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하신 그리스도(8)_고난 받은 종의 승리(사 52: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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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5-05-11본문
승리하신 그리스도(8)
고난 받은 종의 승리(사 52:13-15)
깜짝 놀랄 만한 여호와의 종의 모습
오늘 우리가 읽은 이사야서 52장의 말씀은 여호와의 종의 탁월함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종이라고 하는 말은 신분이 종이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가령 로마 황제에 대해서 총독이라든지 고위 관료들이 자기를 자랑스럽게 표현하는 말이 황제의 종이란 말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종이라고 하면 엄청난 존재라고 하는 의미를 갖는 것입니다. 그가 지극히 존귀하게 되리라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나 깜짝 놀랄 만한 일이 14절에 나오는데, “전에는 그의 모양이 타인보다 상하였고 그의 모습이 사람들보다 상하였으므로 많은 사람이 그에 대하여 놀랐거니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종으로서 그는 탁월하고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나타나는데, 전에는 그 모양이 상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사람들이 깜짝 놀랐다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모든 진리들이 담겨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그에 대하여 놀랐다. 어떻게 여호와의 종으로 오신 분이, 어떻게 메시아로 오신 분이 고난을 당하고 모욕과 멸시를 당하고 심지어는 십자가의 죽음을 당할 수 있는가? 이는 깜짝 놀랄 만한 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를 지극히 영광스럽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에 대한 모든 사실들과 그 의미들이 온 땅에 증거되는데 이 소식을 듣는 모든 사람들이 또한 깜짝 놀랄 수밖에 없습니다. “그가 나라들을 놀라게 할 것이며, 왕들은 그로 말미암아 그들의 입을 봉하리니 이는 그들이 아직 그들에게 전파되지 아니한 것을 볼 것이오, 아직 듣지 못한 것을 깨달을 것이니라.” 아직 그들에게 전파되지 아니한 것, 또 아직 듣지 못한 것. 이것은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 그리고 그 의미에 대한 것입니다. 본문 말씀은 여호와의 종이 고난을 받아 상한 모습으로 사람들을 놀라게 할 뿐만 아니라, 그 후에는 영광스러운 탁월한 모습으로 사람들의 입을 막게 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낮아지심과 높아지심
신학에서는 그리스도의 생애를 두 가지 단어로 요약하고 정리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낮아지심과 높아지심이라는 용어입니다. 그리스도의 낮아지심은 그리스도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고난과 죽음을 당한 사실을 의미하고, 그리스도의 높아지심은 부활하고 승천하여 하나님 보좌에 앉아 계시다가 재림주로서 심판하러 다시 오시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내용은 사도 신경에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우리들이 예배드릴 때마다 사도 신경을 고백하는데 사도 신경에서 그리스도에 대한 부분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데, 거기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그의 낮아지심을 네 가지로 고백을 하고 그의 높아지심을 네 가지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사도 신경은 그리스도의 낮아지심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셨습니다. 성령으로 잉태되었다는 말은 그분이 잉태되신 것은 부정모혈로 된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동정녀 마리아라는 말도 역시 부정보혈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기 위해서 잉태되는 순간에 일어나는 일이 있습니다. 소위 부정모혈, 남자와 여자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탄생하셨는데 어떻게 된 일인가? 이것은 이해되지 않는 깜짝 놀랄 만한 사실입니다.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그 당시에 이 사건에 대해서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천사가 마리아에게 나타나서 그가 잉태할 것을 예고하시고, 또 이 사실이 요셉에게 알려지게 되었는데 아마도 이는 마리아가 요셉에게 가서 이야기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요셉은 아무에게도 알리지 아니하고 고민하고 있던 차에 천사가 그에게 나타나서 이 모든 된 것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마리아와 요셉은 그 말씀을 마음에 믿고 이 사실을 마음속에 간직합니다. 그리하여 요셉이 마리아와 정혼한 상태에서 합가하였고, 요셉은 어머니와 아기를 보호하는 보호자가 되었습니다.
