바꾸기로 결단하십시오. 막연하게 "잘 되겠지"라고 낙관하지 마십시오. 막연한 소망은 무책임한 방종이 될 수 있습니다. 대신 구체적으로 **'여호와를 앙망하는 시간'**을 확보하십시오. 하루의 첫 시간을 기도의 노끈으로 주님과 묶는 일에 헌신하십시오. 세상이 주는 가짜 힘에 기대지 말고, 내 힘을 빼고 하나님의 힘으로 교체되는 그 '거룩한 항복'의 자리로 나아가십시오. 여러분이 하나님을 온전히 앙망하기 시작할 때, 2026년은 여러분의 인생에서 가장 역동적인 도약의 해가 될 것입니다. 독수리처럼 솟구쳐 오르는 영적 기상을 회복하십시오. 목표를 향해 달려가도 지치지 않고, 반복되는 일상을 걸어가도 피곤하지 않은 그 놀라운 신비의 주인공이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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