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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트립의 메시지(8)_제네바 : 나의 심장을 드리나이다(마 22:3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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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5-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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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트립의 메시지(8)

제네바 : 나의 심장을 드리나이다(마 22:37-40)



  오늘 말씀의 제목은 '제네바: 나의 심장을 주님께 드리나이다'입니다. 제네바는 단순한 지명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 개혁 신앙의 신앙과 신학이 시작된 최초의 풍성한 샘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는 곳입니다. 그 샘의 근원이 되는 인물, 곧 존 칼빈이 생애를 바쳐 사역했던 곳입니다. 이 도시는 당대에 '신의 도성', 즉 '하나님의 나라'라는 영광스러운 별명을 얻었습니다. 칼빈이 섬기던 그 시대에 제네바는 종교 개혁의 이상을 가장 완벽하게 구현한 모범적인 도시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마르틴 루터가 세상을 떠난 후, 존 칼빈은 명실상부한 종교 개혁의 가장 큰 인물로 우뚝 섰습니다. 유럽 각 나라에 흩어져 있던 수많은 개혁자들은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듯 칼빈에게 몰려와 가르침을 받고 배우기를 갈망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칼빈에게서 배운 진리의 씨앗을 가지고 자기의 고향과 나라에 돌아가 개혁 교회를 굳건히 세웠습니다. 칼빈 당대에는 유럽 전역의 개혁자들이 제네바로 와서 배우고, 다시 각자의 사역지로 돌아가는 역동적인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이 칼빈의 귀한 교훈은 영국과 스코틀랜드, 네덜란드로 퍼져나갔고, 나중에는 대서양을 건너 미국에 이르렀으며, 마침내 이 땅, 대한민국에까지 들어와 오늘날 우리의 신앙과 신학의 뿌리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칼빈은 우리나라 개혁 신학을 탐구하는 모든 이들에게 언제나 사모할 수밖에 없는 위대한 인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 또한 작년에 직접 제네바를 방문하여 칼빈이 뜨겁게 설교했던 생피에르 교회를 방문했습니다. 그곳에는 칼빈이 실제로 사용했던 설교단이 있었는데, 지금은 사람들이 올라가지 못하도록 막아 놓았습니다. 저는 그 강단 아래 장의자에 앉아, 마치 칼빈이 선포하는 말씀을 겸손히 듣는 것을 마음속으로 상상하며 사진을 찍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리고 이어서 칼빈의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제가 책을 통해 공부해 왔던 바로는 칼빈의 무덤이 제네바의 공동묘지에 묻혀 있었고, 오랜 세월 동안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묘비조차 없었기에, 칼빈이 정확히 어디에 묻혔는지 아무도 알 수 없었습니다. 후대 사람들이 그 공동묘지를 수없이 찾고 모든 자료들을 연구한 끝에, 마침내 칼빈의 묘라고 추정되는 곳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그 묘에는 작은 돌 하나가 세워져 있는데, 거기에 'J. C.' 두 글자만 쓰여 있습니다. 'J. C.'는 존 칼빈의 이니셜을 뜻합니다. 후대 학자들의 연구를 통해 지금은 그곳이 칼빈의 묘가 맞다고 인정되고 있습니다. 그 공동묘지는 그리 큰 곳은 아닙니다. 숲길을 따라가다 보면 길 양옆 여기저기에 묘지가 있는데, 한쪽 귀퉁이에 칼빈의 묘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다녀온 어떤 분이 예전에는 없던 것이 생겼다고 사진을 찍어 올리셨는데, 20cm 정도 되는 낮은 철망 울타리가 쳐져 있었습니다. 예전에 다녀온 분들은 그 울타리도 없던 시절에 방문했던 것이지요. 울타리라고 해봤자 구역만 표시해 놓은 정도였고, 풀들과 꽃들이 그 위를 덮고 있었습니다. 작년에 제가 그 앞에 갔을 때, 저는 그 무덤에 가까이 갈 수 없었습니다. 멀찍이 떨어져 바라만 보다가, 다른 사람들은 다 가서 둘러싸고 사진을 찍는데, 저는 혼자 뒤에서 멀찍이 떨어져 배회하다가 겨우 사진 한 장만 찍고, 그 앞에서 함께 사진 찍자는 요청은 사양했습니다. 내년에 우리 교회에서 비전 트립을 오면 그때 찍겠다고 말했습니다. 이번에 가게 되면 우리 모든 비전 트립 대원들과 함께 그 자리에서 칼빈의 묘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싶습니다.