성경은 이 일의 의미를 이렇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빌립보서 2장 6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성령으로 잉태하여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난 것은 놀라운 기적에 해당하는 것이지만, 그리스도 예수의 입장에서는 어떤 일이었을까요? ‘그는 근본 하나님과 하나님의 본체’였습니다. 그는 근본적으로는 하나님이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그는 성부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자기의 모든 영광을 비워 종의 형체를 가졌다고 이야기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종의 형체는 인간이 되셨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그는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낮아지심입니다. 그는 높은 곳에 있었으나 낮은 곳에 오셨습니다. 높은 곳은 그가 근본 하나님의 본체였다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그것이 본래 그의 자리입니다. 그러나 낮아지셨습니다. 그 후에는 높아지셨습니다. “장사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그는 부활하셨습니다. 그다음에는 “하늘에 오르사,” 승천하셨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 보좌에 앉아 계시다가,” 지금은 하나님과 함께하시되 여전히 우리를 위해 중보자의 사역을 감당하고 계시다가, “저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마침내 때가 되면 심판주로서 다시 재림하신다고 말씀합니다. 그리스도의 높아지심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빌립보서 2장 9절로 11절까지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 만왕의 왕이라고 하는 이름을 받으셨습니다. 그리하여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있는 모든 것들이 그 이름에 무릎을 꿇게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이 모두 자신의 입으로 예수를 주라 시인하게 하셨습니다.
대속 없는 그리스도로 안 될까?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그리스도시라면, 고난 없이 그냥 그리스도로 인정받고, 사람들이 그를 그리스도로 받아들여 그냥 하나님이 뜻하신 모든 일들을 행하시면 안 되셨는가?’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미 살펴본 대로 그분은 고난당하고 멸시를 받으셨습니다. 그분은 우리의 간고를 짊어지셨고 우리의 질고를 모두 담당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은 우리의 죄와 허물을 위한 것이었다고 말씀합니다. 왜 이렇게 번거로운 과정을 거치셔야만 했을까요? 이 모든 일들이 비록 우리의 죄와 허물 때문이라고 할지라도 ‘이런 과정 없이는 안 되었을까?’ 하는 의문이 늘 마음속에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이 부분을 삭제하고 그리스도를 메시아로 섬기고자 하는 시도들이 역사 속에 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은 성경에 기록된 사실이니 사실을 부인할 필요는 없지만, 그 사실이 담고 있는 의미를 강조할 필요는 없다는 것과, 또는 성경 중에 그 의미를 얘기하는 부분이 있다 해도 그것을 크게 부각시킬 필요는 없다는 자세를 가진 사람들이 참 많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그분이 십자가 위에서 피 흘려 돌아가셨습니다. 그것은 역사적 사실로 인정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가지고 있는 의미, 즉 우리의 죄를 위한 것이며 우리의 허물을 위한 것이라고 하는 사실, 아니 그것까지는 인정한다 해도 그것이 우리의 죄, 바로 그것을 대신하는 것이며, 우리의 죗값을 대신 치르셨다고 하는 대속은 인정하지 않는 일들이 지금 역사 속에서 존재하고 있었고, 지금 우리 주변에서는 이 주장이 큰 힘을 얻고 있는 상황입니다.
