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요약

우리에게서 영혼 구원의 역사가 그친다면(3)_하나님은 죄악 된 세상을 사랑하셨다 (요 3: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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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5-02-28

본문

우리에게서 영혼 구원의 역사가 그친다면(3)

하나님은 죄악 된 세상을 사랑하셨다 (요 3:16-21)


이미 구원 받았으나 구원의 완성을 기다리고 있다

왜 영혼 구원이라는 말을 사용하는가? 그 이유는 사람을 영적으로 보기 때문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물론 사람은 영으로만 이루어진 존재는 아닙니다. 영혼과 육체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과거 이교도들은 영은 선하고 육체는 악하며, 선한 영혼이 악한 육체에 마치 감옥살이 하는 것처럼 갇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빨리 악한 육체를 벗어나야 하며, 육체를 벗어나는 방법은 금욕과 고행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악한 육체는 금욕과 고행을 통해 괴롭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럴수록 영혼은 더욱더 순결하게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혹은 영적인 지혜를 얻어야 한다고 가르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어쨌든 그 모든 교훈의 핵심은 육체는 악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모두 영혼만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의 가르침은 그와 같은 고대 이교도들의 생각과는 다릅니다. 성경은 인간을 영혼과 육체 둘로 나누지 않고 하나의 인격체로, 완전한 한 인간으로 존중하고, 영혼과 육체가 완성되어야 참 인간이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인간의 구원이란 영혼과 육체 모두의 구원인 것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영혼 구원이라는 말을 사용하는가?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전인으로 구원하시지만, 영혼을 먼저 구원하시고 육체는 그 후에 구원하시기로 하셨기 때문입니다. Already - Not yet이라고 하는 영어 구절이 있습니다. Already라는 말은 ‘이미’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Not yet이라는 말은 ‘아직은 아니다’라는 말입니다. ‘이미, 그러나 아직은 아니다’라는 이 말은 20세기에 하나님의 나라가 성취되는 과정을 설명하는 용어로 사용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이 땅에 이루어졌지만, 완성은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가운데에 있느니라’라고 한 것은 이미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새 하늘과 새 땅이 이루어지는 그 순간에야 완성이 되는 것입니다. 이미 이루어진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되는 그때까지의 전 기간 동안 우리는 마치 과도기와 같은 기간을 지내게 되는데,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가 바로 그와 같은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임하여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명령을 마음에 새기고 그 법을 따라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되 완성은 구주께서 재림하시는 때에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도 그와 같은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는 아직 구원이 남아 있습니다. 이유는 무엇이냐 하면 우리의 구원이 이미 영혼 차원에서 이루어졌으나 육체의 차원에서 구원이 아직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구원도 Already - Not yet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우리의 구원이 지금 함께 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미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그 이루어진 곳은 우리의 영혼입니다. 그리고 영혼의 구원이 이루어졌으니 육체의 구원도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을 영혼 구원이라고 이야기 한 것입니다.


영적인 눈으로 보라

둘째로 영혼 구원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주된 목적 가운데 하나는 사람을 볼 때 영적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볼 때, 혹은 이 세상의 삶을 볼 때 순전히 육체로 보게 되면 우리는 그 영혼의 구원을 위하여 기도하거나 소망하거나 하는 것들이 굉장히 미약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설교 중에 영양실조에 걸린 아프리카의 한 아기의 사진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고 말씀을 드린 적이 있는데 그것은 설명이 필요 없습니다. 그냥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이니까, 한눈에 보고 마음속에 안타까움, 불쌍히 여기는 마음 같은 것들이 그냥 바로 마음에 부딪힌 것입니다. 그런데 한 천만 원짜리 옷을 입고 다니는 아이들이 있다면, 그런 아이들을 보면서 눈물 흘리는 사람이 있을까요? 그것은 직관적이지가 않습니다. 한눈에 봐도 그 아이들은 불쌍히 여기는 아이들이 아니라, 부러워해야 하는 아이들입니다. 사람을 볼 때 어떤 눈으로 보느냐 하는 이것이 거기에 그대로 드러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인간을 볼 때 인간의 무엇을 보아야 할까요? 영혼을 보아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시각입니다. 인간의 시각은 겉으로 드러난 것만 봅니다. 우리는 못사는 사람은 불쌍하게 봅니다. 그러나 잘사는 사람을 보고 불쌍하게 여기는 사람이 얼마나 있습니까? 그러나 영적으로 눈이 열리게 되면 아무리 잘사는 사람을 보아도 그 사람의 영혼을 보며 그의 영원한 운명을 보게 되기 때문에 때로는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구원을 받은 사람으로서 영적인 눈이 열려 있는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적인 눈이 감겨진 사람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여러분의 영안이 열리셨습니까? 여러분은 이 세상을 볼 때 영적인 눈으로 보십니까? 여러분은 이 세상 사람들을 볼 때 영적인 눈으로 보고 계십니까? 영적인 눈이 열리지 않으면 땅의 일밖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영혼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면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영적인 눈이 열리지 않으면

