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하신 그리스도(6)_하나님의 뜻을 성취하신 그리스도(사 5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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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5-05-02본문
승리하신 그리스도(6)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신 그리스도(사 53:10)
잊지 못할 부활절의 기억 하나
해마다 부활절이 되면 늘 잊지 않고 기억나는 일이 있습니다. 1976년 제가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에 우리 교회 학생들하고 부활절 새벽 연합예배에 참석한 일입니다. 학생들이 부활절 연합예배에 참석하기로 해서 여러 명이 같이 가게 되었습니다. 버스를 타고 여의도에 있는 516 광장에 도착했습니다. 그때 스피커를 통해 예배 전 찬송이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그때 찬송을 인도하던 분이 김명엽 선생님이라고 우리 고등학교 음악 선생님이었습니다. 그때 스피커에서 나왔던 찬송이 오늘 우리가 예배 찬송으로 불렀던 ‘할렐루야 우리 예수’였습니다. 이 찬송이 스피커에서 나오는데 그때 마음속에 깊은 감동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찬송이 계속되는 동안 차가운 바닥에 무릅 꿇고 기도하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때는 연합집회를 모이면 보통 100만 명 정도씩 모이던 시대입니다. 그 해에도 100만 명이 모였다 하는 상황인데 제가 정확하게 기억을 하지 못하겠어요. 예배가 끝나고 흩어질 때 여의도에서 한강을 건너는 다리란 다리는 모두 사람으로 가득 차서 저도 마포대교를 건너 마포 쪽으로 나가서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타는 데까지 계속 걸어가야 했습니다. 그 부활주일의 기억이 벌써 50년 세월이 되었는데 지금까지 마음속에 늘 살아 있습니다. 그 엄청난 인파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축하하면서 기념하면서 부활의 소망으로 함께 예배하고 찬양하고 했었던 그 자리, 그 광경, 이것은 진정 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어린 학생 시절에 경험했던 이 놀라운 일이 평생 동안 부활절만 되면 설레이는 마음을 갖게 하고, 부활절을 우리 교회 절기 가운데에서 가장 크고 영광스러운 절기로 받아들이게 했습니다.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물론 성도들의 삶은 그 후로 많이 변했습니다. 성도들은 부활절을 이제 예전처럼 그렇게 감격적으로 맞이하지 않는다 하는 느낌이 듭니다. 예전처럼 부활을 기념하기 위해 자기를 단장하고 준비하는 일들도 거의 사라지고 있지 않는가 하는 마음도 듭니다. 그럴수록 그때의 경험과 그때의 인상이 더욱더 아쉽기만 합니다. 지금도 다시 살아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일들이 오늘 우리 가운데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금년에 우리가 부활 주일을 맞이하기 전에 고난주간 특별새벽기도회도 진행했습니다. 그러나 예전과 다른 것은 이 기도회를 위해 준비하고, 또 결심하고 간절한 소망을 가지고 기도회에 참여하는 모습이 예전보다 못하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이제는 시대가 그러려니 하고 그냥 포기해야 할 것인가?’ 지금 제2기 제자 훈련하는 동안 조나단 에드워즈의 『신앙과 정서』를 독서하고 묵상하고 공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신앙과 정서 제3부에서 서론에서 조나단 에드워즈 목사가 진실로 은혜 받은 성도의 감정과 거듭나지 못한 사람들의 체험을 비교하고 분별 하는 이유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가운데 세 번째 이야기가 가슴을 아프게 합니다. 그는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다 쓸데없는 것 같다고 이야기합니다. 이런 말을 하는 것이 다 쓸데없는 것 같다. 왜냐하면 안 듣는 사람은 안 듣기 때문입니다.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런 말을 해봤자 쓸데없는 일인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우리 시대만 그런 것이 아니었구나 .’ 그 시대에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깨닫지 못하고 말씀을 들어도 마음에 감동이 없는 사람은 감동이 없었던 것입니다. 알고 보면 예수님 당대에도 예수님이 말씀을 전하실 때에, 예수님의 말씀은 권세 있는 자들과 같아서 사람들이 깜짝 놀랐다고 하는데도 불구하고 못 듣는 귀들이 많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일은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든 늘 있었던 것인데 그렇다고 해서 포기해야 할 것인가? 그렇지 않습니다. 그 말을 하고도 에드워즈 목사는 400페이지에 이르는 말로 계속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포기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시대에 신앙의 부흥이 일어나야 합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품에 가기 전에 교회가 하나님의 압도적인 은혜로 불타오르는 것을 한번 보고 싶지 않습니까? 여러분이 은혜를 받고 이 은혜가 이 땅에 퍼져 나가는 것을 경험하고 싶지 않습니까? 그 사실을 인하여 하나님 앞에 찬양하고 감격적으로 기도하고 싶지 않습니까? 그런 일들이 우리가 사는 동안에 우리 가운데에서 일어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탄의 기대를 모두 깨뜨린 그리스도의 부활
