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서 영혼 구원의 역사가 그친다면(4)_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 받기를 원하신다 (딤전 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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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5-03-07본문
우리에게서 영혼 구원의 역사가 그친다면(4)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 받기를 원하신다 (딤전 2:1-8)
기도에 대한 교훈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 말씀은 디모데 목사에게 사도 바울이 보낸 목회 서신 가운데 첫 번째 교훈에 해당되는 부분입니다. 사도 바울이 첫 번째로 권면한 것은 기도였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가나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구와 감사를 하라.” 그런데 2절 말씀을 보면 특별히 언급하고 있는 대상들이 있는데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을 위해 특별히 기도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이유는 2절에 하반절에 나타나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함으로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라.” 즉 우리의 신앙생활의 평안을 위하여 임금들과 높은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임금들과 높은 사람들이 변덕이 죽 끓듯 하고 무지막지하게 행동하는 사람이라면 신앙생활하는데 고통을 많이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기독교의 역사가 이것을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로마 시대 초창기 초대 교회에서 이 황제들의 변덕이 얼마나 많은 아픔과 고통을 만들어냈는지 모릅니다. 그중에서도 유명한 인물은 바로 이 네로 황제입니다. 그 변덕스러운 황제가 감동적인 시를 짓기 위해 로마 시의 빈민가에 불을 질렀다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리고 기독교인들이 불을 질렀다고 누명을 씌워 박해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일들이 로마의 역사 속에 자주 등장합니다.
임금들도 영적인 눈으로 보면 불쌍한 존재이다
그러면 ‘평안한 삶’은 무엇을 위한 것이었을까요? 단지 이 세상에서 걱정 없이 살기 위한 것이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다음 3절을 보면, “이것이 우리 구주 하나님 앞에 선하고 받으실 만한 것이니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즉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성경을 잘못 읽으면 안 됩니다.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라는 것은 그들 때문에 모든 사람이 구원을 얻을 것이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해야 할 필요는 먼저 이 사람들도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가 필요한, 즉 영적으로는 구원이 필요한, 멸망에 처한 불쌍한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임금이라고 하면 우리가 그들을 위해서 기도할 필요가 있을까요? 그들은 우리보다 잘 사는 사람이 아닙니까? 임금이 나를 불쌍히 여기면 불쌍히 여겼지 내가 임금을 불쌍히 여길 수 있을까요? 인간적으로 보면, 혹은 육적으로 보면 그것은 어림도 없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도 사도는 왜 그들을 위해 기도하라고 했을까요? 사도는 그들을 영적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임금이라도 예수 그리스도가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라도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지 않으면 그의 영원한 운명은 비참할 수밖에 없습니다. 비록 그와 비교할 때 우리는 인간적으로, 혹은 육적으로는 비교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는 우리보다 대단한 사람 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다면 그는 우리와 비교할 수 없는 비참한 운명의 사람 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은 우리가 그들보다 더 탁월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겁니다.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나보다 뒤에 있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영적인 눈이 열려야만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임금과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도 영적으로 보면 불쌍하기 짝이 없는 존재입니다. 그들은 구원을 위하여 우리가 기도해야 할 불쌍한 존재들인 것입니다.