10여 년 전에 우리나라에서 한참 영국의 어떤 신학자의 신학에 대해서 신학교의 교수들부터 시작하여 모두 ‘이것은 아니다’라고 하는 일들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시끄러운 문제들을 외면하고 있을 수는 없다는 생각으로 우리나라에 출판된 그의 책들을 구입해서 날마다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성경을 자기 마음대로 해석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 표면적으로는 우리가 알고 있던 복음을 말하나 속의 내용과 의미는 완전히 부인하거나 변경시켰구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늘 하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아 천국이라고 하는 다른 장소에 가는 것으로 믿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이곳에서 하나님의 나라의, 새로운 시대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이 사실을 인정합니다. 그나 우리나 모두 똑같은 말을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는 왜 사람이 죽어서 천국에 가는 것을 부인할까요? 그 이유는 그가 영혼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는 인간이 육과 영혼이라고 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는 것을 헬라 철학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 하여 일단 부인합니다. 그는 영혼이 살아 있는 것을 안 믿기 때문에 ‘죽은 사람의 영혼이 어디에 가 있느냐?’ 이런 문제를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믿는 바로는 성도의 영혼을 하나님께서 하나님 계신 곳으로 인도하여 그곳에서 하나님과 함께합니다. 물론 그것이 최종 완성된 천국은 아닙니다. 임시적인 천국입니다. 최종 천국은 육신과 영혼이 다시 합하여 부활하였을 때, 새 하늘과 새 땅이라고 부르는, 새롭게 된 이곳에서 온전한 영혼과 육체를 가진 부활체가 있는 바로 이곳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그는 영혼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인간이 죽으면 남는 게 무엇인가? 그는 제대로 알지 못한다고 이야기합니다. 다만 인간이 죽어 기억이 남을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기억이 남으면 이 기억은 어디에 모여 있게 될까요? 인격체로서 구분될 수 있는 기억이 어딘 가에 수없이 모여 있다가 부활할 때 하나님이 이 기억을 인간의 육체에 하나씩 넣어주신다는 말일까요?
대속 없는 그리스도는 우리의 그리스도가 아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이 역사적 사실임을 부인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갖는 의미를 전혀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죄를 대신한 것이라는, 우리의 죗값을 갚는 죄의 형벌이라고 하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가 고난 당한 것은 이스라엘 민족의 고난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의 고난이 이스라엘 민족의 고난을 상징하는 이유는 그가 이스라엘의 메시아였기 때문입니다. 그의 고난은 이스라엘에게 자신이 이스라엘의 메시아임을 증명하기 위한 하나의 장치였다는 것입니다. 그의 말에 따르면 그리스도의 고난은 우리를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리의 죄를 대신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단지 이스라엘의 역사적 고난의 상징이었을 뿐입니다. 그는 그리스도는, 아니 이스라엘의 메시아는 고난을 받되 이스라엘의 메시아로서 그의 생애 속에 이스라엘의 고난을 상징으로 나타내었고, 그리하여 자신이 이스라엘의 메시아임을 증명했고, 이스라엘의 메시아이신 그를 믿으면 온 세계는 하나님의 나라 백성이 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여 대속 없는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습니다. 대속 없는 그리스도, 우리는 이것이 얼마나 얼마나 악한 일인지 알아야 합니다. 거짓 그리스도라고 하는 존재들이 우리 주변에 심심치 않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근데 그들이 알지 못하는 것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대속 없이는 그리스도가 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여기 재림 예수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오직 우리를 위해 대속의 죽음을 당했던 그 분만이 재림 예수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 죄를 대신하신 분이 아니면 메시아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죄를 대신 감당하신 분이 아니면 우리의 그리스도가 될 수 없습니다. 여러분, 어느 누구의 메시지가 참인지 알기 위해서는 그가 그리스도의 대속의 사실을 믿는지를 확인하십시오. 그가 그리스도의 대속을 선포하는 지를 확인하십시오. 아무리 보기에는 좋고 듣기에는 좋아도 그 속에 그리스도의 대속이 없다면,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짊어지시고 심판을 받으셨다는, 그리하여 우리가 받아야 하는 모든 형벌과 죽음을 대신 받으셨다는, 그리하여 우리를 죄로부터 자유롭게 하셨다는, 그리하여 우리에게 새 생명을 주셨다는 이 사실이 없다면 그가 전하는 모든 매끄러운 말들은 거짓일 뿐입니다. 오늘 우리는 심각한 도전에 처해 있습니다. 영광스러운 진리, 위대한 교리가 숨겨지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때 우리는 영광스러운 교리, 위대한 이 진리가 살아있는 교회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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