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요약

모든 일에 기도하라(1)_ 기도없는 삶에 익숙해진 그리스도인(요 15:5-7)

페이지 정보

작성일2024-12-12

본문

모든 일에 기도하라(1)

기도없는 삶에 익숙해진 그리스도인(15:5-7)

 

회자가 그리는 성도의 모습

제가 목회하면서 우리 성도들이 어떤 성도들이 되었으면, 또 우리 교회는 어떤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다하는 모습이 있었는데 그중의 하나는 진리의 영광을 사모하는 성도입니다. 진리의 영광을 사모하고,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해 당신의 영광을 나타내어, 우리들이 그 영광을 체험하고, 그 은혜와 능력 안에 살아가는 것, 이것이 제가 원했던 성도의 모습 중에 첫 번째 모습입니다. 두 번째는 이렇게 진리의 영광을 목도한 성도들이 진리의 나눔, 즉 성도의 교제를 아름답게 나누는 것입니다. 즉 진리의 영광을 서로 나눔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기쁨과 은혜가 충만한 성도, 이것이 제가 두 번째로 그렸던 성도의 모습입니다. 세 번째로 그렸던 성도의 모습은 기도하는 성도였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주님 앞에 나아가기를 기뻐하고 주님과 나누는 사랑의 교제를 늘 즐거워하는 성도, 그리하여 하나님 앞에 모든 것을 내어놓고 하나님께 모든 힘과 능력과 도움을 받는 성도 이것이 제가 그렸던 세 번째 성도의 모습입니다. 이 외에도 우리가 여러 가지 모습을 생각할 수 있겠죠. 말씀을 잘 가르치고 헌신하는 성도, 서로 사랑으로 교제하는 성도, 등 여러 모습이 있겠습니다. 이 모습들을 이루기 위해서 말씀을 가르치고 여러 가지로 권면하곤 하지만, 그러나 세월이 흐를수록 참 쉽지 않다는 것을 절감합니다. 이번 기회에 여러 가지로 우리 교회 성도들의 영적 상황을 보면서 현재 우리 성도들에게 시급하고 꼭 필요하고, 반드시 이루어야 하는 부분이 무엇일까?’ 생각하면서 마음속에 점점, 점점 크게 다가오는 것은 기도였습니다. 기도 없는 삶에 너무나 익숙해진 우리 성도들의 모습이 마음속에 계속 부딪혀 왔던 것입니다. 제가 보지 않는 곳에서 기도를 열심히 하는 분이 없는 것은 아니겠죠. 그러나 제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얼마나 더 많이 기도하실까? 그냥 노파심이라면 노파심입니다마는 성도들의 삶을 보면서 성도들의 삶 속에 명백하게 기도가 부족하거나 기도가 없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기도를 우리에게 영광스러운 축복으로 허락해 주셨는데 이것을 누린다면 우리의 삶이 얼마나 달라지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이 영광스러운 기도에 축복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있지 않느냐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 응답의 약속을 담은 말씀들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기도에 얼마나 많은 것들을 약속하셨는지, 기도 응답의 약속으로 성경이 얼마나 많이 채워져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영국의 Christian Today지는 기도 응답의 확신을 주는 9가지 성경 구절을 실었습니다. 어디 9개뿐이겠습니까? 그러나 이것만이라도 한번 기억을 해보십시오. 그러면 우리들이 기도를 너무나 소홀히 여기고 있다 하는 사실을 절감하실 것입니다.

1. 마가복음 124절 말씀,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기도에는 약속이 있습니다. 이 기도의 약속이 하나님의 말씀이며 하나님은 인간이 아니시므로 식언치 아니하시고 그 말씀하신 것을 반드시 이루신다는 것을 생각해 볼 때 우리가 기도한다면 이 말씀대로 되지 않겠습니까?

 

2. 요한일서 514절로 15절 말씀, “그를 향하여 우리가 가진 바 담대함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 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얻을 줄이 아닙니다. 우리는 얻을 줄을 아느니라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언어 습관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얻은 줄을 아느니라라고 이렇게 이미 끝난 동작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3. 우리가 오늘 읽은 요한복음 157절 말씀,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지금까지 3개의 말씀은 기도를 하면 무엇이든지, 또는 그대로 되리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너무나 놀라운 것 아닙니까? 말을 했는데 그대로, 하나님 앞에 간구했는데 그대로, 하나님 앞에 부르짖었는데 그대로, 이것이 성경 말씀인 것입니다. 이것이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4. 마태복음 77, 8절 말씀,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말씀이지요. ‘구하고, 찾고, 두드리고는 점진적인 과정입니다. 구하고, 그다음은 찾아보고, 마침내 찾아낸 곳이 하나님의 보좌 앞입니다. 그래서 그 집 문 앞에 가서 문을 두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부르는 것입니다. 정말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찾아 헤매다가 마침내 하나님의 보좌 앞에 도달한 사람이 얻게 되는 축복이 바로 기도 응답인 것입니다.

