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요약

비전트립의 메시지(5)_바르트부르크 : 하나님의 완전한 보호(시 91: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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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5-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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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트립의 메시지(5)

바르트부르크 : 하나님의 완전한 보호(시 91:14-16)


하나님의 은밀한 곳에서

루터는 보름스에서 그의 주장을 철회하라는 황제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성경 말씀과 명백한 논증 없이는 자신의 주장을 철회할 수 없다고 선언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가 그를 정복했고 속박했기 때문입니다. 이 일이 있은 지 약 2주 후, 루터는 비텐베르크로 향하던 중 산길에서 일단의 사람들에게 납치당해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루터가 납치되어 죽었다는 소문이 퍼졌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사실은 비텐베르크 대학의 설립자인 프레드리히 선제후가 그를 비밀리에 납치 형식으로 숨겨두었던 것입니다. 그가 숨어 있던 곳이 바로 바르트부르크 성입니다. 이 성은 오늘날 아이제나흐라는 작은 도시 외곽의 산에 위치하며, 구덕산 정도의 높지 않은 산입니다. 숲이 울창하고 그 꼭대기에 바르트부르크라는 성이 있습니다. 루터는 신분을 기사로 바꾸고 수도사 복장을 벗어버리고 기사의 옷을 입었습니다. 수염을 기르고 칼을 차는 등 변장하고 그곳에서 약 10개월을 지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있는 동안 루터는 비텐베르크의 멜랑톤과 편지를 주고받으며 자신의 안부를 전하고 비텐베르크의 상황을 듣고 필요한 의견을 제시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곳에서 역점을 두고 한 가지 일, 즉 교회 역사와 독일 역사, 그리고 세계 교회 역사에 매우 중요한 일을 하게 됩니다. 그 일은 바로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는 2개월 반 만에 신약 성경 번역을 모두 마치고 책으로 출판했습니다. 구약 성경 번역에 착수하여 모두 완성하는 데 약 10년이 걸렸습니다. 약 10년 후에 번역이 모두 끝나고 이 책이 인쇄되어 보급되기 시작했습니다.


자국어 성경 번역의 중요성 

이 일이 왜 중요할까요? 루터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성경을 본 것은 에어푸르트 대학에 들어갔을 때였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단순히 성경이 있다는 것을 보았을 뿐, 그가 소유하거나 언제든지 가져다 읽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루터 같은 사람도 비텐베르크 대학에 가서 석사, 박사가 된 후에야 비로소 성경을 볼 수 있었습니다. 루터 같은 사람도 그 정도라면 일반 성도들은 어떠했을까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성경을 멀리서 보는 기회는 있었을지 모르지만, 손으로 만져보거나 읽는 것은 불가능한 시대였습니다. 당시에는 문맹률이 매우 높았고, 성경과 교회의 모든 문서가 라틴어로 되어 있어 독일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읽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결국 교회가 사람들을 무지한 상태로 만들고 자기 마음대로 교회를 이끌어가는 수단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루터는 『교회의 바벨론 포로』라는 논문에서 성례 제도에 대해 비판했습니다. 로마 교회가 주장하는 7성례 중 세례와 성찬만을 참된 성례로 보았고, 특히 성찬에서 평신도에게 포도주를 주지 않고 떡만 주는 방식이 잘못되었다고 주장했습니다. 로마의 교권 제도는 이 성례 제도를 통해 교인들의 평생의 삶을 교회에 묶어 놓았습니다. 즉, 사람들을 성례를 집행하는 신부들에게 묶어 놓은 것입니다. 이 제도는 신부들의 유익과 탐욕을 만족시키는 제도가 되었습니다. 루터는 교회가 마치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유대인들처럼 사제들에게 포로로 잡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을 섬기는 데 신부들을 통해서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만인 제사장임을 주장했습니다. 교회가 성도들을 포로로 붙잡는 가장 강력한 도구로 사용했던 것이 바로 성경을 모르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교회의 타락과 성직자들의 타락을 가져왔으며, 교회가 적그리스도가 되는 상황으로 변질되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루터는 이를 절감했습니다. 당시 성경이 라틴어로만 되어 있는 상황에서, 한 세대 전부터 진행된 르네상스라는 문예 부흥 시대의 인문주의 활동으로 인해 원전을 연구하려는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 이들은 헬라어와 히브리어를 공부하여 마침내 헬라어 신약 성경을 출판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종교 개혁자들은 바로 그 헬라어 신약 성경을 읽으면서 비로소 라틴어 성경을 넘어서서 성경 그 자체에 접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헬라어, 히브리어 성경은 여전히 일반 백성들에게 멀기만 했습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번역 성경, 즉 자기네 나라 말로 성경을 보고 읽고 공부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백성들의 언어로 주어졌던 성경