  '나의 심장을 드리나이다'라는 이 고백은 존 칼빈이 직접 했던 말입니다. 이 말은 칼빈이 제네바에서 두 번째 사역을 하게 될 때, 즉 첫 번째 사역을 마치고 쫓겨난 후 다시 제네바로 돌아올 때 했던 말입니다. 칼빈은 제네바에서 3년간의 1차 사역을 마치고 제네바 시 당국에 의해 추방당하게 됩니다. 그는 스트라스부르로 가서 프랑스 난민들을 위한 목회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당시 프랑스에서는 루터의 종교 개혁 정신이 확산되면서 개혁 신앙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박해가 극심했습니다. 칼빈 자신도 그 박해 속에서 방랑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 방랑 중에 그는 불후의 명작인 『기독교 강요』를 집필했고, 잠시 제네바에 들렀다가 그곳에서 붙잡혀 1차 사역을 하게 된 것입니다. 프랑스 난민들은 박해를 피해 프랑스와 국경을 맞대고 있던 당시 독일 땅이었던 스트라스부르로 많이 피난을 왔습니다. 지금은 프랑스 땅이지만, 그 지역은 역사적으로 독일과 프랑스 사이를 오갔던 곳입니다. 칼빈이 태어날 당시에는 독일 땅이었으나, 2차 세계대전 이후 프랑스 영토가 되었습니다. 바로 그곳에서 칼빈은 고향과 재산, 가족까지 모든 것을 잃고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도피해 온 프랑스 난민들을 모아 프랑스 난민 교회의 목회자가 됩니다. 그러던 중 2년 만에 제네바의 상황이 매우 위태로워집니다. 비록 종교 개혁 도시였지만 여러 문제에 직면하자, 결국 제네바는 다시 칼빈과 파렐을 부르게 됩니다. 파렐은 이미 자리를 잡았기에 돌아갈 수 없다고 거절했고, 칼빈에게 대신 가달라고 설득합니다. 칼빈은 처음에는 완강하게 제네바에 가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파렐은 칼빈을 끈질기게 설득하며 편지를 보냈고, 마침내 "네가 만일 그렇게 한다면 하나님께서 가만두지 않도록 저주할 것이다"라는 강경한 말까지 하게 됩니다. 결국 칼빈은 파렐의 말에 굴복하게 됩니다. 그때 파렐에게 보냈던 편지 내용 가운데 "나의 마음을, 나의 심장을 주님께 드리나이다. 신속하게 그리고 신실하게"라는 말이 담겨 있었던 것입니다. 그가 이렇게 말했던 이유는, 제네바에 가는 것이 비록 죽기보다 싫을 정도로 힘들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기꺼이 순종하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한다면 자신의 마음을 다 드려 신속하게, 그리고 신실하게 순종하겠다고 다짐한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께 순종하기 위해서 나의 뜻과 나의 애틋한 감정들을 바치고 복종시킬 것이며 흔들리지 않으렵니다. 그리고 나 자신의 뜻을 버려야만 할 때에는 언제든지 주님께서 친히 나에게 말씀하실 것을 소망하면서 나 자신을 복종시키고자 합니다."  그는 정말 제네바에 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제네바에 가야 한다면,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자신의 뜻과 계획들을 모두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에 자신의 심장을 바쳐 헌신하겠다고 고백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칼빈은 다시 제네바에 돌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20여 년 동안 남은 생애를 하나님이 부르실 때까지 사역했고, 그가 사역하는 기간 동안 제네바는 유럽의 종교 개혁 도시로서 가장 유명하고 모든 개혁자들이 소망하는 도시가 되었습니다. 각 나라마다 박해받는 사람들이 제네바로 피신했고, 그곳에서 칼빈에게 배우고, 그곳에서 배운 대로 고국에 돌아가 교회를 세웠습니다. 과연 제네바는 칼빈의 학교였습니다.