 

5. 히브리서 116절 말씀,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고대 성도의 삶과 생활 모습들은 우리가 자세히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동행하였던 사람, 하나님께서 죽음을 보지 않고 불러 가셨던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의 삶의 비밀은 무엇이었느냐 하면 믿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믿음은 하나님이 반드시 계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철학적으로 하나님이 계신다. 그 존재를 믿었다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의 삶 속에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믿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기와 동행하셨다는 것을 믿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동행하시는 그 하나님께 구하고 찾는 삶을 살았고, 하나님께서 그에게 응답해 주시는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이것이 죽음을 보지 않고 하나님께서 데려가신 한 성도의 삶의 비밀이었습니다. 하나님과 동행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자기의 삶 속에 함께 하시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의 삶 속에 함께 하시는 그분에게 말씀드리고 그분에게 응답을 받으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사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부모와 자녀가 떨어져 사는 것은 얼마나 마음 아픈 일입니까? 언제나 부모들의 마음속에는 자녀들과 함께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아픔이 있습니다. 물론 자녀들은 부모만큼 절실한 마음을 갖고 있지 못하겠죠? 그런데 하나님의 사람 에녹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함께 있고 싶어 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교제하기를 원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 자신의 모든 삶을 말씀드리기를 원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히브리서 11장에서는 그 의 삶을 이렇게 해석을 해 놓았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그가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6. 시편 374절 말씀,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내 마음의 소원을 내게 이루어 주시리로다.” 하나님을 기뻐하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라. 이것이 우리의 기도의 기본입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7.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어떤 마음을 가지고 계신 지 알아야 합니다. 예레미야서 2911절 말씀,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하나님의 본심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주께서 공급하시는 것들로 풍성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8. 요한복음 1623, 24절 말씀, “그날에는 너희가 아무것도 내게 묻지 아니하리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의 기쁨이 충만하리라.”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떠나시면서 제자들에게 주신 놀라운 축복은 기도 응답의 약속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잠시 후에 십자가를 감당하시고 무덤에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부활하시고 승천하시면 더 이상 육체로는 그들과 함께하지 않습니다. 그 때를 위하여 주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놀라운 축복이 기도 응답의 약속이었습니다.

 

9. 주님께서는 교회의 기도에도 놀라운 축복을 약속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819절 말씀을 보면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현대인들은 엄청나게 많은 숫자의 사람을 모아놓고 기도해야 될 줄로 생각하고 대규모로 사람을 모아 기도한다고 하는 행사들을 많이 계획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중에 두 사람이,” 2만 명이, 20만 명이, 200만 명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두 사람이 기도해도 응답하십니다. 2만 명이 모여서 기도하나, 20만 명이 모여 기도하나, 200만 명이 모여 기도하나 두 사람의 기도와 다르지 않습니다. 가장 작은 교회는 2명으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은 가장 작은 교회의 기도라도 가장 크게 응답해 주십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구한다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구한다면, 하나님께서 이 시대를 위해 이루기를 원하시는 그 거룩한 일들을 마음에 품고 기도한다면, 두 사람의 기도도 하나님께서 들어 응답하시는 줄 믿습니다.

 

나는 모든 일에 기도하지 않았다

본래는 제가 설교의 제목을 기도 없는 삶에 익숙해진 그리스도인이라고 정하고 싶었습니다. 이것이 첫 번째 제목이었습니다. 그러나 너무 부정적인 제목으로 몇 주간을 계속해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 아무래도 아닌 것 같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다음에 제가 생각했던 제목은 기도를 시험하여 보라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도에 응답하시는지 응답하시지 않는지 기도에 대해서, 기도의 약속들에 대해서 한번 시험해 봐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정한 제목은 모든 일에 기도하라였습니다. 이 제목은 평범한 모습을 가지고 있지만 사실은 기도에 대한 우리들의 어떤 모습들을 담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든 일에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나는 모든 일에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바로 이런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즉 제목은 모든 일에 기도하라지만 모든 일에 기도하지 않았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의 삶을 새롭게 해보자 하는 것이 이번 메시지의 의도인 것입니다.

 

여러분, 기도하지 않고도 편안하게 사시는 삶에 익숙해지셨습니까? 그러면서 왜 나는 하는 일마다 안 될까? 왜 나는 왜 이럴까?’ 이렇게 원망하거나 한탄하지 않으셨습니까? 기도 없는 삶에 너무나 익숙해져서 기도해야 될 때를 분별하지 못하고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기도 속에 하나님과 만나며 동행하였던 에녹과 같은 삶을 알지 못한 채 그냥 부모와 떨어져 사는 삶이 즐거운 철없는 자녀들처럼 살아가는 모습은 아닙니까? 기도 없는 삶에 익숙해져서 어느덧 그것이 우리의 삶의 표준인 것처럼 생각하신다면 이번 기회에 이 모든 편견이 깨어지기를 바랍니다. 기도 없이도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 모든 편견이 깨지기를 바랍니다. 기도 없이도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 모든 편견이 깨지기를 바랍니다. 기도 없이도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갈 수 있다면,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 모든 생각이 철저하게 깨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 앞에 굴복하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새로운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