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요약

종교개혁의 메시지(3)_오직 그리스도 ① (딤전 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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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5-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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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의 메시지(3)

오직 그리스도 ① (딤전 2:4-7)


모든 사람을 위하여 기도해야 하는 이유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 말씀은 디모데 목사에게 사도 바울이 주시는 목회적 교훈에 해당하는 부분입니다. 사도 바울은 1장에서 디모데 목사를 에베소에 남겨둔 이유는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을 제어하고 바른 복음을 가르치기 위해서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리고 2장에서는 두 번째 교훈을 주셨는데 그것은 기도에 대한 교훈이었습니다. 두 가지 내용으로 기도하라고 말씀하는데 하나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라. 둘째는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는 교회를 위해서, 그리고 성도를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을 것 같은데 오히려 모든 사람을 위하여, 그리고 특별히 임금들과 높은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모든 사람의 구원에 있기 때문입니다. 4절,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목회자로서 자칫 교회에만 시선을 두고 교회에만 가치를 두는 잘못을 범하지 않도록 그의 시선을 모든 사람에게 두도록 기도를 가르쳤던 것입니다. 이 일이 이루어져야 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로는 그리스도인 된 우리가 평안한 가운데 신앙생활을 할 수 있기 위해서입니다. 나라가 안정되지 못하고 위정자들이 제자리를 지키지 못한다면 우리의 신앙생활도 흔들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나라가 전쟁에 휘말리면 우리가 그 안에서 신앙생활 하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지, 나라에 폭군이 등장해서 마음대로 나라를 좌지우지 한다면 그 안에 사는 우리들이 제대로 신앙생활을 못하는 것은 분명합니다. 정권이 안정되지 못한 채 끝없이 표류한다면 그 안에서 성도들도 평안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더 크게는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의 구원을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높은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할 때 단지 그들이 그 지위에서 자기에게 맡겨져 있는 일들만 잘하는 것이 아니라, 이 사람들에게 복음이 참되게 증거되고 그들이 그리스도를 섬기며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 그들이 맡겨진 국정을 담당할 때에도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이루는 하나님의 종들이 되기를 위해서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구원의 유일한 길

이 모든 일들은 도대체 누구를 통해서, 무엇을 통해서 이루어질까요? 모든 사람의 구원은 어떻게 이루어질까요? 오늘 우리가 읽은 5절 말씀을 보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오’ 하나님이 등장합니다. 둘째로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중보자, 즉 그리스도 예수입니다.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바로 하나님 때문에, 그리고 한 분이신 중보자 그리스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구원의 길이 열린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얻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리하여 모든 사람이 구원얻는 길을 제시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고,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갈 새로운 살길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 바로 그분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며 우리에게 주시는 구원을 얻게 된 것입니다. 사도행전 4장 12절 말씀을 보면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고 말씀합니다.


십자가의 필요성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 우리를 위한 대속의 죽음은 필연적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한 구원의 길을 찾으실 때 죄인들을 아무런 대가 없이 용서하실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흔히 하나님께서 아가페 사랑으로 죄인들 된 우리들을 무조건적으로 사랑하셨다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구원을 받는 것은 아무런 대가 없이 그냥 받은 것처럼 말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갚아야 하는 죗값을 다른 누군가로 하여금 갚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서 하나님께서 마땅히 요구하시는 죗값과 그것을 갚을 존재, 사람을 대신하여 갚을 존재 바로 그분을 세우셨는데, 우리는 그분을 중보자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우리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죄로 말미암아 죽음을 맞이하는 멸망 받을 존재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죗값을 대신 치르시는 분을 통해서 우리는 죗값을 치렀던 것입니다. 내가 치르지 않았다고 해서 아무런 대가가 없었다고 말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이 모든 죗값을 치르신 것입니다. 그분이 그 죗값을 치르도록 하나님께서는 그분을 중보자로 세우셨던 것입니다.


중보자의 필요성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은 반드시 필요했는가? 반드시 필요했습니다. 왜냐하면 죄인들이 죗값을 치러야 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죗값을 아무런 대가 없이 그냥 용서하신 적이 없으십니다. 죗값은 반드시 찾으셨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죄인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옳으심을 증명하셨던 것입니다. 십자가를 볼 때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옳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런 대가 없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죽음이 없이 죄인을 그냥 용서했다면 하나님의 그 용서는 정당성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에게 사면의 문제는 단지 법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하신 성품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반드시 죗값을 찾아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지혜로 죗값을 받는 길을 여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대속입니다. 그 리고 죗값을 대신 받는 분으로, 갚는 분으로 그리스도를 세우신 것입니다. 성경은 그분을 중보자라고 불렀습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유일하신 중보자였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필요성입니다. 그다음에 그리스도 외에 다른 구원의 길이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외에 다른 구원의 길은 없습니다. 사도행전 4장 12절,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여기서 ’다른‘이란 다른 사람뿐만 아니라 다른 방법도 다 포함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 그것이 죄인들의 죗값을 대신한 대속의 죽으심인데 이 방법 이외에는 다른 구원의 길이 존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떠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유일성입니다.