사실 이것은 성경이 처음 주어졌을 때부터 하나님의 목적이었습니다. 조상들로부터 전수되어 오던 하나님의 계시가 성경으로 기록되고, 서기관들이 성경을 신실하게 기록하여 후대에 넘기는 일을 했습니다. 그러나 시대가 흐르면서 언어의 한계가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구약 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하게 되었는데, 이를 70인역, 또는 Septuagint라고 부릅니다.예수님과 사도들은 이 헬라어 번역 성경을 사용했을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신약 성경은 고전 헬라어가 아닌 코이네 헬라어로 기록되었습니다. 코이네 헬라어는 고전 헬라어보다 훨씬 간단한 형태의 헬라어로, 일반 백성들이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언어였습니다. 이는 일반 백성들이 성경에 쉽게 접근할 수 있었음을 의미합니다. 로마 제국이 무너지고 게르만 민족이 로마 지역을 차지하면서 말이 통하지 않는 상황이 벌어졌을 때, 어거스틴과 동시대 인물인 제롬 교부가 라틴어 성경을 번역했습니다. 이 라틴어 성경을 불가타(Vulgata), 또는 벌게이트(Vulgate)라고 부릅니다. ‘불가타’라는 말은 ‘코이네’와 의미상 같은 말로, ‘일반 서민 대중들이 평소에 쓰는 말’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제롬이 성경을 번역하고 루터까지 110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로마 교회는 라틴어 성경을 유일한 성경으로 받아들이고 다른 성경은 일체 금했습니다. 루터보다 앞선 시대에 영국의 존 위클리프는 설교 운동을 하면서 라틴어 성경을 영어로 번역한 성경을 가지고 설교를 했습니다. 위클리프의 제자들인 롤라드들은 이 성경을 가지고 마을마다 찾아다니면서 설교하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이 일로 인해 로마 교황은 자국어로 성경을 번역하는 것을 금지했습니다. 나중에 위클리프는 죽었지만, 그의 무덤을 파헤치고 남은 뼈를 불태워 시냇물에 버리는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사후에도 철저하게 부인당하는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이처럼 자국 말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고 공부해야 한다는 성경 본래의 정신이 기독교 천년 역사 속에 사라져버리고 말았습니다. 성경을 본 적도 없고 만지거나 읽어본 적도 없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생각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잘 믿는 것은 교회가 하라는 대로 하는 것이었지, 성경을 아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루터의 독일어 성경 번역과 그 영향

그런데 이 자국어 성경 번역이 루터에게서 제대로 이루어졌습니다. 루터는 바르트부르크 성에서 에라스무스가 편집한 헬라어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했습니다. 이것을 루터 비벨, 즉 루터 성경이라고 부릅니다. 루터의 성경이 보급되면서 당시 수없이 많은 영지로 나뉘어져 있고 사투리로 이루어져 있던 독일어가 언어의 통일을 이루고, 종교 개혁 사상을 전파하는 데 중요하게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성경을 가르치면서 문맹 퇴치와 문학의 발달 등이 발생했습니다. 루터의 번역 성경은 독일어와 현대 독일이라는 나라가 형성되는 데 결정적인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루터는 자기 국민들에게 라틴어로 설교하지 않고 항상 독일어로 설교함으로써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듣게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알아듣게 해야 합니다. 알아듣지 못할 어려운 말들로 이야기하는 것은 제대로 된 것이 아닙니다. 루터가 시작한 이 일은 영국에서 다시 시작됩니다. 영국에서 틴데일에 의해 성경 번역이 이루어졌습니다. 틴데일은 핍박을 받아 대륙으로 망명하여 그곳에서 책을 완성했습니다. 그것이 바탕이 되어 제네바 바이블, 그레이트 바이블 등 영어 성경들이 나왔습니다. 틴데일 번역 성경이 이 성경들을 번역하는 데 중요한 기본이 되었습니다. 제네바 바이블은 제네바에 망명 간 일단의 영국 사람들이 영어로 성경을 번역하고 주석을 붙여 발간한 책으로, 후에 청교도들에게 중요한 신학 교육 교재 역할을 했습니다. 1611년에는 킹 제임스 버전이 나왔고, 이 성경이 오늘날까지 사용되고 있습니다. 물론 그 후에도 많은 성경 번역이 새롭게 시도되었습니다.


