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요약

진리를 위한 투쟁(3)_용기 있는 기독교(갈 6: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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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4-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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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를 위한 투쟁(3)

용기 있는 기독교(갈 6:11-14)


현대성과의 전쟁에서 패배한 교회

지난 두 번에 걸쳐서 1920년대에 있었던 자유주의와 근본주의의 투쟁과 그 결과에 대해서 생각을 했습니다. 그때의 전쟁은 현대 사상과의 전쟁이었고, 그 전쟁에서 나중에 근본주의라고 비하의 명칭으로 불리우는 사람들이 패배를 하게 됩니다. 사실 알고 보면 근본주의는 비하될 만한 명칭이 아니었습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명칭이 처음에는 비하의 명칭이었죠.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그 이름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당당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근본주의자들은 성경의 무오성을 믿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대속의 교리를 붙들고 대속의 교리를 위한 동정녀 탄생, 또 그리스도의 무죄함, 이러한 것들을 굳게 지키고자 했었던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이었습니다. 알고 보면 근본주의자들은 오늘날 우리들의 믿음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들을 비하하는 것은 우리를 비하하는 것과 똑같은 것입니다. 어쨌든 그들은 그 전쟁에서 패배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이것을 받아들이기가 너무 힘들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홈그라운드를 모두 내준 것과 똑같은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미국 사회는 애초에 기독교 국가로 독립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미국 사회는 1차 대각성을 통하여 신앙으로 통합된 기독교 사회로서 기독교 국가와 동일한 모습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미국은 세속 국가로 세워졌습니다. 그리고 교회는 그 안에서 국가가 통제하는 교회가 아니라 자유롭게 경쟁하고 발전하는 모습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역사 속에서 처음으로 등장하는 교회의 모습이었습니다. 로마 시대 이후로 교회는 항상 국가의 통제 아래 있었습니다. 그래서 일사불란한 모습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미국 교회는 일사불란한 모습을 갖고 있지 않고 여러 신앙의 전통들이 자유롭게 발전해 가는 모습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여러 다양한 신앙 전통들이 근본주의 교리로써 하나가 될 수 있었습니다. 이 믿음을 공유하고 현대 사상과 전쟁을 해서 이기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현대 사상은 막을 길이 없는 도도한 홍수처럼 미국 사회 전부를 휩쓸고 지나갔습니다. 그리고 현대성은 오늘날까지도 결코 물러나지 않고 오히려 전 세계 대중 사회로 퍼져 있는 상태입니다. 그런 속에서 교회는 과연 가지고 있는 진리를 보존하고, 이 진리를 전파하고, 그리고 이 진리로 굳게 세워질 수 있는가? 새로운 도전이 교회 앞에 대두되었습니다.


미국식 복음주의의 등장

1950년대, 1960년대에 들어 새로운 일단의 지도자들이 등장을 했는데 빌리 그래함 같은 지도자들을 필두로 해서 그와 함께하는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복음주의 운동을 벌이게 됩니다. 이것을 우리는 신복음주의라고 이야기합니다. 신복음주의는 성경을 믿고, 그리스도의 대속의 교리를 믿으면서, 복음의 진리를 선포하는 일에 열정을 다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다시금 그리스도의 속죄의 교리를 믿는 신앙의 부흥이 미국 사회에서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어느덧 미국은 세속 국가이지만 그러나 기독교 국가라고 하는 유럽의 어떤 국가들보다 신앙의 기초와 신앙의 힘이 더 강력한 나라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1990년대에 들어와서 미국의 신복음주의에 대한 비판의 글이 나오게 됩니다.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의 교수인 마이클 호튼은 『미국제 복음주의를 경계하라』(Made in America)라는 책을 쓰게 됩니다. 여기서 그는 미국제 복음주의의 8가지 특징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민주주의의 시녀가 된 하나님, 즉 교회가 호국 기독교가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교회는 정치적으로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 특징은 실용주의적 복음주의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세 번째는 소비자 중심주의 입니다. 이제는 진리와 교회의 전통이 아니라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느냐? 사람들의 성향을 분석하고 사람들의 니즈(needs), 즉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어야 한다는 식의 변화들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네 번째 특징은 ‘구원으로부터 자기 존중으로’ 입니다. 구원의 복음은 항상 죄를 깨닫고 깊이 뉘우치고 회개하며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전적으로 의지하는 쪽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죄를 강조하는 이와 같은 메시지가 현대인에게 통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결국 죄에 대한 메시지가 점점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하나님의 사랑을 강조하는 쪽으로, 물론 하나님의 사랑을 강조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마는 문제는 죄를 말하지 않으면서 사랑만을 강조하는 쪽으로, 그리하여 여러분은 하나님의 사랑하는 대단한 사람입니다라는, 그리하여 하나님도 대단하게 여기는 인간으로 이렇게 변화되어 간 것입니다. 다섯 번째 특징은 감정 중심의 신앙. 여섯 번째는 이교도로의 복귀. 일곱 번째는 각기 소견에 옳은 대로. 여덟 번째는 공동체의 상실.