그리스도의 속죄의 완전성에 대한 도전

그런데 종교개혁 당시 중세 가톨릭과 그리고 그 이후에 하나도 변하지 않은 로마 가톨릭은 바로 이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교리와 관행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완전성을 믿지 않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죗값이 다 갚아졌다고 하는 것을 믿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죽어서 연옥에 가 나머지 죗값을 갚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즉 그리스도의 대속의 효능, 그 완전성을 믿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믿으면 대속으로 우리의 모든 죄가 다 해결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연옥이라고 하는 장치를 만들고 그곳에 가서 죗값을 갚아야 한다고 주장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로마카톨릭에 따르면 믿는 자라도 연옥에 가서 죗값을 갚아야 되는데 살아 있는 동안에 이 문제를 웬만큼 해결해야 연옥에서 좋은 자리에 간다고 합니다. 살아 있는 동안에 이 문제를 웬만큼 해결해야 되는데, 해결하는 길을 선행이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말하는 선행은 교회가 행하는 성례에 참석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는데 도대체 왜 또 죗값을 자기가 갚아야 하는 것입니까? 심지어는 죽어서까지 갚아야 하는 것입니까? 도대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의 공로는 어디 간 것입니까? 그들은 성인들의 선행의 공로를 주장합니다. 종교개혁 시대에 문제가 되었던 면죄부가 바로 이 공로 사상에서 나온 것입니다. 소위 성인이라고 부르는, 혹은 성자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선행에 탁월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천국에 가고 남은 선행들을 모아 창고에 넣어두었는데 이 열쇠를 베드로가 가지고 있다가 교황에게 주었습니다. 교황이 열쇠를 열고 선행을 꺼내 나누어 줍니다. 이것이 면죄부입니다. 도대체 여기서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어디 간 것입니까? 도대체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구원 얻는데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 효력은 어디 간 것입니까?


그리스도의 중보자직의 유일성에 대한 도전①

뿐만 아니라 로마 교회는 또 다른 중보적 존재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존재가 성자입니다. 어느 날 장례식장에 갔다가 오는데 마침 어느 집에선가 성당 분들이 와서 기도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다같이 얇은 책을 들고 똑같은 톤으로 무엇인가를 구하고 있었습니다. ’성 ○○여, △△(죽은 자의 세례명)를 위하여 빌으소서.‘ 한결같은 어조로 계속 읽고 있었습니다. 그 책에는 소위 가톨릭에서 말하는 성인들의 이름이 쓰여져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1번 성인부터 마지막 성인까지 다 읽습니다. 성인들이 천국에서 어떻게 해 달라는 것입니까? 죽은 자를 위하여 기도해 달라는 것입니다. 로마카톨릭은 성인들이 천국에서 죽은 자를 위하여 기도하는 직분을 가지고 있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성인은 각자 맡은 전공 과목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일을 하는 사람들은 그 전문 성인의 이름을 불러 기도해야 됩니다. 또한 성인 중에는 자기 지역을 담당하는 성인도 있습니다. 우리는 누구에게 기도해야 합니까? 하나님께 기도 해야 합니다. 때로는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를 수도 있고, 때로는 성령의 이름을 부를 수도 있겠으나, 우리의 기도는 기본적으로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즉 우리의 기도는 성삼위 하나님 앞에서 드리는 기도입니다. 그러나 가톨릭은 수없이 많은 성인들이 이 기도의 역할을 한다고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이 비성경적이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중보자직의 유일성에 대한 도전②

나아가서 만인 제사장 주의라고 하는 말을 들어봤을 겁니다. ’사제가, 즉 신부가 사죄의 권한을 가질 수 있는가‘라는 것입니다. ’네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신부는 평생 동안 이 말을 수없이 반복하며 삽니다. 그런데 신부가 그런 권한을 가지고 있을까요? 우리가 죄를 고백할 때 왜 직접 하나님 앞에 나아가지 않고 신부를 통하여 나아가야 할까요? 고해성사라고 하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성당마다 고해성사하는 방이 있습니다. 그 방에 들어가면 담당 신부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곳은 구멍이 뚫려 있는 벽으로 구분된 면회실 같은 형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는 담당 신부에게 죄를 고백합니다. 왜 고해, 즉 회개를 신부에게 해야 할까요? 왜 하나님께 바로 하면 안 될까요? 바로 그 중간에서 하나님 앞에 바로 나아가지 못하게 하는 이런 제도들이 비성경적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은 그리스도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9장에 우리에게 ’새롭고 살 길이 열렸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찢어져 성소와 지성소를 구분하던 그 일이 더 이상 작용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죄인이 하나님 앞에 바로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왜 그 길을 통행금지라고 하면서 어떤 사람이 나타나서 거기에다가 바리케이트를 쳐 놓고 사람이 올 때마다 일일이 ’나한테 다 말해.‘ 하고,. ’됐어. 다 알았으니까 가.‘ 이러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갔는데 막상 그앞에 바리케이트를 쳐놓고 담당자가, 담당 신부가 ’그래 알았어.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중보자 직분을 빼앗은 행동인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이 모든 존재들 가운데 최고의 위치에 한 사람을 두었습니다. 그것이 누굴까요? 성모 마리아예요. 마리아를 이 모든 존재들 중의 1번 타자로 내세운 겁니다. 그래서 이 1번 타자인 마리아가 이제는 성당에 어디 가나 다 존재하게 되고 있습니다.


오직 그리스도만으로, 이것은 우리 구원에 그리스도의 필요성, 그리스도의 유일성, 그리스도의 완전성을 선언하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필요성과 유일성과 완전성은 종교개혁 이후에도 계속적으로 도전을 받아왔고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도 도전을 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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