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요약

종교개혁의 메시지(5)_오직 믿음 ①(갈 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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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5-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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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의 메시지(5)

오직 믿음 ①(갈 2:16)


왜 오직 그리스도인가?

지난주에 우리는 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오직 그리스도만으로라는 이 종교개혁의 모토는 우리가 결코 버려서는 안 된다는 것과 오직 믿음으로라고 말하지만 실제적으로는 행하지 않는 일들이 현대 교회 안에 있기 때문에 이것을 잘 분별하고 ‘오직 그리스도만으로’라는 이 영광스러운 일을 우리가 끝까지 붙들고 나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왜 오직 그리스도만인가? 우리의 믿음과 삶, 교회의 모든 일이 왜 오직 그리스도만으로 이루어지는가 하는 것입니다. ‘오직 믿음만으로’라는 말은 죄인 된 인간이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만으로 충분하며, 인간의 어떤 행위, 즉 선행이나 공로 같은 것들은 구원의 조건이 될 수 없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주요 성경 구절은 로마서 1장 17절입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 에베소서 2장 8~9절 말씀을 보면 "너희가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또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 본문 갈라디아서 2장 16절 말씀이 이 내용을 잘 전달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서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로마서 3장 28절에서도 "그러므로 사람이 율법의 행위와 상관없이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 줄 믿노라".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게 되기 때문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다는 이 사상은 루터가 로마서를 강의하기 위해 연구하다가 마침내 여러 해 동안 고민하던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고 깨달은 것입니다. 그는 여러 해 동안 ‘하나님의 의’ 때문에 심각한 심적 고통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가 깨달은 하나님의 의는 의로우신 하나님이 죄인들을 심판하는 것이었습니다. 루터 자신이 죄인이기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고, 이 심판을 피하기 위해 로마 교회가 가르치는 일들을 누구보다 열심히 했습니다. 그는 수도사가 되어 수도원에서 제시한 규칙들을 정말 충성스럽고 성실하게 지켰습니다. 루터 이후 수백 년 동안 로마 카톨릭의 학자들이 루터를 연구하고 공격했지만, 루터의 수도사 시절만큼은 공격할 수 없었습니다. 루터도 자신의 수도사 시절을 회고하며 정말 열심히 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로마 교회에서 가르치는 최고의 헌신의 삶을 수도원에서 훈련받았지만, 하나님의 의와 그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심판은 해결할 수 없었습니다. 아무리 금식과 고행, 성례 참여 등 수없이 많은 일들을 행했지만 해결되지 않았고, 면죄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루터가 로마에 가서 '천국의 계단'을 주기도문을 외우며 무릎으로 한칸한칸 기어 올라가며 마지막 계단에 올라 기도하고 눈을 떴을 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는 친척을 위해 면죄부를 샀지만 돈이 부족해 다른 친척들을 위해서는 사지 못했습니다. 루터는 로마에서 돌아온 후, 로마에 간 일이 얼마나 감사하고 다행스러운 일이었는지 이야기했습니다. 그곳에 갔기 때문에 썩어 문드러지는 로마 교회의 모습을 보고 환멸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빌라도 법정에 있던 계단을 갖다 놓고 계단 하나하나 주기도문을 외우며 무릎으로 올라가면 천국에 이르는 것처럼 가르치는 것들이 얼마나 악한 미신인지 알게 되었고, 성경을 아무리 봐도 이를 입증할 수 있는 근거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의 의를 깨달은 루터

그런데 루터는 비텐베르크 대학에서 로마서를 강해하게 되었고, 준비하고 연구하는 동안 몇 년 동안 고민하던 일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라는 이 말씀의 ‘하나님의 의’는 심판이 아니었구나, 복음에는 하나님께서 심판 말고 따로 예비하신 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의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심판을 받으셨습니다. 그분은 우리의 죄값으로 죽으셨지만 죄가 없는 분이었습니다. 이것은 죄인들을 대신하여 그들의 죄를 짊어지고 그 죄값을 치르신 것이었고, 그것이 하나님이 준비하신 하나님의 의였습니다. 그래서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고 한 것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데, 이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의 그 자체였던 것입니다.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 그들의 죄값을 대신하는 분이 그리스도였고, 그 일은 하나님이 예비하사 죄인들을 위해 베풀어 주신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루터가 깨달은 하나님의 의였습니다. 그리하여 루터는 오직 죄인은 하나님의 의와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는다고 주장하게 된 것입니다.


죄의 전가와 의의 전가

칼빈은 그리스도의 의가 죄인들에게 어떻게 전해져서 죄인들이 의롭게 되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죄의 전가입니다. 전가는 '옮겨간다'는 뜻으로, 성경을 보면 두 가지의 전가가 있습니다. 하나는 죄인들의 죄의 전가입니다. 죄인들이 자신의 죄를 그리스도에게로 넘기는 것입니다. 이것은 죄인 스스로 하는 것은 아니며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그리하여  죄인들의 죄가 그리스도에게로 옮겨져서 그리스도가 십자가 위에서 죽으신 것이 우리의 죄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죄가 옮겨지지 않았으면 그리스도의 죽으심이 우리의 죄값이 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그리스도의 의가 죄인들에게 전가되는 것입니다. 즉 그리스도의 의로우심이 죄인들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나는 죄를 없애기 위해 특별히 일을 한 것이 없고, 죄인 된 내가 그리스도의 의를 받아 의인이 되는 이 일에도 특별하게 행하는 일이 없습니다. 성경은 이 일에 필요한 것은 오직 믿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은 우리의 공로일까요? 아닙니다. 에베소서 2장 9절은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믿음은 우리의 마음속에서 일어난 일이기는 하지만, 우리의 마음에서 저절로 생긴 것은 아닙니다. 복음을 전파하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구원의 유일하신 길로 제시하셨을 때, 그분의 십자가에서 모든 죄값을 치르고 이제는 하나님께서 죄 용서와 영원한 생명을 주신다는 사실을 들었을 때, 그 사실을 믿고 그 일을 이루신 그리스도를 믿는 이 믿음은 비록 우리의 생각과 마음속에서 이해하고 받아들이기는 하지만, 이 과정은 성령의 역사입니다. 그래서 이 믿음조차도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이야기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물로서 믿음이 임하지 않는다면 이 사실을 믿을 수가 없어요. 똑같이 복음을 들어도 어떤 사람은 믿고 어떤 사람은 안 믿습니다.


