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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트립의 메시지(9)_파리 : 노트르담 대성당의 사진을 찍지 않았다(시 13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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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5-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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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트립의 메시지(9)

파리 : 노트르담 대성당의 사진을 찍지 않았다(시 137:1-6)


포로 생활 중에도 신앙의 기개를 보이는 이스라엘 백성

오늘 우리가 읽은 시편 137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의 포로로 붙잡혀 가서 그곳에서 수모를 당하였지만, 그들은 그 수모 가운데에서도 믿음을 굳게 지켰다는 내용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바빌론 여러 강변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습니다. 즉, 교회가 무너졌는데 그 무너진 교회를 생각하며 울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들은 찬양할 때 사용하던 악기인 수금을 버드나무에 걸어두었습니다. 그들은 울면서 이 수금을 옆에다가 걸어두고 더 이상 사용하지 않습니다. 이유는 3절에 나오는데, ‘이는 우리를 사로잡은 자가 거기서 우리에게 노래를 청하며 우리를 황폐하게 한 자가 기쁨을 청하고 자기들을 위하여 시온의 노래 중 하나를 노래하라 함이로다.’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하며 하나님을 경배하는 그 노래가 우상숭배자들에게는 하나의 유흥거리에 불과한 처지로 전락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의 즐거움을 위하여 패배자들을 불러놓고 그들로 하여금 노래를 부르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비록 패배자일지라도, 바벨론 포로로 붙잡혀 와 있을지라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그 노래를 이방의 잔치 자리에서 여흥과 유흥의 대상으로 만들 수는 없다고 하는 믿음을 표현한 것입니다. "우리가 이방 땅에서 어찌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까?" 그들은 승리자인 바벨론 사람들이 자신들의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비록 전쟁에 지고 포로로 붙잡혀 왔고 억압을 받을지라도 여호와의 노래를 그들 앞에서는 부를 수 없다고 하는 것이 그들이 가지고 있었던 믿음이었던 것입니다. 시인은 "예루살렘아. 내가 너를 잊을진대 내 오른손이 그의 재주를 잊을지어다"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만약 교회를 잊어버리고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노래를 부른다면 아예 노래를 부를 수 없도록 자신을 파괴시켜 달라는 이야기입니다. 더 나아가서 6절을 보면, "내가 예루살렘을 기억하지 아니하거나 내가 가장 즐거워하는 것보다 더 즐거워하지 아니할진대 내 혀가 내 입천장에 붙을지로다." 즉,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교회가 그에게 우선순위가 되지 않는다면, 노래를 아예 부를 수 없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오른손으로 악기도 못 치고, 입으로는 소리도 못 내는 비참한 지경으로 가지 않게 하겠다는 이야기죠. 비록 패배자로 포로 생활을 하고 있지만, 신앙의 세계에서만큼은 양보할 수 없다고 하는 신앙의 기개가 여기에 표현되어 있습니다.


믿음만이 영원하기 때문

우리는 이 신앙의 기개를 본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핍박을 당하고 아픔과 고통을 겪을지라도 신앙의 기개를 상실한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최후의 마지막, 우리가 간직하고 있는 것은 신앙의 기개입니다. 이 세상의 것들은 다 사라지는 것들입니다. 세상의 영광도 사라질 것이고, 명예도 사라질 것입니다. 세상의 권력도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우리 속에 있는 마지막 하나, 하나님을 믿는 믿음. 그 믿음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은혜, 이것 외에는 영원한 것이 없습니다. 그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바벨론의 포로로 붙잡혀간 시인은 이방인들 앞에서 수금을 타면서 여호와의 노래를 부르지 않겠다고 했던 것입니다. 그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그가 무슨 해를 당했는지, 무슨 핍박을 당했는지, 감옥 생활을 했는지, 후일담에 대하여는 알 길이 없습니다. 다만 이 시인은 기개 있게 그에게 다가오는 어떤 손해와 아픔과 고통이라도 기꺼이 감당하겠다고 하는 믿음의 용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에게 감옥인들, 창칼인들, 심지어 죽음인들 두려움이 되었겠습니까?. 그는 그것보다도 하나님의 영광을 더 소중하게 여겼던 것입니다. 마지막 남은 신앙의 기개, 이것 하나를 지키는 모습을 오늘 우리들에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노트르담 대성당 앞 광장은 비극의 현장이었다

