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일에 기도하라(2)_잘못된 기도에 익숙해진 그리스도인(약 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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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4-12-20본문
모든 일에 기도하라(2)
잘못된 기도에 익숙해진 그리스도인(약 4:1-3)
기도는 쉽다(?)
오래전 일입니다마는 마침 교회에 책이 한 권 바닥에 놓여 있어 들쳐보니까 O. 할레스비의 『기도』라는 책이었습니다. 저는 그 책을 관심 있게 읽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책에서 할레스비 박사는 ‘기도는 참 쉬운 일이다’라고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기도가 쉬운 이유는 아버지에게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기록을 해놓았습니다. 아버지께 말하는 것이 과연 쉬운 일일까? 그 당시의 저에게는 아버지께 말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아버지와의 관계가 친밀해서 아버지가 늘 가까이 해주고 데리고 다니고 칭찬해 주고 격려해 주고 하는 관계가 아니었거든요. 나중에 서양의 아버지들은 우리의 아버지와는 달리 자녀들을 매우 사랑하고 아껴주고 친구처럼 이야기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이분이 그렇게 말하는 이유가 있구나’하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사실 알고 보면 이것은 우리 인간 아버지의 한계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인간 아버지가 타락하지 않은 상태의 아버지였다면 아마 지금의 아버지와는 달랐을 것입니다. 서양의 아버지들도 근대화 이전 옛날의 아버지들은 모질었습니다. 자녀에게 관심도 없고 때로는 자녀들에게 채찍질하는 것을 사명으로 알고 얼마나 채찍질을 해댔는지 모릅니다. 이제는 시대가 많이 바뀌어서 우리나라도 아버지들의 문화가 많이 바뀌었습니다. 자녀들이 아버지에게 말하는 것이 쉬워졌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이제는 아버지한테 말하는 것이 버르장머리가 없어졌습니다. 이것이 또 다른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기도는 어렵다(?)
기도는 하늘 아버지께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하늘 아버지는 자기의 자녀들에 대하여 한량없는 사랑으로 응답해 주시는 분입니다. 마태복음 7장 11절,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이 말씀은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의 관계, 즉 성부와 성자 사이의 관계가 모범이 되는, 하늘 아버지와 땅의 자녀들의 관계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늘 아버지의 사랑과 자비, 그리고 땅에 있는 영적 자녀들이 하늘 아버지에 대하여 효성스러운 자녀가 되어 그 관계가 참으로 아름다운 관계, 그리고 그 가운데에서 기도가 응답받는, 아니 기도한 것보다 더 좋고 더 아름다운 것으로 주시는 모습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우리는 기도에 대하여 너무나 많은 장애물과 어려움이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O. 할레스비 박사가 그의 책에서 기도가 아버지께 말씀드리는 일이기 때문에 쉽다고 이야기했지만, 그는 그 책에서 또한 ‘기도는 일’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즉 마땅히 해야 하는 일과 같이 기도도 마땅히 해야 하며, 자연히 마땅히 해야 하는 기도의 영역들이 있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9장 38절 ,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을 보내어 주소서 하라.” 현실을 보고 영적 문제들을 파악하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하는 일입니다. 일은 힘들고 어려운 것입니다. 기도 또한 그와 같은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 할레스비 박사는 ‘기도는 전쟁’이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에게 기도는 영적 전쟁입니다. 그러므로 마태복음 26장 41절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기도는 영적 전쟁입니다. 그리고 이 영적 전쟁에서 우리가 깨어 있지 못하면 시험에 들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에는 힘들고 어려운 부분이 분명히 있는 것입니다.
기도의 장벽
그러나 기도에는 이보다 더 큰 장벽이 있습니다. 기도 응답을 받지 못하는 문제가 바로 그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모두 들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에게는 응답받지 못하는 기도가 분명히 있습니다. 야고보서 4장 3절,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이라고 말씀합니다. 기도해도 응답받지 못하는 문제는 무엇일까요? 가장 큰 문제는 죄의 문제입니다. 이사야서 59장 2절, “오직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놓았고, 너희 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에게서 듣지 않게 함이니라.” 하나님께서 죄 때문에 기도를 듣지 않으신다는 말씀입니다. 예레미야서를 보면 하나님께서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범죄한 이스라엘을 위하여 더 이상 기도하지 말라고까지 말씀하십니다. 얼마나 무서운 말씀 입니까? 예레미야 선지자는 국가의 위기가 다가오는 시점에 하나님의 백성들을 각성케 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눈물을 흘리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어찌하면 내 눈은 눈물 근원이 될꼬?’ 그리하면 내가 이 백성을 위하여 곡읍하리로다.‘ 즉 눈물을 흘리면서 통곡하겠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 선지자에게 더 힘들고 어려웠던 것은 하나님께서 더 이상 이 백성을 위하여는 기도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이었습니다. 죄가 하나님과 그 백성 사이를 갈라놓았습니다. 하늘이 땅에서 먼 것처럼 하나님과 그 백성 사이가 멀어졌습니다. 문제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죄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죄의 문제가 있는 한 그들이 하나님께 기도한들 응답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은 죄를 지으면서도 하나님께 기도는 열심히 했습니다. 그러나 그 기도가 소용이 없었던 이유는 바로 그들의 범죄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시편 66편 18절, “내가 내 마음에 죄악을 품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 회개하고 삶을 바르게 해야 하는데 많은 분들이 여전히 죄를 떠나지 못하고 무능력과 무기력 가운데 있습니다. 그러는 동안 하나님께 기도한들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으실까요? 죄의 문제를 청산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기도를 듣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죄의 문제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가로막는다
