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요약

우리에게서 영혼 구원의 역사가 그친다면(5)_성령이 임하시면 가능하다 (행 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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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5-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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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서 영혼 구원의 역사가 그친다면(5)

성령이 임하시면 가능하다 (행 1:4-8)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려라

마태복음 28장 19절을 보면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받으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엄숙하게 말씀하신 명령이 나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그런데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어떤 방법으로 모든 민족, 즉 세상의 모든 나라들, 모든 민족들에게 세계 복음화가 이루어질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이 일을 이루는 하나님의 방법은 무엇일까요? 이 일을 성취하게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방법은 무엇일까요? 오늘 우리가 읽은 사도행전 1장 4절의 말씀을 보면 그 비밀이 나와 있습니다.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내게서 들은 바,’ 즉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며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에게 예루살렘은 임시 처소일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명절도 끝났고, 예수님께서도 부활하셨고, 그들은 생활의 현장으로, 아니면 고향으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그런데 가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이 곧 임할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은 5절에 나와 있습니다.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8절을 보면 좀 더 구체적으로 나와 있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성령이 임하시면,’ 이것이 성령 세례입니다. 이것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이었습니다.


성령의 새 시대

요엘서 2장 28절을 보면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주리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말세에, 새로운 시대에, 하나님께서 크고 놀라운 일을 행하실 터인데 그 일은 만민에게 성령을 부으시는 일입니다. 성령을 부으시는 일은 구약 시대에는 그렇게 흔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성령은 모든 백성들에게 약속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도 아니고 만민에게 성령을 부어주겠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신약 시대에 대한 말씀이었습니다. 새로운 시대,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새로운 원리가 시작되는 시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살리시고 자기 백성을 통치하시는 새로운 방법이 적용되는 시대, 그것이 바로 신약 시대입니다. 그 신약시대의 특징은 성령을 부으시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신약 시대의 복음 전파는 오직 성령의 역사로 이루어지는 것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복음은 오직 성령의 역사로 전파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 시대의 교회에는 교회가 힘써야 될 일들이 무엇인지를 망각하게 만드는 수없이 많은 도전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시대에 분별력을 가져야 합니다. 그 분별력은 영적인 것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우리에게는 영적인 시각이 있어야 됩니다. 영적인 분별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역사를 바로 알고 그 역사에 순종할 수 있습니다. 복음은 오직 성령의 역사로 전파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거듭나게 하시는 이가 성령이시기 때문입니다.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거듭나지 않으면 영적인 눈으로 볼 수 없습니다. 거듭 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고 오로지 세상 나라만 보게 되는 것입니다. 거듭나서 진정으로 그 눈이 새로워져야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있습니다.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이 되는 것은 법과 제도로 되는 것도 아니며,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나는 것으로 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에게 성령이 참되게 역사해야 합니다. 성령께서 그 사람 속에 생명의 원리로 임하셔야 합니다. 그리하여 그의 영혼이 변화되어야 비로소 그는 살아있는 생명이 되는 것입니다. 그가 거듭난 사람입니다. 이 일은 오로지 성령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성령께서는 사람의 영혼을 살리실 뿐만 아니라 그를 능력 있게 하시는 분입니다. 그의 행하는 모든 일들을 탁월하게 하십니다. 단지 세상에서 평안한 삶을 살게 하거나 혹은 세상에서 출세하게 하기 위해서 업무 능력을 향상시키는 것이 아니라 복음 전파를 위하여 그를 탁월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성령이 역사하는 사람이 말씀을 전하면 말씀에 감화력이 있습니다. 성령이 역사하는 사람이 말씀을 선포하면 그 말씀에 감화력이 있습니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받은 그 말씀, 혹은 받은 그 단순한 전도의 말씀이 마음속에 깊이 새겨지게 되고, 그의 생각과 삶이 변화되는 계기를 맞이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그 사람에게 생명의 원리가 되신 사람은 그의 말과 생각이 전혀 달라지게 됩니다. 그의 눈은 영적인 눈이요, 그의 삶의 원리는 하나님의 뜻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가 가는 길에 비록 난관과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하나님께서는 피할 길을 주시고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것입니다. 