영적인 눈이 열리지 않으면 자신의 영혼과 자신의 영적인 세계도 알지 못합니다. 영적인 운명에 대하여 전혀 알지 못합니다. 영적으로 보지 못하면 순전히 육적으로 밖에 판단할 수 없습니다. 인간은, 아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분명히 영적인 세계가 있고 영적인 원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 영적인 원리를 다스려 나아가시고 이 세계를 완성해 나아가시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왜 제가 우리 시대가 교회가 가지고 있는 이 사명을 망각하게 하고자 하는, 마치 이것을 덮어 가리우고자 하는 사탄의 시도가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고 말씀을 드렸느냐 하면 우리에게서 이 영적인 시각을 빼앗아 가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서 영적인 시각이 점점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세상의 상황이 교회의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하는 마취제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최근 많은 분들에게서 그들의 그 많은 열정과 그 많은 안타까운 심정을 교회를 위해서, 앞으로 10년 후, 20년 후 우리의 자녀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일에 힘을 쓴다면 …  여러분 저는 마음속에 그러한 질투심이 일어났습니다. 왜 지금 교회는 이런 상황이고, 우리의 자녀들이, 우리의 다음 세대가 이렇게 되고 있는데, 왜 이것을 위하여 애통하지 않는가 하는 것이죠. 마취제를 맞아서 그렇습니다. 영안이 열리지 않으면 물질 문명이 극도로 발달해 가고 있는 이 세상을 볼 때 이 세상이 마치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것처럼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어떤 개인이 성공하고 경제적으로 부흥하게 되면 그 사람을 불쌍하게 여기기보다는 부러워하는 마음들이 아주 강하게 마음속에 자리 잡습니다. 영안이 열리지 않으면 순전히 이 세상의 것들을 가지고 생각하고 부러워하고 그것을 추구하고 하는 것입니다. 육적인 눈으로 세상을 보면 인간의 성취가 대단하게 보이지 않겠습니까? 20세기에 들어와서 인간들이 그런 마음을 가졌었습니다. 인류 문화는 계속해서 발달할 것이고, 인류의 과학 기술은 계속해서 발전할 것이고, 인류의 도덕적인 삶은 발전할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말씀하셨던 하나님의 나라는 저절로 올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회주의자도 공산주의자도 다 유토피아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인류는 인류의 능력에 대해 큰 자신감을 가졌습니다. 그랬는데 1914년에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고, 30년 후에는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습니다. 이 두 번의 세계 대전을 통해 인간들은 완전히 절망하게 되었습니다. 자기들은 인류 역사 속에서 가장 뛰어난, 가장 발달한 문명을 가진 존재라고 생각했는데, 그 뛰어난 존재들이 인류 역사 속에서 가장 참혹한 전쟁을 한 당사자들이 된 것입니다. 그들은 절망을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인간은 멸망하는 존재다. 인간에게는 소망이 없다. 그것이 2차 세계대전 이후에 유럽의 사상계를 지배했습니다.