임금이나 높은 사람들 때문에 복음화가 되는 것은 아니다
역사를 살펴보면 임금들과 높은 사람들 때문에 복음이 전파되었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과거 가부장적, 혹은 전제군주제의 시대에는 그런 일들이 가능했습니다. 지금 시대는 대통령이 예수 믿는다고 해서 기독교 국가가 되는 시대가 아닙니다. 대통령이 예수 믿는 것은 단순히 개인의 문제입니다. 대통령이 예수를 믿는다고 해서 한 국가가 기독교 국가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옛날에는 그런 적이 있었습니다. 로마 황제들이 기독교를 박해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4세기 초에 콘스탄틴이라고 하는 황제가 기독교로 개종을 했습니다. 그리고 교회에 대한 박해가 그치고 기독교는 국가의 공인 종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기독교는 상당한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전까지는 교회에 안정적인 예배 처소가 없었습니다. 드러나게 예배 처소를 만들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황제가 기독교로 개종한 이후에는 예배 처소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큰 예배당을 건축하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이교도 사원을 헐어 그 돌들을 가져다가 교회당을 짓는 일도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게르만 민족의 대이동이 일어나고 로마가 망하게 되었는데 그들이 기독교로 개종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개종은 정치적 개종이었습니다. 부족장이나 대추장이 기독교로 개종을 하면 로마 교황은 그들에게 정치적인 명분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서로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관계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게르만 부족이 기독교 부족이 되었습니다. 결국 로마의 영내로 들어온 게르만 족들이 모두 기독교화 되었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흐르고 게르만족은 몇 개의 큰 나라를 이루게 되었고 그들은 기독교 국가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기독교인입니다. 그들은 법적으로 모두 기독교인입니다. 그 시대의 교회는 그렇게 하여 지상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진 줄로 믿었습니다. 그러나 내부적으로 보면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명분은 기독교인인데 개인적으로는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회심 체험을 하고 그리스도와 친밀한 교제 속에서 그 은혜를 누리며 사는 사람은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것이 기독교 국가의 모습이었습니다. 겉으로는 모두 기독교인입니다. 그러나 한 사람 한 사람을 살펴보면 예수님을 진정으로 만난 적은 없습니다. 그들은 진정으로 복음을 받아들인 적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법에 따라 일요일에 교회를 가고, 이런저런 규정에 따라 사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런데 고위 성직자들은 그것을 성과로 생각하고 게르만 민족이 모두 기독교인이 되었고 그리하여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졌다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지상에 이루어진 이 하나님 나라의 왕은 그리스도께 위임받은 통치자인 교황이 왕과 같은 존재가 되었다고 믿었던 겁니다. 그러나 실상을 살펴보면 영적 구원이 제대로 일어나고 있지 않았습니다.
훈련된 기독교인으로서 영향력을 발휘한다면
한 국가가 기독교 국가만 되면 국민 모두에게 구원이 이루어질까요? 장로님이 대통령이 되면 국가가 변할까요? 우리나라는 다종교적인 세속 국가입니다. 그리고 국가의 종교는 대통령 한 사람이 어떻게 한다고 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즉 대통령이 기독교인이냐 아니냐가 그렇게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복음화를 위하여 기독교인이 어떤 자리에 앉아 있다는 것은 거의 영향력이 없습니다. 최근에도 대통령이 국가 조찬 기도회에 참석했다더라 하는 소식이 있습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별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최근에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국가기도회에 참석해서 신앙 고백을 했다더라, 트럼프의 기도 등등, 이런 소식들이 있습니다. 물론 그의 영혼이 진정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의 사상 체계가 변화되고, 그 변화된 사상 체계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신실함으로 국정의 리더십을 발휘하면 좋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단지 어떤 행사 자리에 참석했었다는 것만으로는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말씀이 그 사람의 사상을 만들고 그의 삶을 만듭니다. 즉 그의 가치관과 인생관이, 모든 부분이 말씀의 원리에 따라 형성되어서 그가 보는 그 시각과 관점 같은 것들이 성경적으로 정립이 되고 우리 나라와 같은 다종교 사회에서 어떻게 이것을 지혜롭게 잘 구현해 낼 것이냐? 신앙인으로서의 영향력을 바르게 끼칠 수 있느냐 하는 것들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 일들은 상당히 훈련된 기독교인이어야만 가능합니다. 그냥 표를 얻기 위해 교회 몇 번 나온 사람은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우리가 이 사회를, 그리고 교회를 위한다면 행사에 참석하는 사람이 아니라 제대로 된 기독교인들을 양육하고, 이러한 사상을 가진 사람들을 양육해 내야 하는 것입니다. 임금이나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로 인해 모든 사람의 구원을 얻게 되는가? NO, 그렇지 않습니다. 임금들과 높은 사람이 개종하여 기독교 국가가 되면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는가? NO, 그렇지 않습니다.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 복음 전파에 도움이 되는가? 일정 부분 도움이 됩니다. 가부장적 전통이 강하던 시대에는 집안의 어른이 예수를 믿으면 모두 따라서 교회를 나갔습니다. 그리고 개 중에는 은혜도 받고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일도 일어났습니다. 그렇습니다. 가부장적 시대에는 온 집안이 집안의 어른을 따라 온 집안이 대대로 예수 믿는 집안이 되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일이 사라져 가는 시대입니다. 대를 이어 예수 믿는다는 이런 일들은 이제 희귀하게 되는 시대가 곧 찾아오게 될 겁니다.
