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한 호소(2)_주일성수의 중요성 (행 2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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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5-01-24본문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한 호소(2)
주일성수의 중요성 (행 20:7-12)
주일성수를 가로막는 도전들
제가 군대 갔을 때의 일입니다. 대기병으로 있던 첫 주일에 교회를 갔습니다. 그런데 부대가 새로운 막사로 이동을 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교회도 아직 안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주일날 기독교는 교회가 아직 안 왔기 때문에 안 된다고 하면서 돌려보냈습니다. 저는 다음 날부터 아침 식사 시간에 내무반에 남아서 금식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마침 내무반을 둘러보던 조교가 저를 보고 불렀습니다. “왜 식사하러 가지 않고 여기 있느냐?” 그래서 “제가 주일날 예배를 드리러 가야 하는데 교회 예배를 드리러 가지 못해서 금식하며 기도하는 중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일이 중대장에게까지 보고가 들어갔습니다. 저는 한 주간 금식 기도를 하고 토요일 오전에 중대 행정실에 가서 선임 하사한테 물었습니다. “내일 종교행사가 있습니까?” 그랬더니 “모르겠다”고 대답을 했습니다. 조금 있다 다시 가서 “내일 종교행사가 있습니까?”하고 물었습니다. 오후에 다시 가서 또 물었습니다. 중대 인사계님이 일직사관을 맡았는데 이분이 “내일 가봐야 알겠다”고 하는 겁니다. 다음 날 주일이 되어 종교행사 참가자들이 모두 모였습니다. 불교도 인솔해 가고, 천주교도 인솔해 갔습니다. 잠시 있더니 기독교는 교회가 아직도 안 왔기 때문에 교회를 못 간다고 했습니다. 얼마나 실망이 되는지. 그런데 우리 중대 일직사관을 하던 분이 기독교를 다 식당으로 집합시켰습니다. 여러 중대 기독교 병사들이 다 식당에 들어와 식당이 가득 찼습니다. 그때 인사계님이 저보고 예배를 인도하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식당을 가득 채운 병사들 앞에서 예배를 인도하고 설교를 했습니다. 병사들뿐만 아니라 교회도 안 다니는 인사계도 조교들도 와서 앉아 있었습니다.
도전에 도전하다
그리고 저는 다음 주 토요일에도 중대행정실에 가서 “내일 교회 갈 수 있습니까?”하고 물었습니다. “내일은 작업이 있기 때문에 종교 행사는 없다” 했습니다. 다음 날 병사들은 아침에 작업하러 동원되었습니다. 주일날인데 모두 일하러 나갔습니다. 그런데 인사계님이 저를 부르더니 “너는 예배 시간에 맞춰 내려와서 내무반에서 예배를 드려라” 그랬습니다. 그래서 저는 작업을 하다가 시간이 되어 내무반으로 내려왔습니다. 그런데 눈치 빠른 한 사람이 저를 따라와서 같이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다음 주에는 교회 이전이 끝나서 교회를 갔고 성탄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훈련을 마치고 퇴소식까지 마쳤는데 자기 부대로 가기 전에 주일을 맞이 하게 되었습니다. 이번에는 “훈련을 마쳤고 부대가 결정되었기 때문에 지금 너희는 우리 소속이 아니다” 하면서 교회를 못 간다고 했습니다. 제가 사정을 하니까 이번에도 그 인사계님이 “그러면 네가 기독교인들을 모아서 예배 인도를 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행정실 방송시스템 마이크를 켜고 예배 모임 광고를 했습니다. 모두 예배 장소로 허락받은 옥상으로 올라와 폐품으로 쌓아놓은 의자를 갖다 놓고 둘러앉아 찬송을 부르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사방은 눈으로 하얗게 덮였는데 햇빛은 참 밝고 깨끗했습니다. 그날 밤 저녁을 먹고 이동을 해서 기차를 타고 각자 자기 부대로 갔습니다. 그냥 ‘군대에 갔으니까 하면서 군대에서 하라는 대로 했더라면 저는 아마 주일성수를 못했을 것입니다. 제가 도전하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상황이 그러니까 하면서 포기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저는 금식하며 기도하고 계속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꼭 교회에 가야 합니다, 꼭 예배드려야 됩니다. 계속해서 강조했습니다. 그랬더니 교회는 아직 이전해 오지 않았지만 담당자가 자기가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기회를 주었습니다. 여러분, 포기하지 마세요. 포기하지 마십시오. 힘들다고 포기하지 마시고, 어렵다고 포기하지 마시고, 뜻을 정하고 한번 하나님 앞에 매달려 보십시오. 신앙생활에서 가장 기본적인 것이 주일성수입니다. 주일성수가 무너지면 다 무너지는 것입니다. 하나님 께 기도하세요. 그리고 서원하십시오. 그러면 주님께서 여러분의 기도를 들으시고 여러분의 삶에 역사하실 것입니다. 주일을 성수할 수 있도록 여러분의 삶에 하나님께서 이적으로 역사하실 것입니다. 이 사실은 많은 분들이 증언하고 있습니다. 믿지 못할 때는 실행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실행해 본 분들은 압니다.
