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의 메시지(8)_오직 믿음 ④ (롬 3: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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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5-10-23본문
종교개혁의 메시지(8)
오직 믿음 ④ (롬 3:21-26)
바울이 기독교의 창시자라는 주장의 허구
지난주 우리는 종교개혁의 핵심 교리인 이신칭의(以信稱義)에 대한 현대 신학의 첫 번째 도전에 대해 깊이 생각했습니다. 그 주장의 핵심은 **"바울이 헬라 철학으로 예수님의 메시지를 재해석하여 사실상 기독교의 창시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는 바울이 예수님과 사도들의 메시지를 헬라 철학이라는 틀에 넣어 새로운 기독교를 만들었다는 주장인데, 우리는 이 사실이 진실이 아님을 확인했습니다. 사실 사도들과 바울 사이에는 신학적으로나 복음에 대한 이해와 선포에 있어서 차이가 없었습니다. 바울의 생애와 그가 예루살렘 사도들과 가졌던 교제를 살펴보면 이 사실을 명확히 알 수 있습니다. 만약 바울이 다른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었다면, 예루살렘 사도들이 그와 교제할 이유가 전혀 없었을 것입니다. 교회의 하나됨이란 곧 교리의 하나됨을 의미합니다. 교리가 하나되지 않고서는 교회가 하나될 수 없으며, 복음 선포가 하나되지 않고서는 우리가 하나의 교회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과 예루살렘 사도들이 한결같이 교제하며 서로 오고 갈 수 있었던 것은 서로의 메시지가 다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다른 주장을 했다면 예루살렘 사도들이 바울을 받아들일 이유가 전혀 없는 것입니다. 단 한 번, 베드로가 유대주의 성도들을 의식하여 이방인 성도들과의 식사 자리를 떠났을 때, 사도 바울이 그를 심하게 책망한 적이 있습니다. 이는 교리가 달라서가 아니라 베드로가 복음의 진리 앞에서 일관된 행동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바울이 받은 계시와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
바울은 갈라디아서를 통해 자신이 예루살렘 사도들과 근본적으로 차이가 없다는 사실과 함께, 자신이 하나님께 받은 계시에 대해 상세히 말씀했습니다. 그 계시는 우리가 흔히 구원사 혹은 구속사라고 부르는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이었습니다. 바울은 아브라함을 통해 이방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이미 알게 되었고, 아브라함의 가정에 등장하는 사라와 하갈을 통해 두 개의 언약이라고 하는 사실을 말씀했습니다. 이로써 하나님의 언약이 이미 오래전에 주어졌다는 사실을 성경적으로 논증했던 것입니다. 그의 신학은 헬라 철학의 재해석이 아니라,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에 그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새 관점: 1세기 유대교에 충실했던 바울과 "갱신된 유대교"
이제 현대 신학의 두 번째 도전인 "바울에 대한 새 관점(New Perspective on Paul)"의 주장을 살펴보겠습니다. 이들은 전통 정통주의와 같이 바울이 헬라 철학으로 기독교를 재해석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여 일견 정통적인 입장에 선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주장을 자세히 살펴보면 전혀 그렇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이 주장하는 바울은 "1세기 유대교에 충실했던 사람"입니다. 그는 1세기 유대교가 가지고 있었던 메시아에 대한 기대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보았다고 주장합니다. 따라서 그들에게 예수님은 기독교의 그리스도가 아니라 유대교의 메시아입니다. 그들은 메시아나 그리스도가 같은 번역어임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적 색채가 강한 '그리스도'라는 용어 대신 "메시아"라는 말을 시종일관 사용합니다. 이러한 관점은 "기독교는 갱신된 유대교"라는 결론에 이릅니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예수님은 갱신된 유대교를 가르치셨고, 당시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갱신된 유대교의 메시아로 믿었다면 오늘날 기독교는 없고 유대교가 그대로 계속되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지금도 우리가 기독교라고 부르고 있지만 실상 내용은 갱신된 유대교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에 대한 급진적인 해석의 문제
새 관점은 종교개혁의 핵심 교리인 이신칭의를 근본적으로 해체합니다. 그들이 로마서 3장에서 보는 "하나님의 의(義)"에 대한 해석은 다음과 같습니다. 루터를 비롯한 전통적 해석은 죄인을 심판하는 의에서,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이 마련하여 주시는 의를 말합니다. 그러나 새 관점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께서 죄인에게 마련하여 주시는 의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시내산 언약)에 충실하셨다는 그 충실하심을 '하나님의 의'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즉, 그들에게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이 언약에 신실하셨다는 그 사실 자체를 가리킵니다. 따라서 이신칭의는 믿는 자를 의롭다 선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선언하는 것이 되어버립니다. 제2성전 유대교(스룹바벨 성전 이후 예수님 당대까지의 유대교)는 이스라엘이 언약을 파괴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언약을 파괴하지 않고 끝까지 신실하게 지키셨다고 새 관점은 주장합니다.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는 바로 이스라엘이 파괴한 언약을 하나님이 끝까지 신실하게 지키셨다는 신실하심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역할에 대한 왜곡: '증거물'로서의 메시아
새 관점은 하나님이 당신의 언약에 대한 신실함을 증명하기 위해 보내신 증거가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증명하는 분이며, 그의 고난과 죽으심을 통하여 신실하게 하나님의 뜻을 행하신 것입니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십자가의 죽음은 단지 고난당하는 유대인들을 상징하는 것이며, 하나님께서 언약의 신실하심을 증명하는 증거물일 뿐입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으면, 하나님의 신실하심으로 언약이 회복되고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온전히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이방인들은 아브라함 언약 속에 이미 약속되어 있으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메시아로 나타나셨을 때 믿음으로 그 약속 안에 들어간다고 말합니다. 겉보기에는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삶을 강조하는 것처럼 들리지만, 이 주장 속에는 우리의 복음을 이루는 결정적인 요소가 빠져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대속(代贖) 부인과 역사적 배경