성경은 계속 쉽게 번역되어야 한다

성경 번역은 왜 계속 새롭게 시도되어야 할까요? 시대가 변하면 언어가 변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대가 변하면 새로운 언어로, 자기들이 지금 사용하는 언어로 성경을 쉽게 접근할 수 있게 하기 위해 성경을 번역해 온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우리나라에 복음이 들어올 때 선교사들이 입국하기 전에 이미 일본에서는 이수정 역의 마가복음이 번역되어 있었고, 만주에서도 성경 번역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그 성경이 복음보다 먼저 우리나라에 들어왔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성경 번역을 열심히 하여 1938년에는 구역 번역 성경이 완성되었고, 한국 전쟁 중인 1952년에는 개역 성경 번역이 시도되었으며, 60년대 초에 완성되었습니다. 그 후에 이것이 오랫동안 사용되다가 2000년대 초반에 개역개정판, 즉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성경으로 새롭게 번역하게 되었습니다.  왜 이렇게 새로운 번역을 해야 하는가? 언어가 변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성경을 그대로 놓아두면 사람들이 성경에 쉽게 접근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성경을 읽을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성경을 읽지 못할 어려운 말들로 만들어 놓고 방치하면 안 됩니다. 어려운 것을 읽어내고 말하는 것이 권위인 것처럼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읽을 수 있고 접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성경을 가지고 공부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우리가 말씀을 제대로 가르치고 순종하여 진리의 사람들을 양육할 수 있고 하나님의 교회를 바로 세울 수 있습니다.


교회의 계급화와 성경의 독점

로마 교회는 교회를 가르치는 교회와 배우는 교회라는 두 개의 계급으로 나누었습니다. 가르치는 교회는 성직자 계급이고, 배우는 교회는 평신도 계급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가르치는 교회인 성직자가 성경을 독점하면서 가르침을 마음대로 만들어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배우는 교회는 성경을 접할 기회가 거의 없었습니다. 성직자가 교회와 교황의 유익을 위해 무슨 말을 하든 성도들은 확인할 길이 없었고, 그냥 따라가야 했습니다. 면죄부도 바로 그런 상황 속에서 나온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자국어 성경을 가지고 있고, 번역본도 다양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기 위해 다양한 번역을 참조할 수 있는 상황에 있습니다. 그런데 시대가 흘러갈수록 성경 말씀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모습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에게 성경을 얼마나 읽히십니까? 여러분의 자녀들이 성경을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자녀들이 성경 말씀을 얼마나 마음에 새기고 있습니까? 우리는 지금 다시 성경에 대해 무지한 상황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성도들도 성경 말씀을 얼마나 공부하고 있는지,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배우고 싶은 의욕이 있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다시 오직 성경으로

하나님이 왜 이렇게 하나님의 계시를 책으로 엮었을까요? 성경을 보면 말씀을 부지런히 가르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말씀을 이마에도 매고, 손목에도 매고, 옷단에도 매며, 문에도 붙이라고 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늘 읽고, 말씀대로 살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말씀이 하나님의 백성들의 정체성입니다. 성경이 없으면 하나님의 백성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몸 밖에 두던 시대에 그들은 성경을 모셔두는 것이 신앙인 줄 알았습니다. 성경은 모셔두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그리고 말씀을 사랑하여 즐거워하며 말씀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책으로 주어졌지만 단지 책에 머물게 해서는 안 됩니다. 이 책의 말씀은 항상 선포하게 되어야 합니다. 선포된 말씀은 성도들의 마음에 새겨지고 그 뜻과 생각을 변화시키고 그 삶을 변화시킵니다. 그 일이 지금 우리에게서 일어나야 합니다. 그 일이 지금 우리에게서 계속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무너지면 교회가 무너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루터가 바르트부르크 성에서 성경을 번역했다는 역사적 사실로 기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역사적 사실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이 가지는 의미이며 그것을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입니다. 우리는 다시 ‘오직 성경으로’라는 종교개혁의 참된 정신과 믿음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도 살고 우리 자녀들도 살고 우리 교회도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시대를 섬기기 위해서는 성경의 말씀이 하나님의 계시가 우리에게서 다시 능력 있게 선포되고 살아나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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