문화전쟁이 교회의 사명인가?

마이클 호튼은 그 후에 제2부로서 『In the face of God』을 썼는데 우리말로는 『미국제 영성에 속지 말라』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습니다. 여기서는 뉴 에이지와 이머징 처치에 대해 분석하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마이클 호튼이 쓴 세 번째 책은 『Beyond Culture Wars』 입니다. 우리말로는 『세상의 포로된 교회』라고 하는 제목 출간되었습니다. ‘개혁된 교회라도 끊임없이 개혁되어야 한다,’ 이말은 개혁교회의 모토였습니다. 그런데 현대 교회는 교회 개혁보다는 사회 개혁, 문화와의 전쟁에 집중하면서 교회의 이슈화하는 문제들에 대해 경고하고 있습니다. 문화 전쟁의 핵심에 동성애라든지 하는 문제들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런 것들과의 전쟁이 우리가 치러야 하는 교회의 사명인 것처럼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동성애라든지 퀴어 축제라든지 하는 것들이 교회가 싸워야 되는 대상이 되어서 교회가 직접 전쟁의 현장에 동원되는 상황이 되는 것입니다.


신학실종 4부작

두 번째로 현대 교회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를 이야기한 분 중에 고든 코넬 신학교 교회사 조직 신학 교수인 데이빗 웰스를 들 수 있습니다. 이분은 4부작의 책을 쓰게 됩니다. 첫 번째는 『신학 실종』, 둘째는 『거룩하신 하나님』, 세 번째로는 『윤리 실종』, 네 번째로는 『위대하신 그리스도』입니다. 이 책들은 근대 이후 문화의 변천에 따라서 교회와 신앙이 사람들의 생각과 삶에서 변두리로 밀려나고 있는 현상에 대하여, 그리고 이것을 극복하기 위한 교회의 노력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그러나 교회의 노력이 과연 성경적이었는지 하는 부분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는 1980년대부터 등장했던, 오늘날 우리가 마케팅 교회라고 부르는 교회에 대해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는 현대의 마케팅 기법을 습득한 사람들이 그 기법을 이용해서 교회를 키워나가는 일들을 성공시켰다고 합니다. 그렇게 해서 마케팅 처치라고 부르는 이 교회들이 굉장히 크게 성공하게 되고 그때 우리나라 목사님들이 이 교회들을 배우기 위해서 미국에 많이 가게 됩니다. 우리는 최근 한 30년 동안에 바로 그러한 모습을 우리 한국 교회에서 목격하고 있습니다. 그 속에서 역사적인 종교 개혁의 전통과 신학과 신앙, 거기에 서서 참 교회를 세우고자 하는 이 일은 정말 힘들고 어려운 일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용기 있는 기독교

데이빗 웰스는 4부작 이후에 이 방대한 책을 한 권으로 정리하면서 이 책의 제목을 『용기 있는 기독교』(Courage To Be Protestants)라고 정했습니다. 이 책은 하나의 문제를 제기합니다. 오늘날 미국에서 기독교인으로서 서명하는 것에는 용기가 필요 없다. 그러나 역사적 개혁주의 기독교인으로 서명하려면, 즉 자기의 정체성을 역사적 개혁주의 기독교인으로 드러내려고 하면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미국이, 기독교 사회가 변해버린 것입니다. 역사적 개혁주의자라고 하는 타이틀은 이제는 사람들에게 무슨 유물처럼, 마치 무슨 빈티지처럼 되어 버린 것입니다. 미국에서는 가라지 세일을 하잖아요. 사람들이 이사가거나 ,아니면 집안을 정리할 때,  필요없는 물건들을 내놓고 판매합니다. 그런데 바로 이 역사적 개혁주의 신앙이 그처럼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역사적 개혁주의 신앙을 가진 사람이라고 말하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러면서 그는 현실을 분석하고 있습니다. 복음주의 계열에는 세 계열이 있는데 고전적인 복음주의, 마케팅 주의 교회, 이머징 처치가 그것입니다. 이 속에서 이미 고전적 복음주의는 소수로 전락을 하였고, 마케팅 주의는 이미 크게 성공을 했었고, 지금은 새롭게 이머징 처치가 나타나 큰소리를 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 속에서 역사적 개혁주의를 말한다고 하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입니다. 그러나 그는 결론에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를 살리고 시대를 살리기 위하여는 역사적 개혁주의에 대한 용기, 바로 이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것이 답이라고 결론짓고 있습니다.