저는 파리에서 비전 트립 마지막 일정을 진행하는데, 오전에 버스로 이동하는 중에 노트르담 대성당이 보이는 길을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몰려 있었습니다. 노트르담 대성당은 2019년에 불이 났습니다. 첨탑과 지붕이 불타 그동안 복원 공사를 하다가 작년 연말에 재개관을 했다고 합니다. 몇 년 동안 닫혀 있던 곳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왔는지 모릅니다. 저도 재개관했으니 사진을 한 장 찍어야지 싶어서 폰을 꺼내 들었지만, 막상 찍지 못했습니다. 사진을 찍으려다가 찍지 않은 이유는 노트르담 성당과 관련된 프랑스 종교개혁의 역사와 그 비극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그 사실을 아는 저는 단순히 관광하는 관광객으로서 그 장면을 찍을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전날 칼뱅의 생가를 방문했습니다. 그곳은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었는데, 3층에 올라갔더니 '사막 교회'라고 하는 자료들이 있었습니다. '사막 교회'는 '광야 교회'를 의미하며, 이는 역사 속에서 박해받는 교회를 의미하는 용어입니다. 칼뱅 생가 3층에 있는 자료들은 프랑스에서 있었던 종교 개혁과 그들의 후예들이 박해받은 것에 대한 자료들이었습니다. 우리는 프랑스 개혁 교회를 '위그노'라고 부릅니다. 프랑스 종교개혁 역사를 공부하게 되면 위그노들이 얼마나 많은 핍박 속에서 방멸되다시피 했는지 알게 됩니다. 16세기, 17세기, 18세기에 걸쳐서 그들에 대한 박해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속에서 믿음을 결코 버리지 않았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학살을 당했고, 화형을 당하거나 죽임을 당했던 것입니다. 그런 역사가 노트르담 대성당 광장에 있는데, 사람들은 지금 알지 못한 채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 마당은 실상은 이단들을 처형하던 자리였습니다. 종교 개혁자들은 그 시대에 이단으로 몰렸고, 그들은 그곳에서 화형을 당하는 비참한 죽음을 당했습니다. 그런 현장의 모습을 떠올릴 때, 저는 편안하게 관광객의 입장에서 사진을 찍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박해 받은 종교개혁자들과 그 후예들

우리는 우리가 오늘 누리는 신앙의 자유가 그냥 어느 날 주어진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신앙의 자유는 쉽게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프랑스에서 개혁자들은 말할 수 없는 핍박을 당했습니다. 프랑스에서는 왕이 종교개혁자들을 철저하게 박해했습니다. 칼뱅조차도 망명객입니다. 그가 언제 종교개혁자로 전향했는지에 대해서는 학자들의 여러 가지 이견이 있습니다. 그러나 칼뱅이 '기독교 강요'를 집필하고 출판하는 1535년-36년경에는 이미 그가 종교개혁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는 가톨릭의 미신 속에서 벗어났고, 그 일은 예기치 않은 갑작스러운 회심 때문이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영광을 대면하는 놀라운 영적 체험 속에서 진리에 눈을 뜨고 자신을 드릴 마음의 용기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는 망명객이 되어 프랑스 땅 여기저기로 도피 생활을 했습니다. 당시에는 종교개혁의 정신은 있었지만 체계적으로 진리를 가르칠 사람이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칼뱅에게 많은 사람들이 도움을 요청했고, 사람들은 칼뱅을 알아보고 찾아와 말씀을 배우기를 원했고, 칼뱅은 제대로 된 진리 체계를 책으로 써야겠다고 생각하여 '기독교 강요'를 썼습니다. 그는 진리를 가르치기 위해 이 책을 썼지만, 동시에 당시 왕인 프랑수아 1세에게 '우리는 이단이 아니다'라고 변증하기 위해 이 책을 헌정하게 되었습니다.


망명길에 오른 칼뱅은 제네바로 갔고, 그곳에서 파렐을 만나 제네바에 남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제네바에서도 쉽지 않아 3년 만에 쫓겨났다가, 제네바의 종교개혁이 무너질 상황이 되자 다시 요청을 받아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자기가 받은 진리를 따라 교회를 바로 세우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가 제네바에 자리 잡는 동안 루터는 죽고, 칼뱅은 종교개혁자들 가운데 우뚝 선 인물이 되었습니다. 프랑스 개혁 세력들은 칼뱅에게 많이 의지하게 되었습니다. 1559년에 프랑스에서는 제1차 개혁 교회 총회가 열려 '갈릭 신앙 고백'을 발표했습니다. 이 신앙 고백 속에는 칼뱅의 모든 사상들이 그대로 녹아 있었으며, 칼뱅의 지도를 받아 완성되었습니다. 이 고백은 후에 네덜란드의 '벨직 신앙 고백'을 만들 때 영향을 주게 됩니다. 그러나 위그노들을 미워하는 사람들은 여전했습니다. 왕들과 왕의 어머니인 메디치 가문의 카트린느가 위그노들을 미워했고, 기즈 가문은 1562년 바시 시에서 예배드리는 위그노들을 학살했습니다. 이 '바시 시의 학살' 때문에 위그노들이 들고 일어나 '위그노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이후 화해를 위해 개신교 측 왕위 계승 서열을 가진 사람을 왕으로 세우려 했고, 그 사람이 가톨릭으로 개종하며 화합하자고 했습니다. 결혼식 전야 축제에서 군대가 들이닥쳐 결혼식에 참석하러 온 위그노들을 한꺼번에 학살하는 일이 벌어졌는데, 이것이 1572년에 일어난 '성 바돌로 축일의 대학살'입니다. 우리는 그 학살이 일어났던 교회당 앞을 갔습니다. 루브르 박물관 뒤쪽에 있는 '생제르맹 룩세루아 교회'가 대학살이 벌어진 현장이었습니다.