추락하는 비행기 안에 있는 사람이 부자라고 한들

예전에 “레 망다랭”이라는 소설을 읽었는데, 그 소설은 실존주의 철학을 반영하고 있는 소설이었습니다. 그 소설 속에서 주인공이 “인류는 추락하는 비행기에 타고 있는 승객들과 같다”고 이야기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주인공은 비행기가 추락하고 있는데 승객들은 아무런 대책이 없이 그냥 추락하고 있다는 사실만 인식하고 있을 뿐이라고 독백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현대 20세기 지성인들의 현실 인식입니다. 추락하고 있는 비행기 안에서 다른 구원의 수단이 없이 단지 추락을 인식하고 있는 상태, 얼마나 잔인합니까? 추락하고 있는 비행기 안에서 살아 있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요? 온갖 종류의 몸부림과 발버둥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추락하고 있는 비행기에 타고 있다는 것을 아는 것도 대단하겠지요.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추락하고 있다는 것도 알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추락하고 있는 것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분명히 압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추락하는 비행기에 타고 있는 그들에게 구원의 길이 있다는 것을 가르치고 그들을 추락하는 비행기에서 구원해 내야 되지 않겠습니까?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이것을 사명으로 주셨습니다. 로마서 6장 23절을 보면 “죄의 삯은 사망이요,” 로마서 3장 23절을 보면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히브리서 9장 27절을 보면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라고 말씀합니다. 죽음과 심판은 지금 추락하는 비행기의 상태입니다. 죽음과 심판의 입장에서 보면 추락하는 비행기 안에서 어떤 사람이 명품 옷을 입었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으며, 명품 핸드백을 들고 있다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추락하는 비행기 안에서 어떤 사람의 계좌에 엄청난 돈이 있다고 한들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추락하는 비행기, 즉 죽음과 심판은 이 땅의 모든 영화를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영안이 열리지 않으면 하나님의 심판을 인식할 수 없다

영안이 열리지 않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음밖에는 인식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죽음 이후에도 현재의 부를, 혹은 현재의 영화를 그대로 누리기를 원하는 소망들이 무덤에 그대로 투영되었습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기 힘든 사람들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지만, 권력자들은 사후에도 그 권력과 영화를 누리려고 무덤에 그것을 그대로 투영했던 것입니다. 이집트 피라미드는 왕의 무덤입니다. 도굴 하지 못하도록 돌을 쌓아서 만들었는데 그래도 기가 막히게 도굴꾼들이 도굴을 했습니다. 전에 제가 영국 대영 박물관에 가서 이집트 관을 갔는데 거기에서 난생 처음 미라를 봤는데 충격적이었습니다. 고급 천으로 둘둘 말려 있었는데 이것이 삭아서 떨어지고 그 사이로 바짝 마른 명태 같은 사람의 피부가 드러나 있었는데, 사람 눈높이에 맞춰 전시를 해놓았습니다. 무섭다고 도망갈 수도 없고 그래도 일부러 좀 들여다보았습니다. 그들은 왜 미라를 만들었을까요? 영생하려고. 그러나 그 미라 가운데 영생을 누린 미라는 단 하나도 없습니다. 그 미라 가운데 다시 살아난 미라도 하나도 없습니다. 여러분, 죽음은 눈에 보입니다. 그러나 심판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영적인 눈이 열려야 합니다. 그래야 비로소 죽음과 함께 있는 심판을 인식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볼 때 우리는 기본적으로 죽음과 심판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영적인 시각이고, 또는 하나님께서 보시는 시각입니다. 우리에게 이 시각이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눈에 이 땅의 불쌍하고 절망적인 상황이 보이십니까? 하나님의 구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이 세상 사람들의 영적인 현실을 보고 계십니까?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사랑하시고 사랑하는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셔서 구원하실 대상으로 보셨던, 이 세상의 절망적인 상황을 지금 보고 계십니까? 영적인 눈이 사라지면  성도의 삶도 무너지고, 영적인 눈이 사라지면 교회가 능력을 상실하게 됩니다. 영적인 눈이 우리에게 다시 뜨이기를 소망합니다. 우리의 눈이 밝아지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영혼의 상태, 우리 자녀들의 영적인 상황, 이 땅의 영적인 모습들을 분별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심정을 가지고 이 땅을 위해서, 영혼들을 위해서 기도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애쓰게 될 것입니다. 눈물을 흘리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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