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의 가정에 대하여(3)_가정은 언약공동체다(신 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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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5-06-05본문
그리스도인의 가정에 대하여(3)
가정은 언약공동체다(신 6:1-4)
역사적으로 계시된 하나님의 뜻
성경은 하나님께서 역사 속에서 어떻게 인간에게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시며, 이 뜻을 어떻게 이루어 나가시는지를 역사적으로 하나하나 말씀하시고 보여주신 기록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뜻이 어떻게 나타났는지, 또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가정이 가진 사명은 아담 이후에 아브라함에게 계시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가정을 통해 이 영광스러운 일을 나타내시고 이루셨습니다. 그런데 왜 아브라함에게 오래도록 자녀를 주지 아니하셨을까요? 그것은 아브라함이 가정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절실하게 깨닫게 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자녀를 허락하셨을 때 그 자녀는 언약의 자녀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이루고자 하시는 뜻을 상속받는 자녀, 그가 바로 언약의 자녀입니다. 이삭이 장성하여 그는 하나님과 언약을 새롭게 합니다. 그때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던 모든 것들은 이삭에게 새롭게 주어집니다. 그 후에 야곱이 이 약속을 상속받게 됩니다. 이후에 사람들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라는 말을 사용했습니다. 이 말은 단순히 조상들의 하나님이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로 내려온 언약의 축복을 맺으신 하나님을 부르는 명칭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언약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새롭게 주어집니다. 우리는 이것을 시내산 언약이라고 부릅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데리고 나와 시내 산에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언약식을 맺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너희가 내 말을 듣고 내 계명을 지키면 너희가 내 백성이 되고 내 나라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그때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기준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것이었습니다. 시내 산 이후 4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을 때 이스라엘 백성은 드디어 모압 땅에 이르렀고 모세는 가나안 땅을 바로 앞에 두고 있는 상황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40년 동안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들을 총정리해서 가르칩니다. 이것이 신명기입니다.
언약을 신실하게 지키기 위하여
우리가 읽은 성경 말씀은 시내산 언약을 총정리하고 그 바탕 위에서 이제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언약의 백성으로서 살아갈 때 무엇에 힘써야 할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1절 말씀을 보면 “이는 곧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가르치라고 명하신 명령과 규례와 법도라.” 이것은 광야 40년 동안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셨던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지금 한 자리에서 총정리해서 지금 백성들에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그 목적은 “너희가 건너가서 차지할 땅에서 행할 것이니,” 바로 눈앞에 요단강이 있고 요단강을 건너면 가나안 땅인데, 그 땅에 들어가서 젖과 꿀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그 말씀에 따라 살아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곧 너와 네 아들과 네 손자들이 평생에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내가 너희에게 명한 그 모든 규례와 명령을 지키게 하기 위한 것이며,” 즉 지키게 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 모든 말씀들을 가르쳤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을 지킴으로 그들은 ‘장구하게 될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또 네 날을 장구하게 하기 위한 것이라.” 장구하게 된다고 하는 것은 그들의 공동체, 그들의 나라가 영원하다는 말입니다. 어떻게 하면 그들의 나라가 영원하게 되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은 장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3절은 하나님의 언약의 축복을 다시 상기시킵니다. “이스라엘아 듣고 삼가 그것을 행하라. 그리하면 네가 복을 받고 네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허락하심 같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네가 크게 번성하리라.”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축복하십니다. 그리고 그 축복을 받기 위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언약에 신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신실하게 지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신실하게 지키지 않으면 약속하신 것들은 아무 상관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맺은 계약을 우리는 언약이라고 부릅니다. 시내 산 언약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그 말씀을 지켜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으면 계약을 이행하지 않은 것입니다. 마치 계약한 사람이 보험을 계약하고 보험금을 내지 않은 것과 같은 것이지요. 보험금을 내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계약의 위기가 찾아옵니다. 일정 기간 납입하지 않게 되면 계약 자체가 정지됩니다. 하나님과 맺은 계약도 같은 원리입니다. 하나님과 맺은 언약에서 하나님께서 ‘너희가 내 말을 듣고 내 말을 순종하면’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말씀을 듣고 말씀을 순종하는 것 바로 이것이 계약의 조건입니다. 계약을 신실하게 지킨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순종하는 일을 성실하게 행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할 때 가져야만 하는 근본적인 마음의 자세가 있습니다. 그것이 4절과 5절에 나옵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데 단지 계명이니까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 말씀을 순종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과 언약을 맺었을 때 그 관계는 딱딱한 법적 관계가 아니라 인격적 관계였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사랑하심 같이 그 백성은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데 순종하는 사람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말씀과 함께 무엇이 있어야 합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고, 그 사랑의 마음으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진정으로 말씀을 순종하는 것입니다. 보험의 예를 들었습니다마는 보험은 그냥 돈만 입금되면 됩니다. 그러나 말씀을 순종하는 것은 그것과 다릅니다. 