역사를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역사를 모를 때에는 그 현장을 아무 생각 없이 평범하게 걸어 다닐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역사를 알고 보면 그 현장을 밟고 다니는 것조차 죄송스러울 따름입니다. 결국 위그노 측의 왕위 계승권자인 앙리 4세가 왕이 되었고, 그는 1598년에 '낭트 칙령'을 발표하여 위그노들에게 신앙의 자유를 주었습니다. 이 칙령으로 전쟁이 끝났지만, 앙리 4세의 손자인 루이 14세가 낭트 칙령을 폐지하고 다시금 가톨릭을 유일한 국교로 세우며 위그노들에 대한 철저한 말살 작전에 들어갔습니다. 18세기 중반, 최소 20만에서 40만에 달하던 위그노들이 프랑스 땅에서 완전히 사라지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위그노들은 주로 상공업자들이었는데, 이들을 박멸하느라 프랑스는 산업 국가로 도약할 기회를 상실하고 농업 국가로 남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위그노는 몇 안 되며, 오히려 스위스 알프스 산속 자그마한 마을에 위그노 교회들이 있는 상황이라고 합니다. 프랑스는 20세기 중반까지 가톨릭이 유일한 국교였고 신앙의 자유가 인정되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 위그노들의 신앙과 박해, 그리고 그 속에서 지켰던 믿음을 떠올렸습니다. 노트르담 대성당을 보다가 그 광장에서 죽은 신앙의 선배들의 이야기가 떠올랐기 때문에 사진을 찍을 수가 없었습니다. 죄송한 마음이 들고, 그 현장에서 관광객 모드로 즐길 수 없었습니다. 저희가 점심 식사를 한 식당 바로 옆에 프로테스탄트 교회가 하나 있었는데, 역사 유적지로 푯말이 붙어 있었습니다. 그 박해 현장에 교회가 남아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그 교회는 원래 카톨릭 성당이었는데 1811년 나폴레옹이 개신교 측에게 주었다고 합니다. 그 교회에는 성 바돌로매 축일의 대학살 때 살해당한 위그노 지도자 콜리니의 부조가 새겨져 있습니다.


미래 개혁교회 세대의 등장을 위해 헌신하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오늘 누리는 이 신앙은 평안한 가운데 우리에게 전해진 것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진리를 위해 헌신하고 희생하고 피 흘리고 죽었기 때문에 우리들에게 전해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 신앙이 어떻게 우리에게 전수되었는지, 진리가 어떻게 우리에게 전달되게 되었는지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것을 우리 다음 세대에게 전수하고, 그다음 세대가 영광스러운 세대가 될 수 있도록 우리가 기도하고 헌신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오후 예배 말씀의 제목은 '미래 개혁 교회 세대의 등장'입니다. 저는 비전 트립을 진행하고 기도하면서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습니다. 비전 트립의 열매는 당장 보이지 않겠지만, 우리는 기다려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의 제목이 '미래 개혁 교회 세대의 등장'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마음에 품고 꿈으로 간직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 자녀들이 개혁 교회를 세우는 새로운 개혁 세대가 되었으면 하는 것입니다. 이제 비전 트립을 통해 씨앗이 뿌려졌으니, 이 씨가 잘 싹트고 열매를 맺는 그 순간까지 우리는 기도하고 끊임없이 살펴주고 물을 주고 벌레를 잡아내고 양분을 공급하는 일들을 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뿌린 이 씨앗을 영광스럽게 사용해 주시기를 간절히 소망할 뿐입니다. 이 모든 일에 여러분이 증인이 되시고, 그 모든 열매를 여러분들의 기쁨으로 누릴 수 있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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