의롭게 하다 - 법정적 선언

믿음의 순간에 믿는 자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그리스도의 의가 그의 것으로 옮겨지는 일이 일어납니다. 이것이 전가입니다. 다만 이 옮겨진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우리의 영혼이나 육체에 실체로 옮겨지는 것이 아닙니다. 실질적으로 우리에게 옮겨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의를 우리의 의로 인정하시는 '법정적 선언'으로 이루어집니다. 성경은 이 부분을 '간주하다' 혹은 '여기다'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의를 죄인의 의로 인정하시고, 혹은 그렇게 생각하시고, 그렇게 간주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신칭의의 핵심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의 죄를 짊어지시는 데에도 전가가 일어나고, 그리스도의 의가 우리의 것이 되는 것에도 전가가 일어나는데, 이것은 실질적으로 우리의 영혼에서 일어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장부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하나님의 장부가 있다면 이쪽 장부에 있는 것을 저쪽에다 옮겨 쓰는 것입니다. 이것은 회계의 원리와 비슷합니다. 내가 죄라는 빚을 갖고 있는데 이 빚을 우리의 보증인 중보자 그리스도에게로 넘긴 것입니다. 그래서 중보자가 그 빚을 모두 갚는 것입니다. 나는 안 갚았는데 그리스도께서 대신 갚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이 모든 것을 "내가 갚겠다" 하셨고, 그 일은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것입니다. 중보자에게 모든 죄의 빚을 넘기는 것이 바로 전가입니다. 이것이 ‘우리를 위하여, 우리 대신’이라는 용어로 늘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개념입니다.


하나님께서 전가된 죄의 빚을 갚게 하셨다

그런데 죄라고 하는 이 빚을 그리스도가 대신 갚는 이 일을 하나님께서 만드셨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그리스도는 이 일을 기뻐하셨고,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그 일을 행하기로 작정하셨으며, 마침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그 일은 우리가 갚아야 하는 죄값을 그리스도께서 대신 갚는 일이었습니다. 그 일을 행한 그리스도를 성경은 중보자라고 불렀습니다. 중보자라는 말은 중개인, 즉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서 보증인이 되는 존재라는 말입니다. 그리하여 죄인의 죄값을 그리스도에게서 받되 의를 죄인에게 주어 죄인을 구원하시는 일을 하나님께서 행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해 이 일을 이루는데, 이것이 우리의 것이 되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믿음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는 것입니다. 그때 일어난 일은 우리의 죄가 그리스도에게로, 그리스도의 의가 우리에게로 옮겨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옮겨져서 내가 의롭게 되는 것은 최후의 심판 이후에 있을 일입니다. 지금은 새로운 탄생의 순간이고, 복음의 은혜 속에서 살아가는 시간입니다. 우리는 그 속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의가 우리의 것이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죄 사함과 영생을 얻게 되었고, 나아가서 하나님 나라의 기업을 상속받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 모든 일들은 하나님께서 이 일을 그리스도를 통해 행하셨다는 사실을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일이 이루어지는 원리는 전가의 원리입니다. 즉 그리스도 입장에서는 당신이 지은 죄가 아니지만, 우리의 모든 죄를 당신의 죄로 여기시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것이 죄의 전가입니다. 그래서 죄의 전가와 의의 전가라고 하는 것이 동시에 이루어지게 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오늘 우리는 죄값을 모두 갚고, 그리고 의롭다 인정을 받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이것이 종교개혁이 가르치는 오직 믿음으로라는 말의 의미인 것입니다.


이 일들은 오직 믿음으로 우리에게 일어났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오직 믿음으로 우리가 의롭다 함을 받는 이 원리를 부인하는 일들이 교회 안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당시 로마 교회는 "믿었느냐? 그러면 이제부터 선행을 해야 돼.. 그래야 구원받는 거야. 다 못했냐? 연옥 가서 마저 해"라는 가르침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성경의 참된 가르침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살아있는 동안에 구원에 필요한 선행을 다 못했으면 죽어서도 연옥에서 채워야 돼라는 것들을 모두 제거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종교개혁의 “오직 믿음으로”라는 모토의 내용이었던 것입니다. 종교개혁은 이 오직 믿음만으로라고 하는 성경의 참된 구원의 도리를 회복시킨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이 원리를 분명히 깨닫고 그 위에 굳게 서 있어야만 합니다.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모든 죄가 옮겨가 그곳에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그리스도의 의가 우리에게로 옮겨져 우리는 의인이 되고 구원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 모든 일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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