죄가 왜 이렇게 큰 문제일까요? 하나님과의 관계를 해치기 때문입니다. 타락한 인간들은 하나님과 원수 관계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친히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심으로, 그의 피 흘리심으로 이 원수 관계를 해소하셨습니다. 그리고 원수를 하나님의 아들과 딸로 삼으셨습니다. 그들이 바로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런데 그가 이 엄청난 은혜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죄를 가볍게 여기거나 죄를 외면하면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해친다면 그의 문제는 점점 심각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관계를 해치는 문제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것으로 드러납니다. 잠언 28장 9절, “사람이 귀를 돌려 율법을 듣지 아니하면 그의 기도도 가증하니라.” 귀를 돌린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안 듣는 것을 의미합니다. 몸은 이 자리에 있는데 말씀은 듣기 싫어하는 것입니다. 그다음 ’듣지 아니한다‘는 것은 불순종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듣는다‘는 말을 순종으로 표현합니다. 엄마가 ’넌 왜 내 말을 안 듣니?‘라고 아이에게 말합니다. 그럴 때 이 말은 순종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필요할 때에는 ’엄마 돈‘ 이럽니다. “그의 기도도 가증하느라.” 이것이 아이들의 모습과 닮아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기도할 때에는 바로 이 부분을 먼저 점검을 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자신을 점검하지 않고 기도만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기를 돌아보지 아니하고 기도만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하나님은 이런 분들에게 브레이크를 걸고 계십니다. 왜냐하면 자신을 돌아보고 점검해야만 하나님과의 관계, 자신의 마음과 삶의 문제를 바르게 해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시는 이유는 우리들을 가르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기도가 응답 되지 않을 때마다 우리는 자기를 돌아보고 자신의 잘못들을 하나님께 회개하며 자신의 마음에, 또한 삶의 문제들을 해결하며 하나하나 고쳐나가야 합니다. 그러는 동안에 하나님께서 그가 깨닫기를 원하시고 고치기를 원하셨던 바로 그 문제를 직면하게 하십니다. 그 문제를 직면하게 되면 그때 우리 마음속에서는 더 놀라운 작용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의 영혼 속에 놀라운 은혜의 작용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러면서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회개의 자리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자신을 점검하는 과정을 소홀히 하시면 안 됩니다. 그러다가 진짜 문제를 직면하는 순간 성령께서 여러분에게 역사하여 참된 회개의 자리로 나가게 하십니다.
잘못 구하는 기도의 문제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 말씀은 또 다른 기도의 문제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욕심만 앞세우는 기도, 즉 기도의 목적과 의도의 불순함, 이런 것들에 대해 지적하고 있습니다. 3절,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 정욕은 마음에 일어나는 어떤 욕망을 말합니다. 그런데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욕망이 실제 삶의 현장에서 다툼으로 나타나고 있었습니다. 1절,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부터 다툼이 어디로부터 나느냐?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부터 나는 것이 아니냐?” 인간은 기본적으로 싸우는 존재입니다. 왜냐하면 타락한 인생에게 다툼은 자연스러운 정욕이기 때문입니다. 자연스러운 욕망이에요. 누군가를 이기고 싶고 누군가로부터 빼앗고 싶은 것이 인간의 기본적인 특성입니다. 이는 죄인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이런 욕망을 죽여야 합니다.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로마서 8장 13절은 죄를 죽이는 문제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인들이 죄를 죽이는 일에 관심이 없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다툼이 일어나고 싸움이 일어나고, 자기의 권리와 자기의 입장만 강조하는 상황이 일어납니다. 2절, “너희는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여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함은,” 심지어 그 욕심 때문에 살인과 시기하는 자리에 나아갔는데도 얻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너희가 얻지 못하면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 지금 저자는 공동체의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공동체 안에서 자기의 뜻을 다른 사람의 뜻보다 앞세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기의 뜻을 하나님의 뜻보다 앞세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하여 다툼과 싸움이 일어납니다. 이런 투쟁심, 이런 이기심, 이 문제들이 기도를 가로막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기도는 열심히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으시겠습니까?
자신을 돌아보고 점검하라
오늘 우리는 우리의 기도의 삶을 돌아보면서 새롭게 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잘못된 기도에 익숙해진 그리스도인인지 아닌지 우리의 기도 생활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어떤 분은 기도없는 일에 익숙해져 있고, 어떤 분들은 잘못된 기도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기도의 영광을 알지 못하고 경험하지 못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이 시간 우리 자신을 한번 점검해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점검에는 절차와 순서가 있어요. 첫 번째 점검해야 할 것, 두 번째 점검해야 할 것, 세 번째 점검해야 것, 하나하나 차례차례 여러분을 점검해 보십시오. 그러다가 진짜 자신의 문제가 딱 나오게 되면 성령께서 역사하시기 시작합니다. 이 은혜를 사모하세요. 간혹 우리 중에는 자신의 문제를 봤는데도 외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내가 그럴 리 없어” 하는 것입니다. 자기 확신이 너무 강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이 문제가 결코 나를 가리킬 리 없어‘라고 확신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기도의 은혜는 그를 비켜가고 말 것입니다. 자신의 문제를 직면할 수 있기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기도하십시오. 그리하여 하나님의 성령께서 여러분의 영혼에 역사하시고 여러분이 완전히 새로워지고 하나님 은혜가 한량없이 임하고 기도의 영광을 체험하는 자리에 이르시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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