주일성수의 간증을 듣다
오래 전 제가 전도사 시절에 저희 교회 장로님 이야기입니다. 당시는 집사님으로서 안경점을 경영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저에게 이런 간증을 했습니다. 그동안 주일날 안경점 문을 열고 부인 집사님하고 1부 2부 예배를 교대로 참석했다는 것입니다. 외양으로 볼 때는 주일성수를 하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러나 내용으로는 안경점을 문을 열고 영업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집사님이 한 번 결심을 했답니다. ’주일날 문을 닫자. 그리고 주일을 온전히 섬겨보자.‘ 그런데 신기하게도 토요일과 월요일에 손님들이 더 많이 와서 한 달 동안 매출에 변화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채워주시더라‘ 하는 간증이었습니다 여러분도 한 번 시험 해 보시기 바랍니다. 정말 기를 쓰고 주일 성수하기로 작정을 해보세요. 학생들이라면 ’학원 가기 위해서, 시험 준비하기 위해서‘ 교회도 나오지 않고, 이 모든 것은 다 자기 생각입니다. 주일 예배를 빠지면 공부시간이 많이 확보될 것 같습니다. 그러나 기도하고 한 번 해보세요. 그러면 주님께서 역사하시고 특별한 지혜를 주셔서 주일성수 하느라 손해 봤다고 생각하는 시간의 몇 배의 효과를 주실 것입니다. 이 일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많은 신앙의 선배들이 경험했던 일이고 저도 경험했던 일입니다. 여러분, 주일 성수에 대한 도전이 우리 주변에 개인적으로든, 사회 구조적으로든 계속해서 밀려오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에 주일 성수에 대해 우리가 결심을 하고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지 아니하면 교회가 무너지고 우리의 신앙도 무너질 것입니다.
주일성수가 무너지면 신앙이 무너진다성도들의 신앙이 변하면 그 표가 주일 성수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주일성수가 무너지면 교회도 능력을 상실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교회는 그 시대와 그 사회를 이끌어갈 수 없게 됩니다. 여러분이 주일성수를 각오하고 주일 성수에 여러분의 모든 것을 다 걸고 희생을 아끼지 아니한다면 여러분의 삶에 새 힘이 나타날 것이며 또 교회가 능력을 회복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사회를 향해서, 우리 시대를 향해서 교회가 전하는 메시지에 힘과 능력이 있게 될 것입니다. 주일 성수가 무너지면 다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투쟁해 보셨습니까? 도전해 보셨습니까? 여러분을 가로막는 것들을 넘어서려고 여러분이 가진 모든 힘을 다 투입해 보셨습니까? 우리는 너무 쉽게, 너무 쉽게 피치 못할 사정을 말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한번 자신의 삶을 돌아보십시오. 그리고 2025년 한 해 새롭게 결심하고 주일 성수를 세워 나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복을 주실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그 날을 복되고 거룩하게 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복되고 거룩하게,‘ 이것을 주일날 주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일을 지키지 아니하면 이 ’복되고 거룩하게‘라고 하는 하나님의 축복이 우리와 상관없는 것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주일 성수는 우리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기준과 같은 것입니다. 이것이 흔들리면 콤파스의 바늘이 흔들리는 것과 같습니다. 콤파스의 한쪽은 바늘로 되어 있고 한쪽은 연필이나 볼펜을 끼울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원을 그리는데 바늘을 종이에 찔러 단단하게 고정시키고 콤파스를 돌려야 합니다. 그런데 바늘을 느슨하게 고정시키면 어떻게 될까요? 바늘이 종이에서 빠집니다. 그러면 콤파스가 움직이고 원이 이상하게 그려집니다. 콤파스는 중심을 단단하고 분명하게 고정해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주일은 바로 콤파스의 바늘과 같은 것입니다. 바늘이 단단하게 고정되어야 원이 아름답게 그려집니다. 신앙생활에서 이 부분이 정말 중요합니다. 여러분, 피치 못한 사정이 있겠지요. 그러나 피치 못한 사정을 이겨내기 위해 여러분 얼마나 기도하고, 얼마나 노력을 했습니까?