세계복음화는 성령의 역사

세계 복음화의 역사는 성령의 역사였습니다. 우리는 사도행전에서 수없이 많은 성령의 역사를 목격합니다. 성령을 떠나서는 사도행전을 말할 수 없습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사도행전 2장에 오순절 성령 강림이 있고, 그날 성전에 기도하러 모인 사람들 가운데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5천 명이 세례를 받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예루살렘 교회에 큰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사람마다 두려워하는 역사가 있었습니다. 박해 중에 기도하던 교회에 성령께서 임하여 그들이 기도하는 현장이 흔들리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이방인에게 복음이 전파되었는데 고넬료의 가정에 성령이 임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우리가 성령을 받았던 것과 같았다’라고 증언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도 성령의 역사는 언제나 떠날 수 없었습니다. 그는 그의 서신서 곳곳에서 성령이 역사하였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성령의 역사 없이는 복음 전파가 없습니다. 믿음이 이방인들에게 전파된 것. 그리하여 전 세계로 전파된 것은 오로지 성령의 역사였던 것입니다. 로마 시대 이후로 게르만 민족의 개종 역사를 보면서 어떤 사람들은 그것이 임금들이 기독교를 받아들이고, 그리하여 한 나라와 부족 전체가 기독교를 받아들인 복음화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거기까지 보면 임금들이 기독교화 되는 것이 복음 전파의 방법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렇지 않습니다. 한 국가가 왕의 개인적인 결단으로 기독교 국가가 되는 일이 전제 군주 시대에는 가능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었다 할지라도 전 백성이 복음으로 거듭나는 일은 별개의 문제였습니다. 기독교 국가가 되는 것이 복음화가 아닙니다. 모든 백성들이 거듭나야 복음화되는 것입니다.


성경적인 신앙의 원리

17세기에 유럽에 큰 전쟁이 있었는데 이것을 30년 전쟁이라고 이야기합니다. 1618년에 전쟁이 일어나고 유럽 전체가 종교 전쟁에 휘말리게 되었는데 그 원인은 1555년에 있었던 아우스부르크 강화 조약의 내용 때문이었습니다. 조약의 중요한 내용은 루터파의 종교를 인정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루터파의 영역을 인정할 것인가? 그때 정했던 원리는 영주가 선택하는 종교가 그 지역의 종교가 된다는 것입니다. 즉 영주의 종교가 그 땅의 종교라고 하는 원리로 조약을 맺었습니다. 그런데 시대가 변했습니다. 신앙은 국가의 것이 아니라 개인의 것이라고 하는 사실이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카톨릭 영주의 땅에 사는 루터파 성도들도, 루터파 영주의 통치 영역에 사는 카톨릭 신도도 모두 불만이었습니다. 그리고 시대는 이미 루터파나 카톨릭만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칼빈주의 믿음을 가진 사람들도 있었지만 이 사람들은 인정을 받지 못했습니다. 국가가 기독교 국가가 되고 백성들이 법으로 기독교인이 된다, 혹은 카톨릭인이 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공민권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의미합니다. 결국 종교 전쟁이 일어나고 30년 후에 새롭게 정한 원리는 영주의 종교가 백성의 종교라고 하는 아우스부르크 강화 회의의 원리를 폐기한 겁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종교 원리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실상은 신앙의 원리였던 것입니다. 임금이 우상숭배하면 백성들이 모두 우상숭배해야 하는가? 옛날에는 당연했습니다. 그것이 인류 역사의 대부분의 시간에 통했던 원리입니다. 그러나 기독교 신앙이 전파되면서 우리는 임금이 우상숭배를 한다고 해도 우리는 우상숭배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리하여 핍박을 받았습니다. 이 원리가 실상은 성경의 원리였던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의 원리였던 것입니다.