정치적 개종보다 훈련과 교육이 필요하다
복음을 전하는 데 있어 정치적 개종은 일단 기득권을 얻는 면에서는 일단 유리한 점은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복음을 제대로 가르치고 이 사람들이 변화되어 온전한 마음을 가진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살게 하는 일은 또 별개의 문제입니다. 그 일은 역사 속에서 제대로 이루어진 적이 없습니다. 이 일은 이스라엘 민족에게도 일어났던 일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출애굽을 경험했고 요단강을 건넜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신명기서 6장 4절 이하에서 이 나라를, 이 민족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제대로 유지하기 위하여 꼭 필요한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가 힘써 강조했던 것은 말씀을 가르치는 것이었습니다. 모세는 가장에게 너희 자녀들을 말씀으로 가르치라고 명령했습니다. 그가 이 일을 얼마나 철저하게 강조하는지, 집에서도, 집 밖에서도, 앉아 있을 때에든지 서 있을 때에서든지 언제든지 말씀을 가르치라고 했습니다. 말씀을 가르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참된 신앙은 성령의 역사이며 성령께서 말씀을 우리에게 적용하실 때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구원은 피켓으로 일어나는 것도 아니고, 몇 번 손 들고 기도하는 것으로 일어나는 것도 아닙니다. 성령이 그 속에 참되게 역사해야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해서 한 사람 한 사람, 한 영혼 한 영혼 붙들고 씨름하는 엄청난 노력들이 필요한 것입니다. 엄청난 부흥의 불길이 지나간 자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저는 수십 년 동안 부흥을 붙들고 연구하고 기도하고 선포했습니다. 그러나 늘 마음속에 아쉬웠던 것은 ‘왜 과거에 일어났던 부흥들은 오래 가지 못했는가? 왜 부흥이 끝난 이후는 오히려 더 피폐하게 되었는가?’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런 문제들로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부흥의 시기에 그 뜨거웠던 사람들, 그 열정적인 사람들이 부흥의 시대가 끝나고 난 다음에는 썰물처럼 다 빠져나가고, 이전보다 더 완악한 사람들이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은혜를 받은 적이 있다면 더 겸손하고 더 온유해져야 되지 않는가? 그런데 왜 은혜의 강물이 흘러갔는데 더 완악한 존재가 되었는가? 그렇다면 지금 이 시대에 우리가 부흥을 소망해야 할 필요가 있는가? 결국 깨달은 것은 부흥이 오는 것도 중요하지만 부흥이 오기 전의 준비가 정말 중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부흥을 위한 준비는 기도와 교육입니다. 기도와 교육입니다. 이 위에 하나님의 은혜가 강물처럼, 폭포수처럼 쏟아지면 그 은혜를 감당할 수 있지만, 기도와 교육이 없으면 감당하지 못하고 부흥의 물길이 지나가고 나면 그렇게 뜨거웠던 사람들이 완악하고 폐역한 사람으로 변질되는 것입니다. 기도와 말씀 교육은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가 임할 때 진정으로 교회를 살리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 물길이 지나가고 난 이후에도 교회를 은혜롭고 능력 있는 교회로 세우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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