진리의 영광이 나타나 역사를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이 책들이 나온 지가 수십 년이고, 저도 목회한 지가 수십 년이고, 저도 이런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한 지가 수십 년입니다. 그러면서 오늘날 이들이 경고했었던 미국제 복음주의가 오늘날 우리 한국교회의 모습이 되고 있는 것을 보고 안타까워 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애초에 기독교 국가로 출발하지 않았습니다. 이 말은 미국이 기독교 사회가 아니었다는 말이 아닙니다. 기독교 사회였지만 어떤 통일된, 그리고 이 통일을 강제로 규범화하는 교회를 갖고 있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미국 교회는 국가가 교회의 틀을 강제하지 않고 자유롭게 놓아두었습니다. 그리고 미국은 이민국가로서 전 세계 이민자들이 오면서 자기들의 신앙 전통을 가지고 자기들의 공동체를 세워 나가고 이 공동체들이 하나의 신앙 경험으로 하나의 신앙으로 통합되는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들이 하나가 될 수 있게 되게 만들었던 것은 부흥이었습니다. 18세기의 1차 대각성 이후에도, 2차 대각성이라고 불리는 19세기 초에 있었던 부흥, 그리고 1857년 58년의 뉴욕 대부흥, 19세기 후반의 디엘 무디의 부흥, 그리고 1900년대 초까지 계속 진행되었던 부흥 등, 이 부흥의 불길 속에서 미국 사회는 뜨거운 신앙으로 하나가 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신생 국가로서 유럽의 전통을 따라잡기 위해 유럽으로 유학을 많이 갔고 유학을 갔던 사람들이 귀국하면서 미국 사회는 유럽화되기 시작했습니다. 대학 사회가 유럽화되고, 지성인들이 유럽화되었습니다. 유럽화되었다는 것이 바로 자유주의와 현대주의였던 것입니다. 그런 속에서 미국 교회는 새로운 도전을 맞이하게 되었고 이런 여러 가지 부침을 겪으면서 오늘날 이르게 되었는데, 이 미국 교회와 가장 닮은 모습으로 발전한 곳이 바로 한국교회입니다. 한국교회도 부흥을 통해서 하나가 되는 경험 속에 있었고 신앙의 자신감을 가지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용기를 가지면서 미국 교회와 같은 발전의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유학가는 목사님들은 대부분 미국 쪽으로 유학을 갔고, 그들이 귀국하면서 미국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어느덧 우리는 미국 교회와 그 궤를 같이 하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미국 교회는 일찍이 소위 케이블 TV가 발전하고 케이블 TV 교회가 수없이 등장하면서 교회 가지 않는 신앙이 아주 많이 퍼지게 되었는데, 우리나라는 코로나를 기점으로 이제 그런 상황이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이런 속에서 지금 교회는 문화 전쟁에 빠져들고 있습니다. 문화전쟁을 이슈화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역사적인 관점에서 이런 현실들을 냉정하게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주변이 다 쏠려간다고 우리도 다 거기에 가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런 현상을 볼 때 역사적인 발전 과정을 보고 분명한 성경적 원리 위에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신앙을 확고하게 세워나가면서 진리가 온 세상을 창대케 하는 일을 위해 헌신해야 합니다.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온 세상에 가득하게 되리라.” 이 소망을 붙들고 진리의 영광이 나타나 역사를 새롭게 하는 방법이 과연 하나님께서 주신 승리의 길이라는 사실을 믿고 그 위에 굳게 서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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