새 관점 신학의 가장 심각한 오류는 그리스도의 대속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성경에 대속(代贖)이라고 하는 말씀이 나오는 구절에 대해서도 주석을 해 나갈 때, 이를 거의 생략하듯 넘어갑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대속은 그들의 신학 체계에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신학적 방향을 정하게 된 배경에는 이 새 관점의 대표자인 톰 라이트(N. T. Wright)의 개인적 경험과 시대적 상황이 있습니다. 그는 2차 세계 대전 중 유대인들이 600만이나 학살당한 역사적 비극 이후, 유대인 국가가 다시 세워지고 유럽 전체가 이에 대한 책임 의식을 갖게 된 풍토 속에서 성장했습니다. 이로 인해 그는 유대인들을 나쁘게 보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는 확고한 사상을 갖게 됩니다. 그는 기독교가 유대인들, 즉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경륜이 끝났다고 말하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구속의 경륜이 끝나고 이방인들을 불러 오직 믿는 자만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기독교의 주장이 마땅치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1세기 유대교를 긍정하고, 1세기 유대교가 실상은 유대의 본류였으며 잘못된 것이 아니었다고 주장함으로써, 기독교가 유대교와 단절되지 않았음을 보이려는 새로운 기반을 마련하게 된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그는 그리스도의 대속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죄인을 위하여 죄인의 죄를 대신 속하시는 분으로서 십자가에 죽으심을 당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단지 이 십자가의 죽음은 유대인들이 역사 속에서 박해당했던 것을 상징하는 것이라고만 이야기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죄인들의 죄가 깨끗하게 씻겨진다는 교리는 그들의 신학 속에서 완전히 삭제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의'에 대한 편협하고 자의적인 해석
새 관점의 또 다른 결정적인 오류는 '하나님의 의'에 대한 해석 방식입니다. 하나님의 의가 언약의 신실하심이라고 하는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유일하게 그것만으로 한정 짓는 것이 문제입니다. 톰 라이트는 로마서를 읽을 때 의란 말이 나오면 무조건 다 **"언약의 신실하신 하나님의 의"**라고 일대일로 대체하는 방식을 사용합니다. 이는 학문적으로 기본적인 원리를 무시하는 행위입니다. 똑같은 단어라도 문맥 속에서 다양한 의미를 가질 수 있고, 다른 뉘앙스를 가질 수 있음을 밝혀내는 것이 학문의 작업입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생각한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의 신실하심 하나"라는 전제에 맞추기 위해, 성경에 수없이 다양하게 나오는 '하나님의 의'를 일관되게 하나로만 해석하며, 다른 모든 문맥을 무시하고 있습니다. 이는 수준 이하의 학문적 태도이며, 자신의 주장을 위하여 성경적 진리를 100% 무시하는 행위입니다.
현대 신학의 비정직한 성경관과 학문적 편협성
새 관점 신학이 대속을 부인하고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 전체를 말하지 않게 된 근본적인 이유는 현대 신학의 성경관을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현대 신학은 성경 전부를 신학의 재료로 삼지 않고, 자기 입맛에 맞도록 성경을 조각조각 내어 신학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바울 서신 13권 전체를 바울 서신으로 인정하지 않으며, 그중 몇 권만을 바울 서신으로 인정하고 그것만을 유일한 재료로 삼습니다. 여기에 "1세기 유대교"라는 수없이 많은 다른 자료들을 끌어 모아 신학의 밑밥을 깔게 됩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만든 신학은 "성경 다른 부분은 다 버리고, 자신이 바울 서신이라고 인정한 정도만 가지고, 이 많은 성경의 부분들은 다 버려두고 1세기 유대교라고 하는 온갖 것들만 끌어 모은" 비정직한 작업의 결과입니다. 제가 이 모든 전제들과 그들의 논거들을 보면서 학문 작업이 정직하지 않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과 하나님의 의
우리는 로마서가 말씀하는 하나님의 의의 내용을 명확히 알아야 합니다.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로마서 3:21-22) 로마서가 말씀하는 하나님의 의는 율법과 대비되는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 그 자신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로마서 3:23-24) 하나님의 의는 자기도 의로우시고 믿는 자도 의롭게 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서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속죄 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看過)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로마서 3:25-26)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그의 십자가의 죽으심을 통해서 모든 사람의 죄를 간과하는 일, 즉 그리스도의 속죄(대속)이 일어납니다. 그 일을 행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의이며, 그것을 우리에게 실행한 것이 그리스도의 의이며, 그것을 믿는 자에게 주어지는 것이 바로 그 의입니다.
현대 신학은 끊임없이 복음과 성경적 진리를 바꾸기 위해서 도전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주장은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 전체를 부인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을 삭제하며, 성경의 정직한 해석을 거부하는 심각한 오류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의 배후에는 사탄이 역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엄청난 학문의 탑 속에서 성경을 바로 증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후배들 가운데에서 이 일을 향하는 사람들이 나와야 합니다. 일찍이 이런 일들을 깨닫고 학문적으로 훈련된 사람들이 그 속에 들어가서 그들의 한계와 전제의 무모했던 것들을 증명해내는, 그리고 바른 복음을 굳건히 세워 나가는 일들을 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우리 다음 세대가 이 일을 성공하여, 학문을 무기로 신앙을 변개 시키려고 하는 이와 같은 모든 도전들이 무너지기를 바라며, 이를 위해 기도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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