오늘은 2025년 부활 주일입니다. 부활은 그리스도에게 임한 고난과 죽음이 결코 끝이 아니었다는 것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운명하셨을 때 사탄의 눈에는, 그리스도를 죽이고자 오랜 세월 동안 애쓰고 노력했던 사탄의 경우에는 마침내 그의 모든 계획이, 자신의 모든 의도가 성공한 것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운명하시는 순간에 사탄은 두 손을 번쩍 들고 환호성을 올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흘 후에 사탄은 깜짝 놀랐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셨던 것입니다. 사탄이 알지 못했던 하나님의 은밀한 계획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십자가에서 죽으셨으나 그를 다시 살리는 일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의 부활로 인해서 사탄의 모든 궤계는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탄생하셨을 때 그를 죽이고자 헤롯이라고 하는 존재를 자극했었고, 실패하자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다니면서 그를 어떻게 하면 죽일 수 있을까 틈을 노리고 있다가 그는 실망하여 잠시 예수 그리스도를 떠났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다시 나타나 유대 백성들을 자극하고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을 선동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마침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모든 궤계와 그의 모든 의도를 철저하게 파괴시키셨습니다. 그로 인하여 사탄의 세력은 무너지게 되었고, 사탄조차도 더 이상 힘을 쓸 수 없는 상황으로 떨어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죄인들의 구원을 위해 뜻을 세우셨다
오늘 우리가 읽은 이사야서 53장 10절의 말씀은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의 열매가 무엇인지 그 아름다운 열매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그의 고난과 죽으심을 통해서 죄인들을 거룩하게 하셨고 온전하게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간고와 질고 속에 신음하며 고통스러워하며 눈물 흘리는 우리 인생들을 고치셨습니다. 모든 간고로부터, 모든 질고로부터 자유를 얻게 하셨습니다. 이 모든 일들은 하나님의 뜻이 있었기 때문에 이루어진 것이었습니다. 오늘 성경 말씀은 그리스도께서 그의 고난과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하게 하셨은 즉,” 후반절을 보면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성취하리로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성경은 하나님이 기쁘시고 선하신 뜻을 가지고 행하시는 분이시라고 말씀합니다. 현대인들이 생각하는 신은 목적을 가지는 신이 아닙니다. 합리주의자들이 주장했던 신은 목적을 가지고 행하는 신이 아닙니다. 창조로 그의 모든 목적은 끝났고, 그리고 그 후에 모든 것들은 법칙에 따라서 진행될 뿐이라고 이야기합니다. 혹은 동양의 선 사상에서 말하는 초월적 존재는 땅에 있는 인간들의 아픔과 고통을 마음 아파하지 않습니다. 그냥 보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우리에게 증언하는 하나님은 기쁘시고 선하신 뜻을 가지고 우리 가운데 역사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계획을 세우시고, 필요한 모든 준비를 하시고, 모든 희생을 무릅쓰셨던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과 구원의 역사 속에 그대로 나타나 있습니다. 하나님은 목적을 가지고 행하시는 분이십니다. 인간이 타락했을 때, 멸망으로 떨어졌을 때, 하나님은 인간을 향하여 기뻐하시고 선하신 뜻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이 죄인들을 향하여 ‘너희들의 죗값이다’ 하고 외면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죄인들을 향하여 기쁘고 선하신 뜻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 기쁘고 선하신 뜻을 이루기 위하여는 엄청난 희생이 필요했습니다. 당신의 독생자가 하늘의 영광을 버리고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셔야 했고, 육신으로 인하여 인생들이 겪는 모든 간고와 질고를 겪어야 했고, 사람들의 멸시와 천대를 겪어야 했고, 침 뱉음을 당하고 조롱을 당해야 했습니다. 