말씀을 순종하는 것에는 마음속에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아니 이 땅의 그 어느 것보다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라고 말씀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의 당부의 말씀을 마음에 두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결국 네 땅에서 네 날이 장구할 것이라 했던 축복의 말씀을 결국 성취하지 못합니다. 그들의 나라는 멸망하게 되었고 멸망한 이후에는 다시 회복되지 않았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요?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데 성실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어떤 것은 순종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어떤 것은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순종했던 계명들은 남들 눈앞에 보이는 것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 재물을 드렸습니다. 성전을 방문했습니다. 왜? 이런 것들은 눈에 보이는 것들입니다. 이런 것들은 누구나 단번에 확인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순종하지 않은 부분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남들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이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사람들에게 나타나지 않습니다. 정욕과 탐심과 시기와 질투와 불평과 원망과 같은 것들을 마음속에 품고, 다른 사람이 어떻게 되든지 음모를 꾸미거나 교묘한 수단으로 가난한 사람들의 것을 착취하는 일들을 행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에서는 순종하지 않고, 눈에 보이는 부분에서는 순종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항변했습니다. 하나님 우리가 언제 하나님 앞에 재물을 드리지 않은 적이 있습니까? 우리가 하나님께 해야 할 이런저런 일들을 하지 않은 적이 있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나는 너희들이 드리는 제물의 연기와 냄새를 맡는 것이 너무나 싫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왜일까요? 눈에 보이는 것은 열심히 하는데,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은 결코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고 자기의 욕심을 따르고 자기의 정욕을 따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왜 그들은 이와 같이 이중적인 모습을 보여주었을까요? 4절과 5절 말씀을 마음에 새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사람처럼 생각했습니다. 사람은 눈에 보이면 그런 줄로 압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마음을 살피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그들은 마음을 살피시는 하나님을 잊었습니다. 그리하여 겉으로 보이는 행동이 하나님께 통할 줄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하나님께서 명하신 말씀들을 순종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하나도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마음속에 하나님은 안중에도 없었던 것입니다.
전심으로 자녀에게 말씀을 가르쳐라
신명기서 6장 6절 이하의 말씀은 이스라엘의 교육의 대강이라고 부르는 부분입니다. 가정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전력을 다하여 가르쳐야 하는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내가 너에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말씀을 부지런히 가르쳐야 합니다. “또 집에 앉았을 때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언제, 어느 때, 어느 곳에서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자녀들에게 가르쳐야 합니다. 그리고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말씀의 뜻을 밝혀 자세하게 설명하는 방식으로 가르쳐야 합니다. “또 너는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하나님의 말씀을 상기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행하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어다,” 장소 불문, 시간 불문, 상황 불문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일에 전력을 기울여 가르쳐야 합니다. 그런데 말씀을 가르치는 사람은 누구였을까요? 부모님입니다. 즉 말씀을 가르치는 기관은 가정입니다. 그리하여 가정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언약 공동체가 되는 것입니다. 가정은 언약 공동체가 유지되기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끊임없이 가르치고 말씀을 순종하도록 인도해야 했습니다. 그것이 부모에게 주어져 있는 사명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말씀을 순종하는 가정을 통하여 말씀 공동체를 이루고 하나님의 언약에 신실한 언약 공동체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모세는 이런 영광스러운 것들을 내다보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씀했던 것입니다.
언약의 복을 사모하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모세가 가르치고자 했었던 말씀의 원리를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 말씀의 가르침의 원칙들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그대로 유효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의 가정은 세상 가정과 무엇이 다를까요? 그리스도인의 가정은 말씀으로 세워지는 언약 공동체라는 면에서 다릅니다. 우리가 창조의 원리에서 보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아 하나님의 형상의 아름다움과 영광을 나타내는 문화 활동을 통해 이 땅에 하나님의 통치의 영광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일을 위하여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세우시고, 그리고 부모를 떠나 부부가 새로운 가정을 이루는 원리를 세워 놓으셨습니다. 아브라함을 통하여는 부모가 받은 믿음의 약속을 자녀가 사모하여 상속받고 상속하는, 믿음의 도리의 상속의 원리를 가르쳤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통하여는 하나님을 깊이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겨 순종하는 자가 하나님으로부터 한없는 복을 받는다는 사실을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 모든 가르침을 수행해 나아가는 기관으로서 가정을 세우셨습니다. 그러므로 부모들은 이 하나님의 뜻을 마음속에 새겨야 합니다. 그리고 이 사명을 감당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로부터 말할 수 없는 복이 그 가정에 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복을 사모한다면 그 복은 언약의 복이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성경에서 배우는 복입니다. 성경에 약속된 복은 언약의 복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그 말씀을 신실하게 순종해야 합니다. 그때 말씀에 신실하게 순종하려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주신 말씀을 붙들고 순종하는 삶에 하나님이 한량없는 복을 주십니다. 우리는 그 복을 알아야 합니다. 그 복을 소망해야 합니다. 그 복을 반드시 받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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