주간 첫날의 의미
오늘 본문 말씀의 배경은 이렇습니다. 사도 바울은 3차 선교여행을 마치고 헬라 지방에서 아시아로 넘어왔습니다. 그 첫 도시가 드로와라고 하는 항구 도시였습니다. 드루와에서 하나의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그 주간의 첫날‘에, 즉 바로 주일날입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그 주간 첫날에 성도들이 떡을 떼러 모였다고 이야기 합니다. ’떡을 때려 모였다‘는 것은 예배를 드리기 위해 모였다는 관용어 표현입니다. 예배 시간에 진행되는 것을 가지고 예배를 표현한것입니다. 예배 시간에는 떡을 떼는 것과 강론, 즉 말씀을 전하는 일을 했습니다. 이 두 가지가 예배의 핵심이었습니다. 그것을 주간 첫 날에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주간 첫 날에 모였던 그 일이 요한계시록 1장 9절에서는 ’주의 날‘이라는 말로 표현되어 있고, 오늘날 우리는 주일을 지키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완성을 맛보고 누리는 날
안식일은 완성을 의미하는 날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를 완성하시고 안식하셨습니다. 이것이 창세기 2장 1절 이하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즉 하나님은 창조를 완성하시고 안식하셨습니다. 안식은 글자 그대로는 ’쉰다. 그친다‘는 의미이지만 바로 ’완성‘이라는 의미로 연결되는 것입니다. 한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안식일을 십계명 중에 제4계명으로 주셨습니다. 그때의 안식일은 구속의 완성을 기다리는 안식일입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종살이하는 데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안식하는 것입니다. 한편 그들은 광야에서 40년을 방황하다가 가나안 땅에 들어갔습니다. 또한 그것이 안식입니다. 그러나 그 때의 안식은 그림자였습니다. 이 그림자로서의 안식이 본래의 안식은 신약시대에 와서 안식일의 주인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루어졌습니다. 즉 안식일은 신약시대로 와서 주일로 바뀝니다. 안식일이 주일이 된 이유는 그리스도께서 구속을 완성하시고 부활하신 날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그 날 밤에, 그 주간 첫날에, 안식 후 첫날에, 즉 주일에 제자들이 모인 자리에 나타나셨습니다. 유대교회는 유대인들로 이루어져 있었기 때문에 오랫동안 지켜 왔던 안식일을 자기 동족들과 같이 지켰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들은 안식 후 첫 날 다시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렸던 것입니다. 예루살렘이 멸망하고 유대인 성도들이 교회에서 사라졌을 때, 이제 이방인 성도들만 남게 되었습니다. 이방인 성도들은 새삼스럽게 안식일을 지킬 필요가 없었고, 주일만 지켜 왔습니다. 그리고 오늘까지 우리가 주일을 지키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완성을 기다리라
주일은 어떤 날입니까? 완성을 기다리는 날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역사를 완성하시는 때, 새 하늘과 새 땅이 이루어지는 때, 그리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직면하고 가장 가까운 곳에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며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사랑과 은혜를 마음껏 받아 누리는 영광스러운 순간, 이것이 완성입니다. 그 날이 바로 안식의 날입니다. 그 안식을 지금, 이 지상에서 맛보는 것, 이것이 바로 주일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주일날에 하나님께서 이루실 완성을 맛보게 하시고, 이 날을 복되고 거룩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날을 지키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그 복을 받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이것을 위해 서원하고, 이것을 위해 끝까지 도전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주일 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실 구원의 완성을 기다리며 맛보는 날입니다. 하나님 가장 가까이에서 주님을 찬양하고 경배하며 그 은혜와 복을 받아 누리는 영광스러운 날인 것입니다. 이 날을 소망하시고, 이 날을 끝까지 거룩하게 지키기로 결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주님께서 금년에 여러분의 가정에, 여러분의 삶에, 우리가 감히 받지 못할 영광스러운 복으로 충만하게 채워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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