마침내는 인간들의 절망인 죽음까지도 맛보아야 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목적은 희생 없이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당신이 정하신 기쁘시고 선하신 뜻을 위하여 얼마나 큰 것을 희생했는지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은 그 기쁘시고 선하신 뜻을 이루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세월을 기다리고 참으셨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성경은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이 우리의 구원이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죄인에 대하여 진노하사 당장에 진노를 땅에 쏟아 부으셨다면 오늘 우리는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는 구원의 은혜가 임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가 그 구원의 감격을 가지고 소망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리스도의 영광을 노래하는 일도 없었을 것입니다. 이 모든 일들로 인하여 우리의 마음속에 감격과 기쁨이 넘쳐나는 일도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아예 어둠조차 아니고 존재자조차도 없는 상황에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오래 참으셨습니다. 하나님의 목적 때문입니다. 죄인들을 구원코자 하시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 때문이었습니다. 그 오래 참으심 때문에 오늘 우리가 이 세상에 존재하게 되었고, 그 오래 참으심 때문에 오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게 되었고, 그 오래 참으심 때문에 우리가 생명의 은혜를 입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중보자를 통해 그 뜻을 이루셨다
하나님은 당신이 기뻐하시고 선하신 뜻을 이루시기 위하여 중보자를 세우셨습니다. 중보자는 자기의 가장 값진 것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로마서 5장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독생자도 아끼지 않고 주셨은즉’이라고 이야기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가장 귀한 것을 주셨는데 무엇을 아낄 것이 있는가? 즉 독생자를 주신 하나님은 우리에게 모든 좋은 것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독생자가 가장 참 귀한 분이고, 그리고 그에 따르는 모든 것들이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할렐루야! 여러분, 하나님은 중보자를 세워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고난과 그의 죽으심이 바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자 하는 그리스도의 열심이었던 것입니다. 그분은 이 일을 기쁘게 감당했습니다. 성경을 보면 그분은 잠잠하셨다고 말씀합니다(7절).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이렇게 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나님의 뜻이 마음속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뜻을 이루는 것이 합당하기 때문에 아픔과 고통을 말하지 아니하셨습니다. 잠잠하게 이 모든 일들을 감당하셨습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당신이 십자가 위에서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셨습니다. 더 나아가서 하나님의 뜻은 또 어디에 있었을까요? 10절 중간을 보면, “그의 영혼을 속건 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며”, 즉 그리스도께서 거룩함을 위한 제사를 당신의 몸으로 제사를 드리게 되면 “그가 씨를 보게 되며”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후손을 본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육신적으로 자녀를 갖는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이것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 생명을 얻는 자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리스도는 부활로, 즉 그의 죽으심과 부활로 새 생명의 은혜를 죄인들에게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그의 씨가 많아진 것입니다. 그리고 이 씨가 온 땅에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씨가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죄인들의 죄 사함과 구원에 머물지 아니하고 온 세상이 하나님의 나라로 회복되는 것까지입니다. 이 영광스러운 일을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을 통해서 성취하시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일들을 그리스도께서 친히 성취하셨습니다. 부활은 하나님의 뜻의 성취의 선포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손으로 이루신 하나님의 뜻의 성취가 오늘 우리의 영원한 삶 속에 그대로 성취되기를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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