  제네바는 '하나님의 나라', '신정 국가'가 되었습니다. 칼빈이 독재자였을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그는 철저히 성경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성경이 아니면 할 말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철저하게 근거하여 모든 일들을 행했던 인물입니다. 그의 대표적인 저작들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기독교 강요』와 성경 주석들입니다. 이 두 저작은 사실 성경 공부를 위한 그의 치밀한 계획 속에서 나온 것입니다. 즉, 주석을 쓰다 보면 같은 말이 반복되거나 비슷한 구절들이 수없이 나오게 되는데, 이러한 원리들을 한데 모아서 체계적으로 정리한 것이 바로 『기독교 강요』입니다. 그러므로 칼빈의 주석을 제대로 읽으려는 사람은 반드시 『기독교 강요』를 독파해야 합니다. 『기독교 강요』를 잘 알아야만 칼빈의 주석을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저도 젊은 시절에 칼빈 주석을 구입했습니다. 번역이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칼빈 주석 전집이라고 해서 결국 구매했습니다. 칼빈 주석을 얼마나 사모하는 심정으로 보았겠습니까? 읽고 또 읽었는데, 주석을 본다고 해서 설교가 저절로 느는 것도 아니었고, 자신이 알고 싶은 것들을 다 말씀하고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칼빈 주석은 오랜 세월 동안 제 서가에 장식품처럼 꽂혀 있었습니다. 손님들이 오면 칼빈 주석도 있다고 보여주기 위한 용도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많은 세월이 흐른 후 어느 날 칼빈 주석을 다시 보게 되었는데, 신기하게도 그 속에서 진리의 샘이 콸콸 솟아나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아니, 세상에 칼빈 주석이 이런 것이었어?' 하고 깜짝 놀랐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저는 너무 어렸고, 너무 몰랐고, 공부한 것도 없었기 때문에 그때는 주석을 보아도 그 진가를 알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세월이 흐르고 학문이 쌓이고, 특별히 칼빈의 사상과 『기독교 강요』에 대한 공부들이 깊어진 후에 이 주석을 보니 마치 샘솟듯이 지혜가 솟아나는 것이었습니다. 보통 주석을 본다고 설교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 일반적인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칼빈의 주석을 보고 있으면 저절로 설교의 내용이 떠오르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아, 이것이 아는 만큼, 공부한 만큼, 감동받은 만큼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공부가 쌓이지 않으면 아무리 봐도 소용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예전에 고등학생 때 한 친구가 학교에 와서 "야, 임마누엘 칸트의 『순수 이성 비판』을 읽어봤는데, 별거 아니더라"고 말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야, 네가 그것을 읽었다고는 하지만 글자나 제대로 세었겠냐? 그 내용을 네가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겠냐?"라고 대답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 후 수십 년이 지난 다음에도 그 일이 계속 잊히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저는 『순수 이성 비판』 책을 샀습니다. 그 친구가 읽었을 법한 그 시대에 나온 책을 샀습니다. 말투가 지금과 달랐습니다. 읽다 보니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결국 역시 『순수 이성 비판』 책은 좋네 하고 내려놓았습니다. 혹시 다른 쉬운 번역본을 보면 괜찮을까 싶어 90년대 번역된 책을 다시 샀지만, 역시 읽지 못했습니다. 철학적 기반이 그만큼 안 되었기 때문입니다. 기반이 없으면 아무리 좋은 책이라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칼빈은 정말 많은 분들이 사모하는 위대한 인물이지만, 그분에게서부터 풍성하고 기쁘게 샘물처럼 진리를 받는 분들은 사실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그분을 '성경의 인물', '성경의 사람'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독교 강요』와 주석을 번갈아 가면서 수없이 읽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시대의 논쟁들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 깊이 공부해야만 합니다


  "나의 심장을 주님께 드리나이다." 칼빈은 『기독교 강요』에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이성이나 우리의 의지가 우리의 계획과 행위를 좌우하지 말게 하자. 우리는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육신을 쫓아서 헛된 것을 우리의 목표로 삼지 말자. 우리는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니다.". 칼빈의 생애는 이 고백을 몸소 체험하는 생애였다고 보입니다. 그는 결코 자신의 뜻대로 살았던 사람이 아닙니다. 이 고백은 제네바에서의 두 번째 사역을 시작할 때, 칼빈이 하나님 앞에 자신의 마음과 뜻, 성품과 목숨을 다 바쳐 충성하겠다는 의지를 담은 것입니다. 스트라스부르로 가던 길에 제네바에서 붙잡혔을 때도, 그리고 스트라스부르에서 제네바로 다시 돌아올 때도 그가 굴복했던 것은 모두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그는 "나는 하나님께 순종하기 위해서 나의 뜻과 나의 애틋한 감정들을 바치오며 복종시킬 것이며 흔들리지 않으렵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칼빈은 이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며 제네바에 왔고, 하나님께서는 그의 마음과 심장을 기꺼이 받아 사용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드린 사람들을 사용하십니다. 교회 역사를 돌아보면, 자신의 마음과 삶을 주님께 온전히 드린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위대하게 사용하셨음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마르틴 루터가 그러했고, 체코 프라하의 얀 후스가 그러했으며, 취리히의 츠빙글리가 그러했습니다. 그리고 칼빈은 이 모든 신앙적 헌신과 순종의 의미를 자신의 말로 분명하게 표현할 수 있었던 위대한 인물입니다. 성도 여러분, '나의 심장을 주님께 드리나이다'라는 이 고백이 우리의 마음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우리의 삶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삶을 인도하시고, 우리의 길을 축복하시는 놀라운 생애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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