이 시대를 살리는 것은 오직 성령의 역사

기독교 신앙은 오직 성령의 역사였습니다. 성령이 우리에게 역사했고 성령을 받은 개인이 결단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하나님을 섬기는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복음은 각 사람 속에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전파되었던 것입니다. 복음이 전 세계로 전파되는 복음화의 과정에서 임금들과 높은 사람들이 기독교화 되어 복음이 전파된 것이 아니라 성령이 압도적인 은혜로 역사하여 전 세계로 복음이 전파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시대가 잠들고 그 시대의 교회가 잠들어버리는 일이 있습니다. 교회가 감격적으로 받았던 진리들이 어느 순간 숨겨져 버리고, 다른 것들이 전부인 양 되는 시대가 있습니다. 그 시대는 영적으로 죽은 시대입니다. 지금 여러분에게 드리는 이 메시지의 제목이 무엇입니까? “우리에게서 영혼 구원의 역사가 그친다면.” 이것이 바로 그 시대의 모습입니다. 생명을 전하지 않는 곳에 무슨 영적 구원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영혼을 살리는 원리를 우리에게 주셨는데, 이것을 전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구원의 역사가 일어납니까? 성도들의 시선이 영혼 구원에 있지 아니하고, 세상의 가치관으로 물들어 있다면 그곳에 무슨 영혼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겠습니까? 저는 우리 시대를 보면서 성령의 역사가 우리 가운데 새롭게 되는 일만이 이 시대를 살리고 영혼을 살리는 길이라고 하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이미 아는 일입니다. 그러나 알면 뭐 합니까? 모두 다른 곳에 신경 쓰고, 모두 다른 곳에 마음을 쓰고, 모두 다른 곳으로 달려가는데, 알면 뭐 합니까? 진정으로 안다고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제가 지난 금요기도회에서 20세기 미국 교회의 비밀에 대해 말씀을 드렸습니다. 미국은 20세기에 세계에서 유일하게 교회가 왕성하고 기독교 신앙이 왕성한 나라입니다. 유럽 어디를 가도 그런 나라는 없습니다. 전 세계 어디를 가도 없습니다. 그렇게 자부심이 많은 대한민국에도 없습니다. 도대체 그 비밀이 무엇일까요? 미국에서는 20세기에 거의 한 세대에 한 번씩 대학에서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제가 어느 날 그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미국 교회는 실용주의 때문에 부흥했을까요? 아닙니다. 미국 교회는 이런저런 방법론 때문에 부흥했을까요? 아닙니다. 대학에서 젊은이들이 부흥을 경험하고, 그 부흥 마인드를 가지고, 그 은혜 체험을 가지고, 다음 세대에 하나님의 역사를 소망하며 사역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기도할 줄 압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습니다. 그들은 오직 하나님의 역사만을 간구했습니다. 그 일이 세대와 세대와 세대를 통하여 계속 반복되었던 것입니다.


사도들에게 성령이 임하였고 바울에게 성령이 임했습니다. 성령이 임한 사람들을 주님께서 사용하시고 그들이 가는 곳마다 성령의 불길이 전파되게 하셨던 것입니다. 복음은 성령 받은 사람들에게 성령께서 압도적으로 역사하심으로 전파되었던 것입니다. 진정한 영혼의 역사는 성령 받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복음을 전하러 나갈 때 성령이 그곳에 임하여 이루어지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시대가 잠들고 시대 교회가 잠들어버리는 일이 있습니다. 교회가 감격적으로 받았던 진리들이 어느 순간 숨겨지고 시대가 영적으로 죽는 일이 있습니다. 저는 우리 시대를 보면서 성령의 역사가 우리 가운데 새롭게 되는 일만이 이 시대를 살리고 영혼을 살리는 길이라고 하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성령의 역사입니다. 이 일이 이 시대를 살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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